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아침은 언제나 활기찹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자동차들이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리지요. 그리고 각자 직장을 향하는 발걸음도 바쁘기만 합니다. 하루 종일 거래처와 더 나은 계약조건을 위해 협상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전화로 물건을 팔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레스토랑에서 하염없이 접시를 닦기도 하죠. 이렇게 생업에 쫓겨 바쁜 삶을 살다 보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놓치곤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책은 뉴욕을 무대로 텔레마케터 악어 허먼과 클럽에서 일하는 로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웃에 살지만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는 둘은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음악을 사랑하고 소박한 것을 좋아하고, 바다에 관한 영화 보기를 좋아한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북적대는 도시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외롭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굉장히 반복적으로 스쳐 지나가지만 서로를 '발견'하지는 못하지요. 심지어 서로의 목소리, 오보에 연주가 귓속을 맴도는데도 불구하고.
실적이 낮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난 허먼, 그리고 클럽이 문을 닫으며 일자리를 잃은 로지는 크게 상심합니다. 하지만 깊은 슬픔 속에서 스치기만 한 인연을 알아보고 서로를 마주하게 되지요. 삶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지만, 그 중 귀한 인연으로 엮여 마음을 나누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허먼과 로지』의 가장 큰 미덕은 빈티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림에 있어요. 화려한 도시 이면의 외로움, 쓸쓸함을 잘 담아냈거든요. 또 표지를 보면 오래된 레코드판처럼 생겨서 재즈가 흐르는 듯한 도시의 풍경을 표지에서도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힘든 도시 생활에서도 아날로그적인 만남을 꿈꾸는 우리의 모습을 이 책의 주인공들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도시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다른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음악을 통해 극복하는 따뜻한 내용의 그림책입니다. 무엇보다 결과가 ‘해피엔딩’이라는 사실이 더 마음에 들어요. 그들은 실직 앞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서로를 통해 따뜻한 마음의 위로를 얻었으니까요. 이 책은 2013년 오스트레일리아 어린이도서협회(CBCA) 선정 ‘올해의 그림책 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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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과 로지거스 고든 글그림/김서정 역 | 그림책공작소
어느 복잡한 도시, 아주 복잡한 길 위, 조그만 아파트에 허먼과 로지가 살았습니다. 두 사람은 도시의 멋진 리듬을 사랑했지만 가끔 외로웠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허먼과 로지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데….
김규영(유아/청소년/잡지 MD)
마음은 유아, 몸은 중년. 비록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그림책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jijiopop
2016.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