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저출산 문제, 어린이를 최우선에 두면 해결할 수 있다
우리의 놀이터, 어떻게 놀 것인지를 다 정해주고 알록달록하게 색칠한 놀이터가 ‘이렇게 놀아라’라고 하는 것 같죠. 그것이 마치 색칠공부 같다면 독일의 놀이터는 그냥 하얀 스케치북 같았어요. 와서 누구든 원하는 방법으로 색칠하고 그림 그릴 수 있는 곳이요.
글ㆍ사진 신연선
2017.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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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정체성을 가지고 쓴 책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의 저자 이소영은 자신의 책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동문학가이자 놀이터디자이너 편해문의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놀이와 놀이터에서 배운다’고 한 말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말이었다. 엄마 정체성을 가진 입장이 본 놀이터는 어떤 모습일까. 과연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곳이었을까. 저자는 2016년 여름, 독일의 대표적인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Freiburg, 독일 남서부 스위스 국경에 가까운 도시)로 떠났다. 목적은 놀이터 탐방이었다. 저자를 중심으로 저자의 가족(남편과 딸 두 명), 저자의 어머니, 저자의 동생 가족(동생과 남편, 아들 한 명) 모두 여덟 명의 대인원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들과 함께 구글 어스로 프라이부르크를 살펴보았다. 화면을 본 아이들은 외쳤다. “와, 초록색이다!”

 

“프라이부르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은 아니지만 사실 유럽에서는 꽤 유명한 관광도시예요. 구도심 부분에 중세 시가지가 2km 정도 복원이 되어 있고요. 거기에 있는 대성당에서 소시지빵을 먹는 게 관광객의 주요한 일과입니다.(웃음)”

 

후설(Edmund Husserl),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등의 철학자가 수학한 프라이부르크 대학교가 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진 이 도시는 무엇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생태도시다. 1992년 독일의 환경수도로 선정, 전체 고용인구의 3퍼센트인 1만여 명이 재생에너지, 태양전지 등 환경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교도 굉장히 커서 학생 수가 2만여 명 정도가 돼요. 학생과 교직원, 관련 연구기관 종사자와 환경 산업 종사자까지 포함하면 전체 22만여 명의 인구 중 4만여 명 정도가 굉장히 젊고 진보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도시 전체가 아주 개방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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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없는

 

“도시의 다채로운 표정을 만드는 것이 바닥을 흐르는 수로예요. ‘베힐레’라고 부르는데요. 이 물길을 따라 쭉 걸어갈 수도 있어요. 딱히 지도가 없어도 물길을 따라 걸으면서 도심 산책을 하며 즐길 수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그곳에서 잘 놀았어요. 만약 이 수로가 우리가 아는 어떤 도시, 서울이나 뉴욕, 파리 등의 한복판에 있다고 상상해보시면 어떨까 해요. 언제든지 신발을 벗고 발을 담글 수 있는 차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면 그게 얼마나 마음과 몸에 위안이 될까요.”

 

중세 유럽에는 도시마다 이런 수로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산업화가 진행되며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물길이 차량 통행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프라이부르크는 다른 도시들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수로가 있는 구도심 구역 전체를 차량 통행금지 구역으로 정했던 것. 저자는 베힐레를 두고 “영혼을 씻어주는 물길”이라고 한 어느 작가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베힐레의 쓸모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처음에는 식수 공급과 함께 화재 진압 기능을 가졌다고도 한다. 도심의 먼지를 덜어주고 더위를 식혀주는 기능이라든가 빗물을 모으는 용도 등도 거론된다. 누군가는 이 수로의 가치를 몇 억이라는 돈으로 환산해 설명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작은 물길의 가치는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 물길은 도시의 먼지와 함께 사람들의 경계 짓는 마음을 가져간다. 도시는 자연스레 놀이터가 되고 아이들은 도시의 주인이 된다.(36쪽)

 

흥미로운 것은 어느 곳에도 경계나 구역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였다면 ‘미끄럼 주의’, ‘신을 벗고 들어가시오’라는 경고문이나 테두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저자는 “트램이 다니는 선로가 베힐레 바로 옆에 있어도 아무 경계가 없어요. 선도 하나 그어놓지 않고요. 트램이 경적을 울리면 사람들이 그때 비켜요. 사람이 안 비키면 트램은 계속 기다려요. 선로와 트램과 인도 사이에 어떤 경계도 없는 그런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고요.”라고 했다. “금지 표시를 붙이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는 해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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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으로 당당한


‘제파크(Seepark)’ 호수공원은 건설회사가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는 곳이었다가 주차장 부지로 방치되었던 곳을 1986년 지금의 모습으로 갖추었다. 공원 중앙에는 인공 호수가 있는데 “수심이 깊은 곳은 25미터”까지 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어디에도 ‘수영 금지’ 표시가 없다는 점이다.

