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 이후 1년 만에 만난 작가의 곁에는 오랜 친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각본 살인 사건』으로 인연을 맺은 후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을 거치며 지음의 정을 나누게 된 ‘백탑파’였다. 8년 만에 다시 만난 이들은 1780년의 ‘조운선 침몰 사건’을 수사해 나갔다. 각 지방에서 세금으로 거둔 쌀을 한양으로 운반하기 위해 항해하던 배 스무 척이 비슷한 시기에 침몰했던 것. 정조는 담헌 홍대용을 어사로 임명하고 의금부 도사 이명방, 탐정 김진과 함께 현장으로 급파했다.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개운치 않은 부분들이 있었지만 실마리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한편에서는 정감록 무리의 소행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지려던 찰나, 세 사람은 목숨을 건 함정을 파기로 결심했다.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조가 크게 노하며 진상 조사를 명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수확은 거두지 못했다. 풍랑 때문이라거나 드물게 있어 왔던 일일 뿐이라고만 적혀있다. 그러나 또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당시 세곡을 횡령하거나 세곡의 양을 불리는 일이 적지 않았음을. 의도적으로 배를 빠뜨린 자를 징계하는 법이 있었다는 것은, 그와 같은 사건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기록들이 작가의 눈에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더 깊이 파고들어 보니 세곡을 빼돌린 후에 배를 침몰시킨 일도 있었음이 확인됐다. 관리들이 밀수를 위해 배를 불법 증축하기도 했고, 그 결과 과적으로 인해 배가 침몰하기도 했다. 이 모든 사료들을 토대로 작가는 ‘어쩌면 진실이었을지도 모를’ 사건의 실체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목격자들 : 조운선 침몰 사건』(이하 『목격자들』)은 우리로 하여금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1780년 영암과 밀양의 바다에서처럼, 2014년 진도의 바다에서도 탐욕에 물든 배가 숱한 생명들과 함께 가라앉았다. 생환과 진실의 소식이 요원할수록, 감당할 수 없는 사실들은 날이 갈수록 쌓여갔다. 그 무게에 짓눌린 것은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집필을 멈추고 질문을 시작했다. 생명의 존귀한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인간이 어떤 탐욕을 가지고 있기에 이 절대적인 가치가 훼손되는가. 그것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인간다움이 위협받는 존엄의 문제였다. 그리고 남은 자들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모색을 요하는 것이었다. 고통에 둘러싸인 가운데에서도 삶의 걸음을 멈추지 않으려면, 고통 이외의 무엇이 필요했다. 비극이라면 가능할까. 무수히 떠오르는 질문들은 그 자체로 한 마디의 말이 되었다. 작가로서 세상에 걸어야 할 한 마디, 바로 이야기였다.
생명의 존엄성, 고통과 상처라는 질문을 풀어나갈 ‘이야기’를 찾아 헤매길 두 달.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사건이 있었다. 10여 년 전 백탑파 시리즈를 준비하며 조사했던 ‘조운선 침몰 사건’이었다. 사고의 이면을 파헤쳐야 한다는 점에서 이명방, 김진과의 재회는 필연적이었다. 그렇게 『목격자들』은 백탑파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로 탄생했다.
『목격자들』 끝나지 않은 이야기
오랫동안 치밀한 고증을 거친 후 집필을 시작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례적으로 『목격자들』은 8개월여 만에 집필을 마치셨어요.
그래서 지금은 후유증이 좀 심한 상태예요. 원래 한 작품을 마치고 다음 작품으로 천천히 넘어가려고 시간적 여유를 두는 편이거든요. 그래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충격이 적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이 작품 외에는 다른 걸 쓸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그래서 평소보다 집중하는 시간도 훨씬 길었어요. ‘작품 마치고 나면 굉장히 힘들겠구나’하고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소설은 상황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천천히 작업하기는 어려웠어요. 최대한 집중해서 깊게 파고들려고 집중을 많이 했죠.
