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 ‘으르렁’, 태티서 ‘Twinkle’, 레드벨벳 ‘Dumb Dumb’, 동방신기 ‘갈증’, 슈퍼주니어 ‘Swing’, 태민 ‘괴도’, 러블리즈 ‘안녕’…. 요즘 가장 핫한 아이돌과 걸그룹 노래의 노랫말을 만드는 서지음 작사가. 가장 앞서가는 트렌드 세터인 K-POP의 곡들, 너무도 감각적이고 중독성이 강한 이 노랫말들을 만드는 그는 분명 엄청난 감각을 지닌 사람이 아닐까.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다. 대문을 열고 나가면 소가 막 지나다녔다. 그렇게 자란 것이 지금 노랫말을 만드는 데 무척 큰 자양분이 된다. 내가 시골에서 자랐다는 건 축복인 것 같다.”
걸그룹의 세련된 이미지를 풍기는 그의 내면에는 예상을 깬 자연의 정서가 흐르고 있었다. 서지음 작사가의 세계는 그런 정서와 내면의 끼가 함께 어루어져 빚어내는 말들의 세계였다.
“가사는 입에 붙어야 한다. 그리고 작사에서는 내가 보이지 않아야 한다.”
노랫말을 짓는 그의 과정은 순간에 감각적으로 포착해낸 말들을 빚고 빚는 숙성의 과정, 시공을 초월해 모든 사람들에게 관통되는 정서에서 트렌드의 최전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서지음 작사가와 나눈 대화.
아이돌 노래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인연이 궁금하다.
처음 작사했던 곡이 〈부탁해요 캡틴〉 OST 곡이다. 동시간대에 타 방송사에서는 〈해를 품은 달〉을 방송해서 아마 잘 모를 것이다. 이 곡을 작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티서의 ‘Twinkle’ 데모를 받아서 노랫말을 써서 보냈다. 그야말로 데뷔했다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지도가 전혀 없던 작사가 시절이었다. ‘Twinkle’이 잘되면서 이후 많은 기회들이 찾아왔다.
작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다. 보통 아마추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의 하나가 수사를 많이 넣어 꾸미는 거다. 아마 ‘아, 잘 써야겠다’ ‘멋있게 써야겠다’ ‘작품을 만들어야겠다’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 듯하다.
하지만 작사가는 가사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된다. 투명해야 한다. 작사 안에서 말하는 사람은 가사 안에 있는 화자다. 그런데 작사가라는 의식이 커지면 나도 모르게 가사 안에 내가 들어가게 된다. 소설도 읽다 보면 갑자기 작가가 튀어나와 이야기를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자연스러운 걸 좋아한다. 때문에 최대한 나의 의식을 배제하고 작사 안에서 화자가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티스트들 중에 가사를 잘 쓰는 사람이 있나?
힙합하시는 분들은 정말 다 가사를 잘 쓴다. 일단 음악 자체가 가사랑 떼려야 뗄 수 없으니까 어느 한 사람 지칭할 수 없이 거의 대부분이 다 잘 쓴다. 아이돌 중에서는 샤이니의 종현 씨도 가사를 잘 쓴다. ‘View’ 같은 노래를 들어보면 자기만의 느낌이 있다. 자신의 내면을 잘 담아놓은 듯한 가사다. 그리고 백아연 씨 가사도 참 좋다. 청아한 목소리만큼이나 가사도 정말 잘 쓴다.
서지음 작사 스타일의 강점은 무엇인가?
