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내게 레몬(시련)을 줬지만, 나는 레몬에이드를 만들어냈어."
비욘세는 현시대의 가장 거대한 팝 아이콘이다. 위상이 달라진 것은 지난 앨범
파격 행보는 이것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2월 깜짝 공개한 신곡 「Formation」과 이튿날 3분여의 슈퍼볼 하프타임 쇼 무대는 온 미국을 발칵 뒤집었다. ‘만인의 스타’였던 그가 처음으로 인종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흑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점철된 가사와 퍼포먼스에 일각에서는 즉각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심지어 반(反) 비욘세 시위를 도모하는 세력까지 등장했다. 거센 정치 공세에도 불구하고 슈퍼볼 직후 티켓 판매를 시작한 새 월드 투어(The Formation Tour)는 매진 행렬을 기록했고, 다가올 새 앨범에 대한 관심은 극대화됐다.
기대 속에 발매된 신보의 포맷은 전작과 유사하다. 이번에도 개별 트랙 구매는 불가능하며, 전작에 이어 ‘비주얼 앨범’으로 명명됐다. 그러나 두 장이 비디오에 접근하는 방식은 상이하다. 지난 앨범이 각 트랙의 뮤직비디오를 낱개로 제작했다면, 이번에는 내러티브가 있는 한 편의 뮤직 필름을 탄생시켰다. 소말리아 출신 영국 시인 워선 샤이어(Warsan Shire)의 시와 ‘직감’, ‘부정’, ‘분노’, ‘무관심’, ‘허무’, ‘책임’, ‘개심’, ‘용서’, ‘부활’, ‘희망’, ‘구원’이라는 각각의 소주제에 수록곡을 엮어 전달력을 높였다. 상실감과 분노,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흑인 인권에 관한 얘기도 놓치지 않는다. 어조는 직설적이고 거칠다.
비디오를 논외로 하더라도 음악 그 자체로 훌륭하다. 알앤비와 힙합에서 록, 컨트리, 댄스와 발라드까지, 가히 2016년 판 팝의 모든 것이다.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구성임에도 산만하게 들리지 않는 데는 뛰어난 보컬이 큰 역할을 한다. 디플로, 잭 화이트 등 개성 강한 뮤지션과의 협업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했다. 복잡한 사운드에서 오는 난해한 인상은 쉽고 분명한 멜로디로 돌파한다. 레드 제플린과 아이작 헤이즈의 고전 등 다양한 샘플의 활용으로 듣는 재미를 배가 한 건 덤이다.
일련의 스토리가 있는 일종의 콘셉트 앨범이지만, 트랙 단위로 봐도 매력적인 곡들이 가득하다. 탄력있는 트랩 비트의 「Sorry」, 근사한 남부 컨트리 「Daddy lessons」가 상당한 흡인력을 갖췄고, 피아노만으로 진행되는 가스펠풍 발라드 「Sandcastles」와 자연스럽게 제임스 블레이크가 이어 부르는 「Forward」의 구성도 재밌다. 잭 화이트가 함께한 「Don’t hurt yourself」는 멜로디 진행과 특유의 기타 톤 등 여러 면에서
「Freedom」과 「Formation」은 단연 음반의 하이라이트다. 1960년대 사이키델릭 밴드 칼레이도스코프(Kaleidoscope)의 「Let me try」를 골자로 한 「Freedom」은 또 다른 ‘블랙 아이콘’ 켄드릭 라마가 함께했다. 파워풀한 타악기와 가창, 켄드릭 라마의 명료한 래핑이 흑인의 자유를 향한 웅장한 울림을 만들었다. 신경질적인 신스 리프와 공격적인 비트에 맞춰 남부 출신 흑인이자 유일무이한 톱스타으로서의 ‘스웨그’를 마음껏 뽐낸 「Formation」은 올해의 싱글로도 부족함이 없다.
비욘세는 위기의 순간에 언제나 정공법을 택했다. 공식 입장 따위도 없었다. 2013년 오바마의 재선 취임식에서 국가(國歌) 립싱크 스캔들에 휩싸이자, 그는 몇 주 뒤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15분의 완벽한 라이브를 선보이며 논란을 불식시켰다. 마찬가지로, 그간 남편 제이지의 불륜과 부부간 불화에 관한 소문에 전혀 대응하지 않던 그는 마침내
예술적 성취와 대중 지향적 팝의 탁월한 절충이자 날카로운 기획과 절정의 기량으로 빚어낸 역작이다. 개인적 이야기를 여성, 특히 흑인 여성 전체의 서사로 확장시키며 공감대를 형성했고, 자신이 가진 영향력으로 사회에 거대한 얘깃거리를 제시했다. 동시에 음악적 완성도를 놓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독보적이다.
2016/05 정민재(minjaej92@gmail.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bonouj
2016.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