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관계는 관계에 관한 것이자, 한 남자 한 여자에 대한 것이다. 한 남자 한 여자의 끌림의 시간은 순식간이지만 관계의 시간은 오래간다. 설령 길게 안 가더라도, 그 남녀관계에 담겼던 온갖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에 흔적을 남긴다. 한 남자 한 여자 간의 관계의 문화를 어떻게 자라게 할 것인가? 남녀관계라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사랑을 이어갈 것인가? 우리 인생의 중요한 과제다.
‘결혼’보다 ‘남녀’가 먼저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보장받는 것은 남녀관계의 지속성이다. 그런데 바로 이게 문제다. 결혼하면 남녀관계가 부부관계로 바뀐다. 부부관계가 되면 남녀관계를 사회적으로 보장받는다. 그런데 보장을 받으면서 긴장감이 사라져버린다. ‘이제 내 꺼, 이제 니 꺼’라는 확신이 들면 아슬아슬한 맛이 사라지는 것이다. 적어도 그 장점과 단점, 그리고 위험을 알고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그리고 제도가 보장해주는 부부 이전에 맺었던 남녀의 속성을 잊지 말자. 우리는 결혼 이전에 남녀관계를 맺은 것이다. 결혼이 남녀관계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아이’보다 ‘부부’가 먼저다
남녀관계를 부부관계로 변하게 하는 것은 결혼이고, 부부관계가 더 이상 남녀관계가 아니게 만드는 것은 ‘아이의 존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녀가 부부로 변한 것도 모자라 이제 부부가 부모가 되면서 역할 구조가 완전히 바뀐다. 남녀가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고, 가족이 되는 것이다. “가족끼리 어떻게?”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생길 정도로 가족이라는 틀은 남녀관계의 짜릿짜릿함을 사라지게 하고 부부관계에 대한 아련한 기대감조차 파괴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태어난 후 종종 엄마가 겪는 우울증이나 아빠가 겪는 소외감이 이런 심리를 대변한다.
부부도, 자식도 서로 독립된 개체다.
‘아이’ 먼저 이전에 ‘부부’가 먼저다.
부부 사이, 남녀 사이의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는 게 먼저다.
‘일’보다 ‘사랑’이 먼저다?
일과 사랑 사이에는 어떤 우선순위가 있을까? 일보다 사랑이 먼저인가? 아니면 사랑이 일보다 먼저인가? 이 의제는 고민해볼 만하다. 커리어를 추구하는 이 시대 남녀들의 고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일과 가정을 어떻게 양립시켰나?” “커리어우먼으로서 커리어와 사랑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았나?”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질문에 정답이란 없다. 항상 잘 듣는 묘수도 없다. 내가 통상적으로 하는 답은 “닥치면 그냥 다 하게 돼 있어요” 또는 “절실하면 뭔가 방법이 찾아져요” 같은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원칙을 세워놓는 것은 필요하다.
커리어와 사랑은 성격이 다르다. 커리어란 근본적으로 ‘경쟁’이 전제되고, 남녀관계란 근본적으로 ‘협력’이 전제된다. 커리어란 아무리 협력을 하더라도 ‘혼자’서 하는 것이고, 사랑하기란 둘이 ‘같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커리어와 사랑, 두 활동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몰입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24시간 작업이라는 것’이다. 관건은 이 차이점과 공통점이 엮어내는 가능성과 딜레마 가운데에서 어떻게 현명한 방법을 찾을 것인가다.
커리어에 대한 요즘 젊은이들의 불안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사랑은 다시 올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커리어는 지금 당장에 나의 모든 것을 투입하지 않으면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커리어는 필수, 사랑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아는가? 그 커리어란 지금 당장은 너무도 중요해 보이지만, 인생을 길게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또 올지 몰라도, 이 사람과의 사랑은 다시 오지 않을지 모른다. 서로의 커리어를 격려하는 관계, 그것이 진정한 남녀관계다. 부디 ‘타이밍의 묘’를 살려보라!
언제나 남녀관계가 먼저다!
“남녀관계가 튼튼해져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진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집안 문제의 대부분이 부부가 현실 속의 사랑을 하지 않을 때 심각해진다. 아이 교육에 그리 매달리는 것도, 아이의 미래에 집착하는 것도 남녀 간의 관계가 허전하기 때문에 더 심해진다.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현실 사랑법’을 배우지 못한 남녀가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그대로 주저앉아 살면서 서로를 괴롭히는 상황을 더 걱정해야 할 일이다. 남녀가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불화가 오히려 아이들의 소외감, 방황, 가정 폭력 등 더 큰 가정 문제들을 낳기 때문이다.
오해는 하지 말자. 남녀관계가 튼튼하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인생 곳곳의 갈림길에서 흔들리듯이 남녀관계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돌부리에 넘어지고 장애물에 채이고 바람에 흔들린다. 살랑대던 미풍이 언제 찻잔 속 태풍이 될지, 언제 평지풍파가 되고 언제 폭풍으로 변할지 모르는 것이 남녀관계다. 하지만 언제나 남녀관계가 먼저다. 사랑이 먼저다. 사랑하기가 먼저다. 현실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언제나 남녀관계가 먼저다.
경쟁과 협력 사이에서, 로망과 현실 사이에서
어떠한 남녀관계를 이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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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건축가)
남자들이 강한 분야에서 우뚝 선 도시건축가. 냉철하게 일하는 프로, 진취적인 전방위 활동가, 뜨거운 공부 예찬가로 통한다. ‘공부’와 ‘일’에 대한 뜨거운 철학과 명쾌한 단련법을 전하며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던 『왜 공부하는가』와 『한 번은 독해져라』에 이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사랑’에 대한 화두를 던진 책, 『사랑에 독해져라』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