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폭행과 같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범인에게 사람들의 상식적 판단에 비해 법원은 적은 형량을 구형한다. 대기업 총수들은 몇 백 억원의 배임과 범법행위를 했지만 국가경제활동이 침체되어있고, 그동안 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이유로 형기를 다 마치지 않고 사면이 된다. 이와 같이 상식에 준해서 판단하는 것과 국가와 법원이 판단하는 것이 다를 때 우리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실망을 한다. 그러면서 이상주의적 정의가 실현되는 것 까지는 바라지 않을테니 제발 국민의 상식에만 맞춘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만큼 우리는 상식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상식적인 수준에만 맞춰서 판단하고 행동하면 세상은 잘 돌아갈 것이라 믿는다. 나도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상식이 언제나 진리일까?’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해야만 한다. 우리가 세상이 상식에 따라 돌아가기를 바란다면 그 상식이라는 것이 ‘세상의 판단근거의 참값’을 대표하고 있다는 확인이 선행되어야 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상식에 대한 맹목적 의존과 믿음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하는 책을 한 번 보는게 도움이 된다. 이 책을 보면 우리가 상식에 따른 세상을 바라는 것이 분명히 필요한 것이지만 동시에 위험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이고 방대한 분석을 통해 알려준다. 그 책은 물리학을 전공했던 사회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던컨 J 와츠가 쓴 『상식의 배반: Everything is Obvious - Once You Know the Answer)』이다.
먼저 상식(common sense 常識)을 사회적 지능의 정수라고 부르면서 동시에 지능과는 다른 것이라 정의한다. 인류학자 클리프드 거츠의 말을 따라 ‘전래된 관습과 익숙해진 믿음, 습관적 판단, 자연스레 터득한 감정이 얽힌 해묵은 덩어리’라고 정의하면서 동시에 특정 직업인의 경우 그들의 사회적 교육과 경험을 통해 터득한 업계 관련 지식을 지칭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의사들에게 병원에서 통용하는 상식과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통용하는 상식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 이 상식이 갖는 특징은 먼저 매우 실용적이라는 점이다. 상식은 근본적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사태를 파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있는 그대로 세상에 잘 대처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두 번째 특징은 어떤 보편적 지식체계를 만드려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구체적 상황을 그 자체의 방식으로 처리하려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회사에서 상사에게 대하는 태도와 집에서 동생과 함께 할 때는 서로 다르다. 그런데 회사에서 상사와 같이 식당에 가서 동생과 둘이 밥먹을 때 같이 행동하면 상식적이지 않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식의 기준은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 같은 나라안에서도 경제적 차이나 종교관, 관습에 따라 다르므로 자기가 상식이라고 여기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다른 기준을 상대가 갖고 있을 수 있다.
결국 이런 기준에 따라 만들어진 상식의 틀은 우리가 사회적 삶을 사는데 중요한 토대가 된다. 어떤 자리에 갔을 때, 또 처음 접하는 일이 일어났을 때, 상식에 따라 판단하면 기본적인 대응은 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기본적으로 우리를 안전하게 만들어준다. 뛰어난 성취를 하게 해주는 건 아니지만 기본은 할 수 있고, 또 무리에서 떨어져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은 확연히 줄어든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상식이 중요하다. 일상생활에서 한 두 가지 영역을 상식에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면 개성이라 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영역을 상식에 따르지 않는 행동을 반복할 때 비정상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에게도 상식적인 행동을 하기를 기대하고, 암묵적인 압력을 준다.
그렇지만 상식에만 의존할 때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예외적인 상황이거나, 내가 갖고 있는 상식의 데이터베이스가 통하지 않는 영역이다. 예를 들어 외국에서 벌어지는 국가간 분쟁의 경우 각 나라의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 섣불리 내 상식만 갖고 판단하고 추론을 하면 오판을 하기 쉽다. 금융개혁이나 의료정책과 같이 전문적 영역도 비슷한 위험이 있다. 일상을 넘어선 영역에 상식을 무조건 들이대면 엄청난 실패를 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실패가 되는 판단을 하는 큰 이유는 어떤 일에 대해 실제 일어난 사건자체보다 의도와 동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집단 안에서 구성원들끼리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어떤 한 쪽의 판단으로 편향되기 쉽다. 더 나아가 대부분 사건이 벌어진 다음에 설명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부분 일어난 사건만 보이니까 일어날 수 있었으나 일어나지 않은 사건은 배제한 채 일어난 일만 강조하니까 실제로 일어난 일 중 극히 일부만 가지고 설명하다보니 전체를 보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설명이 상식의 틀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
흔히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한다고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하려하고 또 집단적 감정이 영향을 주면서 실제로 미래에 대해서 얻게 되는 것은 적다. 상식적 설명은 어떤 일이 일어난 이유를 설명하는 듯 하나 사실은 일어난 일을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상식적 판단은 지금의 안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정교한 예측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정교한 예측을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더 유용한 정보를 분석해서 미래를 더 잘 예측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서 컴퓨터와 통계를 이용해도 결국 아주 기본적인 통계모형보다 아주 조금 나을 뿐이다. 