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뭐 이렇게 생겼어? 조 대표, 돈을 너무 안 쓴 거 아냐?” 조성웅 유유출판사 대표가 첫 책을 내고 지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작은 판형에 재생용지, 단순한 디자인으로 책을 만들자, 주변에서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였다. 하지만 4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유유 책만 따로 선별해 책장에 꽂아놓는 독서가들이 여럿 있다. ‘중국, 고전, 공부’를 키워드로 책 고집을 이어가고 있는 조성웅 유유 대표를 만났다.
작지만 단단한 출판사
‘1인 출판의 롤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12년 1월에 출간한 『단단한 공부』를 시작으로 벌써 32권의 책을 냈습니다. 총수만으로도 대단합니다.
내고 싶은 책이 아직 참 많아요. (웃음) 롤모델은 부담스러운 호칭이고요. 교정교열을 봐주시는 편집자가 한 분 계시니까, 정확히 말하면 1인 출판은 아니에요. 책이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단지 사무실이라는 한 공간에서 함께 일을 하지 않을 뿐이지, 1인 출판이란 없죠. 제작, 인쇄, 디자인까지 합하면 한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니까요.
최근에는 타이완의 인문학자 양자오의 『노자를 읽다』를 펴내셨어요. 동명 저자의 『종의 기원을 읽다』, 『논어를 읽다』를 잇는 책인데, 저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보입니다. 곧 『장자를 읽다』도 나올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양자오는 고전을 읽으려는 사람에게 준비운동을 시켜 주는 사람이에요. 요약본이 아닌 고전 읽기는 수영이나 마라톤처럼 그냥 확 뛰어들어서는 안 되는 일이죠. 양자오의 고전 강의 시리즈는 고전 읽기라는 독서를 위한 뇌 풀기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논어를 읽다』도 그렇지만 『노자를 읽다』도 얇아요. 양자오는 노자처럼 굳이 말을 늘려 설명하지 않아요. 저는 이 책을 편집하면서, 내가 후세의 도가가 보여 준 모습으로 노자를 본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됐어요. 얇아도 정말 알찬 책이에요. 독자 분들께 일단 읽어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인문교양 공부와 동아시아 공통 지식 확산을 돕는, 작지만 단단한’이 유유 출판사의 모토인데요. ‘유유’는 어떤 의미인가요?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우선 멋있는 버전으로 말씀 드리면. 당나라 시인 최호의 「등황학루」라는 시에 ‘유유’라는 표현이 나와요. 구름이 하늘하늘 흩날리는 모양을 표현한 것인데, 한가롭게 낭창낭창 늘어지는 느낌이 있죠. 발음도 괜찮고, 한글 사전을 찾아보니까 좋은 뜻이 많더라고요. 이 정도 단어면 괜찮겠다 싶었어요. 나중에 로고 디자인을 했을 때도 예쁠 것 같았고요. 그런데 처음에 출판사 이름을 말했을 때는 “우유?”라면서 헷갈려 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웃음) 아, 쉬운 버전으로는 ‘유유자적’의 ‘유유’예요.
유유에서 펴낸 책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책이 있다면요.
글쎄요. 다 제 자식 같은 책들이라. 아, 『중국 묻고 답하다』라는 책이 있는데요. 제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좋아하는 게 중국 콘텐츠거든요. 시장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건데, ‘그래도 이 정도는 분명히 읽어줄 거야’ 생각하고 만든 책이에요. 만드는 족족 잘되진 않았지만. (웃음)
가장 판매가 높았던 책은요.
『공부책』이 가장 많이 나갔어요. 이렇게 잘 나갈 줄은 몰랐어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일단 책값이 저렴해요. 디자인도 사람들에게 약간의 센세이션을 준 것 같고요. 저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책이 많이 팔리는 이유는 내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공부책』은 선물하기도 좋아요. 부모님들이 아이들한테 선물로 주기에도 괜찮고. 실제로 선물하셨다는 분들도 있었고요.
제가 보기엔 책 표지에 실린 카피 때문이 아닐까도 싶어요. ‘하버드 학생들도 몰랐던 천재 교수의 단순한 공부 원리, 초등생도 미리미리, 중고생은 지금부터, 대학생은 늦게나마, 일반인은 더 늦기 전에’라는 카피를 읽고, 이 책을 안 사기 어렵더라고요.
그런가요? 읽어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내용도 좋습니다. (웃음)
‘유유’ 책은 디자인이 굉장히 간결합니다. 독자들로부터는 호불호가 좀 있지만, 출판 전문가들에게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요.
