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홀로는 2013년 2월 14일 창간호를 냈다. 계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떠들어 댔듯이, ‘연애하지 않으면 발로 차는 세상에 깊이 빡쳐서’이다. 나에게 빡침을 선사한 일들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2012년, 나는 흔히 말하는 “25년 간 연애하지 않으면 여자는 학이 된다”는 나이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몇 달 뒤에 내가 학이 안 될 것은 너무나 뻔한 바, 비연애인구를 학이나 마법사처럼 어딘가 ‘이질적인 존재’, ‘인간과는 다른 영역’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세상에 뭔가 크게 엿 먹일 방법을 궁리 중이었다. 그러다가 인터넷 뉴스 하나를 보게 되었다.
“나 혼자 결혼해요” …신랑 없는 솔로 신부 화제(서울 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2010.10. 23)
뭐…뭐지?! 이 신박한 발상은! 나는 홀린 듯이 기사의 떡밥을 물었다. 클릭하자 한 여성이 혼자서 웨딩 드레스를 입고 면사포를 쓰고 찍은 웨딩 사진이 떴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대만에 사는 ‘천웨이이’라는 여성이 자기 스스로와 하는 결혼식을 올렸는데, 이는 평소 연애에 관심이 없음에도 주변에서 결혼을 언제 하냐고 독촉하자 기획한 이벤트였다. 천웨이이는 웨딩 드레스를 입고 혼자서 웨딩 사진을 찍고, 웨딩 플래너에게 결혼식 상담요청을 할 뿐 아니라 친구들 30명을 초대해 결혼식을 올리고 호주로 신혼 여행을 가는 계획까지 세운 참이었다. “나는 결혼에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전통적인 경계를 뛰어넘는 색다른 아이디어를 낸 것일 뿐”이라는 천웨이이의 발언에 나는 물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리고 무심코 스크롤 바를 내렸다. 아아. 인터넷에서 댓글은 안 보는 게 답인데. “고마워요....”라는 말이 베플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혼하지 말고 평생 행복하게 사세요.” 까지 2콤보.
출처 : MBC
그것은 명백한 조롱이었다. “애꿎은 남자 희생 안 시키고 혼자 결혼해줘서 고맙다”는 요지의 말은 순전히 해당 여성이 자신들의 기준에서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름답지 않은 여성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의미의 댓글이, 높은 추천수를 얻은 ‘베플’이라니. 나는 새삼 세상의 졸렬함에 화가 났고, <인사이드 아웃> 식으로 말하면 그때 내 안의 ‘계간홀로’ 섬이 또 한 뼘 자라났다.
그리고 작년 2015년, 우리나라에도 이런 식의 ‘나홀로 결혼식’이 일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여성이 혼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 메이크업을 하고 스튜디오 촬영을 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도 싱글 웨딩 관련 다양한 상품을 개발 중일 정도로, 아주 드문 일은 아니라고.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고 경제적 자립도가 높아지면서 결혼을 늦추거나 거부하는 여성들이 싱글 웨딩을 통해 결혼식이라는 판타지를 실현하는 것”, “SNS에 올리는 등 현재 모습을 기록하고 자랑하고 싶은 현대인의 욕구”, “결혼의 어려운 점은 피하면서 로망은 충족시키려는 현실 도피성 성격을 가진다”고 평했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실제 결혼을 통해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것이 가장 좋지만 결혼 자체가 어려운 시기"(머니투데이 이원광, 이재원 기자 2015.07.10) 라고 결론을 내리는데….
글쎄, 과연 그럴까?
판타지는 판타지로 존재할 때 의미가 있다. 그것은 잠시 차용해서 즐겁게 갖고 놀다가 다시 내려놓으면 그뿐이다. 판타지를 향유하는 이들은 그것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너무나 잘 안다. 그러니까, 많은 빠순이들이 ‘계 타는’ 상상을 하지만 정작 카메라가 가까이 오거나 오빠가 무대에 끌어올릴 제물(!)을 찾으면 혼비백산해서 숨듯이. 그러니 ‘결혼식을 통해 결혼에 대한 판타지를 충족’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나홀로 결혼식을 치르는 여성들이 꿈꾸는 것은 어디까지나 결혼의 ‘형식’, 즉 예쁜 드레스를 입고 한껏 치장한 후 멋진 사진을 남기는 일이다. 이를 ‘결혼을 거부한다/현실도피’라고 읽는 것은 결국, 결혼을 인생의 필수 요소로 보는 시각의 반영이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현실적인 장애물이 있어도 그것을 뛰어넘고 ‘실제’ 결혼을 충족해야 할 여성들이 어디까지나 겉핥기식으로 로망으로만 충족하려 한다는 비판은, 결혼 제도 내의 불합리한 구조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인터뷰에서 천웨이이는 자신의 인생에서 결혼이 중요한 요소가 아님을 명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결혼의 가능성 또한 열어둔다. 천웨이이의 결혼은 남의 인생에서 감놔라 배놔라 결혼해라 닦달하는 사람들을 통쾌한 방식으로 ‘엎어’버리는 것이 목적이다. 결혼을 모방함으로써, 형식만 갖추어지면 결혼은 아무 것도 아님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결혼할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은 천웨이이가 자신을 긍정하는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아직까지 나홀로 결혼식은 생소한 개념이다. 실제 결혼으로서의 효력도 없거니와 분명히 돈지랄이라고 욕하거나 “얼마나 결혼해주는 사람이 없으면”하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흥미로운 현상을 그렇게 진부하게 해석하기는 아깝다. 이러한 나홀로 결혼식은 ‘기념’ 혹은 코스튬 플레이의 성격이 짙다.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려는 욕망은 흔히 “여자가 가장 예쁜 날”이라고 불리는 결혼식의 콘셉트까지 빌려온다. 이때 이들이 진짜 결혼의 어려운 점을 피하려고 한다는 것은 너무 나간 해석이다. 드레스가 입고 싶다고 결혼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순전히 결혼할 준비가 안 되어서, 아직 결혼할 만한 사람을 못 만나서, 결혼 자체에 관심은 없지만 그 옷을 입은 내 모습이 궁금해서, 등등 나홀로 결혼식의 동기는 다양할 수 있다. 이 나홀로 결혼식은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이 원인이라기보다(우리나라의 임금 불평등 구조는 여전히 10:6이다), 결혼의 권위를 해체하고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 자유롭게 가져다가 갖다 쓰는 놀이의 시작으로 보인다.
이전까지 필수였던 결혼의 권위는 혼자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으며 하루 정도 기분을 내며 모방하는 이벤트에 이르면 흐물흐물해진다. 드레스와 웨딩 사진이 결혼에서 기대하는 전부라면, 코드만 차용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진짜 결혼을 할 필요가 없다. 판타지는 판타지로 선을 긋고 소비하는 것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매우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이자, 자신의 현재 상태(결혼하지 않음)을 긍정하고 유지하는 성숙한 태도이다. 그리고 이것은 굳건하던 결혼이라는 벽에 나기 시작한 아주 작은 균열, 그리고 거기서 후두둑 떨어지는 돌가루로 벌이는 유쾌한 소꿉놀이로도 비유할 수 있다. 화아 근데 생각만 해도 나홀로 결혼식 너무 행복할 것 같지 않아여? 내가 입고 싶은 거 입고 내가 좋아하는 거 먹고 신혼여행은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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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송
비연애인구 전용잡지 <계간홀로> 발행인. 문충이(文蟲)가 되고 싶은 그냥 식충이. 뭐든지 재미 있어야 하지만 재미의 기준은 내 마음. 읽고 쓰고 덕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