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험: 정치는 어디서, 언제, 어떻게 되어지는가?』는 문민정부에서부터 박근혜 정부 사이에 벌어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총 61개의 굵직한 사건들을 현재 활발하게 노동운동과 문화운동을 전개하는 김상철 저자가 예리한 시각으로 파헤친 책이다.
이 책은 1987년 민주주의 혁명 이후 현재까지 한국 정치사회문화사에서 우리가 공동경험으로 가지고 있는 사건들을 뽑아냈으며, 단순히 사건의 기승전결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의 맥락에 주목함으로, 하나의 사건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미친 경험으로서 평가했다. 이를 통해서 ‘기승전’의 공동경험이 ‘결’의 공동경험으로 나아가고, 2016년 촛불을 경험한 우리의 공동경험이 19세기의 꼬리를 끊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현재의 우리를 만든 공동경험들의 사건들을 끄집어내 제대로 조명하고 그로부터 만들어진 우리의 정치에 대한 ‘직관적 사고’를 극복할 수 있는 ‘경험의 혁명’을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전히 우리의 현재를 만들고 있는 과거의 사건들을 제대로 끝낼 필요가 있다. 이 책이 그런 고민의 작은 목록을 제안한다.
책의 제목 『공동경험』이 독특한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이제 막 대선이 끝나고 우리는 기대감으로 새 시대를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을 제도의 힘으로 끌어내렸습니다. 이것은 누구 하나의 힘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한 공동경험의 힘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 3년 동안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아있던 세월호가 그 모습을 드러냈고, 우리는 이 과정을 광장에서, 미디어를 통해서 함께 보았죠. 아마도 이런 공동경험은 또 다른 변화를 낳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서 이 책의 제목을 공동경험으로 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은 그 자체의 기승전결이라는 완결적인 구조도 중요하지만 어떤 것이 경사의 한쪽으로 올라간다면 다른 쪽으로 내려오는 게 자연스러운 일처럼, 과거의 사건과 미래의 사건으로 연결되는 맥락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사건들은 미래의 사건의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즉 과거의 수많은 사건들은 올라갔던 경사의 사면으로 미끄러지는 형국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가 함께 경험했던 사건들을 살펴보는 것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사건이 미래의 사건으로 연결되는 맥락이 중요하다고 말하셨는데요. 혹 사건의 반복을 뜻하는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사건은 반복되었습니다. 제대로된 마무리가 없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보자면,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1995년 김영삼 정부 시기에 ‘씨프린스호’라는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사상 최대의 원유 유출 사고로 기록되죠. 그리고 12년 후, 비교적 근래인 2007년엔 다시 삼성-허베이 스피릿호 침몰 사고가 벌어집니다. 물론 사고의 양상은 유사했고, 이 사고를 처리하는 정부의 방식 또한 매우 유사합니다. 1995년에서는 사고를 낸 회사의 이름(호남정유->GS칼텍스)을 바꿔서 숨어버렸다면, 2007년 사고에서는 사고 이름을 ‘태안기름유출 사고’라고 붙이면서 숨었습니다. 스케일이 커졌을 뿐 사고를 낸 회사를 감추는 방식과 공언한 것과는 다른 보상의 절차는 그대로 반복됐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2005년 농산물의 대규모 수입에 항의하는 두 농민의 죽음은 2015년 한 농민의 죽음으로 재현되며, 동일한 원인의 동일한 죽음이 정권을 달리하여 반복되었습니다. 이것은 정권의 교체라는 가시적인 변화와는 다르게 한국 사회 기저에 흐르는 어떤 일관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방금 언급하신 사건을 모두 알고는 있었지만, 시간을 두고 반복되었다니,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이런 연관성을 찾기 힘드셨을 텐데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저도 처음부터 사건들의 연관성이나 반복성을 눈치챈 것은 아닙니다. 처음 발생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발단이나 과정 그리고 결과까지도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사건, 즉 기시감을 주는 사건들이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웬일인지 이런 기시감을 주는 사건들은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어요. 특히 과거의 어떤 사건이 현재 벌어지는 사건의 원인이거나 혹은 그보다 앞선 사건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판단하면서 저 또한 충격을 받았고요. 그리고 『표심의 역습』이라는 책에서 세대의 특징을 주요한 사건을 통한 ‘공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분류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면, 어쩌면 단순한 호기심에만 머물렀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책을 통해 제가 생각할 거리들이 많아지고, 작업을 시작할 마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작업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작성된 『표심의 역습』의 아이디어를, 개인적인 경험에 맞춰서 추려낸 사적인 작업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겸손의 말씀이신 것 같아요.