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듯 양쪽에 광활한 사막이 드넓게 펼쳐진다. 건조한 바람에 바싹 마른 식물이 자동차 소음과 바람에 제 몸을 맡긴 듯 흐느적거린다. 평평한 메사(mesa) 언덕이 낮게 깔린 뭉게구름을 떠받들고, 지층이 그대로 들어난 헐벗은 바위는 부끄럼 없이 위용을 뽐낸다. 서부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평선을 이룬 사막 끝에서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 19세 기 미국 서부의 무법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면 차 창밖 그림에 화룡정점이 되리라.
뉴멕시코의 독특한 자연경관은 수많은 자동차 여행 객을 도로 위에 불러 세운다. 두 발로 걸어서는 장엄한 자연을 온전히 마주할 수 없고, 짧은 투어는 이 생경함을 받아들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수세기 전 위대한 예술가는 뉴멕시코에서 예술적 영감을, 어떤 이는 자연의 위대함을, 또 자본의 힘을 즉감했다. 그리고 오늘날 여행객은 미지의 땅에 첫발을 들인 코로나도(Coronado, 북아메리카의 스페인 개척자)처럼 낯선 풍경에 매료된다. 이 지역의 미묘한 풍경에 대해서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여행을 마치고 나면 뉴멕시코에서 여생을 마친 미국의 대표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가 남긴 말 에 무릎을 칠지 모르겠다. “음! 음! 음! 정말 멋진걸? 그런데 아무도 그렇다고 말해주지 않았잖아!”
조지아 오키프 작품에 수많은 영감을 준 뉴멕시코의 사막과 메사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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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Albuquerque
도시를 거쳐간 사람들
“하루가 짧다고요? 어제 온 여행객은 1시간만 머물다 떠나던데요?” 앨버커키 여행자 센터의 매니저가 뉴멕시코에 첫발을 들인 이방인을 능숙하게 응대한다. 1시간짜리 시티 투어에서 차를 타고 도시를 느긋하게 탐닉하는 자동차 여행까지, 앨버커키를 스쳐가는 여행객의 여정은 제각각인 듯 보인다. 분명한 건 이곳이 자동자 여행의 기점으로 가장 알맞다는 사실이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주도인 샌타페이(Santa Fe)와 타오스(Taos)가 이어지고, 남쪽에는 흰 모래사막이 장관을 이루는 화이트샌즈(White Sands)가 있어 어느 쪽으로 핸들을 돌리든 뉴멕시코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해발 1,619미터 고대지에 자리한 앨버커키는 동쪽으로 3,255미터 높이의 샌디아 산맥(Sandia Mountains) 이 감싸고 리오그란데 강(Rio Grande)이 중심부를 관통한다. 평생 이곳의 지질을 연구한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지형을 모두 파헤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멜론 껍데기처럼 울퉁불퉁한 표면으로 이루어진 암벽과 깎아지른 절벽에는 브로콜리처럼 보이는 키 작은 나무가 들러붙어 있고, 제멋대로 뻗은 봉우리는 눈을 의심할 정도로 기이하다. 따라서 모험심 가득한 아웃도어 여행자는 일찍이 산악자전거를 이끌고 험준한 산맥으로 먼저 향했을 것이다. 물론 이곳을 찾는 모두가 거대한 자연에 몸을 던질 필요는 없다. 앨버커키 도심에 발을 들였다면, 역사가 발화한 구시가로 핸들을 돌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앨버커키국제공항에서 15분 남짓, 300여 년 전에 세운 역사 지구로 입성하는 길은 낯선 이방인도 쉽게 합류할 수 있을 만큼 넓고 한적하다.
