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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 일기’를 절도하다

‘최민석의 절도일기’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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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작가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이건 원래 알고 있던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뭐, 재미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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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작가님께 양해를 구하지 못하고, ‘절도일기(竊圖日記)’를 패러디한다. 혹여 불쾌하게 생각하시진 않을 거라 믿는다. 대신 홍보를 해드린다. ‘최민석의 절도일기’는 작가 최민석이 독서하며 훔친(절, 竊), 책(도, 圖) 속의 사상과 기법을 이상을 곁들여 고백하는 일기다. 격주 화요일, <채널예스>에서 절찬 연재 중이다. 사실 작가님도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안다. 그렇다. 아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은 많지 않다. 그래서 ‘발견’이 중요하다. 
 

 

7.18


화제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를 읽었다.

 


선뜻 책장을 편 이유는 책을 소개해주신 분이 “소설이 참 맑고 순하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소설집이다. 올해 읽은 책 중 감히 최고의 소설이라고 자부한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가 김연수의 추천사도 인상 깊어 두 배로 관심이 갔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최은영 작가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 ‘올해 읽은 최고의 소설’이라고 점 찍기는 어렵지만(아직 7월이니까), 발견해서 다행인 작가의 소설이었다. 간혹 책을 읽으면서 ‘아, 단편영화로 찍어도 되겠다’ 싶을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이 그랬다. 표제작 「쇼코의 미소」는 지방 소읍의 고등학생 ‘소유’가 일본인 친구 ‘쇼코’와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를 그린 1인칭 소설. 내가 반한 지점은 ‘쇼코’를 해석하는 소유의 시선이었다. 
 

“공감을 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니라, 그냥 상대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포즈를 취하는 것 같았다.”(12쪽), “친절하지만 차가운 미소였다. 다 커버린 어른이 유치한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웃음이었다.”(14쪽) - 「쇼코의 미소」

 
특별한 은유도 없는 이 두 문장이 마음에 들어왔다. 평소 내가 생각했던 장면, 또는 상황을 너무 정확히 표현한 문장을 만났을 때, 나는 책 읽는 즐거움을 느낀다. 최은영 작가는 등단 초기부터, “선천적으로 눈이나 위가 약한 사람이 있듯이 마음이 특별히 약해서 쉽게 부서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 앞에 겸손히 귀를 열고 싶다”고 밝혀왔단다. 이 두 문장만 읽어도 작가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이 됐다. 세 번째 수록작인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도 몹시 좋았다. 역시 이 작품에서도 인물에 대한 해석이 탁월했다. 작가의 ‘순하고 맑은 힘’도 맞지만,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쉽게 부서지지 않을 견고한 힘’. 

 

“엄마의 가족들은 언제나 이모에게 차갑게 대했지만 이모는 한 번도 서운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가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모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당신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식의 태도였다.”(102쪽)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7.19


“이 책, 왜 이렇게 잘 나가요?”
“표지가 예뻐서 그런 것 같아요.”

 

“네? 정말 표지가 예쁘면, 책을 많이 사요?”
“요즘 독자들은 그래요.”

 

표지가 예뻐야 책이 잘 팔린다고 한다. 하기야 표지가 너무 촌스러우면 지하철에서 읽을 때, 왠지 좀 없어 보인다. 물론 있어 보이려고 책을 읽는 건 아니다. 다만, 출판사가 크고 작고를 떠나 디자인에 신경을 안 쓴 책을 보면 헛기침이 난다. 좋은 콘텐츠를 더 좋게 보이기 위한 노력을 왜 안 할까. 비주얼 시대가 된 지, 언 10년이 넘지 않았나? 아니, 20년인가? “내용은 좋아요”라고 어필하는 건, 구시대적 발상이다. 읽고 싶게끔 만들어도 안 읽는 세상 아닌가. 오늘도 촌스러운 표지를 뒤집어 쓴 책들이 책상에 쌓여 있다. 치워 버린다. 말끔하고 단정한 표지를 입은 책들만 가지런히 정리했다.