체중이 급격하게 줄어들 정도로 힘든 작업이셨는데, 탈고하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살이 10kg 정도 빠진 것 같은데, 몸이 가벼워진 건 좋았어요(웃음). 작품 쓸 때도 빠졌지만 탈고하고 나니까 몸무게가 확 줄더라고요. 주체가 잘 안 되는 거죠. 작품을 마쳤는데도 그 속으로 계속 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계속 맴돌고 있는 것 같아요. 출간 후에는 독자들에게 계속 묻고 싶더라고요. 어떻게 읽었는지. 『목격자들』은 머리로 치밀하게 계산해서 썼다기보다 가슴으로 쓴 부분이 많거든요. 제가 가슴으로 쓴 부분들을 독자는 어떻게 읽어줬을지, 걱정도 되고 기도도 되고 그래요. 독자들 얘기를 들으면 또 다시 각인이 되고요. 그리고 세월호 사건 1주기가 돌아오니까, 몸도 마음도 계속 작품 속에 젖어있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 같아요.
『목격자들』에서 빨리 헤어 나오지 못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작 과정 자체가 각인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어요. 해보다가 도저히 안 되면 놓아버리자고, 조금은 이기적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요. 감당이 안 되는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매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일이었죠. 자료들을 보면 감정이 차오르는 거예요. 글은 냉정하게 써야 하니까 감정을 누르기 위해서 절도 하고, 음악도 듣고, 돌아다니기도 했죠. 감정이 조금 누그러지면 글을 쓰고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이 되면 또 다시 반복이에요. 그 과정을 5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반복했는데, 지금도 독자들과 얘기하거나 책을 다시 볼 때 어떤 부분이 가슴에 걸리면 감정이 확 올라와요. 그래서 계속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고, 빠져나왔다가 또 들어가고, 그렇게 지내고 있죠.
『목격자들』 집필을 서두르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더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셨나요?
시간의 길고 짧음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일부러 포함시킨 부분들이 있는데요. 세월호 사건과 광주 항쟁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광주 항쟁 유가족 중 한 분이 ‘이건 세월이 약이 아니다. 평생 잊히지 않는 거다. 그러니까 어떻게 잘 기억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목격자들』에도 세월이 약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목격자들』에서 이명방은 김진의 부탁을 받고 ‘조운선 침몰 사건’에 대해 기록합니다. 김진은 76년 만에 찾아온 행성이 머무는 동안 소설을 완성시켜 달라고 하죠.
76년이란 건 인생 전체를 거는 거잖아요. 김진이라는 인물이 어렸을 때 받은 충격 때문에 삶이 바뀐 인물이거든요. ‘조운선 침몰 사건’에서 경험한 죽음을 평생 기억하고, 탐정이 되어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범죄와 평생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인간인 거죠. 그런 점에서 『목격자들』은 백탑파의 첫 번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는 거죠. 저는 이번 작품이 ‘백탑파 비긴즈’라는 생각을 했어요. 김진은 자신의 고통을 비극으로 정리해서 승화시킨 거예요. 옆에 있던 이명방은 김진이 여전히 고통스러워 할까봐 그 사건에 대해 쓰지 않고 있었던 거고요. 그런데 김진은 ‘너도 고통으로만 묻어두지 말고 비극으로 승화시켜라. 그 과정을 함께 공유하자’고 이야기하는 거죠.
세월호 사건 이후 집필을 멈추기도 하셨습니다. 당시 ‘현실 앞에서 소설가의 역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으셨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만들어지고 나서 줄곧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이 있죠. 이를테면 죽음의 문제, 사랑의 문제, 협동의 문제, 자연을 정복해 나가는 문제 같은 것들이요. 제가 40대에 접어들면서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려 했던 문제들이었어요. 『혁명』 『뱅크』 『밀림무정』 같은 작품들이 그랬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굉장히 중요하고 본질적인 주제들이라고 할까요. 마찬가지로 제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또한 작가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쓰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아주 가까이 있는 것과 아주 멀리 있는 것들이 충돌하는 순간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지금의 문제들에 대해서 소설을 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쓰는 것과 1년 뒤에 쓰는 것, 그리고 10년 뒤에 쓰는 것이 많이 달라질 것 같기도 했고요.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느낌과 고민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어요.
