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의 ‘비밀특사’를 뮤지컬 무대로 옮긴 창작 뮤지컬 <경성특사> 공연이 한창이다. 원작 소설의 무대를 1929년 경성으로 옮긴 뮤지컬은 ‘청년모험가’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작품 속 청년모험가로 활약하는 이민토는 정민, 강성욱 배우가 맡아 열연 중이다.
뮤지컬 데뷔가 꼭 10년 차이 나는 두 배우에게 작품과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뮤지컬 <경성특사>는 어떤 작품인가요?
정민: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을 경성으로 옮기면서 바뀐 것이 많지만 뼈대는 소설 그대로예요. 뮤지컬로는 보기 드문 추리극이라 극적 긴장감이나 박진감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번이 초연인 만큼 더 다듬어지면 아주 괜찮은 뮤지컬이 될 것 같아요.
작품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정민: 처음에는 고영필 변호사로 출연 제의를 받고 미팅을 했어요. 그런데 저를 보시고는 고영필 역할을 하기엔 너무 젊어 보인다고 민토 역할이 더 어울릴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제 나이와 무대에서 모습만 보시고 고영필이 어울릴 거로 생각하셨나 봐요. 마침 민토 역할이 결정되지 않았던 때라 상의하고 연락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감사하게도 다시 연락을 주셔서 민토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강성욱: 저는 지난해 뮤지컬 <뉴시즈> 공연이 끝난 후 작정하고 쉬고 있었어요. 원 캐스트로 공연하면서 목도 많이 상하고 체력적으로도 아주 힘들었거든요. 쉬는 동안 공연 제안이 들어왔는데 좀 더 쉬고 싶어서 고사했어요. 그런데 <경성특사>는 대본이 너무 재미있어서 꼭 해보고 싶더라고요. 창작뮤지컬 초연 무대에 도전하고 싶기도 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뮤지컬에 사용된 음악이 특이해요. 경쾌한 ‘스윙재즈’ 스타일이잖아요?
정민: 스윙재즈가 워낙 경쾌한 음악이라 저희가 어둡고 무겁게 무게 잡고 연기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연습하면서 성욱이랑 힘들다는 이야기도 많이 했고, 고민도 많았어요. 제가 연기하는 것,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음악에 묻힌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전체적인 분위기와 균형을 음악에 맞춘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보니 추리극과 스윙재즈가 상당히 잘 어울리더라고요. 저도 자연스럽게 음악에 몸을 맡기고 극에 스며들면서 연습 때보다 본 공연이 훨씬 편해졌어요.
다른 작품은 인물이 가진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는데 추리극은 이야기 자체가 중심이 되잖아요. 그래서 연기하는 방법도 달랐을 것 같아요.
강성욱: 추리물은 어느 한 인물이 극을 이끌어가기보다 배우와 배우가, 또 작품과 배우가 잘 어우러져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게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작품과 어우러지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고민했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민토를 더 드러내고 싶기도 했고, 민토의 변화를 더 적극적으로 보여드리고도 싶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저 혼자 튀어버리고 작품이 엉망이 되니까 많이 자제하고 적정선을 찾아야 했어요.
정민: 10년 넘게 공연을 했지만 이번처럼 연습 과정이 힘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민토라는 인물을 만드는 게 정말 어려웠거든요. 저희 두 민토는 매일 연습실에 가장 먼저 도착해서 가장 늦게 가고 연출님과 조금이라도 민토만의 색깔을 더 넣어보기 위해 굉장히 많이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작품이 한 인물이 추리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게 아니라 관객과 함께 추리하는 작품이라는 거였어요. 결국에는 튀지 않고 작품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민토가 되어야 했어요. 아쉽게도 인물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공연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는데 이건 앞으로 <경성특사>가 풀어가야 할 숙제 같아요.
<경성특사>의 이민토는 어떤 인물인가요?
강성욱: 민토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수재예요. 아무리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 가도 일제강점기 시기의 조선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던 인물이죠. 제가 생각하는 민토는 자신이 겪은 부당한 일 때문에 사회에 불만은 있지만, 어차피 이 시대에서 난 안 돼라는 생각 때문에 무기력해요. 그러다가 어렸을 때 친구인 이옥을 만난 후 그녀에게 자극을 받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적극적으로 변하는 인물이에요.