두 권만 빼고 모두 이기준 디자이너가 작업했어요. 저와는 좀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인데, 군 시절에 같은 부대에 있었어요. 옆 내무반에 있었는데 처음에는 뭘 하는 양반인지 몰랐는데, 사회에 나와서 우연히 만났는데 책 디자인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언젠가 만날 일이 있겠다 싶어 연락처를 받았는데, 유유로 독립하면서 제가 연락했어요. 유유 로고부터 같이 했어요. 처음부터 단순한 디자인으로 가자고 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첫 책을 냈을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스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이거 한글 편집한 거 아니냐면서, 돈을 왜 이렇게 아꼈냐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웃음)
최근 나온 책들을 보면, 본문 글자 크기가 커졌습니다. 재생용지로 인쇄하는 건 여전하고요.
일반 독자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는데,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글자 크기는 처음부터 컸던 건 아닌데, 가끔 독자들한테 전화를 받거든요. 책 내용은 너무 좋은데 글자가 작아서 읽기 힘들다고요. 저희 출판사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이 나이가 좀 있으신 경우가 많아서, 그분들을 배려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맞춰 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올해 4월에 나온 『동사의 맛』이 반응이 대단히 좋았어요. 20년 넘게 단행본의 문장을 다듬어 온 전문 교정자 김정선 선생님의 책인데요. 책이 좋다는 리뷰가 정말 많더라고요.
지금까지 3쇄를 찍었는데, 출판계에 있는 분들이 거의 다 사신 것 같아요. 감사한 일이죠.
책 제목은 대표님이 직접 지으셨나요? 표지에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이라는 카피가 쓰여 있는데, 참 좋더라고요. 띠지가 필요 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백석의 맛』이라는 책을 무척 재밌게 본 기억이 있는데, 『동사의 맛』 원고를 읽고 그 책 생각이 문득 났어요. 사실 별 연관은 없는데, 왜 그 책이 연상됐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단순하게 동사 책이니까 동사에 ‘맛’을 붙여보자고 생각했는데, ‘맛’이라는 단어가 ‘글맛’이라고도 자주 쓰고 하니, 동사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닐까, 싶었어요. ‘움직씨’라는 표현은 동사를 표현할 다른 말을 찾다 보니 그 단어가 나오더라고요. 머리를 쥐어짜다 보면 나오는 것 같아요. (웃음)
중국 현대문학을 펴내고 싶다
개인 페이스북에 ‘레고 사진가’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올리시던데, 주로 서점에 영업을 하러 갔을 때 찍으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재미 삼아 올렸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더라고요. 영업할 때, 찍는 경우가 많은데요. 서점에 갔다가 재미있는 풍경이 있으면 레고를 꺼내고 살짝 사진을 찍습니다. 얼마 전에 『노자를 읽다』가 나왔으니, 이제 노자 영업하면서 찍어야죠.
처음부터 편집자로 일하신 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는데, 영화 연출을 하고 싶었어요. 결국 영화판에는 못 갔고, 절충한 게 방송이었어요. 3년 정도 다큐멘터리 조연출을 했는데, 재밌지만 힘들더라고요. 항상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야 하니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공부를 하는 건 좋았는데, 낮에 촬영하고 밤에 편집을 해야 하니까 정말 사람이 찌들더라고요. 함께 일하는 선배 PD들의 모습이 내 미래라고 생각하니까, 앞이 안 보였어요. 제가 아침형 인간이라 밤에는 쥐약이거든요. 입봉을 하더라도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할 텐데, 까마득했어요.
출판사 생각의나무, 김영사, 돌베개 등에서 편집자로 일하셨는데요. 베스트셀러가 됐거나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던 책이 있다면.
최고 베스트셀러는 아마 김훈 선생님의 『현의 노래』일 거예요. 그 외에 기억에 많이 남는 책은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라는 책인데, 당시 제 수준에서 편집하기에는 어려웠지만, 책 덕분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좋은 기억이 많아요. 김영사에서 만들었던 책으로는 이중텐의 저서 『삼국지 강의』가 있는데요. 이중텐은 CCTV의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삼국지」를 대중들에게 강의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사학자에요. 도서전에 갔다가 인연이 닿아서 만들게 된 책인데, 아마 중국 인문서 중에는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일 거예요.
편집자 10년차에 독립을 하신 건데, 조금 이른 편이 아닌가요?