‘백탑파를 그리워한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세월호 사건이 남긴 건 충격과 분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한다고 해서 바뀌기는 할까’ 라는 무력감도 안겨준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낭만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칠레에서 광산이 무너졌을 때, 당시 매몰되어 있던 노동자들이 그 생과 사의 기로에서도 네루다의 시를 읽고 있었다고 하잖아요. 저도 『목격자들』을 쓰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그럴 때일수록 모여서 빛과 희망에 관해서 같이 이야기하고, 시를 읊고,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요. 이번 작품을 쓰면서 혜성에 대해 공부하게 됐는데요. 핼리 혜성의 경우에는 75년하고도 몇 개월 동안은 어둠 속에 있다가, 딱 한 달 동안만 빛난대요. 아마 그런 게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어둠 속에 들어갔다고 영원히 어두울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한 바퀴 돌면 다시 밝음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네루다의 시 아닐까요. 그런 작품들 사이에 제 작품도 포함되어 있으면 좋겠어요(웃음).
많은 예술가들이 세월호 사건을 기록하는 이유겠죠.
세월호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이 무력함을 느꼈죠. 김창완 선생님의 노래나 박재동 화백님의 그림은 그런 무력감 속에서부터 빛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들이었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저도 동참하고 싶었고요. 어쩌면 예술가들은 옛날의 무당 같은 존재들이 아닐까 싶어요. 모든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고통스러우니까, 조금은 편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려고 먼저 느끼고 자기 식대로 풀어내는 게 아닐까 싶은 거죠. 책이 될 수도 있고, 그림이나 연극이 될 수도 있고요.
『목격자들』에 등장하는 혜성 이야기가 다시 떠오릅니다.
이야기 초반에 할아버지가 된 이명방과 김진이 같이 글을 쓰고 별을 보러 가잖아요. 굉장히 낭만적이죠. 그런 낭만이 지금의 상처를 치유하게 하는 다른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요. 시와 소설과 노래가 가지고 있는 어떤 힘과 같은 거죠. 그걸 함께 공유하면서 더 나은 세상에 대해서, 그 세상이 76년 뒤가 됐든 100년 뒤가 됐든, 미래의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움직임들을 이 작품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목격자들』의 시작과 끝에서 혜성이 등장하는 건 그런 이유죠.
8년 만에 백탑파와 재회하신 감회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엄청 반갑고요(웃음). 처음 작품을 쓰겠다고 했을 때 일부에서는 본편보다 사랑받는 속편이 드물다고, 이제 그만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백탑파가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고, 이 사람들하고 같이 있는 게 좋아요. 흥행 여부는 이후의 문제죠. 어쨌든 저는 이 우정의 공동체에 함께하고 싶어요. 김탁환이라는 작가가 인생을 살면서 누리는 약간의 즐거움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계속 백탑파 이야기를 쓸 거예요. 나중에 눈 밝은 독자가 비평가가 있어서 ‘김탁환은 21세기에 살면서 18세기 말의 백탑파를 그리워한 작가구나, 백탑파들과 함께 노닐었던 작가구나’ 라고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웃음).
백탑파의 귀환을 반가워하는 독자들도 많습니다.
시리즈를 쓰는 건 부담도 있고, 우연도 있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성숙되어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개정판을 출간하면서 생각해 보니까, 백탑파 시리즈가 처음 나왔을 때 중학생이었던 독자들이 이제는 대학생이 되었더라고요. 그 점이 참 좋았어요. ‘독자들의 한 시절을 책으로 같이 지나왔구나’ 싶으니까 감회가 새로웠고요. 앞으로 20년이나 30년쯤 더 백탑파 시리즈를 쓰고 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어떤 감회가 찾아올지, 설레고 기대돼요. 걱정도 되지만, 좋아요.
8년 동안 백탑파 시리즈를 멈춘 이유
김진은 발문에서 “이명방이 백탑의 이야기를 세 편만 발표하고 멈춘 까닭을 모르진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소설에서 통쾌하게 사건을 해결하더라도 현실이 점점 더 어두워진 탓”이라고요. 작가님께서 백탑파 이야기를 잠시 멈추셨던 이유이기도 한가요?
맞습니다. 8년이나 안 썼기 때문에 뭔가 말을 해줘야 될 것 같더라고요. 그런 자괴감이 있었어요. 계속 범인들을 잡지만 내가 잡은 범인들은 현실에서 계속 활개치고 있는 거죠. 이렇게 쉽게 잡는 게 오히려 현실을 안이하게 바라보는 게 아닐까, 소설가라면 더 깊게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백탑파 시리즈를 중단하고 세 편의 장편을 쓰면서 나름대로는 더 깊은 심해로 들어가 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요. 지금은 접점을 찾은 것 같아요. 깊이 들어가면서도 백탑파를 통해서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요. 그래서 이전보다는 조금 더 진지해질 것 같고, 범죄가 이뤄지는 과정도 훨씬 더 치밀하게 짜여 질 것 같아요. 잘 묘사해 보고 싶은 욕심이 많이 생기고 있죠.
