2017년 10월 2일. 로큰롤의 별, 탐 페티가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66세. 1976년에 결성된 탐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Tom Petty and the Heartbreakers)를 시작으로 거장들이 모인 슈퍼그룹 트래블링 윌베리스(Traveling Wilburys)를 거쳐 머드크러치(Mudcrutch)까지, 끊임없이 록의 발전에 기여했던 로커였기에 그 아쉬움이 크다. 이즘이 선정한 14곡과 함께 그의 업적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보자.
American girl (1976,
빌보드 싱글차트 100위 안에 등장하지 못했지만 탐 페티를 대표하는 노래 중 하나다. 1960년대 활동한 포크록 밴드 버즈에게 영향을 받은 깔끔한 기타 소리와 초기 로큰롤 싱어 송라이터 보 디들리 스타일의 박자는 탐 페티가 어디에 음악적 뿌리를 대고 있는지 알려주는 명확한 증거다. 그 위에 1976년 당시 붐을 이루던 펑크의 분위기까지 우려낸 'American girl'은 활동 초기에 음반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 탐 페티의 결연한 결과물이다. 음악전문지 <롤링 스톤>에서 선정한 '위대한 기타 노래 100'에서 76위를 차지한 'American girl'의 오프닝은 개러지 록 밴드 스트록스의 'Last nite'의 도입부에 영향을 주었고, 그 인연으로 스트록스는 2006년도 탐 페티 공연에서 오프닝을 맡았다. 2009년에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리메이크해서 미국을 상징하는 곡임을 확인시켰다. (소승근)
Breakdown (1976,
초장부터 야릇한 무드를 조성하는 전자 피아노, 여백을 채우는 마이크 캠벨(Mike Campbell)의 블루지한 기타 리프, 곡을 풍성하게 장식하는 알앤비풍의 백코러스, 곡은 좀처럼 시선을 한 곳에만 둘 수 없게 만든다. 롤링 스톤스의 섹시함을 겸비한 탐 페티의 거드럭거리는 보컬 또한 시대를 이을 록 스타의 탄생을 예고하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Refugee (1979,
'Refugee'는 탐 페티가 얼마나 록의 통사에 충실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쓰리 코드를 중심으로 하는 단순한 골격, 버스와 코러스가 뚜렷한 진행 구조, 곡을 주도하는 블루지한 기타, 밥 딜런 풍의 보컬과 같은 'Refugee'의 주된 특징들은 1970년대 중후반 록 사운드가 지향하던 복고성과 큰 접촉면을 형성한다. 탐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의 세 번째 앨범
Don't do me like that (1979,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등극하며 본격적인 히트 퍼레이드의 시작을 알린 더 하트브레이커스의 세 번째 앨범
The Waiting (1981,
우선 에피소드 하나. 네 번째 앨범인
덜 다듬은 것 같으면서도 군더더기는 전혀 없는 블루지한 기타 록 사운드를 토대로, 여느 히트곡 보다도 강한 훅을 펼쳐놓는 이 노래는 이렇듯 삶에 있어 기다림의 개념을 재고하게 만든다. 위 내용이 직접적인 계기였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어떤 표정으로 기다려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모두에게 공통임을 이 곡의 히트로 증명했다.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19위, 메인스트림 록 차트에서 6주 연속 1위를 기록한 밴드의 대표곡 중 하나. 여담이지만, <심슨> 시즌 9에서 호머가 자신이 구입한 총기를 기다리는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사상 최악의 총기사고가 일어난 지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그는 세상을 떠났다. (황선업)
Stop draggin' my heart around (1981,
좀처럼 듀엣을 하지 않는 그임에도 유독 한 사람과는 여러 번 호흡을 맞췄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플리트우드 맥의 멤버이기도 한 'Queen of Rock & Roll' 스티비 닉스는 이 프론트맨의 열렬한 팬임을 늘 강조해왔다. 심지어는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탐 페티가 자신을 설득했다면, 나는 플리트우트 맥을 떠나 밴드에 합류했을 거라고.
이를 계기로 시작된 우정은 작품으로 이어졌다.
