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 용지로 인쇄된 원고를 받았다. 제본도 되지 않아 불편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제목도 아직 가제인 『그럴 때 있으시죠?』다. 방송인 김제동은 언제부턴가 화자보다 청자 역할을 많이 하는데, 책도 다르지 않았다. “그럴때 있으시죠?”라고 툭툭 어깨를 치면서 말을 건넸다. 당신 이야기 좀 해보라고, 들어줄 준비가 돼 있다고, 나는 그동안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많이 들었으니, 당신에게 마이크를 주겠다고 말하는 듯했다.
김제동은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시작하기 전, 막내 코디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러곤 처음 보는 사진작가 조수에게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은 현장에서 아무 말 없이 일만 하는 막내였다. 김제동이 말을 걸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 집중했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구나, 갑자기 그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아졌다.
책을 읽고 나서 김제동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당신, 참 행복한 사람이네요.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네요.” 첫인사로 이 말을 전하자 김제동은 순간 아이처럼 웃었다. 그는 할 말이 무척 많아 보였다.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니까 ‘갑’보다는 ‘을’의 이야기.
주목받지 못하는 울음
“요즘 토크 콘서트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하잖아요. 8년 전 제가 시작했을 때만 해도 생소했는데요. 많아져서 좋아요. 그런데 그 단어에 맞는 형식을 갖췄으면 해요. 토크는 대화예요.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거예요. 사람이 대화할 때 꼭 말로만 하지 않아요. 표정 짓는 것, 우는 것,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찡그리는 것도 대화예요. 그걸 드러내 주는 게 토크를 하는 사람의 몫이고요. 김제동의 첫 에세이라고 타이틀을 걸었지만, 3인칭 당신들의 이야기예요.”
책을 쓰기로 하고 처음 떠오른 제목은 ‘내 울음소리가 누군가에게 들릴 수 있다면’이다. 제목이 너무 길어 출판사에서 반대했다. 그래도 김제동은 꽤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는 말을 보탰다. “주목받지 못하는 모습이나 주목받지 못하는 울음 때문에 사람들이 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순간 마음이 픽 무너졌다. 항상 해왔던 생각을 누군가 문장으로 선명하게 정리해주니,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을 찾은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냐? 왜 우냐? 물었으면 좋겠어요. 공감이라는 게, 다른 사람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을 상상하는 능력이잖아요. 옆에 같이 웃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웃을 맛이 나는 게 아니겠어요? 그게 사람을 화성에 안 떨어뜨려 놓는 방법이잖아요. 내 울음소리가 누군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고립이고요. 지금 세상은 1%에게만 마이크를 주고 1% 웃음, 1% 울음에만 주목하고 있어요. 주인공이 뒤바뀐 거죠. 엄청 열 받는 일이에요. 요즘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물론 그는 영웅이지만 함께 노를 젓던 사람이 없었더라면 가능했을까요? 배는 혼자 만들었나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주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제동은 문득 매미 이야기를 꺼냈다. 7년 이상을 땅속에서 애벌레 상태로 살다가 성충으로 나와 사는 기간은 고작 일주일. 그는 책을 쓰면서 종종 매미 울음소리를 들었다. 매미야말로 울 자격이 있지 않나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울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자격 있어요. 자격 있죠. 누구에게 해결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내 마음이 이렇다고 표현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SNS에 어디 놀러 간 사진을 많이 올리잖아요? 좋은 일이에요. 하지만 그런 사진을 보고 위로를 얻긴 힘들어요. 꼭 위로를 얻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내 약점을 용기 있게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멋지고 반듯한 멘토에게 위로받는 시대는 지났어요. 내 부족함을 드러내게 만드는 사람보다는 ‘당신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3년간 심리상담을 받은 경험은 김제동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는 일이다. 정신과 의사들이 받는 심리분석에 따르는 상담을 받고,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만났다. 자신을 깊게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 토크 콘서트, JTBC <김제동의 톡투유>를 진행할 때도, 거리에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귀한 비료가 됐다. 김제동은 올해 '김제동과 어깨동무'와 함께하는 강연을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편의점에 갔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 그러더라고요. 아르바이트 시급 모아서 엄마랑 제 토크 콘서트를 갔다 왔다고. 언젠가 한 번은 무료로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말을 듣고 결심했어요. 토크 콘서트를 진행할 때, 되도록 청중에게 많이 물어요. ‘혹시 당신도 이런 경험이 있냐?’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닌 걸 알 때, 느껴지는 힘이 있기 때문이에요. 감정에 주목해주는 게 중요해요.”
