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현철, 진솔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
저는 대중가수기에 가장 솔직하게 가사를 쓰더라도 대중의 코드는 묻어있을 거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더 진솔한, 의미를 담은 노랫말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글ㆍ사진 이즘
201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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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이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의 반응은 “한 게 없어서 할 얘기가 없는데..”였다. “한 게 없으니까 인터뷰를 해야죠!” 했더니 그는 “그런가?”로 답하면서 인터뷰를 승낙했다. 그가 TV에 얼굴을 안 비추는 것도 아니고 라디오의 경우 매일 프로(MBC FM <오후의 발견>)의 진행자라서 공백이란 표현은 적용할 수 없지만 그가 거의 10년 가까이 새 앨범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사항이다.

 

왜 그런지 묻고 싶었다. 2014년 여름만 해도 “신보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귀띔하기도 했다. 만약 음악을 엎었다면 현실에 대한 회의 때문일까, 아니면 창의적 답보에 의한 걸까. 지난 11월 23일 홍대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새 앨범은 동맥경화 상태”라고 고백했다. 「춘천 가는 기차」가 실린 1집을 창피하다고 털어놓은 그는 무거운 얘기도 미소와 특유의 껄껄 웃음으로 풀어나갔다.

 

김현철 (4).JPG


2006년 < Talk About L♡ve >, 그 해의 키즈팝 앨범을 마지막으로 작품 활동이 없다. 정규 10집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은데.


안 내고 싶어서 안 내는 것은 아니에요. 정규 1집부터 10집까지 한 각론으로 묶어서 빨리 보관해두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사실 곡은 이미 넘치고, 콘셉트 걱정도 제가 해왔던 대로 하면 되니 큰 고민은 없어요. 불만이 있다면 노랫말 부분이에요.

 

어떤 점에서의 불만인가.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솔직한 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렇게 하면 대중이 좋아할까? 이렇게 하면 우리 아내가 좋아할까?'하는 생각이 드는거죠. 물론 저는 대중가수기에 가장 솔직하게 가사를 쓰더라도 대중의 코드는 묻어있을 거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더 진솔한, 의미를 담은 노랫말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유독 가사 부분에 집중하는 특별한 이유라면.


아티스트의 마음은 세월이 지나면 변하기 마련이죠. 지금 당장은 내가 참xx 브랜드 소주를 좋아하지만, 훗날에는 처음XX소주가 좋아질 수 있어요. 그 변하는 속에서 '내가 지금 뭘 좋아하나'를 찾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김현철은 성공적인 가수기도 하지만 한 명의 작곡자, 프로듀서기도 하다. 정규 앨범 고민은 뒤로 하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활동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마저도 공백이었다.


제 코를 풀어야지 남의 코도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우선 가장 시급한 문제가 이 앨범이니까요. 지금 이 작품을 비유하자면 동맥경화 같은데, 활동의 혈관이 막혀있으니 먼저 이걸 고치고 뚫어야 다른 작업도 가능한 거죠. 지금과 같이 방송 일정, 학기 일정 번갈아가면서 해결하려 하니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습니다.

 

공연 수요도 분명 있을 텐데 올 해 3월 이후로 공연 일정도 없다.


공연하면 좋죠. 그런데 계속해서 과거를 반복하는 것 같아 복잡한 마음이 들어요. 새 앨범으로 새 노래를 들려드리는 자리가 되어야 할 텐데, 계속해서 옛날 노래만 부를 수는 없잖아요? 그건 아니라고 봐요.

 

 

“1집은 창피한 앨범. 진실한 내 자신을 표현한 게 아니다!”

 

얼마 전 11월 14일, 1989년 데뷔앨범 < 김현철 Vol.1 > LP 리마스터링 발매 기념 음감회가 열렸다. 긴 시간에도 앨범을 잊지 않은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고 하던데.


팬들께 1집이 왜 창피한 앨범인지를 말씀드렸어요. 아직 여물지 않은 감을 여문 것처럼 색칠해서 내놓은 앨범이라고 해야 할까. 이게 객관적으로 그렇더라도 저 자신이 익은 감이라 생각하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제 기준으로도 1집은 성숙하지 못한 앨범 같거든요. 제가 그린 김현철이라는 사람은 저의 진짜가 아니라 '제가 바라는 그러나 다른' 김현철이라는 사람임을 담은 앨범이에요. '허세'라고 할까요. 물론 내 이야기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 느낌이나 생각, 표현은 나보다는 나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2집, 3집도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춘천 가는 기차」, 「동네」 등이 수록된 김현철의 첫 앨범을 사랑한다.