미식축구, 야구의 도박사이트의 통계 프로그램은 엄청난 투자를 해서 만들어냈고 수많은 변수들을 적용하도록 설계되어있지만 사실상 무작위 사건에 가깝기 때문에 과거의 매우 단순한 통계 모델에 비해 겨우 2-3% 정확도를 높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어느 이상의 변수가 적용되어야하는 복잡한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는 예측을 하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현재 갖고 있는 상식을 갖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평가하고 대처한다. 그러나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더 거대한 상황적 변수가 나타나면 그 상식적 지식은 무용지물이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는 소니가 기술력과 그동안의 시장지배력을 상식적 차원에서 믿고 베타맥스를 밀다가 결국 VHS에 밀린 사례를 든다. 소니가 누구나 할 법한 상식적 최선을 다했으나 실패할 수 밖에 없었고, 반면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애플이 아이팟을 만들고 아이폰을 출시해서 생태계를 만들어버린 것은 당시의 상식으로는 미친 짓이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상식은 안전해보이나 생태계의 거대한 변화에는 무력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하철에서 무가지가 등장해서 스포츠 신문을 다 없애버렸다. 상식적으로는 무가지의 경쟁에서 누가 더 많은 정보를, 흥미로운 만화를 잘 편집해서 넣고, 가판에서 나눠주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것인가의 경쟁을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 경쟁은 어이없게도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아무도 이제는 스마트폰을 보느라 무가지를 집어들지 않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지하철 광고도 대부분 없어져버렸다. 스마트폰과 무가지를 연계해서 생각하는 상식을 가진 사람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왜 내가 그 생각을 하지 못했지’라고 통탄하기보다 미리 예측을 하는 것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기라고 조언한다.
또 말콤 글래드웰이 그의 책에서 주장한 것 같이 소수의 초강력 전파자가 있거나, 허브가 있어서 그곳을 통하기만 하면 바로 전세계로 엄청난 파급력을 갖는 전파가 일어나는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더라며 강력한 전파자에 대한 상식적 기대를 버리라고 한다.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소수가 남들보다 큰 파급력을 갖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바로 임계치 이상의 거대한 파도를 매번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작은 파도는 만들 수 있지만 대중들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바로 무력해진다. 결국 소수의 초강력 전파자가 허브가 되어 한 번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이밍과 환경의 조합이 만든 우연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개인이라고 해도 그가 가진 예측은 불확실하고 전파력도 약하다. 차라리 거대한 쯔나미와 같은 파도를 만들기보다 작은 파도들을 많이 만들어내려는 꾸준한 노력이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통계적 기법으로 SNS의 파급력을 분석해서 제안한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그럴 것이다라고 여긴 것들은 사실은 별다른 효과가 없고,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전략을 세워야할까? 상식의 배반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예언에서 측정, 예측에서 대응’으로의 전환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 예로 스페인의 패스트패션 업체 자라(Zara)를 들었다. 그들은 다음 시즌의 소비자의 선호도에 대해 예측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모른다’라고 시작한다. 측정과 대응을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사람들이 뭘 입는지 관찰하고 좋은 반응을 얻을 아이디어를 수집한후 거기에 기반해서 소량의 옷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반응을 확인한다. 그래서 그중 반응이 적은 대부분을 버리고 반응이 좋은 것들을 모아 팔리는 것을 제작해서 전 세계로 보낸다. 이 과정을 2주안에 끝낸다. 예측하기 보다 측정하고 반응을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나은 것이다. 먼 미래보다는 현재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구글의 검색어 추이를 보는 것으로 독감의 발병 추세를 보는 것도 같은 방법이다.
이와 같이 상식은 우리에게 중요한 안전판이 된다. 실제로 우리가 바라듯이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의 판단 전체를 상식에 따르기만 하는 것도 역시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동시에 알아야한다. 세상은 상식이 말해주는 것 같이 단순하고 명쾌하지 않다. 또 과거를 통해 얻은 상식적 지식과 판단적 근거는 경우에 따라서는 상황의 큰 변화에 따라 무용지물이 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하려는 노력은 허망하게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 상식은 애매한 친구인 것 같다. 든든한 의지할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 의지하고 믿기만 하다가는 뒤통수를 칠 수 있으니 말이다.
뭔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을 때에는 기존의 상식의 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하고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거기에 감정을 더하지 말고, 대중이 뭘하고 있는지에 휩쓸리지 말고 팩트에만 근거해서 대응을 하고 피드백을 면밀히 관찰해나가면서 내 상식의 틀을 교정해나가는 것. 그것이 『상식의 배반』에 의해 낭패를 볼 일을 줄이고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생존확률을 높일 방법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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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배반 던컨 J.와츠 저/정지인 역/황상민 해제 | 생각연구소
왜 상식을 뒤집어보고, 의심해봐야 할까? 그리고 결국은 그동안 알고 있던 그 모든 상식과 결별을 선언해야 할까? 또한 사회 문제를 더 이상 ‘상식적 수준’에서 검토하고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화답한다.‘합리적인 의심과 비판, 그리고 늘 가던 길과의 결별’은 세상이 더 공정해지고, 더 올바른 선택으로 향하기 위한 즐거운 배반의 길이라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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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멋진아이
2015.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