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 Life Is Strange >는 대한민국 록 시장을 경도했다. 굳건한 록 오직 하나로 무장한 서울전자음악단의 총천연색 세상에 흐릿한 가짜 밴드들의 음악은 힘없이 들통 나버리고 말았다. 쏟아지는 호평과 한국대중음악상의 인정. 그들은 말 그대로 최고였다. 그리고 그 후 야속하게도 해산을 선언했다. 서울전자음악단의 음악은 그렇게 전설 속의 록 토템으로만 남아있는가 싶었다.
한 해가 다 가기 전, 모두가 각자를 정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을 준비를 하는 시기인 12월, 긴 침묵을 끝내고 이들이 돌아왔다. 기대에 부합하듯 < 꿈이라면 좋을까 >는 여전히 서울전자음악단의 뚝심과 고집, 그리고 신선한 창의력으로 무장한 늦깎이 수작이었다. 부활의 기지개를 켠 서울전자음악단의 리더, 대한민국 레전드 패밀리의 일원, 신윤철과의 인터뷰를 통해 5년간의 공백과 향후의 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서울전자음악단이라는 이름으로는 활동이 늘 격조합니다. 2014년 발매한 < 꿈이라면 좋을까 >는 2009년 이후 5년 만의 새 앨범인데요. 해산과 재결성 등 나름의 굴곡이 많았습니다. 멤버도 바뀐 상태에서 다시 서울전자음악단의 이름으로 돌아온 계기가 있다면요?
원래는 제가 리드하는 '신윤철밴드'같은 형식으로 활동하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신윤철과 시기상조' 같은… 지금 멤버인 이봉준 씨와 손경호 씨는 2000년쯤 원더버드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는데, 그때부터 같이 서울전자음악단이라는 이름으로 음악 하고 싶었어요. 회사 계약 때문에 다른 이름으로 바꿔 내기 어려워 원더버드로 활동했지만 말이죠. 장난스러운 프로젝트보다는 오리지널 서울전자음악단의 멤버들과 함께 본래 이름으로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한 해가 가기 전, 작년 말에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좀 더 일찍 발매하고 싶었죠. 지난여름부터 앨범 계획을 짜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EP 형태로 네다섯 곡 정도 수록하려 했던 게 하다보니까 녹음을 많이 하게 되서 곡이 쌓였고, 앨범이 나왔죠. 원래 계획보다 늦어지다 보니 12월에 발매하게 되었네요.
전작 < Life Is Strange >가 성공을 거뒀고, 2011년 솔로 작품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후속작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부담이야 있었죠. 신인 밴드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상황인데 서울전자음악단이라는 이름이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음악 제작 과정에서는 크게 의식하지 않았어요. 전혀 다른 스타일이더라도 전작의 유사함을 바랐다면 부담이 되었을 텐데, 레코딩 방식이야 같다 하더라도 좀 더 라이브 느낌이 나게, 잼(Jam) 스타일로 만든 앨범이기 때문에 막상 큰 부담은 아니었어요.
레코딩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서울전자음악단은 여러모로 원 테이크, 아날로그 테이프 등 시대를 거스르는 레코딩 방식을 채택합니다. 이런 어려운 방식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사실 저보다도 다른 멤버들이 아날로그 방식을 고파해요. < Life Is Strange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에 저는 컴퓨터로 하자고 했죠. 아날로그 녹음기도 없었고 장비도 구하기 힘들었던 <볼륨을 높여라>는 컴퓨터 프로툴로 만들었거든요. < 꿈이라면 좋을까 >같은 경우는 테이프 가격이 비싸져서 멤버들이 자비로 구매하고, 회사에서 진공관 프리앰프를 구비해주셨죠. 그래도 컴퓨터로 하다 테이프 결과물을 들어보면 놀라게 돼요.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지?'
전체적으로 에너지틱하다기보다는 음산한 기운이 먼저 듭니다.
일부러 의도를 한 건 아니고 잼을 위주로 하다 보니 그런 스타일이 나왔어요. 전작의 경우 제가 제작 과정에서 '이 부분에서는 이렇게 연주해라' 등 많이 지적했는데요, 이번 작품에서는 일부러 작곡 데모에 베이스 리듬을 없애기도 하면서 연주의 자율성을 강화했어요. 알아서 연주하게. 그러다 보니 곡 분위기의 자체도 처음 생각했던 부분보다는 즉흥적인 차원에서 달라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960년대나 1970년대 유명 블루스 아티스트들의 부틀렉 앨범같기도 한데요.
크림(Cream)이나 킹 크림슨(King Crimson)이 모티브가 됐죠. 특히 저는 1969년부터 1979년대까지의 킹 크림슨을 참 좋아해요. 1973년부터 75년까지 네 명의 멤버가 있는데 (로버트 프립, 존 웨튼, 빌 브루포드, 제이미 뮤어), 공연의 반 이상을 즉흥연주로 채웠던 시절이었죠. < Bible Black >이라는 앨범은 반 정도가 실황이고, 나머지는 다 즉흥연주일 정도에요. 특히 몇 년 전부터 멤버들에게 킹 크림슨 앨범을 많이 들려줬어요.
타이틀 트랙인 「꿈이라면 좋을까」에서는 아내 장재원 씨가 보컬과 가사를 맡았습니다. 평소에 부인분과 음악 작업에 대해서 많이 논의하시나요?