동시에 김진은 “이야기에서만이라도 통쾌함을 실어 독자들이 희망을 품도록 만들 시절도 있음을” 이유로 이명방을 설득하고 싶었다고 밝힙니다.
그 문장을 쓸 때는 『레 미제라블』을 생각했어요. 『레 미제라블』이 실패한 혁명을 쓴 거잖아요. ‘성공한 혁명들도 있었을 텐데 빅토르 위고는 왜 실패한 이야기를 썼을까’라는 생각이 들죠. 김진이 이야기했던 시점은 1835년이기 때문에, 영정조의 전성기가 지나고 세도정치의 암흑기로 깊게 들어갔었던 시기였어요. ‘그렇지만 『레 미제라블』 같은 소설을 써야 되지 않느냐’고 김진은 말하고 있는 거죠. 지금 이렇게 어둡다고 해서, 모든 게 다 실패했다고 해서, 백탑파 선배들은 대부분 죽고 우리도 이렇게 늙었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쓰겠다고 하지 말라는 거죠. 이럴 때일수록 빛나는 시절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 분투했던 사람들과 영혼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가인 네가 써야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게 제가 백탑파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우리가 실패한 혁명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보통 인간의 운명은 ‘시시포스’와 같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오르막에서 돌을 굴려서 끝까지 올라가면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돌이 다시 내려오니까 처음부터 다시 굴려서 올라가야 하죠. 그런 게 인생이고 그런 게 비극인 것 같아요. 돌을 굴려서 올라가봤자 처음으로 다시 돌아올 거니까 하지 말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돌을 계속 굴려서 올라가는 인간의 의지, 한 발 한 발의 발걸음 같은 것들이 인생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것만이 삶의 이유가 되는 거죠. 마지막이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는 모르는 거예요. 올라가봐야 알죠. 이후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결과는 잘 안 됐잖아’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당대를 살고 있는 인간들은 계속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 속에 있었던 거죠.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엄청난 재앙이 올 수도 있고 사고를 만나 생을 달리할 수도 있지만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건 고통 속에 있는 거예요. 비극 속에 있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영혼을 강건하게 해서 올라가는 거죠.
『목격자들』을 쓰시면서 “추리소설로서의 논리적인 전개와 감정적인 전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힘들었다”고 밝히신 바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찾으신 해결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해결점이라기보다는, 그게 소설가의 운명 같은데요. 논픽션과 달리 소설은 의미뿐만 아니라 재미도 있어야 되잖아요. 주제가 무겁다고 해서 시종일관 엄숙, 진지, 슬픔으로 작품이 가득 차 있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둠을 쓰기 위해서는 밝음을 써야 글에 균형이 잡히거든요. 그래서 밝음을 생각하고 써야하는데, 그게 굉장히 아이러니한 거죠.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부분들과 진지한 부분들 사이서 균형을 잡는 게 필요했어요. 그래서 ‘이런 게 소설이고 소설가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집필의 계기가 된 사건 때문에 작품이 인정받는 건 원하지 않아요. 소설가의 임무는 잘 쓰는 거니까, 잘 쓰기 위해서 발버둥 쳤던 시간들이죠. 보통은 작품을 쓸 때 두 번 정도 반전을 주고 끝을 맺는데 『목격자들』은 여섯 번 정도 계속 치고 올라갔어요. 치고 올라가는 것 자체가 세상에 대한 소설가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요. ‘이게 진짜 끝인가, 이게 정말 다인가’하고 한참 생각해서 계속 올라갔던 게 저한테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독자들이 그 부분을 정확하게 잘 읽어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웃음).
목격자가 될 것인가, 구경꾼이 될 것인가
『목격자들』의 중심에는 이명방, 김진과 함께 홍대용이 있습니다. 홍대용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도 많고요.
