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와 상징의 언어가 말과 글보다 사람을 강력하게 움직이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이는 심리치료에도 적용되는 듯하다. 예술을 활용하는 미술치료는 상담실이라는 공간의 한계와, 말과 글에 갇힌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효과를 안겨주기도 한다. 정은혜 작가의 책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는 이러한 놀라운 순간들을 독자들이 간접 체험하게 한다.
지난 3월 6일(금) 마포구 신수동 소재 ‘숨도’ 아카데미에서 정은혜 미술치료사의 강연회가 진행됐다. 샨티 출판사에서 발간한 그의 저작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의 ‘별책부록’ 형식으로 기획된 행사였다.
책이 미국 사례만을 담고 있는 것에 대해 작가가 독자들에게 부채감을 갖고 마련한 행사였다. 저자는 미국 사례만으로도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왕이면 한국 독자들이 보다 친근하고 풍성하게 미술치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국 사례를 소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작가는 책을 통해서도, 이번 강연회를 통해서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치유의 지점을 독자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치료를 진행하다보면 치료행위를 매개로 상담자와 내담자가 어느 지점에서 ‘만남’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지점을 지나고 나면 치료가 급속도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마치 마법이 일어난 듯 말이다. 여기서 은유와 상징은 이러한 만남을 추동하는 강력한 힘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미술치료는 그리기 외에 공작, 실이나 생활 도구를 활용한 움직임, 자연에서 뛰놀기, 함께 비맞기, 시 읽기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된다. 작가는 강연회에서 이들을 통한 치료법을 사진과 영상을 통해 소개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치유에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만든 ‘억울 북(book)’ 사례를 보여줬다. 선생님한테 억울하다고 떼쓰던 아이들은 노트에 억울함을 적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자 점차 억울함을 토로하거나 적어넣는 일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돌발행동이 심한 아이에게 천사 날개를 달아준 적이 있는데, 천사 날개를 달자 나쁜 짓을 줄이겠다며 돌발행동을 줄여나갔던 아이의 사례도 소개했다. 부모 외에 말 한 마디 하지 않던 아이가 공주 분장을 시킨 뒤 공주 대접을 해주는 ‘공주 놀이’를 하자 “선생님, 저 공주됐어요!”하며 말을 시작했던 사례도 보여줬다.
“치유를 하다보면 상징과 은유의 언어가 강력함을 느끼게 되요. 때로는 견고한 집보다 원이라는 상징 하나가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기도 하더라고요.”
저자가 보여준 사진 속에는 몇의 여자들이 원 안에 앉아 있었다. 내면 치유를 위해 바닷가에 나와 각자 원을 그리게 한 뒤 그 안에 머물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담자들이 원 안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이 느껴진다며 그 안에 계속 머물길 바랐다는 것이다. 이후 치유는 급속도로 진행됐다고.
강연회에 참석한 독자들도 저자가 밝힌 사례들에 놀라워하며 질문을 쏟아냈다. 한 참석자는 “작가가 소개한 아이들의 증상이 모두 자신의 ‘오랜 현재’ 모습이었다며 책에 소개된 치유법들을 하나씩 시도해 보겠다.”고 밝혔다. 현재 저자가 머물고 있는 제주도가 아닌 서울에서 활동할 생각이 없냐는 애정 어린 제안도 있었다. 덕분에 강연회장은 화기애애해졌다.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에는 정은혜 미술치료사가 미국 시카고 지역 정신병원과 청소년거주치료센터에서 경험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독자들이 상담자인 저자와 내담자의 모습에 공감하며 미술치료에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에세이 형식의 자기 체험 서술과 간단한 미술치료 기법 등이 실려 있다.
저자의 책과 이번 강연은 상징과 은유의 힘을 활용한 미술치료, 이를 통한 상담자와 내담자의 놀라운 만남이 우리가 행복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데에도 적극 활용되기를 바라는 듯 보였다.
-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정은혜 저 | 샨티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는 미술 치료를 공부한 정은혜 씨가 미술 치료사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만난 정신병동의 환자들, 쉼터의 청소년들과 소통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불어 8년이 넘는 치료 경험 속에서 배우고 익힌 창조적인 미술 치료의 기법들, 나아가 미술 치료에 대한 통념을 깨는 경험과 통찰 등 미술 치료사로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그린 치료적인 그림들과 함께 속 깊게 풀어내고 있다.
[추천 기사]
- 관계 다룬 두 명의 소설가, 최민경 정세랑
- 한국은 극소수의 노인을 위한 나라
- 주진우 기자와 마지막 토크 콘서트
- 최정례, 이영광 시인과 함께 시 읽는 밤
- 조승연, 리더는 결핍의 순간에 필요한 존재
코린
서유당
2015.03.22
별따라
2015.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