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니라고 생각될지 몰라도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아주 유명하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우리말로 옮기니까 맛이 좀 덜하지만 나쓰메 소세키가 썼던 실제 첫 문장을 보면 아, 그렇구나, 싶을 것이다. “吾輩は猫である 。 名前は まだ無い 。 どこで生れたかとんと見がつかぬ。(와가하이와 / 네코데 / 아 루. / 나마에와 / 마다 / 나이. / 도코데 / 우마레타카 / 톤도겐토우가 / 츠가누.)” 운율이 마치 시처럼 잘 맞고 소리 내어 읽었을 때 입안에 맴도는 울림이 마치 고양이가 담 위를 걸어가듯 조심스런 느낌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소세키가 이 짧은 세 문장에 주인공 고양이의 핵심적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소설은 내용도 재밌어야 하지만 등장인물이 마치 책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생생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소설가들이 가장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이 바로 인물 설정이다. 소설 속 인물이 어떤 부류인지 작가들은 독자에게 이해시키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어떤 작가들은 장황하게 인물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데, 이런 방법은 오히려 지루한 느낌만 줄 때가 많다. 할 수 있다면 되도록 간결하게 핵심만 뽑아내서 독자를 끌어들이면 좋은데 이거야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 책에서 소세키는 첫 문장부터 사람이 아닌 고양이를 등장시켰다. 그리고 바로 이름은 아직 없다라고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다.
그저 ‘이름이 없는 고양이’가 주인공이구나 하고 끝낼 수도 있지만, 소세키는 ‘아직’이라는 말을 넣어서 고양이가 어떤 생각을 가진 캐릭터인지 단번에 드러낸다. 이름이 ‘없다’와 ‘아직 없다’는 완전히 다르다. 아직 없다는 것은 언젠가 이름이 생기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름은 다른 이가 그를 부르는 수단이다. 이름은 그가 누구인지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입장에서는 스스로 어떤 식으로 불리고 싶은지, 즉 정체성을 갖고 싶어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고양이는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라 자기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드러내고 싶은 주체성이 있는 고양이다.
그 다음은 자신이 태어난 장소에 대한 이야기다. 고양이는 자기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모른다. 여기서도 중요한 부분이 있다. 그냥 모르는 게 아니라 ‘도무지’ 모르는 것이다. 도무지 모르겠다는 말은 태어난 장소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소설이 시작되기 전에 자기가 태어난 장소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을 거다. 그런데 몇몇 시도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모르겠다는 게 지금의 상태다. 태어난 곳을 탐구해봤다는 것은 자신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근본에 대한 궁금증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름이 아직 없고 태어난 곳 역시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이 짧고 쉬운 첫 문장만으로 소세키는 이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갈 고양이가 어떤 캐릭터인지 분명하게 설명했다.
자, 이제 이 정체성 뚜렷하고 교양 넘치는 고양이가 이끌어가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소설은총 3부, 11장으로 구성되어 꽤 길게 느껴지지만 실상 내용은 거의 개그 수준이다. 국수를 먹듯이 후루룩 읽다 보면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이 소설은 소세키의 등단작이자 동시에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시작은 서른일곱 살 때 소세키가 사는 집으로 낯선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던 일이었다.
이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멍청하고 게을러빠진 선생’은 소세키 본인을 모델로 삼고 있다. 소설 속에서 고양이의 주인이기도 한 구샤미는 중학교 선생이다. 직업도 선생이지만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구샤미를 선생님이라 부르고 본인도 나름 자기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역시 ‘교양인’이라고 하면 꽤나 괜찮은 호칭이 아니던가. 어쨌든 구샤미는 주변에서 보기에 좋은 사람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이 모습을 은근히 훔쳐보는 고양이는 주인의 비밀을 낱낱이 알고 있다. 식구들도 구샤미가 대단한 면학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양이만은 진실을 안다. 그는 서재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대체로 그는 낮잠을 자고 있다. 가끔은 읽다 만 책에 침을 흘린다. 그는 위장이 약해서 피부가 담황색을 띠고 탄력도 없는 등 활기 없는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 주제에 밥은 또 엄청 먹는다. 배터지게 먹고 나서는 다카디아스타제라는 소화제를 먹는다. 그다음에 책장을 펼친다. 두세 페이지 읽으면 졸음이 몰려온다. 책에 침을 흘린다. 이것이 그가 매일 되풀이하는 일과다.”(19쪽)
고양이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퍼뜨리고 다니지 못하는 게 얼마나 애석한 일이란 말인가! 이 바보 같은 선생이란 작자의 면면은 이를 훔쳐보는 고양이를 제외하면 독자들만이 알고 있는 우스운 비밀이 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묘사한 선생의 모습이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와 완전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소세키 역시 평생 위장병으로 고생을 했고 그 때문에 안색이 늘 좋지 않았던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인간이 아닌 고양이를 관찰자 위치에 세워놓고 소위 교양인이라며 거드름을 피우는 선생과 주변인들을 속속들이 비판한다. 읽기에 따라서는 이 책을 그저 ‘고양이가 바라본 인간들의 우스운 일면’ 정도로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치열하게 메이지시대를 살았던 영원한 교양인 나쓰메 소세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변혁의 시대를 살았던 작가의 깊은 고민과 비판 정신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읽어본다면, 이름 없는 고양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오직 우스개인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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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근
서울 정릉. 작가 박경리가 살던 집 근처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을 따라 강원도 태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다시 정릉으로 돌아와 학교를 다녔다. 어릴 때부터 헌책방 주인이 되는 것을 꿈꿨지만 대학에선 컴퓨터를 전공했고 오랫동안 IT회사에서 일했다. 서른 즈음에 회사를 그만두고 출판사와 헌책방에서 직원으로 일하다 2007년에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이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열어 지금까지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활자중독이다 싶을 정도로 책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책 읽기 기준은 까다롭지 않아서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첫 문장과 깔끔한 마지막 문장을 발견하면 그것도 절반의 성공이라 믿는다. 헌책방 일을 하는 틈틈이 여러 곳에 글을 쓰고 강연도 다닌다. 지은 책으로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심야책방》,《침대 밑의 책》,《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책이 좀 많습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