「꿈이라면 좋을까」는 원래 드라마용으로 만든 노래였어요. 평소에도 아내와 함께 가사나 멜로디 등 많은 부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특히 가사를 잘 써주죠.
앞으로도 장재원 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가요.
기회가 된다면, 얼마든지요.
전작의 「나무랄 데 없는 나무」, 「고양이의 고향노래」에 이어 「삶은 계란」까지. 소소한 위트의 배경이 궁금합니다.
(웃음) 대단한 건 아닌데… 가사를 쓸 때 '지금부터 가사를 써야지'하고 쓰는 경우는 없어요.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이리저리 일상 속을 거닐다가 그때그때 기록해놓는 경우가 많아요. 가사도 그렇고, 문장 하나만 생각하더라도 다 기록을 해놓곤 하거든요.
사실 서울전자음악단의 음악뿐만 아니라 신윤철씨의 솔로 앨범도 절판되어 시장에서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앨범에 대한 재발매를 바라는 팬들이 많은데요.
재발매하면 좋죠. 그런데 여러 문제가 많더라고요. 솔로 작품 같은 경우는 전속으로 계약을 했는데 복잡한 판권 문제가 있고… 또 10년도 더 된 과거 앨범을 그대로 똑같이 내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봤어요. 노력한지는 10년도 더 됐는데 아직까지는 어려워요.
약간 음악과는 상관없는 질문이지만, 개인 페이스북 계정을 보면 비틀즈 관련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특히 폴 매카트니 가짜 설은 상당히 논리정연한 데요.
(크게 웃으며) 하하, 사람들이 그걸 가장 많이 묻곤 해요. 제가 만약 그 사람 가짜다 이렇게 얘기하면 팬들이 봤을 땐 이상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거의… 가짜가 아닐까요?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생각해왔거든요.
이유를 살짝 공개해주신다면?
비틀즈 음악을 워낙 많이 듣기도 했고. 제가 실용 음악을 가르치다 보면 노래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비틀즈 음악을 듣다 보면 초기부터 1966년과 그 이후 폴 매카트니 목소리가 너무 달라요. 그 외에도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앞뒤도 안 맞는 게 많아요. 근데 뭐…. 잘 모르겠어요. (웃음)
얼마 전 < 라디오스타 >에서 하세가와 요헤이씨가 출연해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윤병주 씨와 신윤철 씨를 꼽았습니다.
기타 연습 좀 더 해야겠다, 싶네요.
신윤철이 꼽는 기타리스트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기타 치는 사람들이 헤비메탈 계열인 경우가 많아요. 저희 세대나 저희 형(신대철) 세대가 특히 도드라지죠. 한쪽으로 너무 쏠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기타리스트라면… 대학교 때 들국화의 최구희 형님과 친했었는데 그분의 기타 소리만큼 듣고 싶어지는 기타 소리가 드물어요. 하세가와 요헤이씨가 기타를 연주할 때도 '와,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고 놀랐고요. 이런 분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한양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시기도 합니다. 학생들에게 음악을 전달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을까요.
우선 음악을 먼저 들려줘요. 저번 학기부터는 가끔 LP도 가져가고, 같이 듣고 음악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아날로그가 생경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신기해하면서 좋은 반응이더라고요. 건반이나 드럼 연주하는 친구들은 실용음악과 들어가면 재즈 쪽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은 편이지만 기타 치는 친구들은 안 그래요. 재즈 하는 친구들은 재즈하고, 록과 블루스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음악을 많이 들려주는 쪽으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고 진솔한 인터뷰 감사합니다. 끝으로 이즘 공식 질문입니다. 신윤철이 추천하는 뮤지션과 앨범이 있다면?
예전에 듣지 않았던 음악을 주로 다시 찾아서 듣는 편이에요. 1967년대까지의 음악은 특히 새로운 게 많이 나오고, 히피 무브먼트가 변화하던 시대라 아무거나 다 사도 좋아요. 몇몇을 꼽자면……. 헤비메탈의 원형이라고 하는 블루 치어(Blue Cheers), 스테판 모건 피셔(Stephan Morgan Fisher)가 중심이 된 모건(Morgan). 3~40년이나 지나서 알려진 밴드라 사람들이 잘 몰라요. 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The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밴드도 추천합니다. 아, 킹 크림슨이나 크림은 두말할 필요도 없죠. 특히 킹 크림슨의 < Black Bible >, < Red >, < USA >는 강력히 추천합니다.
서울전자음악단이라는 이름에 비춰보면 이번 앨범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도 연결되어있나요?
전작은 전작 나름의 배경이 있었어요. 그때 당시 좋아하던 음악들이 비틀스 등 영국 밴드들이었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을 해보자는 주의였죠. 지금은 좋아하는 음악도 많이 달라졌고, 여러 다른 생각들도 많이 생겨났죠. 음악은 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노래를 만들고 발표하는 과정이 오래 걸려요. 사실 이번 앨범도 몇 년 전에 만들어놓은 노래들이 꽤 많았죠. 앨범 제작하며 항상 다음 앨범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경우는 그 과정이 오래 걸렸을 뿐이에요.
곧 새 앨범을 만날 수 있는 건가요.
잘은 모르겠지만, 최대한 이른 시일 내일 겁니다.
인터뷰 : 신현태, 김도헌, 서건호
정리 : 김도헌
사진 : 이한수
2015/02 김도헌(zener1218@gmail.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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