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과잉 없이 담담하고 낮은 목소리로 전하는 이야기는 격앙된 소리보다 더 깊은 파동으로 마음에 전달되는 법이다. 허진호 감독의 초기 영화가 그랬다. 앞서 울거나 뒤서서 오열하는 법 없이 사람과 사랑,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삶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초창기) 영화가 담아내는 풍경은 잔잔하고 일상적이다.
그의 영화 속 삶은 따뜻하고 정감이 있다. 죽기 전에 아버지에게 리모컨 사용법을 가르쳐 주거나 비오는 날 함께 우산을 나눠 쓴 기억으로 설레는 <8월의 크리스마스>와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말로 서툰 유혹을 대신하는 <봄날은 간다>는 그렇게 소소한 장면 때문에 오래 기억되는 영화다.
<덕혜옹주>를 말하기에 앞서 그의 이전 작품을 되짚는 이유는 영화를 함께 보러 간 친구의 질문 때문이다. ‘허진호?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누구지?’ 친구에게 허진호를 설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제목을 말하자 단번에 알아듣는다. 각자 기억하고 있던 영화의 장면을 나누었다. 기억이 소환되었고, 그 시절의 정서에도 빠져들었다. 그런 마음, 그 정서에 빠져 <덕혜옹주>를 본 때문이었을까? 이상하게 몰입이 되지 않았다.
딱히 치우침 없는 이야기의 구성과 나무랄 구석 없는 배우들의 연기, 자칫 지나치게 감상적이 될 수도 있는 장면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화법 등 연출의 장점들도 곳곳에 배치되었다. 하지만 뭔가 아쉽다. 거대한 역사가 놓친 한 여인의 사랑이라고 봐도 좀 모자라고, 개인사로 들여다본 우리의 아픈 역사라고 보기엔 관점이 좀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어떤 지점에서는 역사도 사랑도 밋밋하고 무덤덤해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우리의 기억이 그의 과거 작품에 박제되어 있는 것이 허진호 감독의 탓은 아니겠지만, 허진호 감독이라면 조금 다른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들려줄 거라 기대했던 것 같다.
사실 역사적 인물을 무게에의 강요 없이, 느리고 찬찬히 한 사람의 인간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미 그 결말이 충분히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영화적 긴장감 속에 배치하는 일에는 정밀하고 섬세한 공이 필요하다.
그래서 <덕혜옹주>가 이뤄낸 서사적 눈높이와 목소리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감정의 과잉 없이 역사를 말한다는 것이 꽤 어려운 일임에도 허진호 감독은 역사의 무게 대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들여다보며 그 무게를 줄인다. 덕혜옹주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는 일대기도 두 시간 안에 적당히 잘 안배되어 치우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덕혜옹주>가 영화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진 작품이 된 것은 아니다. 덕혜옹주가 겪은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어느 순간부터 멜로와 역사 사이에서 주춤대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의 큰 줄기는 대부분 역사에서 배운 그대로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손예진)는 아버지 고종(백윤식)이 독살 당한 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고종이 맺어 준 약혼자 김장한(박해일)은 옹주를 지키기 위해 일본군에게 촉망받는 장교가 되어 돌아온다.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야 하는 한 남자의 로맨스는 뒤로 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장한은 영친왕과 덕혜옹주를 상하이로 망명시키기로 하는데, 이들의 계획은 친일파 한택수(윤제문)에 의해 좌절되고 덕혜옹주는 강제로 일본인 귀족과 결혼하게 된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지만 한국정부로부터 입국이 불허되고 그 아픔으로 정신병을 앓는다. 그리고 1962년 왕족들의 입국이 허용된다.
영화의 원작은 역사책이 아니라 권비영 작가의 베스트셀러 동명 소설 『덕혜옹주』다. 철저한 고증에 의한 전기라기보다는 역사 속에서 기구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삶을 파고드는 원작의 감성은 영화에도 잘 옮겨졌다. 영화는 덕혜옹주에게 약혼자가 있었고, 정신병을 앓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과연 어떤 삶의 굴곡이 덕혜옹주의 정신을 깨트렸는지 회상과 현실, 사실과 추정을 오가며 이야기를 켜켜이 쌓아간다. 그 속에는 조선의 왕족이지만 자국민을 위해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왕족으로서의 무기력함에 대한 죄의식과 엄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원치 않은 결혼을 해야만 했던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이 담겨있다.
허진호 감독의 읊조리는 나지막한 영화적 화법처럼 인물들을 바라보는 카메라도 덤덤하게 감정을 싣는 법이 없다. 그래서일까? 덕혜옹주가 오열하는 동안 어떠한 징벌도 받지 않은 채 유유히 일본 땅을 걸어 나가는 한택수의 모습에도 분노하지 않는다. 일본에 의존해 살아남으려는 대한제국의 황족과 결정적인 순간에 일본에 남기를 결심하면서 독립군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영친왕의 모습에도 씁쓸함을 뿌리지 않는다. 담담하게 혹은 덤덤하게 그들은 이념과 애국심을 다 떠나 오직 자기가 살아갈 방법을 찾아낸 사람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극적 긴장감과 이야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장한이라는 인물은 박해일이라는 배우를 만나 꽤 설득력을 가지지만, 여전히 덕혜옹주와 김장한 사이에 오가는 감정에 동감하기 어려운 것은 담담함을 넘어 화학적 반응이 일지 않는 덤덤한 묘사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격앙된 순간은 손예진의 어깨를 타고 제법 든든하고 성큼성큼 앞서나간다. 하지만 독립운동의 아이콘인지 사랑을 놓친 비극의 여인인지 정확한 관점을 짚지 못한 상태라 쉽사리 공감대가 형성되지는 않아 아쉽다.
어쩌면 허진호 감독은 역사를 바라보는 뻔한 애국주의 대신 한 사람의 인생을 찬찬히 들여다보라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절절한 마음의 소동은 때론 구구절절한 말로 풀어줄 필요도 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열병과 같이 뜨거운 순간을 봤다면 울컥 마음이 흔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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