조금이라도 머리가 좀 돌아갈 때 독립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어요. 책 만드는 게 좋았으니까, 이 일을 지속 가능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앞으로 수명이 100살이 넘는다는데, 회사 안에 있으면 매인 목숨이잖아요. 저처럼 편집자로서 경력이 조금 차면, 회사에 남아서 관리자로 올라가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요. 책 만드는 일이 좋다면 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출판사를 열었을 때, 어느 정도 예상한 그림이 있었을 텐데요. 예상과 가장 달랐던 건, 무엇이었나요.
마케팅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이라는 막연한 그림만 있었거든요. 그런데 출판사 브랜드 파워가 상당히 크더라고요. 돌베개에서 일할 때 동양고전강의를 기획해서 만들었는데, 그 때만해도 3쇄는 기본이었거든요. 독립을 하면서 ‘이 정도로 준비하면 이만큼은 팔리겠지’라는 데이터가 있었는데, 막상 나와보니까 다르더라고요. 돌베개 라는 브랜드가 되게 큰 거였고, 마케터가 붙어서 책을 홍보하는 것과 저처럼 마케팅을 모르는 사람이 천둥벌거숭이처럼 돌아다니는 거랑은 정말 차이가 크더라고요.
그래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독립을 하셨을 텐데요.
잘할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있었다기보다는 내가 책 만드는 일을 계속하려면 시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돈을 들여 마케팅은 못해도 어느 정도 책을 팔 수 있겠다는 셈은 있었던 건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지금도 그렇지만요. (웃음)
1인출판에 도전하려는 분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하신다면?
어느 정도 출판사에서 일을 해본 다음에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출판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교육과정만 듣고 출판을 시작하는 건, 무모하다고 생각해요. 출판을 만만하게 보는 이유 중 하나가 초기자본이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는 건데요. 적다고 말하면 적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적지 않아요. 책 한 권을 내려면 최소 1천 만원에서 1천 5백만 원정도 들어가는데, 책을 낼 때마다 그만큼 돈이 든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시작하는 편이 좋아요. 푼돈으로 출판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되게 위험한 일이에요.
“책을 안 읽는 사람이 아니라, 꾸준히 책을 보는 사람을 대상으로 책을 낼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책을 안 읽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건, 편집 기획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출판사들이 독자 배가 운동에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책을 만들어서 계속 판매를 이어가야 하는 의무가 있잖아요. 상업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죠. 책을 안 읽는 사람은 더 안 읽고, 읽는 분들은 꾸준히 본다고 생각해요. 모든 출판사들이 읽는 분들을 대상으로 책을 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고요.
앞으로 유유에서 꼭 내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중국 현대문학을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요원하지만 언젠가는 할 거예요. 중국문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작가를 너무 좋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사회를 가장 잘 표현하고 몸에 와 닿게 하는 게 문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를 맺은 지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 중국어를 배우는 수준에서 많이 못 벗어난 것 같아요. 중국 관련된 책 중에서 우리나라 독자들한테 팔리는 건, 경제 경영이나 자기계발, 인문 쪽에서는 고전 아니면 역사, 그 정도예요. 그것도 유의미한 부수가 많이 팔리는 건 아니고요. 중국이랑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정치든 경제든 대처할 수 있을 텐데, 되게 절박한 상황인데도 사람들이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조성웅 대표가 추천하는 책 BEST 3
중국, 묻고 답하다
제프리 와서스트롬 저/박민호 역 | 유유
처음에 '중국 백문백답'이라는 제목을 붙일까 했던 책이다. 중국은 어느새 우리 일상 속에 성큼 깊숙이 들어와 있는데, 우리는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 책은 그 무지를 깨고자 하는 사람에게 첫단추가 될 만하다.
서울 사는 나무
장세이 저 | 목수책방
나의 일상에서 나무가 얼마나 귀한지 요즘 부쩍 절감한다. 그 귀한 나무들과 내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 가며 좋을지를 맞춤하게 알려 주었다. 사실 나는 나무에 대해서 아는 게 전무하다시피 한 사람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내 주위에 가까이 있는 나무들부터 제대로 주의를 기울여서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저 | 메멘토
이제까지 글쓰기 책을 여러 권 읽어 봤지만 이런 책은 처음이었다. 업무상 글을 늘 다루긴 해도, 나 스스로 글을 쓰고 싶다거나 써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바뀌었다. 나도 글을 써 볼까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까. 나한테 이건 대단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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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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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koko111
2015.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