 

소설리스트의 김중혁 작가의 ‘표지 갑’ 칼럼을 좋아하는데, 업데이트가 안 된지 꽤 오래됐다. <채널예스>의 인기 칼럼이었던, 김중혁 작가의 ‘대화완전정복’이 최근 20회로 막을 내렸는데, 김중혁 작가는 내가 만난 최고의 프로 필자였다. 칼럼을 많이 쓴 까닭이겠지만, 기자 생활을 한 이력도 있기 때문이겠지만 정말 프로페셔널 했다. 파일이 안 읽힐 염려가 있으니, 메일에 원고를 붙여 넣기 하는 건 물론, 딱히 피드백을 요하지도 않았다. 혹여 마감을 제때 못 지킬 것 같으면, 며칠 전 연락을 해주는 센스까지. 여러 사람의 글을 자주 받다 보면 안다. 얼마나 공들여 썼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을 읽어 봤는지. 아마, 많은 매체의 담당자가 김중혁 작가를 좋아할 것 같다. 그의 신작 장편 소설이 기다려진다.  

 

7.20

 

『쇼코의 미소』가 2쇄를 찍었단다.

 

최근, tvN <비밀독서단>에 출연한 김연수 작가가 이 책을 강력 추천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역시 방송의 힘은 대단하다. <채널예스>도 방송에 한 번 나오면, 트래픽이 좀 오를까? 생각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여기서 잠깐, 작품이 좋지 않았다면 김연수 작가가 추천할 턱이 없다. 마케팅, 광고의 힘이 세상을 주무르고 있지만, 작품의 힘이 먼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1,000부로 이벤트를 펼친 건, 좀 많이 아쉬운 대목이다. 어려운 지점이다.  


7.21

 

『외박』의 작가, 정택용 사진가를 인터뷰했다. 궁금했던 사진가였다.


예상했던 대로 정말 순한 분이셨다. 얼굴을 드러내는 인터뷰를 하는 일을 무척 어색해 하셨다. 그래도 본인이 사진가 아닌가. 사진기자에게 결코 까다롭게 뭔가를 요청하지 않았다. 요즘, 하도 사진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저자들이 많아, “사진은 따로 컨펌 안 하셔도 괜찮나요?” 물었더니, “아휴, 아닙니다”라고 하셨다.

 

이게 프로다. 사진 잘 나오고 싶은 것, 안다.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그런데 사진은 당신 얼굴을 찍는 일이다. 과한 포토샵으로 딴 사람을 만들어 주면, 그게 진심으로 흡족한가. 과한 덧칠을 원하는 저자를 만날 때마다, 기자들은 한숨을 쉰다. 그렇게 정, 본인의 얼굴에 자심이 없으면 얼굴을 드러내지 말았으면 한다. 얼굴로 일하는 연예인은 아니지 않나? 상대를 신뢰해 주면, 상대는 고마워서 더 잘한다.  

 


7.22

 

읽을 게 너무 많아 오히려 못 읽고 있다. 간혹 콘텐츠를 만들면서, 이게 다 정말 쓸모가 있는 일인가 싶을 때가 있다. 모든 게 정말 가치가 있을까. 필요가 있을까. 재미가 있을까. 새롭거나 탁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요즘은 ‘꼴값’과 ‘갑질’에 대해 고찰 중이다. 뼛속까지 갑인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숨이 막힌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을’ 체험을 한 번 하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누가 “대리님도 이런 생각을 하세요?”란다. “어이쿠, 저 을일 때 많은데요”라고 답변하면서, 반성했다. 부탁을 많이 받으면, 내가 ‘갑’인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노력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을’로 일하는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갑자기 K씨가 생각난다. 나에게는 심하게 깍듯하여 나를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들었던 K씨. 그에게 나는 ‘갑’이었기 때문이었는데, 나의 동료를 하대하는 것을 목격한 후, 나는 그를 몹시 싫어했다. 지금도 까무러치게 싫다. 나에게 아무리 잘해도, 나를 아무리 좋아해줘도 이런 류의 사람은 질색이다.

 

쓰다 보니, ‘절도 일기’ 패러디가 아닌 것 같다. ‘절도 일기’의 형식만 빌려왔다. 그러니, 나는 작가님께 사과를 해야 할까. ‘패러디도 아닌 패러디를 했으니’ 말이다. 마감 시간이 다가온다. 난 신입 시절부터 1등 마감을 많이 했다. 그런데 요즘, 조금 헐거워졌다. 나이 탓인가, 체력 탓인가, 열정 탓인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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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저 | 문학동네
총 7편의 작품이 수록된 최은영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사람의 마음이 흘러갈 수 있는 정밀한 물매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들을 바로 그 ‘사람의 자리’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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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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