“그럴 때 있으시죠?” 김제동이 자주 하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수면 위로 끌어내주는 일, 그는 참 좋아한다. 어떤 감정도 나쁘지 않고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감정에 잘 주목해주면 울던 아이도 순간 방긋 웃는다. 김제동은 “이 감정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힘든 거다. 끝나는 걸 알면 덜 힘들다. 그리고 고난은 벼락처럼 끝난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견딜 수 있는 건 6교시가 있기 때문이에요. 언제 끝나는지 알면 견딜 힘이 생겨요. 저는 약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에요. 누군가를 도울 기회를 얻을 수 있잖아요. 나보다 못난 사람, 힘든 사람에게 위로를 받자는 게 아니에요. 너도 그렇구나, 나만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만 알아도 사는 게 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하든 그 사람의 자유
1994년 문선대 사회자로 데뷔, 방송활동도 20여 년이 되어간다. 말 잘하고 재치 있는 방송인에서 어느덧 진중한 면모가 더 많이 비친다. 그의 행보가 ‘재미’보다 ‘의미’를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대중의 시선을 어떻게 의식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제는 초월했을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상담을 받은 이후 많이 자유로워졌어요. 조심스럽긴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엄청 차이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사람들이 나를 두고 간섭하고 침해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경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지만, 타인이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들의 자유잖아요. 모든 사람이 저를 좋아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고 바라서도 안 돼요. 그들의 자유니까요. 다만, 누군가에게 ‘당신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간섭하면 안 되죠. 각자의 인생에서 느끼는 가치관이 다르니까요.”
김제동은 “세상의 모든 싸움은 옳고 그름의 싸움이 아니”라고 했다. 결국 각자의 기준에서는 모두 옳기 때문이다. 타인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지만 내가 타인의 견해대로 살 수는 없다. 그럴 수 있구나 하고 내 길을 가야 한다. 그는 책에서 율리아나 수녀의 말을 인용했다. “약하면 약할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힘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지만 그래도 좀 더 가진 사람이 조금만 더 배려해주면 좋겠다.”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편하게 사는 사람에게 너희들 좀 내놔야 하지않겠니? 말할 수 없어요.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한민국 제헌 헌법 84조에 보면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고 쓰여 있어요. 이게 우리 사회경제의 정의예요. 경제 민주화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제119조 2항에도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라고 쓰여 있고요. 이건 남보다 조금 더 잘사는 건 인정해줄 수 있다. 노력해서 잘사는 것 좋다. 하지만 기본적 생활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면 사회정의에 어긋나는 거죠. 개선해야 하는 거죠. 이미 밥을 네 끼 먹는데, 한 끼 먹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먹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규제해야죠.”
사람들은 그에게 ‘왜 자꾸 방송인이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하냐’, 성화한다. 김제동은 되물었다.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굴뚝에 올라가 있는 친구가 있는데, 어떻게 나 혼자 행복할 수 있나요?” “구조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개인에게 자기계발만을 강요한다면, 누가 살아남을 수 있나요?”
돌이켜보면 매 순간이 절정
최근 김제동은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한 일로 곤욕을 치렀다. 소개팅하는 와중 상대방 여성에게 집중하지 않고 딴청을 피운 일로 시청자들로부터 원성을 샀다. 후에 뒷이야기가 일부 공개되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는 논란의 장면만 기억한다. 전후 사정이 궁금해 물었다.