“앨버커키는 뉴멕시코의 신도시죠.” 구시가 역사 지 구에서 관광객을 맞이하는 가이드가 한껏 들뜬 시간 여행자의 상상에 제동을 건다. 진흙으로 곱게 빚은 토담집을 가리키며 할 얘기는 아닌 듯 보이지만, 애향심 넘치는 그를 노려볼 필요는 없다. 유명세로 따지자면 주도인 샌타페이에 밀릴지 모르지만, 앨버커키는 주의 인구 절반이 모여 사는 뉴멕시코 최대 도시다. 유별난 지형과 유적에 열광하기 때문은 아니다. 대부분 주민이 원자폭탄 개발에 몰두하거나 태양광이나 마이크로칩을 연구하는 첨단 산업에 업을 두고 있다. 일찍이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청년 시절 이곳에서 창업의 발판을 닦았으며, 인근 위 성도시에 세계적 기업 인텔이 들어서면서 하이테크 기업이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사계절 따뜻한 기온, 풍부한 자원 그리고 저렴한 인건비. 3박자를 고루 갖춘 선벨트 지역에는 태양만 비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풍요도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법. 2006년 경제 잡지 <포브스>는 미국에서 기업 여건이 가장 좋은 지역 1위로 앨버커키를 꼽았다. 최초로 뉴멕시코를 발견한 스페인 정복자는 이곳이 금으로 장식된 도시라는 헛소문을 믿고 발을 들였다는데, 진실은 수 세기 후에나 증명된 셈이다.
“평화로운 원주민 마을에 지평선 너머로 검은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앨버커키 뮤지엄(Albuquerque Museum)에서 구시가 투어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크리스틴(Christine)은 마치 전래동화를 들려주듯 도시 역사를 읊기 시작한다. 삶의 터전을 빼앗긴 미국 원주민의 역사를 뉴멕시코도 똑같이 겪었다. 1706년 스페인 이주민이 들이닥치자 순식간에 평화로운 마을은 알부르케르케(Alburquerque)로 명명됐고, 스페인식 건물과 교회가 등장했다. 스페인 총독의 출신지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도 모자라 이곳은 공작의 도시(Duke City)라는 별칭도 함께 떠안아야 했다. 훗날 서류를 관리하던 직원이 실수로 알파벳 ‘R’을 빠뜨려 영어 이름으로 앨버커키가 된 것인데, 우연찮게 역사의 불명예를 조금이나마 지운 셈이 됐다.
올드 타운 플라자(Old Town Plaza)는 3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앨버커키의 중심 마을이다. 듬직한 코튼우드 나무가 드리운 광장을 따라 앨버커키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꼽히는 산펠리페 데 네리 교회(San Felipe de Neri Church)를 비롯해 갤러리, 상점, 레스토랑 등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미로처럼 얽힌 길목은 막다른 길인가 싶을 때 타원형의 작은 문으로 연결된다. 텅 빈 마당을 지나자 중정을 둘러싼 어도브(adobe, 진흙 벽 돌과 건초로 만든 건축양식) 가옥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전형적인 구조예요. 작은 창문과 출입구, 평평한 지붕은 원주민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충돌이 벌어지면, 여자와 아이들은 바로 맞은편 교회로 피신하고, 남자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 적의 동태를 살피죠.” 크리스틴이 준비해온 초창기 마을 사진을 펼쳐 보이며 설명한다. 겉모습은 흑백사진 속 그대로지만 오늘날 이 비밀의 요새는 예술가의 공방, 카페, 액세서리 수리점, 기념품 가게로 들어차 있다.
현재 올드 타운 플라자에는 약 150개의 상업 시설이 성업 중이다. 대부분 원주민과 스패니시 문화가 뒤섞인 역사를 발판 삼아 생계를 이어간다. 광물을 수십 번 다듬어 빛을 낸 화려한 장신구와 영적인 자연물을 형상화한 그림, 뉴멕시칸 전통 레시피를 이어받은 그린 칠리 요리 등. 굴곡진 세월을 버틴 마을은 오늘날 관광객을 맞이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듯 보인다. 밋밋한 황토색 건물에 화려한 패턴의 천 조각을 걸어 장식하거나 현대적 디자인을 가미해 리모델링한 건물이 눈에 띈다. 어디에 가든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리스트라(ristra, 고추를 엮어서 말리거나 장식한 것)는 도시를 상징하는 오브제로 어우러진다. 그늘이 드리운 처마 밑에서 수공예품을 늘어놓고 여행자를 상대하는 거리의 예술가도 매일 같은 자리를 지킨다. “구시가는 300년 전부터 지금까지 미국 남서부를 통과하는 관문이에요.” 뉴멕시코 여행의 첫 여정을 통과한 여행객이 자랑스러운 듯 크리스틴이 투어를 마무리 짓는다. 뉴멕시코는 1851년 마침내 미국의 48번째 주로 영입됐다. 1880년 철도 개통과 더불어 1926년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66루트가 앨버커키를 통과하면서 이 도시는 수많은 이방인이 머물다 가는 정거장이 됐다. 여행객의 발길을 붙드는 건 여전히 마을의 중심 구시가의 몫. 이곳이라면 뉴멕시코 여정에 호기심의 불을 지펴줄 수 있겠다.