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결론을 도출하시는 방법이 꽤 독특하고 탁월하다고 느꼈거든요. ‘아하! 사건이 이렇게 연결이 되는 거였어? 아, 정말이네! 이런 걸 다른 사람들도 알아야 하는데!’ 이런 감탄사들이 절로 나왔거든요. 팩트가 이토록 흥미롭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던 시간입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책이라 더욱 자료에 신경 쓰셨을 텐데요. 어떤 방식으로 사실을 모으고 증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네, 잘 알고 계시듯 자료를 조사하고 모으는 데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작업을 해나가면서 곤란스러웠던 것은, 비교적 근래에 벌어진 사건들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기승전결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문서를 찾기가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위키피디아>를 요약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개별 신문기사나 논문, 필요하다면 누군가의 블로그에 게시된 글을 참조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재판의 내용은 전체 판결문을 통해서 맥락을 이해한 후 인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사건을 중심에 놓은 세대론의 유효함과 별도로 앞서 말했던 ‘기시감’의 정체였습니다. 하나의 사건은 마치 뒤이을 사건을 예상하고 견인하듯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종료되었어요. 그리고 후반부 경기를 뛰듯이 특정한 사건이 뒤를 이었고 첫 번째 경험의 경로를 재확증했고요. 이런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꽤 참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건들에 익킨이라는 젊은 그림 작가의 그림이 들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림작가가 표현한 사건과 저자께서 생각하신 사건도 어떤 의미에서는 공동경험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네, 좋은 관점입니다. 저와 다른 시간대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림 작가의 그림을 통해서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볼 것도 꽤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글은 기승전결의 순서를 쫓아가지만 그림은 글 속의 한 문장 혹은 한 단락을 감탄사로 시각화했다는 게 특징이 될 수 있겠네요. 강력한 사건의 여운이 그렇듯이 글을 통해선 드러나지 않은 찰나의 감각이 그림에 아주 잘 표현되었습니다.
저자 약력을 보니 지금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신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나요.
좀, 낯설 텐데 저는 기본적으로 1997년 국민승리21이라는 진보정치의 씨앗에서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정치운동에 갇히기 보다는 한국사회에서 최초로 정치인에 대한 낙선 낙천운동을 시도한 2000년 총선시민연대,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을 주민투표를 통해서 뒤집었던 2004년 부안방폐장주민운동에 참여해왔습니다. 그리고 2011년 예술인들의 잇단 죽음으로 촉발되어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좌담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최초의 탈장르 문화예술인단체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을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저는 진보정당 운동가, 더 구체적으로는 서울이라는 지역을 노동과 사람이 중심인 도시로 바꾸는 정치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그리고 현재 노동당으로 이어진 진보정당의 역사에 당사자로 있었습니다.
상당히 복잡하고 중구난방처럼 보이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고민은 ‘우리 사회의 공존을 위한 조건’입니다. 공존을 위해서는 모두가 공유하는 경험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평가 역시도 똑같을 필요는 없지만 공통의 평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건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엇나간 경험의 간극을 낳았고, 공존이 불가능할 정도의 차이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이 『공동경험』이라는 고민으로 이어진 것이죠. 저는 우리의 공존을 위해 제대로 된 공동경험을 만드는 정치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로 제가 하고 있는 활동과 하고 싶은 일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공동경험』을 통해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어떤 불가능성이 아니라, 표면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밝히고, 동일한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끊어내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사건들의 맥락을 조사하다 보니 우리는 사건의 발단과 전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정작 그 사건의 마무리 혹은 현재를 잘 모른다는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사건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꿰어내어 종합적인 모습, 무엇보다 사건의 끝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 다음 일이어도 좋습니다. 적어도 현재 우리를 만들고 있는 경험의 완전한 형태만은 확인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