“상대가 일반인이잖아요. 안 그래도 어색한 상황인데 카메라 여섯 대가 저희를 찍으니 얼마나 불편해요. 또 동네에서 문을 활짝 열고 촬영을 하는데, 누가 안 쳐다보겠어요? 어색할까 봐 자연스럽게 하려고 한 건데.(웃음) 나중에 저한테 그랬어요. ‘오빠, <톡투유> 찍는 것 같았다’고. 그간 유라 씨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많이 들었거든요.”
영상을 편집한 제작진에게 서운한 마음은 없었냐 물으니, “그러면 어머니가 욕할 거리가 없지 않나? 또 이게 방송의 재미”라고 말했다. 김제동은 자신이 출연한 방송을 대개 보지 않는다. 아니, 민망해 못 본다. 방송에 출연한 어머니의 모습도 물론 보지 않았다. 다만 예상은 할 수 있다. 이번 책에도 어머니, 다섯 명의 누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꽤 많이 등장한다. 지금도 변함없이 이야기 소재를 제공해주는 가족들의 입담에 감사하고, 때론 잔소리에 지치기도 한다.
“어머니가 제 인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제 어머니이시니까요. 어머니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제가 들어야 하고요. 하지만 마흔이 넘은 제가 어머니 말씀대로 살 수는 없어요. 내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가 아니라, 저는 성인이니까 제 인생을 살아야죠. 가족은 특수한 관계잖아요. 하지만 전 독립체고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김제동이 느끼는 자신의 현재는 어떨까. 그래프로 그려본다면 상승곡선인지 물었다. 그는 “지금이 절정”이라고 말했다. 마냥 좋다는 게 아니라 풍요로워진 느낌이 든다고. 술을 끊은 지도 4년. 가끔 맥주 한두 잔은 마시지만, 그보다 동네 단골집에서 사람들을 만나 사사로운 이야기를 할 때가 좋다. 그는 “심리적으로 굉장히 풍요로워진 시기”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매 순간 절정인 것 같아요. 되게 좋아요.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국진이 형, 재석이 형, 홍철이 같은 동생도 있고요. 더 바라는 건, 많은 사람이 웃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거죠. 백성들이 다 죽고 왕이 되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사람들이 돈이 하나도 없는데, 자기만 있으면 뭐해요? 나 혼자 계속 웃는 건 한계가 있어요.”
때론 눈물도 말입니다
김제동의 이상형은 ‘나무’ 같은 사람이다. 큰 그늘을 만들어주면서도 튼튼한 의자를 만들어주면서도, ‘너, 왜 나한테 고마워하지 않아?’라고 묻지 않는 나무. 더불어 숲이 되기도 하는 나무 같은 사람은 언제나 반갑다. 사람들은 그에게 묻는다. “때때로 연애 특강을 하면서 연애는 왜 못 해? 왜 안 해?”
“(웃음) 제가 연애에 관해 말한다는 것 자체가 좀 우습죠? 연애 강연이라고 말을 붙이긴 했지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에요. 가르칠 자격도 없고요. 서로 물어보는 거죠.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연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묻고 듣다 보면 그래도 알게 되는 게 있어요. 물론 개별적으로 들어가면 싹 다 필요 없어지지만요. 제 이상형이요? 그냥 봤을 때 좋아지는 사람 있잖아요. 환하게 웃는 사람이 좋은데 또 서로 좋아야 연애도 하고 그러는 거니까요.”
토크 콘서트를 진행할 때, 김제동은 사람들의 눈빛을 살핀다.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눈빛까지 읽는다. 때론 눈빛도, 때론 침묵도 말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과 사람이 대화할 때, 비언어적 요소로 파악하는 게 대부분이다. 진짜 사랑하는 연인들은 크게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책 제목 후보가 또 있었어요. ‘때론 눈물도 말입니다.’ 제가 슬픈 감정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꼭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게 참 좋아요. 가끔 말발이 없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요. 말 잘 못하겠다고 고민하시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듣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최적의 요소거든요. 듣는 것까지 능력인가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또 ‘이야기를 안 듣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능력이에요. 저 이야기는내가 듣지 않겠다, 이 이야기는 내가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말하고 싶지 않을 때는 그냥 편안하게 자신을 놔두면 된다고 생각해요.”