앨버커키 올드 타운에 자리한 산펠리페 데 네리 교회는 1719년에 완공됐지만, 폭우로 붕괴되고 1793년에 지금의 자리에 재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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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앨버커키 뮤지엄 야외 조각 공원.
(오른쪽)동물의 뼈와 광물로 만든 인디언 수공예 장신구.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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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어도브 가옥과 수공예 상점이 혼재하는 앨버커키 올드 타운 플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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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e: White Sands National Monuments
자연이 빚은 미지의 사막
앨버커키에서 남쪽으로 약 360킬로미터, 화이트샌즈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오매불망 하얗게 뒤덮인 모래 구릉만 찾는다. 54번 도로를 따라 앨라모고도(Alamogordo)의 남서쪽으로 25킬로미터 달리면 마침내 저 멀리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듯한 외딴 세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한여름 낮기온이 38도까지 오를 수 있으며, 종종 미사일 시험으로 입장을 제한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 문구가 관광객에게는 영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화이트샌즈의 입구는 평일 대낮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터사이클 동호회와 큼지막한 썰매를 싣고 차에 오르는 가족 여행객까지, 마치 놀이동산의 입장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는 모습이다.
뉴멕시코 주는 미국에서 국립 기념물이 가장 많은 지역 중 1곳이다. 국립공원처럼 대통령이 지정한 12곳의 자연 기념물이 분포하는데, 대표적인 볼거리는 주로 남동부 쪽에 모여 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걸친 치와와 사막(Chihuahuan Desert)이 일대에 매혹적인 자연 풍광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중 세계에서 가장 넓은 석고 사막(800제곱킬로미터)인 화이트샌즈 국립기념물은 뉴멕시코가 품은 자연 대서사시의 하이라이트다.
치와와 사막 북쪽 끝, 산으로 둘러싸인 툴라로사(Tularosa) 분지는 거대한 물결을 이루는 모래언덕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약 2억5,000만 년 전, 이곳은 원래 얕은 바다였다. 오랜 시간 융기와 침강을 거듭하다가 분지가 되었고, 산에서 흘러 내려온 석고질이 바다로 빠져 나가지 못해 호수에 갇혔다. 가뭄으로 호수가 메마르자 물속에 녹아 있던 석고는 단단한 수정체로 변했다. 풍화 작용으로 깨지고 부서진 결정체는 바람을 타고 퍼져나갔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쌓인 결정체가 둔덕을 형성해 지금의 돔형, 초승달형, 횡단형, 포물선형의 사구를 만든 것이다. 선글라스를 잠깐이라도 벗으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유독 새하얗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백사장처럼 뜨겁게 달궈지지 않는 건 이곳의 모래가 석고질을 포함한 수정체기 때문이다.
사구 드라이빙은 광활한 순백 사막을 누비는 최고의 방법이다. 왕복 26킬로미터의 외길을 따라 시속 30킬로미터로 천천히 달리다 보면 서서히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얕은 구릉에 유카(yucca, 북미가 원산인 용설란과 여러해살이풀) 나무가 듬성듬성 박힌 풍경에서 어느덧 푸른 하늘과 새하얀 대지로만 분할된 세계에 들어와 있다. 사실 800제곱킬로미터 규모의 석고 사막은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다. 굳이 규모를 가늠해보자면 이렇다. 이곳에 쌓여 있는 석고를 건축 자재로 활용해 미국에 있는 모든 고층 건물에 사용한 불연소성 벽을 새로 짓고, 각종 석고 제품을 다시 만든다 고 해도 사막에 3분의 1은 손도 안 댄 채 남아 있게 된다. 또 이곳의 석고를 모두 싣기 위해서는 3억 대의 화물열차가 필요하다.
