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제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특별히 즐겁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책은 항상 좋은 에너지원이고, 삶을 바라보는 좋은 지침서가 돼 주죠. 좋은 책은 좋은 친구와 같습니다. 훌륭한 멘토 같고요. 특히 저는 유대인 교육을 연구하다 보니 주로 랍비들이 쓴 책을 자주 읽는데,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읽을 때마다 항상 새로운 차원의 영적 지혜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우리와 많이 다르고 그들이 선사하는, 깊이가 다른 깨달음을 통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인생에 대한 많은 통찰력을 얻곤 합니다. 그런 통찰력을 얻는 순간이 독서를 통해 얻는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요?
관심사는 온통 탈무드에 있습니다. 탈무드 원전 중에서 『아비들의 윤리』(피르케이 아보스)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에 대해 최근 하브루타 방식으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열었어요. 아비들의 윤리라는 책은 고대의 유대인 랍비들의 도덕과 윤리에 대한 어록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유대인들이 탈무드를 배울 때 맨 처음 배우는 책으로 알려져 있죠.
피르케이 아보스는 유대인들이 매년 유월절과 오순절 사이에 공부하는 탈무드이기도 하죠. 올해 현재 유대인들은 절기적으로 유월절과 오순절 사이에 있으니까 그들은 지금 피르케이 아보스를 매주 배우고 있을 겁니다. 이 기간에 이 책을 배우는 이유는 유대인들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순절날 신의 말씀을 받기 전에 먼저 인성을 다듬기 위해서입니다. 저도 그들의 스케줄에 맞춰 피르케이 아보스를 읽어가면서 많은 주석을 놓고 다양한 의견들을 탐독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 이 책을 필두로 탈무드 원전을 소개하고 싶은 것이 제 바람입니다. 실제로 이 책을 매주 참석자들과 2시간 반에 걸쳐 서로 묻고 대답하며 생각을 점점 더해가는 그 시간이 너무나 좋습니다.
최근 펴낸 『질문하고 대화하는 하브루타 독서법』은 질문에 초점이 맞춰진 유대인식 독서법이라는 데 다른 책들과 차이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책을 읽고 나면 어떤 걸 배웠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유대인들은 어떤 ‘질문’을 찾아냈느냐를 중요하게 봅니다.
질문을 하며 책을 읽으면 비판적 독서가 가능하고, 책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저자의 생각을 반박할 수 있는 안목도 생기죠. 그런 식으로 독서를 하다 보면 어느덧 작가를 뛰어넘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책 내용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하면 자기만의 독특한 철학과 사고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서 질문하고 대화하는 독서를 하기엔 너무 어렵습니다. 따라서 둘 이상이 짝을 지어 질문을 서로 주고받는 방식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럼 자신이 쌓은 지식과 경험을 상대방과 결합할 수 있게 되어 훨씬 다양하고 깊고 넓은 독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히 인문고전의 경우, 반드시 짝을 지어 질문과 대화를 나누며 고전의 깊은 맛을 음미하는 독서를 꼭 실천해 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어떤 말씀을 드리는지 금세 알게 될 것입니다.
명사의 추천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저/서병훈 역 | 책세상
민주주의의 단점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민주주의가 잘 되기 위해서는 구성원간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을 너무나 잘 짚어낸 수작입니다. 이 책은 또한 하브루타를 연구하고 있는 저에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하브루타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책입니다.
한국통사
박은식 | 범우사
임진왜란을 비롯해 36년간 나라를 앗아간 나라가 바로 일본입니다. 일본은 끊임없이 정한론을 통해 대한민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나라입니다. 지금도 그런 야욕은 버리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우리나라는 두 번의 큰 고통을 겪었지만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 유성룡이 『징비록』을 통해 그렇게 일본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조선은 일본을 경계하지 않아 더욱 가혹한 시련을 일제 36년간 겪게 되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이었던 박은식은 『한국통사』를 통해 일본을 경계할 것을 다시 한 번 주장합니다. 우리는 그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민족은 똑 같은 고통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이 책을 통해 고난의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저/장희창 역 | 민음사
인생을 그대로 보고 절대긍정의 인생관을 피력했던 니체의 사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삶의 굴곡을 넘나드는 우리네 인생들에게 행복과 고통은 일상적입니다. 특별히 즐거울 것도 고통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삶을 견뎌내야 하고 살아내야 합니다.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힘을 얻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것은 신에 의지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삶의 온갖 간난신고를 이겨내고 피워낸 웃음은 인생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삶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가슴에 품습니다.