창작 초연이다 보니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정민: 처음에 민토는 시니컬하고 말수가 적은 한량에, 삶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어요. 대본에 인물 소개도 그랬고, 연출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극에서 민토는 위기 상황을 돌파하고 적극적인 추리를 통해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인데, 매사에 흥미가 없는 인물이 그런 역을 하기에 적합한가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연출님, 작가님과 많이 의견을 나눴어요.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요. (웃음) 그러다 무관심하더라도 에너지가 있는 인물이라면 설득력이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처음과 달리 활기찬 민토라는 인물이 만들어졌어요. 결론적으로 저도, 연출님도 지금 민토에 만족하고 있어요. 계속 연출님, 작가님과 대화하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과정이 모두가 만족하는 민토를 탄생시키지 않았나 싶어요.
강성욱: 여기서 정민 형과 저의 경력과 역량 차이가 드러나는 거 같아요. 저는 대본과 연출님 말씀에 전혀 의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연습 막바지에는 정민 형과 제가 완성한 민토가 굉장히 달랐어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 서니까 연습 때와 다른 거예요. 조명이 켜지고, 무대 음향이 들어가고, 의상을 입고 극의 흐름을 타고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추다 보니 저도 모르게 연습 때와 다른 활기찬 민토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전 오히려 연습 때가 편했고, 공연 초반에는 좀 혼란스러웠어요. 연습 때와 달라서요. 하지만 금방 새로운 민토를 받아들였어요. 이 작품에는 확실히 정민 형이 만든 민토가 더 어울렸거든요.
2005년에 데뷔한 정민 배우는 무대 경험이 굉장히 다양한데요, 배우로서 느끼는 창작뮤지컬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정민: 창작뮤지컬 작업에 참여한다는 건 굉장히 힘들지만 배우로서 성장하기에는 정말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물론 라이선스 뮤지컬도 장점은 있어요. 이미 검증되고 완성된 연기, 노래를 내 것으로 만들다 보니 빨리 성장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성장의 폭과 깊이는 제한적인 것 같아요. 이미 완성된 거잖아요. 그런데 창작뮤지컬은 배우, 연출, 스태프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이 배우게 돼요. 또 선배들과 함께 공연하면서 그들의 장점을 모방하며 얻는 것도 많고요. 지금 제 연기의 많은 부분이 선배들을 모방해서 제 것으로 익힌 것들이에요. 창작 뮤지컬을 한다고 해서 단번에 굉장한 성장을 이루는 건 아니지만 길게 봤을 때 배우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는 것 같아요.
강성욱 배우는 데뷔 후 4번째 작품이에요. 게다가 창작 뮤지컬 초연은 처음인데 어땠나요?
강성욱: 부담감이 컸어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인물을 만들어야 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요. 그런데 연습 과정을 거치고 나니까 어떻게 인물을 만들고, 어떻게 작품에 접근해야 하는지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제가 아직 신인이다 보니 제가 맡은 배역, 장면만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경성특사>를 하면서 머릿속에 작품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방향을 잡아가는 방법을 선배님들께 많이 배웠어요. 더 나은 배우가 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좋은 경험을 적절할 때 하게 되어서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아요.
서로의 장점을 꼽는다면?
정민: 앞서 이야기했듯이 민토가 시니컬하지만 그 안에는 에너지가 있는 인물이라 저는 그 에너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걸 계속 염두에 두고 연기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성욱이는 본인이 이미 그런 에너지를 갖고 있어요. 거기에 연기로 만들어진 에너지까지 더해지니까 그냥 가만히 서 있을 때조차도 작품과 너무 잘 어울리는 거예요. 저는 그게 정말 부럽더라고요
강성욱: 형은 무대에서 놀 줄 아는 배우예요. 연습실보다 무대에서 더 자연스럽더라고요. 무대에 있는 형을 보면 천생 뮤지컬 배우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 숱한 무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여유도 부럽고요. 전 아직도 무대에 서면 부담되고 떨리고 그렇거든요. 형처럼 여유롭게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배우고 싶어요. 한 10년이 지나면 가능할까요?
<경성특사>를 보러 올 관객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강성욱: 아무래도 창작뮤지컬 초연이다 보니 작품이 100% 완성되었다고 말씀드리긴 어려워요. 여전히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다듬어 가는 과정에 있는 작품이거든요. 그래서 작품을 보시는 관객 여러분도 함께 만들어가는 마음으로 관람하시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또 추리극인 만큼 범인이 누구인지 함께 추리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정민: 작품이 우선 재미있어요. 작품이 너무 무겁거나 너무 가볍지 않아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공연입니다. 추리극이라서 다른 뮤지컬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기도 하고요. 설 연휴를 맞아 부모님, 친구, 연인과 함께 극장에 오셔서 같이 범인도 찾아보면서 즐거운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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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현(스테이지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