입이 떡 벌어지는 자연 앞에서 나약해지는 건 인간뿐이 아니다. 화이트샌즈에 서식하는 100여 종의 동식물은 일찍이 자연에 순응하며 독특한 진화를 거듭해왔다.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흰색으로 표백된 여우와 뱀, 석고 가루가 귀에 들어가 결국 귀가 퇴화해버린 아파치포켓쥐 등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종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밤에 활동해요. 그들이 남긴 흔적은 아침이면 바람에 휩쓸려 모두 사라지고 말죠.” 파크 레인저 유진 이바라(Eugene Ibarra)가 말한다. 강한 남서풍은 모든 것을 지운다. 경사진 모래언덕을 어지럽힌 썰매 자국과 여기저기 묻은 인간의 흔적은 다음 날 아침이면 감쪽같이 모래로 덮히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사막은 새 캔버스를 펼쳐 보인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화이트샌즈는 단 한 순간도 같은 모습이 아니에요. 모두 살아 움직이죠. 인간의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의 말대로 석고 모래언덕은 지금도 매년 최대 9미터 정도 이동하며 조금씩 변하고 있다. 꼬리가 푸른 색인 돌연변이 도마뱀과 여기저기 뿌리내린 유카 식물도 제 살길을 도모하며 공생한다. “그래도 해 뜨고 2시간 후, 해 지기 1시간 전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의 뒤로 핑크 빛의 석양이 짙게 깔린다. 전조등을 켠 자동차가 미로 같은 모래 사구를 모두 빠져나가면, 비로소 순백 세상은 기지개를 펼 것이다. 어디선가 바짝 몸을 숨기고 있던 동물들이 고개를 내밀고 나타나 바쁘게 먹이를 찾고 짝짓기를 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왼쪽)화이트샌즈에서 자생하는 유카.
(오른쪽)고원지대인 앨버커키에서 화이트샌즈로 가는 도로에 황량한 사막이 끝없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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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화이트샌즈 입구 방문자센터 건물은 어도브 건축을 재현했다.
(오른쪽)파크 레인저 유진 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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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Santa Fe
예술가의 발자취를 따라
미국 자동차 여행의 훼방꾼은 장엄한 자연을 목전에 두고 눈치 없이 찾아드는 졸음이거나 한적한 시골길에 서 운전자보다 더 당황하며 안내를 내뱉는 구식 내비게이션일지 모른다. 반면 뉴멕시코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수시로 정차를 반복하면서 만나는 뜻밖의 풍경이 진정 훼방꾼이다. 예컨대, 앨버커키에서 샌타페이 다운타운까지는 빠르면 1시간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북쪽 14번 도로를 따라 터코이즈 트레일(Turquoise Trail)로 진입한다면 도착 시간을 장담하긴 힘들다. 붉은 안료를 섞은 듯한 묘한 갈색빛 메사 언덕과 주변으로 황량하게 뻗은 마른 벌판 그리고 반듯하게 빚어놓은 점토 가옥. 뉴멕시코 풍경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야외 갤러리를 눈앞에 두고 차를 세우지 않는 여행자는 드물 테니 말이다. 이 길은 19세기 미국 서부 골드러시의 발원지였다. 터키석을 비롯해 금과 석탄이 땅 밑에 가득했다. 자연이 가져다준 풍요는 광물이 바닥을 보이자 막을 내렸다. 그 대신 폐허가 된 이곳에 수많은 예술가가 들어와 그림 같은 자연 풍경을 누리고 있다. 오늘날 각종 수공예품 상점과 갤러리, 공방, 조각 공원, 박물관 등이 늘어선 이 시골 길은 뉴멕시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명성이 자자하다.
뉴멕시코의 자연은 수많은 예술가의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그중 조지아 오키프는 뉴멕시코와 지독한 사랑 에 빠진 예술가로 유명하다. 도로 위 풍경에 매혹되어 차를 세운 여행자처럼, 그녀는 샌타페이행 기차에서 바라본 사막 풍경을 잊지 못해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녀의 주 활동 무대이던 뉴욕이 아닌 샌타페이에 오키프의 흔적이 더 많이 남아 있는 이유도 그래서다. 다운타운에 자리한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은 전 세계에서 오키프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곳이다. 2006년 오키프 재단으로부터 그녀의 모든 재산을 넘겨받은 미술관은 그녀가 거주했던 애비퀴우(Abiqui?) 집과 스튜디오도 인수해 함께 관리하고 있다. 미술관에 걸린 오키프의 작품은 지나온 여정을 복기하기에 충분하다. 도로 위 차창 밖으로 펼쳐지던 풍경을 액자에 옮겨온 듯 생생한 유화가 발길을 붙든다.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괴기한 협곡, 어깨를 나란히 걸친 주황빛 언덕. 작가의 시선은 그동안 아무도 말해 주지 않던 뉴멕시코의 미묘한 매력에 꽂혀 있다. 그녀는 뉴멕시코의 사막에 완전히 매료됐고,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자연을 찬미했다.