자본론
K. 마르크스 저/김수행 역 | 비봉출판사(BBbooks)
칼 막스처럼 자본주의 모순을 정확하게 지적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탐욕은 개인의 흥망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흥망에도 그대로 투영됩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대결이지만 그건 모두 자본가의 탐욕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경제는 이런 자본주의의 모순을 그대로 겪고 있습니다. 경제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칼 막스는 자본가가 스스로 탐욕을 내려놓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내려놓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윤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를 통해 드러나는 자본가의 탐욕을 그대로 목도하고 있습니다. 세대를 앞질러가는 그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창조적 진화
앙리 베르그송 저/황수영 역 | 아카넷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선택, 적자생존 등 환경의 지배를 받는 나약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그리고 있다면, 베르그송은 약동하는 생명력을 뜻하는 엘랑비탈을 강조함으로써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강인한 인간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환경에 순응하고 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기는 합니다만 생명력이 가진 에너지조차 사장되고 맙니다. 깡마른 담벼락에서도,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사막에도 생명력 넘치는 동식물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할 뿐만 아니라 극복하면서 짧은 삶을 영위합니다. 우리에게도 환경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레 겁을 먹고 환경에 순응하는 길만을 따른다면 어떤 경우에도 역사적 발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역사 속 수많은 혁명가들과 개혁가들은 주어진 환경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생명체에는 새로운 역사를 힘차게 열어젖힐 수 있는 강력한 창조력이 숨어 있습니다. 그런 힘이 우리 안에 내재돼 있다는 것을 알려준 책이 바로 『창조적 진화』입니다. 우리는 창조력으로 진화하는 것이지, 환경이나 우리를 둘러싼 사회에 순응했기 때문에 진화한 게 아닙니다. 사회 발전의 숨은 원동력을 제대로 파헤친 책입니다.
베테랑
류승완
황정민이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눈에 보이는 돈의 유혹을 이기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런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우리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물질적인 삶을 우선시 하다 보면 누구나 인생을 후회하기 마련입니다.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왜 유대인들이 보이지 않는 가치에 주목하는지 오랜 연구 끝에 알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는 불변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가오를 위해 돈의 유혹을 뿌리치는 형사의 모습이 제 모습이길 기대하며 살고 싶습니다.
쉰들러 리스트
스티븐 스필버그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 유대인들의 고통이 절절히 묻어 나오는 영화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잔인해질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런 만행을 저지른 독일은 사실 유대인들의 수많은 가해자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엄청나게 혹독한 대접을 받아오며 살았습니다. 개종→추방→진멸로 이어지는 이런 운명을 누구보다도 오랜 세월 견뎌낸 유대인들의 모습은 불가사의할 정도입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2000년 만에 나라를 다시 세운 민족 유대인들에게 가해진 홀로코스트 대학살은 그들의 마지막 고난이 되길 바랍니다.
탑건
토니 스콧
고등학교 때 제가 좋아하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과 미팅약속을 잡고 이 영화를 같이 보기로 했는데, 웬걸, 여학생은 그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바람을 맞은 것이죠. 그래도 궁금해서 영화를 끝까지 보았는데, 전투기 조종사와 여성교관과의 사랑이 달콤했습니다. 특히 영화의 OST로 등장했던 "Take my breath away"는 그날 이후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여학생과는 그 후로 연락이 되지 않았지만요. 영화의 멋진 사랑과 현실에서의 바람맞은 사랑이 엇갈리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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