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멜로디 라인의 팝 앨범, 원더걸스 < Reboot >
조금 늦더라도 기본부터 천천히 밟아가는 아티스트 원더걸스, 그 시작은 성공적인 < Reboot >다.
글ㆍ사진 이즘
201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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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공백기와 멤버 재편성에도 확고한 청사진 덕에 혼란을 줄였다. 방황없이 성실히 복고를 재현해온 원더걸스에게 '걸 밴드'는 새로운 도전이면서도 레트로의 팀 역사를 바탕으로 하기에 안정적이다. 앨범의 주축을 이루고 쇼케이스에서 언급하기도 했던 장르 프리스타일(Freestyle)은 1980년대 중후반을 장식했던 일렉트로닉 팝으로, 익스포제(Expose)나 커버 걸즈(The Cover Girls) 등의 걸 밴드들을 모델로 삼으며 아티스트적 면모와 퍼포먼스 모두를 만족하게 하겠다는 의도에 제격이다.

 

정직한 타이틀 「I feel you」가 이 레트로 철학에 힘을 실어준다. 1980년대식 신디사이저와 시퀀서가 가미된 디스코 펑크(Funk) 스타일에 얊은 보컬과 코러스를 더한 멜로디는 의심의 여지 없는 원더걸스의 것이다. 「Nobody」, 「2 different tears」 시절 5인조와 비교해도 세부적 장르 차이 외에 노선 변화는 없지만 메인 보컬의 이탈과 밴드 구성을 고려한 멜로디 약화 등 단점이 두드러진다.

 

진정한 새 출발은 물에 물 탄듯한 메인 싱글 대신 앨범 전체로 발현한다. 마구잡이식 복고와 질적으로 다른 JYP의 1980년대 오마주에 멤버들이 직접 작사 작곡 전면에 나서며 세련된 멜로디라인의 팝 앨범이 만들어졌다. 하임(Haim)을 연상케하는 뉴웨이브 사운드의 「Baby don't play」나 몽환적인 코러스와 신디사이저가 1980년대 디스코를 환기하는 「Loved」, 프리스타일에 영향받은 신스 팝 솔로 아티스트들의 노래 같은 「One black night」 등은 시대 고증과 더불어 현세대에게도 통할 만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새로운 원더걸스는 과거의 잔향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성숙한 아티스트로서의 면모 또한 굳히고자 한다. 처연한 멜로디의 신스팝 「Rewind」나 신디사이저 기반의 몽환을 심는 「없어 (Gone)」은 걸 그룹이라는 간판 때문에 오히려 저평가 받을 곡이다. 특히 펑키한 기타 리듬 위에 브라스와 경쾌한 보컬이 어우러지는 유빈의 「John doe」는 친밀한 멜로디와 치밀한 곡 구성 등 올해의 싱글로 꼽을 만하다. 비스티 보이즈를 오마주한 「Back」이나 1980년대 댄스 플로어를 달궜을 「Oppa」도 랩 욕심만 없었더라면 훌륭했다.

 

다만 야심 차게 준비한 밴드 포맷이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단점이 됐다. 멋진 솔로 퍼포먼스 티저 영상과 달리 이들은 실제 녹음에 참여할 수 없고 연습한 곡만을 보여줄 수 있는 실력만 갖추고 있다. 밴드에게 갖는 멋진 연주에 대한 기대는 어렵고, 낯선 시도의 무게와 직접 창작에 대한 욕구의 과감함이 반대 방향으로 맞서다 보니 치고 나오는 부분이 부족해진다. 몽환적인 「Rewind」에 친밀한 선율이 있었다면, 「사랑이 떠나려 할 때」에 보컬이 덜 비었다면 등의 상상을 해볼 뿐이다.

 

밴드 변신은 새로운 캐릭터에 가깝고, 1980년대의 레트로는 오리지널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의미가 깊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이 걷는 길은 정도(正道)다. 익숙한 바탕에 새로운 형식을 더하면서 과거와 현재 모두를 아우르려 하고, 단순한 재현보다 창작의 새 출발에 대한 고민이 깊게 배어 나온다. 조금 늦더라도 기본부터 천천히 밟아가는 아티스트 원더걸스, 그 시작은 성공적인 < Reboot >다.

 

2015/08 김도헌(zener1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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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