샌타페이에서 북서쪽 84번 고속도로를 따라 1시간 정도 달리면 오키프가 머물던 애비퀴우에 도착한다. 어도브 건축양식으로 지은 그녀의 집은 소규모 투어를 통해서만 입장이 가능하다. “오키프는 가끔 놀러오는 친구들 이외에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았어요. 남은 삶을 창밖에 펼쳐진 광활한 사막과 자연, 고독만으로 채웠죠.” 가이드 바버라(Babara)가 말한다. 직접 가꾼 텃밭, 햇볕이 내려쬐는 아담한 중정, 헤메스 산맥(Jemez Mountains)이 보이는 침실. 그녀 작품의 주요 소재인 리오 차마(Rio Chama) 강변에서 주워 온 돌과 사막에 버려진 나뭇가지, 동물 뼈 등 황무지의 날것이 물감과 함께 단정히 놓여 있다. 자연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그녀의 소박한 삶이 아련히 스쳐간다. 언덕에 우뚝 선 외딴집 밖으로 나가자 압도적인 풍경에 절로 탄성이 튀어나온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고 자주 그렸던 기이한 언덕 세로 페 더널(Cerro Pedernal)이 저 멀리 보이고, 고스트랜치(Ghost Ranch)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산길이 그림처럼 뻗어 있다. 눈으로 더듬는 모든 장면은 오키프의 캔버스를 한 번씩 스쳐간 풍경이다. “모두가 오키프를 좋아했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녀와 한동네에 머물렀다는 것은 영광이죠.” 가이드의 말대로 샌타페이 근교에 위치한 고스트랜치와 애비퀴우는 여전히 오키프의 수혜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세계적 화가의 캔버스에 담긴 풍경을 찾아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갓길에 차를 세워 사진기를 들이대는 일은 예사다. 물론 이들 중엔 오키프의 열렬한 팬도 있고, 그저 예술 도시를 구석구석 누비고픈 미술 애호가도 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도시(1610년) 샌타페이는 공공 건축물과 예술 문화에 탄탄한 기반을 다져왔다.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푸에블로 리바이벌(Pueblo Revival, 푸에블로 인디언의 어도브 양식과 스페인 스타 일이 혼합된 건축) 건물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데, 주로 갤러리나 수공예품을 만드는 공방이다. 다운타운과 이웃한 캐니언 로드(Canyon Road)로 가면 약 1.6킬로미터의 좁다란 골목을 따라 파인 아트 갤러리만 100여 개가 쭉 늘어서 있다. 공공 미술관과 박물관을 제외하고도 도시엔 약 300개가 넘는 갤러리가 자리한다. 이곳에서 거래하는 미술품의 거래 액수로 따지면 미국 최대 예술 시장인 뉴욕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푸에블로 인디언과 히스패닉 문화가 뒤섞인 독특한 화풍은 20세기 초반 유 럽 등지에서 찾아온 예술가들로 인해 더욱 풍성하게 뻗어갔다. 멕시코와 미국의 영토 분쟁으로 얽힌 복잡한 이 주민의 역사가 오늘날 세계 예술 시장에서 독창성을 발휘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2005년 유네스코는 샌타페이를 창조의 도시(Creative City)로 임명했고, 여전히 신진 예술가는 ‘꿈의 도시’라 부르며 이곳에 적을 둔다. “우리는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듭니다. 영혼을 담아야 하거든요.” 작품값을 흥정하려는 관광객을 향해 상점 주인이 따끔한 충고를 건넨다. 매년 여름 다운타운 광장에서 열리는 스패니시 인디언 마켓(Spanish Indian Market)에는 개성 있는 드로잉으로 시선을 잡는 화가,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옷을 만드는 장인, 아이 얼굴만 한 거위알에 그림을 그리는 생활 예술가가 각자의 예술 작품을 들고 참여한다. 비록 좁은 천막에서 길거리 음식을 입에 넣고 기웃거리는 구경꾼을 맞이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제2의 오키프가 탄생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소복하게 쌓인 눈처럼 새하얀 화이트샌즈는 뉴멕시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연의 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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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스패니시 인디언 마켓에서 만난 예술가.