You Got Lucky (1982,
신디사이저 리프가 곡을 이끌고 드럼 루프가 뒤를 받친다. 곡의 중간과 끝에서는 트레몰로 암을 활용한 서프 록 풍의 기타가 등장한다. 1970년대 중후반과 1980년대 초, 건반 악기를 두고 다채로운 시험를 하던 뉴웨이브 식의 접근과 탐 페티가 가진 전통적인 로큰롤 터치가 만난 곡이다. 음악에서의 독특한 시도는 뮤직 비디오에도 이어졌다. 영화 <매드 맥스>로부터 영향을 받아 밴드는 영상에 미래 풍의 세계관과 구성 연출을 담아내며 뮤직 비디오 영역에서도 참신한 결과물을 낳는 데 성공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20위라는 높은 성적을 남겼다. (이수호)
Don't come around here no more (1985,
유리드믹스의 데이비드 A. 스튜어트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Last Night (1988,
그의 활동궤적 가운데 또 하나의 광채는 밥 딜런, 조지 해리슨, 제프 린 그리고 로이 오비슨과 함께한 프로젝트 트래블링 윌베리스(Traveling Wilburys)다. 어쩌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슈퍼그룹'이라 할 이 TF 팀에서 나이가 가장 어렸다.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그들의 첫 앨범에 수록된 이 곡은 탐 페티 지분으로 로이 오비슨와 함께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그가 다채로운 감정을 다양한 장르로 표현하는 음악가임을 레게 터치의 이 곡은 증명한다. “어젯밤 만난 매력적인 여인과 놀아나다가 청혼했더니 갑자기 그녀는 총을 들이 댄다. '이제 파티는 시작이야! 돈과 목숨 중 뭘 택할래?” 탐 페티는 은근 재미를 좋아했던 사람이다. (임진모)
I won't back down (1989,
'Don't do me like that'이 탐 페티 앤 더 하트 브레이커스의 출세 싱글이라면 'I won't back down'은 솔로 탐 페티를 알리는 첫 싱글이다. 상업적으로도 평단으로도 호평 일색을 받았던
Free fallin' (1989,
고속도로를 달리며 세상 가득 행복한 표정을 짓는 탐 크루즈가 부르던 노래. 롤링 스톤즈의 'Bitch'와 칩 테일러의 고전 'Angel of the morning', 그램 파슨(Gram Parson)의 'She'를 제친 <제리 맥과이어> 속 한 장면으로 우리의 기억 속 깊이 각인된 곡이다. 제프 린이 '쓰리 코드만 잡고 아무 가사나 불러보라'고 하여 만들어진 이 곡은 사랑하는 여인을 고향에 두고 성공을 쫓아 도시로 상경한 남자의 자유로움을 낭만적인 어쿠스틱 연주에 담아 캘리포니아의 방랑자 탐 페티를 완성했다.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권의 공산주의가 무너지던 1980년대 말 '냉전은 끝났다!'의 자유로움을 상징했던 'Free fallin''은 미국의 자부심이자 전 세계의 부러움이었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7위까지만 올랐음에도 가장 유명한 곡으로 드 라 소울, 스티비 닉스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커버했으며, 2007년 존 메이어의 라이브 버전이 또 다른 히트를 만들었고 2008년 미국의 상징 슈퍼볼 공연에서도 장관을 연출했다. (김도헌)
Learning to fly (1991,
미국 냄새, 그중에서도 컨트리의 성분이 다분한 탓일까. 우리나라에서 탐 페티는 낯선 이름이다. 'Mary Jane's last dance', 'You don't know how it feels'와 함께 1990년대의 탐 페티를 대표하는 곡이자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제프 린(Jeff Lynne)과의 협업으로도 유명한 'Learning to fly'는 아마, 탐 페티 입문용으로 가장 최적의 곡일 것이다. 쉬운 코드 진행과 잘 들리는 멜로디, 정감이 깃든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에서 컨트리의 향취가 짙게 풍겨옴에도 이국적인 거부감이 전혀 없다. 신시사이저가 곁들여진 보니 타일러(Bonnie Tyler) 버전과 미니멀한 편곡의 레이디 엔터벨럼(Lady Antebellum) 버전과 비교해서 듣는 것도 곡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이택용)
Mary Jane's last dance (1993)
이 노래가 나오자 다른 해석이 팬들의 편을 가르게 했다. 하나는 대마초에 관한 내용이라는 주장이었다. 제목에 쓰인 'Mary Jane'이 마리화나, 대마초를 일컫는 말인 데다가 '메리 제인과의 마지막 춤으로 고통을 한 번 더 날려 버렸네(Last dance with Mary Jane, one more time to kill the pain)'라는 가사가 한층 의혹을 부풀렸다. 어떤 이들은 탐 페티의 아내 제인 벤요와의 불화를 암시한 노래라는 입장을 취했다. 당시 부부에게서 세간이 주목할 만한 엄청난 문제가 불거져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래의 여주인공과 부인의 이름이 같다는 점, 하룻밤을 보내고 난 뒤 화자가 홀로 남겨졌다는 플롯을 두고 음악팬들은 비극의 징조를 읽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부는 1996년 22년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탐 페티가 확실한 설명을 남기지 않은 터라 팬들의 의견은 어쩌면 더욱 분분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해석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듣는 순간 변두리 작은 마을이 눈앞에 펼쳐지는 구수한 사운드, 버스에서의 음색과 대조돼 한층 예쁘게 들리는 후렴, 톤을 달리해 몰입도를 높이는 기타 솔로 등 음악적 외형이 멋스러운 사실은 많은 이가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래는 기묘한 스토리, 킴 베이싱어의 연기가 돋보인 뮤직비디오로도 색다른 재미를 제공했다. (한동윤)
It's good to be king (1994,
밴드 하트브레이커스와 분리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일생에 걸쳐 '자유'를 탐한 그는 솔로 앨범도 3장이나 냈고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1994년 말에 발표한 릭 루빈 프로듀스의 앨범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