 

그 점에 있어서는 대중과 다른 입장이라고 봐요. 긴 머리 휘날리면서, 구체적으로, 춘천 가는 기차 안에서, 허름하게 옷 입고도 나름대로 맵시 있는… 저만 아는 그 이상향이 있지요. 그 입장으로 만든 앨범이라는 겁니다. 어쩌면 그 이상향을 아직도 쫓고 있기 때문에 지금 10집 발매도 늦어지는 건지 몰라요.

 

그렇다면 김현철의 출발점은 가수가 아닌 작곡자가 아닌가?


그렇죠. 저는 작곡자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노래를 제 자신에게 주고, 제가 부른 거죠.

 

음감회에 오신 팬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


이해한다는 반응이었어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 잘 보이고, 멋지게 보이고 싶고, 다른 사람이 보는 나에 신경 쓰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요.

 

향후 10집의 스타일도 이를 바탕으로 변할 수 있는 건가. 김현철 (2).jpg


음악에는 크게 손대고 싶지 않아요. 코드워크나 스타일 자체를 바꾸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9집까지 앨범을 내면서 가장 좋은 평가가 '자신의 길을 꾸준히 간다!'였거든요. 진솔한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연예계 대표 노총각'이었던 김현철에게 결혼은 많은 영향을 주었다. 2006년 이즘 인터뷰에서 그는 '결혼 전과 결혼 후'의 아티스트 행로를 고민하면서 '결혼은 뮤지션에게 또 다른 인생'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그 자신을 '패밀리 맨'이라 일컬으면서 이 부분도 노래 만들기에 빠져들지 못하게 하는 요인임을 인정했다.

 

아이들을 위한 앨범 < 키즈 팝 > 시리즈가 나온 것도 2006년이다.


키즈 팝 앨범을 처음 꿈꾼 것은 4집 때였어요. 예전부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만들어보자는 작은 꿈은 있었죠. 결혼하고 나서 마음이 굳어졌어요. 지금 안 만들면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랄까. 아내도 정말 기뻐했고, 아이들도 좋아했어요.

 

지금은 사라진 < MBC 창작동요제 >에서도 김현철의 키즈 팝은 동요의 미래와 지향과 관련해 하나의 기준이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이제 '동요'라는 단어나 기준 자체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일단 그건 일제(日帝) 강점기부터 내려온 용어고, 가사만 좋다면 저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요라는 이름을 달면 아이들만 부르고, 유치한 노래처럼 여겨지잖아요. 사실 산울림의 노래도 동요고, 시인과 촌장의 「사랑의 일기」같은 노래도 동요에요. 외국을 보면 「Children's song」이라는 이름으로 밥 딜런, 존 레논도 아이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죠. 동요를 '어린이를 위한' 개념으로만 생각한다면 그건 틀에 가두는 것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요.

 

 

“동요라는 단어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40대 후반으로 가는 나이다. 과거 인터뷰에서 이글스(Eagles)의 「I can't tell you why」를 인생의 곡으로 꼽은 적 있었는데, 10년 시간 동안 그만큼의 감동을 주는 음악이 있었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없어요. 문화는 나사와 같다고 생각해서, 내부에서는 계속 진보하는 것 같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을 뿐이거든요. 음악도 마찬가지라 지금은 1970년대 펑크(Funk), 디스코가 다시 유행하고, 일렉트로닉 음악이 인기죠. 그 시절처럼 인기는 못 누리겠지만,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의 팝 음악의 르네상스가 다시 돌아올 거라 믿어요. 그 시대의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가 저를 포함해서 윤상, 고(故) 신해철, 공일오비 같은 뮤지션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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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MBC 예능프로그램 < 복면가왕 > 출연은 의외다.


원래는 단 한 번 나가려고 했어요. 한 번 나갔더니 다음 주도 나오라고 하고, 그 다음 주도 같이 하게 되고… 그렇게 계속 나가고 있죠. 다른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김현철의 음악에 대한 이런 저런 칭송 외에 비판도 엄존한다. 그에 대한 입장은 있나.