(오른쪽) 샌타페이 다운타운의 한가로운 주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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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샌타페이 캐니언 로드에서는 자유분방한 현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오른쪽) 뉴멕시코의 상징인 말린 고추 장식 리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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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의 저택 침실에서 바라 보이는 황량한 사막과 언덕 세로 페더널은 그녀 작품의 원천이었다. PHOTOGRAPHS : JUNG SU-IM
Spirit: Taos
그들만의 영적인 세상
외계인의 출몰, 기적의 치료 효능이 있는 예배당, 세계 최초 원자폭탄을 만든 비밀 연구소. 뉴멕시코는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그중에는 인디언이 머무는 영적인 도시, 타오스도 빼놓을 수 없다. 샌타페이에서 북쪽으로 114킬로미터, 타오스로 향하는 시닉 로드(Scenic Road)는 황량한 사막 대신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장엄한 풍경을 그리는 상그레 데 크리스토(Sangre de Cristo) 산맥 아래 해발 2,124미터에 자리한 도시에서는 수직으로 244미터가 움푹 꺼진 리오 그란데 협곡(Rio Grande Gorge)도 보인다. 19세기 말, 일찍이 미지의 도시를 여행하던 어느 예술가는 타오스의 독특한 자연풍경과 인디언 문화에 사로잡혔다. 그는 이 시골 마을에 정착해 타오스 예술 집단(Art Colony)을 형성했고, 타오스 푸에블로 인디언의 생활상을 예술의 소재로 삼았다. 그를 따라 이주한 예술가의 집합소가 오늘 날 가장 북적이는 타오스 플라자(Taos Plaza)다. 1796 년 스페인 이주민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사각형의 땅에는 중앙에 넓은 광장과 점토로 빚은 어도브 가옥이 도열해 있다. 대부분 갤러리와 상점으로 개조해 인디언 전통 공 예품이나 히스패닉 역사가 담긴 그림, 값비싼 고가구 등을 판다. 어두침침한 실내에는 동물 뼈로 만든 장신구를 몸에 걸친 보헤미안 예술가가 자리를 지키고, 호기심 가 득한 눈으로 물건을 고르는 관광객이 들락거린다.
다운타운에서 20분 정도 차를 몰고 가면, 타오스에 정착한 인디언의 후예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선 문명을 등진 푸에블로 인디언이 자신의 집에서 조용히 예술 솜씨를 뽐낸다. 마을 입구의 흙길로 접어들자 관광객이 몰고 온 자동차가 먼지를 풀풀 일으킨다. 입구에 이렇다 할 경계가 없어 사람들이 잠시 서성이는가 싶더니 터덜터덜 남의 집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다. 타오스 푸에블로(Taos Pueblo)는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푸에블로 인디언 집단 거주지다. 1450년에 지은 이곳의 전통 어도브 가옥은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오늘날까지 훌륭한 보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넓은 공터를 두고 가장자리에 촘촘 히 들어찬 어도브 가옥은 마치 도자기 장인이 점토 블록의 모서리를 매끄럽게 다듬은 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작품처럼 보인다. 점점이 흩어진 관광객이 초크로 쓴 간판을 내건 상점으로 하나둘 사라진다. 현재 이곳에서 원시 생활을 이어가는 푸에블로 인디언은 20명쯤 되는데(대부분은 마을 밖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거주한다), 주로 집 안의 일부를 상점으로 개조해 제발로 찾아온 관광객에게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판다. 자신의 집을 공방이나 갤러리로 꾸민 집도 있다.
“저와 제 아들은 바로 옆방에서 태어났어요.” 코발트색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작은 창문으로 들이친 쪽빛 아래에 덩치 큰 남자가 북을 안고 앉아 있는데, 별안간 북을 치며 노래를 하더니 입구에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말을 건넨다. 그는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푸에블로 인으로 여러 번 신문에 등장하기도 했다. 마을 중앙에는 빵을 굽는 공동 화덕 오르노(horno)가 있고, 결혼식을 치르는 교회와 성역인 묘지도 자리한다. 1992년 유네스코는 타오스 푸에블로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따라서 문이 굳게 닫힌 집에 함부로 들어가거나 원주민에게 사진기를 들이댔다가는 호된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타오스 푸에블로 인은 지금도 원주민 학교에서 따로 언어 교육을 받고 문화를 배웁니다.” 단체 관람객을 이끈 가이드가 말한다. 점차 현대사회와 타협한 생활 도구가 마을 곳곳에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곳은 전기와 수도, 배관 설치를 금한다. 마을 주민은 태양 빛에 의존하며 하루를 보내고, 마을 중심에 흐르는 강물 레드 윌로우 크릭(Red Willow Creek)에서 식수를 끌어다 쓴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에 불편을 느끼는 건 문명사회에서 건너온 이방인뿐이다. 타오스 푸에블로 인은 해마다 빗물과 눈에 씻겨 내린 진흙 벽을 새로 바르는 작업을 주요 의식처럼 치르면서 그들만의 세상을 지켜왔다.