홍대용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홍대용은 이름만 알려져 있고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잖아요. 『목격자들』에서는 홍대용 선생이 음악가로서, 과학자로서, 사회 사상가로서 가지고 있었던 탁월한 면모들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홍대용이라는 인물을 따라서 읽으면 새롭게 읽히는 부분들도 많을 거예요. 박지원과 또 다른 면모들도 많거든요.
박지원이 청나라로 떠난 사이에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작가님의 치밀한 계획 때문이었군요(웃음).
일부러 그렇게 한 거죠. 독자들이 백탑파는 박지원 없이는 별로 일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박지원이 없는 동안에 홍대용을 중심으로 사건들이 진행되도록 한 거예요. 마침 배가 침몰한 연도가 연암이 청나라로 떠난 연도와 일치해서 가능했죠.
『목격자들』에 담긴 홍대용의 사상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홍대용은 무서울 정도의 평등주의자예요. 대표작인 『의산문답』에서 세 가지의 평등을 이야기하는데요. 인물균(人物均)은 짐승을 포함해서 사람과 사물은 평등하다는 뜻이고, 지성균(地星均)은 지구와 별은 평등하다는 거예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모든 별은 우주의 중심이라는 거죠. 모든 별은 자기 나름대로 중심에 있다는 뜻이에요. 마지막으로 화이균(華夷均)은 중화와 오랑캐들도 균등하다는 건데요. 중국도 더 이상 중심이 아니고 오랑캐도 더 이상 오랑캐가 아니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사상이죠. 그렇게 보면 엄청난 평등주의자이고, 조선이라는 유교 국가가 가지고 있던 계층과 계급을 깡그리 무시할 정도로 스케일이 엄청난 사람이었던 거예요. 박지원보다도 훨씬 더 급진적이죠. 그런 사상은 근대에 들어서야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들인데, 홍대용은 100년도 훨씬 전에 써 놓았던 거죠.
홍대용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정조를 향해 간언하는 대목에서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홍대용은 묵자의 사상까지 닿아 있어요. 묵자의 무리들의 가장 큰 특징은 기술자라는 거거든요. 홍대용은 악기를 연주할 뿐만 아니라 직접 만들었고, 수학에 밝았고, 망원경을 만져서 실제 천문을 볼 정도였어요. 기술자들에 대한 경시가 없었던 거죠. 유학자였다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기술자 무리 전체에 대한 존중이 깊게 깔려 있었던 거예요. 『목격자들』에서도 그 부분을 많이 부각시키려고 했어요.
이명방은 정조에게 ‘기억의 마을’을 지어 달라 청합니다. 그 이유는 이명방이 고백하듯 ‘국가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을 공식 문서에 기록하는 것이 그들의 억울함을 푸는 시작’이기 때문이겠죠?
‘죽은 자들의 존엄을 어떻게 지켜줄 것인가’를 이야기할 때 국가 차원, 공동체 차원, 개인 차원에서 할 일들이 다른 것 같아요. 국가 차원에서는 그 사람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이루지 못한 미래를 잘 모으고 그 가치를 지켜나가려는 노력들을 해야죠. 아무리 개인들이 한다고 해도 그것과는 또 다른 문제니까요. ‘국가 차원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기억해야 하지 않느냐고 소설가로서 상상해서 보여준 거고요. 그렇게 하겠죠?(웃음) 그렇게 해야죠. 그렇게 해야 된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목격자들』이 희망을 말하는 방식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눈 감지 않고 목격한 바를 기억한다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해주는 걸까요?
우리 모두가 TV를 통해서 세월호 사건을 봤잖아요. 자신이 본 것을 구경꾼으로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 같고, 목격자로서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둘은 굉장히 다른 거죠. 작년인가요,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을 공습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언덕에 올라가서 그 광경을 보면서 박수치는 사진이 공개됐었죠. 그 사람들은 구경꾼인 거예요. 미사일이 날아가서 사람들이 죽고 있는데 우리 편 잘 쏜다고 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 자세로 살 것이냐, 아니면 자기가 본 것들에 대해서 이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계속 고민하면서 살 것이냐, 둘의 자세는 굉장히 다른 거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처음에는 목격자 위치였다가 구경꾼으로 가게 되는 요인들이 있는 것 같아요. 빨리 잊고 생활 전선으로 복귀하자는 것도 그걸 망각시키려고 하는 의도들이 들어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삶 속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면 그것조차도 일상인 거죠. 세월호 사건은 두 권의 책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고 어떤 식으로든지 계속 작품 속에서 반복되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것 같아요. 그리고 계속 곱씹으면서 생각하겠죠.