김제동의 책을 읽으며 떠오른 단어가 하나 있었다. ‘존중’. 그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문제는 존중이야”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대한민국 역사가 자랑스러운 건, 더러운 사람이 권력을 잡으려고 할 때마다 시민들이 그걸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회는 개인 각자의 개별성에 주목할 수 있어야 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중받을 때,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을 확인할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또 중요한 건 먼저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이건 저에게 하는 소리이기도 하고요.”
그는 맹자의 말을 꺼냈다. “무릇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 남이 업신여긴다.” 세상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온 나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스스로에 대한 멱살잡이를 멈출 수 있지 않냐고 말했다. 가끔 자신에게 눈을 흘기고 삐칠 수는 있어도, 자기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일을 하지 말자고 강조했다.
“인간적 존엄을 훼손하려는 것들에 대해 함께 싸우는 일이 진짜 존엄이라고 생각해요. 기껏해야 한 줌도 되지 않는 지위, 돈 따위를 갖고 세상을 휘어잡으려고 할 때 우리는 분노할 수 밖에 없어요. 요즘 웃을 일이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이때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웃어서 행복한 건 개인의 추구와 지향이지만, 행복해서 웃는 건 사회구조적 변형을 통해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당신이 늘 옳다
대중들의 호불호가 유독 강한 방송인 ‘김제동’. 그는 이번 책을 무척 꼼꼼히 썼다. 솔직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지만, 오해를 불러올 만한 소재에 관해서는 신중했다. 때론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누군가의 표적이 된다. 몸 좀 사리라는 말도 듣지만, 그가 가진 영향력은 작지 않다. 묻고 싶었다. “당신의 영향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싶냐”고.
“영향력이요? 제게 그런 게 있나요? 있다고 하더라고 그건 제 영역이 아니잖아요. 영향력은 쓰겠다고 하는 순간, 아주 건방진 독재의 발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무가 있으면 그늘에 앉아 쉬겠다는 마음이 들지만, 가지를 꺾어 목이나 다리에 거는 순간 식인풀이 되잖아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말은 진짜 그 사람들을 무시하는 이야기예요. 인간을 누군가에게 선동당하는 존재로밖에 안 보는 거잖아요.”
그는 영향력의 문제는 판단하거나 이야기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조금이나마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지는 데 한 개인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며 크게 애쓰지 않는다고 했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 하나, “당신은 늘 옳다.”
“진짜 내가 옳아?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어요. 무조건 옳다고 하면, 내가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 되거나 너무 천방지축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옳다는 걸 증명해요. 저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이 이야기를 자주 해요. 당신의 모든 마음, 모든 감정이 옳다고요. 이문재 시인의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에 「문자메시지」라는 시가 있어요. 짧은 시인데 읽어 드릴게요. ‘형, 백만 원 부쳤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나쁜 데 써도 돼.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읽은 시였다. 인상적이어서 필사까지 했던 시, 그 시를 김제동이 떡 하니 읽어주니 반가웠다. 김제동은 말했다. “그렇게 믿어줘야 해요. 몇몇 사이코패스를 제외하고는 믿어줘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람이 살아요.” 2시간 남짓 김제동은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를 했다. 하나 왜 낯설었을까. 아마 그동안 1%의 이야기만 들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순간 목이 따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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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있으시죠? 김제동 저 | 나무의마음
『그럴 때 있으시죠?』는 김제동과 나, 우리들의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못다 한 이야기, 하나쯤 있다! 뭐가 불안한지는 모르겠는데 불안하고, 피곤해 죽을 만큼 일하는데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고, 하루도 쉬운 날이 없지, 사는 게 참 별일이다 싶은 그런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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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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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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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1
myung988
201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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