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은 정말 내가 미워하는 그 누군가가 갑자기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공상을 한 적이 없었는지... 혹은 상대방과의 다툼 끝에 몹시 흥분한 상태에서 상대방의 멱살이 아니라 목을 조르고 싶다는 악한 공상이 머리에 떠오른 적은 없었는지... 씻을 수 없는 모멸감을 반복적으로 주고, 그러면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오히려 피해자인 나를 죄인처럼 몰고 가는 힘 있는 그 누군가를 생각하다가, 만약 걸리지 않을 방법만 있다면, 완전범죄에 성공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뗄 수만 있다면, 아무래 몰래 방으로 들어가서 자는 그 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겠다는 범죄영화같은 공상을 하다가, 스스로의 악한 심성에 소스라치게 놀라 진저리를 치면서 자기혐오에 빠진 적은 없었는지...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상은 공상일 뿐. 현실은 다르다고 구별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이 있다. 민담, 전설, 소설, 영화 등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살해와 폭력의 테마들을 인간 정신 속 상징의 영역에 잘 길들여 가둘 줄 아는 것이다.
하지만 법 없이 살 것 같이 선해 보여서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해도 이용을 당해도 허허거리고 웃고 마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사실 파헤치다 보면 위에서 기술한 악마의 유혹이 숨어 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짐승과 98 % 이상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지라, 이성이 멈추게 되면 광기가 올라와 거침없이 악한 속내를 드러낸다. 생쥐도 코너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공격을 하고, 인간 역시 그렇다. 객관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주관적으로는 마치 코너에 몰린 작은 생쥐 같은 느낌에 빠져 더 이상 출구가 없다고 믿은 채 끔찍한 범죄로 삶을 소진시키는 것이다.
잘못된 자기 생존을 위한 비뚤어진 공격성이 이렇게 부적절하게 작용하기 시작하면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사랑은 깨져 버린다. 만약 이런 마음을 먹고 서로를 해치는 상황이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면 사람들은 폭도로 변해 좀비처럼 마구 다른 사람을 해칠 것이다. 제자백가 시절, 아직 인간 본성에 있는 악한 심성과 도(道)와 성(誠)과 이(理)가 병존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때, 성악설, 즉 인간이 악하게 태어났느냐와 성선설, 즉 선하게 태어났느냐를 갖고 왈가왈부 했던 것도, 비슷한 시기에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강조하고 플라톤이 대중들은 어리석으므로 뛰어난 철인(哲人) 지도자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던 것은 아마도 인간의 끔찍한 악한 심성에 대한 그들의 서늘한 깨달음에서 비롯함이 아니었을까.
지금이라도 총기를 잘 관리해서 그나마 미국처럼 총 맞아 죽는 사람은 없지 않냐는 작은 자존심 하나라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살인자라도 세금만 내게 하지 않으면 대통령으로 뽑겠다는 식의 윤리 의식 부재를 제발 좀 부끄러워들 했으면 좋겠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양심은 고사하고 최소한도의 인간에 대한 예의는 회복하길. 잘 먹고 잘 사는데 아무 필요가 없다며 윤리와 철학 과목을 없애 버리고, 상담 교사들을 하루아침에 해고해 버리는 식의 비뚤어진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은 제발 거두어 주길. 부모들도 공부만 잘하면 급우들과 부모와 친지와 이웃들에게 함부로 굴어도 용서할 수 있다는 비뚤어진 교육관만은 제발 갖지 말아 주길. 몇 십억 몇 백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은 들, 영문도 모른 채 총기에 맞고, 칼에 찔리고, 차에 치여 죽는 나라의 국민이라면 행복하겠는가. 그런 나라가 싫다고 외국에 간들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필리핀에서 가장 많이 살해당하는 외국인이 바로 한국인이 아니던가.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제 2의 조승희, 제 2의 IS 가담 한국 청년이 자꾸 늘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구촌 어디를 가도 충동조절을 못하는 콤플렉스 덩어리의 한국인들이 없는 곳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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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이나미 심리분석 연구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 교수
한국 융연구원 지도분석가 및 교육분석가
저서 : 『다음 인간』, 『슬픔이 멈추는 시간』, 『한국사회와 그 적들』외 다수
rkem
2015.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