문명을 벗어난 삶은 인디언 마을 밖에서도 이어진다. 리오그란데 협곡 다리를 건너 북서쪽으로 조금 더 가 면 우주선처럼 보이는 기이한 건물이 띄엄띄엄 등장한다. 폐타이어와 빈 병, 캔 등을 건축 자재로 재활용해 지은 어스십(Earthship). 이곳은 지구에 정박한 친환경 보금자리다. 과거 푸에블로 인디언이 자연의 흙으로 어도브 가옥을 빚었다면, 오늘날 이곳에서는 문명의 흔적인 생활 폐기물로 집을 짓는다. 자연에너지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집 안팎에서 버려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어스십을 설계한 마이클 레이놀스(Michael Reynolds)가 단호하게 말한다.
어스십 하우스의 벽체는 모두 폐타이어와 유리병을 벽돌처럼 쌓아 완성한 것이다. 때때로 벽체에 눌려 있는 형형색색의 유리병 밑바닥이 빛에 반사되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빛난다. 쓰레기 더미에서 잠자던 맥주 캔과 깨진 타일은 가우디 건축처럼 독특한 외관을 치장하고 있다. 실내는 과학 실험실처럼 모든 것이 자연의 원리로 빈틈 없이 움직인다. “집 안의 모든 것이 에너지를 만들죠. 이곳에선 연못의 물고기조차 일을 합니다.” 물고기가 입을 뻐끔거리며 산소를 내뿜는 동안 식물이 우거진 베란다의 연못은 자연정화를 거듭한다. 레이놀스는 비밀스러운 이 건축의 속살을 1겹씩 벗겨내듯 설명한다. 집의 구조는 간단하다. 지붕의 남향으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태양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최적의 구조를 만들고, 경사면에 설치된 집열판과 건물 외벽의 풍력 터빈으로 온수와 자체 냉난방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다. 밖에서는 빗물을 저장해 펌프로 오수를 분류하고, 집에서 사용한 물은 파이프를 통해 정원으로 흘러들어가 식물에 물을 주는 데 사용한다. 자체 에너지 생산과 재생은 어스십 건축이 지향하는 제일 덕목이다. 레이놀스는 1980년대 말 타오스의 넓은 황무지를 시험 무대 삼아 어스십 건축을 처음 선보였다. 현재 이곳에는 크고 작은 어스십 하우스가 72채 모여 있고, 그의 친환경적 건축법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중이다. “자급자족 주거는 곧 인디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태양이 비치는 어느 곳이든 집을 지을 수 있죠.” 그의 심오한 건축 철학은 타오스의 모든 삶을 아우르는 듯 보인다. 마침 오늘 집을 짓기 위해 버려진 캔이나 병 따위가 어스십으로 배달되던 참이다. 과연 그것이 다음 세대에 어떤 모습으로 뉴멕시코 역사를 쓸지 는 두고 볼 일이다.
(왼쪽) 타오스 푸에블로 마을 예술가가 만든 전통 북과 돌도끼.
(오른쪽) 알루미늄 캔과 깨진 타일로 장식한 어스십 주택의 출입문.
PHOTOGRAPHS : JUNG SU-IM
황무지에 산재한 어스십은 각각 개인 소유다. 버려진 나무를 장식해 마을 입구를 만들었다.
PHOTOGRAPHS : JUNG SU-IM
유미정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사진가 정수임은 자급자족의 삶을 지향하며, 어스십에 다녀온 후 인생의 방향이 더욱 확고해졌다. 뉴멕시코의 독특함에 취해 운전하는 동안 “이곳은 미국이 아니야, 뉴멕시코야”를 외쳤다.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lonely planet (월간) : 11월 [2016] 안그라픽스 편집부 | 안그라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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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iu22
2016.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