요즘은 정말 팝 데모가 많이 들어온다. 한국인이 부른 팝송 같은 느낌이 아니라 진짜 팝송 같은 곡들이다. 내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가리지 않고 많이 들었기 때문에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그에 맞는 가사를 쓸 수 있다는 게 강점인 거 같다. 아이돌 음악처럼 템포가 빠른 곡의 가사도 잘 소화하는 것은 아마 내가 댄스곡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작업할 때 한계를 두지 않으려고 한다. 한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어떤 곡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자랑이라면 중고등학교 때 시랑 시조 쓰는 걸 좋아했다. 시나 시조는 운율적인 언어인데, 지금 가사를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내가 일부러 맞추려 하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각운을 찾는다. 가사가 멜로디에 딱 붙으려면 가사 자체로도 운율감이 있어야 한다. 나는 습관적으로 말을 잘라낸다. 머릿속에서 자르고 잘라 말을 꺼내놓고, 가사를 쓰면서 군더더기 같다고 느껴지면 또 잘라낸다. 말을 잘라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아이돌 곡들 중에도 장르가 믹싱된 게 많지 않나? 특정 장르에 묶여 있지 않으니까 다른 나라 사람들도 좋아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 요즘은 어떤 장르의 음악이 아이돌 음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다양한 음악이 시도되고 있다. 우리가 듣는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시도하고 있으니 정의할 수가 없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노래와 퍼포먼스, 캐릭터도 다양하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이 되는 것 같다. 딱히 “음악이 좋아서다” 혹은 “멤버들이 좋아서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거 같다. 점점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을 받아들여 한국 스타일로 만들어가는 것 같다. 음악의 경계가 모호해진다고 해야 할까.
‘아이돌 음악’이라고 하면, 지금의 대세인 엑소를 만든 ‘으르렁’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으르렁’은 어떻게 나왔나?
원래 가이드에 영어로 ‘풋 잇 온 미(put in on me)’라고 되어 있었다. 둘 다 발음이 비슷했다. 이런 부분을 쓸 때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입에 잘 붙는 것’이고, 그다음이 임팩트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흥얼거릴 것인가, 즉 중독성도 중요하다. 그러한 기준에서 영어 ‘풋 잇 온 미’보다는 ‘으르렁’이 더 강렬했다.
작사를 한 지 4~5년가량 되었는데, 그동안 달라진 게 있다면?
대중음악은 어차피 대중들이 원하는 가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2~3년 전만 해도 콘셉추얼한 가사들을 많이 썼다. 샤이니 태민의 ‘괴도’의 가사가 그런 느낌이고, 내가 쓴 가사는 아니지만 빅스VIXX 1집, 2집에 수록된 곡들의 가사 역시 모두 콘셉추얼하다. 그때는 나도 그런 가사를 많이 썼는데, 요즘은 자연스럽고 일상언어로 이루어진 가사들을 좋아한다. 너무 무겁지 않은 느낌의 가벼운 가사들을 좋아한다. 너무 진지하지 않은 가사들.
작사에서 지금 확실히 이것이 트렌드라고 할 만한 게 있나?
어떤 때는 확실한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게 자리 잡을 때가 있는데, 그런 게 없을 때도 있다. 지금은 이렇다 할 트렌드는 없는 것 같다. 그보다 사람의 감정에 닿아야 하는 것이 중요해졌는데, 이건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인 것 같다. 트렌드라는 것도 이것을 바탕으로 그 위에 덧입혀지는 듯하고.
음악 장르적으로도 아이돌 음악, 힙합, 발라드, 옛날 노래 리메이크 등 많이, 또 다양하게 소비되는 것 같다. 지금 힙합이 주류 음악시장의 한 축을 차지한 것에는 아무래도 〈쇼미더머니〉의 영향이 있겠지만, 그 이전에도 힙합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반짝 등장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양한 음악이 만들어지고 또 소비되는 것은 어떤 특정 장르만 소비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한 현상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음악이란 무엇인 것 같나?
음악을 하는 것도 본능이지만 음악을 찾는 것도 본능인 것 같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며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듯, 음악을 본능적으로 찾고, 듣게 되는 것도 일상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늘 손만 뻗으면 나와 함께하는 허물없는 친구’랄까.
대중문화 트렌드 2017김헌식,장서윤,권석정 등저 | 마리북스
경쟁력은 곧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면 곧 생존 경쟁에서 탈락하고 말 것이다. 이런 불안감이 우리를 트렌드라는 세 글자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한다.
정은영
2004년부터 일본 소프트뱅크 크리에이티브, 소니 매거진 등의 협력사들과 함께 한류 콘텐츠 개발에 주력해 왔다. <이준기와 함께하는 안녕하세요 한국어> <20대 완소남 배우> 등을 비롯해 약 30여 권의 한류 단행본과 무크집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