기억하려면, 이름을 불러주세요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역사의 목격자이지만, 누군가는 방관자가 되기를 택합니다. 방관자가 되는 걸 스스로 경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목격자들』에도 짧게 써놨지만, 사실 그 사람들을 기억하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거든요. 굉장히 쉬워요. 그냥 이름을 한 번 불러주면 되는 거죠. 제가 소설에서 열다섯 명의 이름을 읽었잖아요. 실제로 아침마다 집필하기 전에 사망자들의 이름을 소리 내서 읽어봤거든요. 박재동 화백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요.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더라도 그냥 소리 내서 읽어보는 것, 천천히 읽으면서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연결되는 통로들을 예술가들은 많이 만들어야 될 것 같고요. 그 속에서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들인다든가 엄청나게 자발적일 필요도 없는 거예요. 우리 안에 벌써 들어와 있죠. 인터넷으로 검색 한 번만 해봐도 다 알 수 있는 거잖아요.
독자들이 『목격자들』을 통해 어떤 질문을 품기를 바라는지 말씀해 주세요.
‘절실한 질문만이 나의 이야기를 새로운 끝으로 몰고 간다’는 생각들을 많이 했었어요. 작가는 절실하게 질문하는 자이고, 그 질문에 답할 정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자죠. 독자들도 소설 속으로 잘 들어오면 작가가 던진 절실한 질문을 자신한테 던지게 되겠죠. 작가는 작품으로 답을 만들어 냈지만 독자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답을 찾게 될 거고요. 저의 절실한 질문은 생명에 관한 질문, 인간 존엄에 관한 문제, 고통에서 비극으로 나아가는 과정, 그래서 구경꾼이 아니고 목격자가 되는 삶에 대한 고민, 이런 것들이었어요. 독자들이 찾게 될 질문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거죠.
『목격자들』 이후에는 극장에서 뵙게 될 것 같습니다. 『조선마술사』와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이 영화화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저는 두 가지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장편 소설가로서의 삶과 영화 기획자로서의 삶이 있어요. 영화 기획에 대한 구상은 10년 전 쯤부터 시작해서 3년 전에 이원택 감독과 ‘원탁’이라는 기획사를 시작했어요. 그동안 준비한 것들이 이제 결실을 맺기 시작하고 있는데, 해마다 영화 한 편씩은 기획해서 내놓을 것 같아요. 『목격자들』이나 『혁명』 같은 작품은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장편을 완성시키는 데 공을 들인 작품이에요. <조선마술사>는 배우 유승호 씨, 고아라 씨와 촬영 중이니까 하반기쯤 개봉하게 될 것 같아요. 책은 7월 쯤에 출간될 예정이고요. 작년 11월에 출간된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은 빠르면 내년 말 쯤에 개봉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목격자들』로 부활을 알린 백탑파 시리즈는 물론, 이번 작품이 포함된 ‘소설 조선왕조실록’의 작업 역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인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지켜보는 것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요소라고 귀띔하기도. 『목격자들』을 통해 그리워하던 백탑파와 다시 만난 독자들이라면, 작가의 목소리에 녹아들어 있는 자신감을 읽어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시 돌아온 백탑파는 익숙한 듯 새롭고, 경쾌한 듯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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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 1 : 조운선 침몰 사건김탁환 저 | 민음사
백탑파가 돌아왔다. 한국 역사 추리 소설의 새 장을 연 백탑파 시리즈가 8년의 침묵을 깨고 신작 『목격자들 -조운선 침몰 사건』으로 돌아왔다. 『방각본 살인 사건』,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으로 이어지는 백탑파 시리즈는 조선의 문예부흥기인 정조 치세, 백탑 아래 모여 학문과 예술, 경세를 논하던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 젊은 실학자들의 이야기이다. 동시에 조선의 명탐정 김진, 이명방을 주인공으로 하여 당시 지식인의 고뇌와 백성들의 생활상을 담는 역사 소설이자, 추리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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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사랑아
2015.04.11
서유당
201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