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지니어스>는 했고 <잘 먹는 소녀들>은 하지 못한 것
오류를 발견했을 때 빠르게 피드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칫 수정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고, 그렇다면 약점을 무기로 전환할 타이밍도, 전장을 옮길 기회도, 앞선 실패를 보완해 재도전할 기회조차 잃게 되기 쉽다.
글ㆍ사진 이승한(TV 칼럼니스트)
201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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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 지면에서 나는 “약점을 무기로 전환하라”거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는 전장을 찾아가라”는 소제목들로 글을 써왔다. 그러나 그 모든 소제목들은 꾸준히 아이디어를 보완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것을 병행한다는 전제 하에서 유효한 말들이다. 절대 오류인 것이 분명한 것들마저 “나는 틀리지 않았다”며 밀어 붙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류를 발견했을 때 빠르게 피드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칫 수정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고, 그렇다면 약점을 무기로 전환할 타이밍도, 전장을 옮길 기회도, 앞선 실패를 보완해 재도전할 기회조차 잃게 되기 쉽다.
 
제일 최근 예를 볼까? 여자 아이돌 가수와 먹방을 결합한 쇼를 표방한 JTBC <잘 먹는 소녀들>은, 처음 네이버 V앱을 통해 인터넷 생중계가 되었던 2016년 6월 15일 직후부터 가학성과 선정성을 지적하는 여론과 일부 언론의 우려를 마주했다. 그러나 JTBC는 6월 29일 첫 녹화분의 파기나 재촬영 없이 <잘 먹는 소녀들>의 파일럿 방송을 방영했다. 미처 V앱 생방송을 접하지 못했던 네티즌들과 언론들은 파일럿 방송을 통해 프로그램을 접했고, 그 즉시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에 동조했다.

 

결국 2회 만에 프로그램을 전면 재정비해 먹방 토크쇼 <잘 먹겠습니다>로 방향을 틀었지만, 이미 프로그램과 제작진에 대한 신뢰가 심하게 떨어진 이후의 일이었다. 인터넷 생중계에서 첫 방송까지 14일 동안, 제작진이 다각도에서 제기된 피드백을 단순한 버즈 이상으로 받아들였다면 아마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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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피드백 수용에 실패한 <잘 먹는 소녀들>은
결국 첫 방영분만 방송한 뒤 <잘 먹겠습니다>로 포맷을 변경했다.
<잘 먹는 소녀들> ⓒJTBC. 2016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든 약점을 무기로 전환하는 것이든

오류를 보완하는 일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적 받은 단점과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민망한 일일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이득이 된다. 2013년 9월, 세계 최대의 파스타 생산업체 바릴라의 CEO 귀도 바릴라는 이탈리아 라디오 인터뷰 중 자사의 광고에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을 등장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성애자들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뭐든 할 권리가 있고 그 점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전 그들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고, 제가 생각하는 '가족'이란 전통적인(이성애 커플의) 가족입니다. 만약 동성애자 커플이 저희의 정책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다른 회사 제품을 소비하면 될 일입니다.” 권리를 존중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결국 배척하겠다는 의사까지 포함한 명백한 혐오 발언이었으니, 여론이 발칵 뒤집어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불편하면 사지 말라고 하니 안 사겠다”는 반응들이 하루 사이 이탈리아 SNS를 도배했고,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다음 날 귀도 바릴라는 자사의 홈페이지에 간략한 사과문을 발표했다.

 

“제 발언이 논란이나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이 점들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을 그 어떤 구분 없이 존중합니다. 저는 동성애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표현할 권리가 있음을 존중합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저는 동성 결혼을 존중합니다. 저희 회사의 광고에서 바릴라는 가족을 대변합니다. 모든 이들을 받아주는 것이야말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모든 이들을 받아주는 것이 가족인데 왜 그 안에 동성애자들은 출연시키지 않겠다는 건지 설명이 되지 않았으니까. 문제의 발언 일주일 후, 귀도 바릴라는 사과문을 담은 동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단 이번엔 조금 논조가 달라졌다. “제가 ‘가족’이란 개념의 진화에 대한 이 격렬한 논의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는 건 분명합니다. 저는 다음 주 가족의 미래상을 가장 잘 대변하는 그룹의 대표들과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 분들 중엔 제 발언으로 상처를 입은 분들도 포함되어 계십니다.”

 

귀도 바릴라는 단순히 미안하고 노력하겠다는 막연한 말로 끝내거나 눈물을 흘리는 대신 대화와 경청을 약속했다. 이 때까지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을 거라 믿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 때부터 바릴라 사는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 귀도 바릴라는 성소수자 가족들과의 면담 및 대화를 통해 배운 바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사내에 외부인사들을 포함한 ‘다양성, 포용성 위원회’를 설치했다. 사내 임직원들에게 젠더와 섹슈얼리티 관련 교육을 제공하고, 제도적으로 성 정체성과 지향에 따른 차별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했으며, 성소수자 피고용인들의 파트너에게도 이성애자 피고용인 가족이 받는 것과 동일한 건강보험 혜택을 제공했다. 문제의 발언 이후 1년 만에, 바릴라 사는 미국 최대 성소수자 인권 단체 휴먼 라잇 캠페인(HRC)의 성소수자 친화기업 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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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도 바릴라 회장은 자신의 오류를 공개적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Apology from Guido Barilla ⓒ Barilla Group. 2013

 

주저주저하면 수정할 기회마저 잃는다

빠르게 수용하고 단호하게 수정하라

 

바릴라 사처럼 비교적 빠르게 피드백을 수용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 중 하나로는 tvN <더 지니어스>를 꼽아볼 수 있겠다. 게임 참가자들이 매주 두뇌 싸움과 정치력 발휘 등을 통해 생존을 꾀하는 서바이벌인 <더 지니어스>는 안 그래도 일본 드라마 <라이어 게임>과의 표절시비로 그 탄생부터 논란이 많았던 작품인데, 시즌 1에선 적용되었던 룰인 “폭력과 절도를 금지한다”가 시즌 2에서 슬그머니 사라지면서 더 큰 논란에 직면했다. 시즌 2 중반 상대의 게임 아이템을 훔쳐서 변칙으로 승리하는 이들이 등장했는데 이를 딱히 처벌할 근거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번 신뢰를 잃기 시작하자 탈락자를 결정하는 방식도 의혹의 대상이 됐다. 탈락자 결정 게임 종목을 탈락자 후보가 결정된 다음에 공개하는 시스템 하에서는 제작진이 사실상 탈락자를 고를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각종 논란과 의혹 속에 “최악의 시즌”이란 이야기를 들으며 시즌 2가 종영된 탓에, 시즌 3의 순항을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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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의 논란 이후, 제작진은 시즌 3 첫 화 전체 룰 설명에서
다시 ‘폭력과 절도’를 금지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갔다.
<더 지니어스: 블랙가넷> ⓒ tvN. 2014

 

그러나 제작진은 시즌 3에서 매 회 게임을 시작하기 전 미리 탈락자 결정 게임 종목이 담긴 봉투를 밀봉해 모두가 보는 가운데 금고에 넣어둠으로써 탈락자를 입맛에 맞게 고른다는 의혹을 불식시키고, 폭력이나 절도를 행사한 참가자는 자동적으로 메인 매치 최하위가 되어 탈락자 후보가 된다는 룰을 도입했다. 참가자들의 정치력 발휘를 통한 연합까지 막진 못했지만, 최소한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장치를 도입하라는 피드백을 빠르게 수용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 다음 시즌으로 이어갈 원동력을 확보한 것이다.
 
(다음 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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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