저는 기본적으로 음악계에, 또한 팬들에게 원망이나 실망을 표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가치관이 다른 어떤 사람이 있다고 쳐도, 그런 사람도 인정해야 나도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지난 이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이 갖는 의미를 '누림'이라 정의했던 것을 기억하는지. '첫 앨범을 냈을 때부터 한창 뛰던 19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가 좀 살게 되면서 제 음악, 과거 같으면 붙기가 어려운 음악이 수용되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본다.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진 거다. 만약 우리나라가 그렇지 못했다면 내 음악이 대중화되지는 않았을 거다!'라고 말했다.


제가 그렇게 멋진 말을 했어요? (웃음) 맞는 얘기네요. 제가 88학번이에요. 당시 우리 사회가 민주적으로는 완전하지 못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전성기였잖아요. 저와 같은 1960년대 중후반~1970년대 초반 생들이 1990년대의 한국 음악 르네상스를 꾸려갔다고 생각해요. 과거와 달리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제 음악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배경이 만들어졌으니까요. 제가 1970년대에 20대였다면 포크 록을 했을지도 모르죠.

 

9장의 앨범, 거기에 키즈 팝 앨범 2장이면 한 아티스트에게 굉장한 궤적이다. 자신의 작품 목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있다면.


이소라와의 작업이 떠오르네요. 데뷔 앨범 프로듀싱을 제가 맡았고 이후 2집도 제가 프로듀싱하기로 했는데 이소라는 셀프 프로듀싱을 원했어요. 그렇게 잠시 연락을 못했는데, 이후 4집에서 다시 만났어요. 소라가 회사(동아기획)를 나와서 낸 첫 앨범이었는데, 당시 새 회사의 계약 조건 중에 '김현철의 프로듀싱'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현재 음악은 아티스트에게 너무 산업을 강요한다!”

 

이소라 4집은 음악적으로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제 반주를 도와준 밴드가 정말 최고의 밴드였어요. 베이스에 서영도, 기타에 홍준호 등등. 대한민국 최고의 밴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앨범 녹음 후로도 6년 동안 '김현철밴드'라는 이름으로 함께 계속 함께했습니다.

 

올해 봄 이승철은 새 앨범 발매 후 < JTBC 뉴스룸 >에서 더 이상 풀 앨범을 낼 수 있을지 회의를 살짝 내비치기도 했다. 분명 10집이 기념비적인 작품이겠지만, 음악 만드는 것 외 흥행 부담은 없나.


흥행에 대한 부담을 없애려고 합니다. 제작비 다 까먹어도 좋으니, 제가 만족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일 뿐이에요. 스트리밍 사이트로 음악을 듣는 요즘엔 싱글 개념의 앨범은 성공할 수 있어도 앨범 단위 앨범은 흥행이 어려워요. 물론 그만큼 빅 데이터도 잘 구축되어있으니 유행하는 스타일, 노래 등을 계산해서 흥행할 만한 노래를 만든다면 성공이야 하겠죠. 그러나 그 음악 '산업'이 아티스트에게 강요되어선 안돼요. 현재 음악은 아티스트에게 예술 아닌 흥행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시장에는 다 똑같은 블록버스터보다 다양함이 필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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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은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부럽지 않을 독보적인 길을 걸어왔다. 짓궂은 질문이지만 수많은 히트 곡 중 베스트 트랙 3개를 꼽는다면. (이 질문에 어렵다며 '10분을 달라'고 했다)


우선 「춘천 가는 기차」가 있겠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제가 느끼는 감정은 다르긴 하더라도, 어쨌든 가수 김현철의 첫 시작이니까요. 노래가 나오기 전까지는 제가 레코딩하면서도 내가 가수인가, 아티스트인가라는 의문이 있었지만, 이 노래로 '가수 김현철'이 시작됐죠. 「달의 몰락」도 꼽아야죠. 가장 성공한 노래고, 앨범은 밀리언셀러가 되었고, 방송도 하게 된 노래이니까요. 마지막 노래는 곧 나올 정규 10집의 한 곡으로 하겠습니다. (호탕하게 웃으며) 그렇게 만들어야죠.

 


인터뷰: 임진모, 김도헌, 정유나, 정민재
사진: 이한수
정리: 임진모
2015/12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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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