 

“오리한테 먹이 주지 말라는 정도만 있고요. 경고판에도 ‘네 수영 실력을 알지’(웃음) 정도로만 쓰여 있는 거예요. 알아서 하라는 거죠. 당연히 이 호수에 들어갈 수가 있어요. 주변으로는 둔덕이 있고요. 저는 이 공원이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점은 포장을 안 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참 열심히 가꾸잖아요. 차가 다니는 길은 당연히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고, 사람이 다니는 길은 보도블럭으로 포장을 하고요. 놀이터는 우레탄으로, 공원은 나무데크로 전부 포장을 해요. 사람이 공원에서 흙을 밟는 일이 없어요. 산책하는 길은 다 포장이 되어 있으니까요. 넓은 공원을 다 포장하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들겠어요. 어떻게 보면 독일의 이 공원은 정말 싸게 만든 공원이죠. 포장도 하나도 안 하고요.”

 

저자는 “우리가 흙을 밟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생태적인 도시에 살고 싶다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흙에 대한 거부감, 즉 흙이 불편하다거나 흙이 지저분하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부터 우선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문덴호프’는 안과 밖이 희미한 동물원이다. 동물원이지만 “동물이 전부 멀리에 있는” 동물원이다. “동물들에게 더 넓고 편안한 집을 주기 위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 동물원 안에는 역시 놀이터가 여러 개 있다. 한국의 여느 놀이터와는 색채부터가 다르다. 나무인 채, 콘크리트인 채로 마치 “폐허처럼” 보이는 놀이터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이 놀기 시작하면 장소의 빛깔이 변한다. 저자는 이 놀이터들을 하얀 스케치북 같다고 표현했다.

 

“우리의 놀이터, 어떻게 놀 것인지를 다 정해주고 알록달록하게 색칠한 놀이터가 ‘이렇게 놀아라’라고 하는 것 같죠. 그것이 마치 색칠공부 같다면 독일의 놀이터는 그냥 하얀 스케치북 같았어요. 와서 누구든 원하는 방법으로 색칠하고 그림 그릴 수 있는 곳이요. 꼭 놀이터가 아니더라도 나무가 한 그루 있어서 원하는 방식으로 놀 수 있게 해두기도 하고요. 그런 곳들이 동물원 구석구석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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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없다면?


‘세계 제일의 생태계획지구’, 프라이부르크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보방(Vauban)’을 수식하는 말이다. 수식에서 볼 수 있듯 이곳은 모든 주택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 ‘패시브 하우스’다. 녹지로 조성한 건물의 옥상이 또한 특징적이기도 하다. 보방에 들어선 저자를 사로잡은 것 역시 “엄청나게 거대한 가로수”였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낯선 조합의 도시였어요. 몇 천 가구가 사는 주거지구인데요. 그런 도시 한복판인데 자연 속 같은 느낌을 동시에 주더라고요. 이런 것이 도시에서 가능하구나, 하는 인상을 주는 도시였어요.”

 

개천에서 수영 하는 개,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맨발의 사람, 보방은 여러 가지 놀라운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이 도시에는 차가 없다. 도시를 처음 기획할 때 ‘보방 포럼’이라고 하는 주민단체의 대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집을 지을 때 주차장 대신 놀이터를 먼저 만들게 해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차가 중심에 있는 도시와 사람이 중심에 있는 도시, 그 안의 삶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프라이부르크에는 다니다 보면 놀이도로라고 하는 ‘홈 존’을 자주 만나게 돼요. 차량 제한속도는 시속 7킬로미터예요. 걸어가는 게 더 빠른 도로죠. 사람과 같은 속도로 가든지 사람이 있으면 기다리라는 이야기인 셈이에요. 도로의 주인이 차가 아니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아이가 놀고 있음’이라는 표시를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마음을 도시가 가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정말 느껴지는 곳이었어요. 우리가 저출산이라든지 환경을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철학이랄까 지향 같은 것들은 우리가 어린이들을 최우선에 두고 있다고 하는 방침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 같아요.”
 
2013년 9월 한 달 동안 수원 행궁동 일원을 차 없는 도시로 만든 행사가 열렸다.(중략) 하지만 축제는 축제일 뿐, 축제가 끝난 뒤 다시 찾은 행궁동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그 길을 다시 걸으니 차가 얼마나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거리에 차가 없으면 그것만으로도 공간의 가치가 달라진다. 보방의 마법은 차가 없는 거리에서 시작되는 게 분명하다.(228-229쪽)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 이소영 저/이유진 사진 | 오마이북
독일 남부 작은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즐긴 아주 특별한 ‘놀이터 여행’. 이 책은 아이가 신나서 뛰놀고, 부모가 마음 편히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꿈같은 놀이터 이야기다. 초등학생 융, 유치원생 교, 네 살 꼬시, 칠순의 할머니 도족여사, 그리고 두 가족의 엄마와 아빠들이 이 특별한 놀이터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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