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로빈훗, 자유의 화살을 쏘다
낯설지가 않다. 극의 배경은 12세기 영국. 지금보다 무려 한 세기 정도를 거슬러 가야 하는 옛날이지만 그 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권력에 눈이 멀어 백성들을 착취하고, 자신들의 탐욕만 좇는 위정자들. 그 밑에서 고통 받는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 ‘열심히 일하는 데도 세금이 자꾸만 늘어서 남는 거라곤 없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역시 어디선가 본 듯하다. 그렇다. 뮤지컬 <로빈훗>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로빈훗은 영국의 여러 민담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로,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고 가난한 이들을 도운 정의로운 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흥미로운 요소 덕분에 14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소설, 영화, 만화 등 다방면에 걸쳐 각색되었다. 뮤지컬 <로빈훗> 역시 ‘정의로운 영웅 로빈훗’이라는 기존의 이미지에 다양한 사건들을 결합시켜 여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이야기로 관객들과 마주한다.
절친한 친구 길버트에 의해 영국의 왕 리처드를 시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랑하는 가족까지 잃게 된 로빈훗은 셔우드 숲으로 도망친다. 그 곳에서 리틀 존이 이끄는 도적무리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의로운 도둑으로서의 이름을 떨친다. 여기에 리처드왕의 아들인 필립 왕세자가 함께하게 되면서, 로빈훗은 그를 도와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 잡고자 한다.
철없고 세상물정 몰랐던 필립 왕세자는 셔우드 숲에서 가난에 허덕이는 백성들의 실상을 마주하게 되고, 그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는 나라를 세우리라 마음먹는다. 로빈훗 역시 그러한 계획에 동참하여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듯 뮤지컬 <로빈훗>에서는 이전에 비해 ‘정의로운 영웅’ 로빈훗의 혁명적인 모습이 부각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많다
뮤지컬 <로빈훗>은 뮤지컬 <삼총사>, <프랑켄슈타인>를 통해 그 실력을 인정받은 왕용범 연출, 이성준 음악감독을 필두로 유준상, 엄기준 등 대중성과 실력을 두루 겸비한 배우들이이 함께했다. 여기에 또 다른 주인공 ‘필립’ 왕세자 역에 규현, 양요섭 등의 아이돌스타가 합류하면서 그 기대감을 더했다. 그 외에도 이건명, 박성환, 서영주, 조순창, 김아선, 서지영, 홍경수, 박진우, 김여진, 다나 등 쟁쟁한 배우들이 총 출동해 화려한 명성을 자랑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건 별로 없다. 라는 옛 속담이 생각나 조마조마 했었지만 <로빈훗>은 그 속담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유준상, 엄기준과 함께 주인공 로빈훗에 캐스팅 된 이건명은 완벽하게 로빈훗으로 변신해 150분의 극을 순조롭게 이끌어 나간다. 누명을 쓴 한 남자의 억울함,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낸 슬픔부터 충실한 신하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정의로운 혁명가의 모습까지 폭 넓게 연기한다. 필립 왕세자 역의 양요섭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이돌’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던 사람들마저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뛰어난 가창력과 익살스러운 연기를 유감없이 뽐낸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빠르고 흡인력 있게 흘러간 1막에 비해 2막의 이야기는 지루하게 늘어지고, 급하게 마무리 짓는 느낌을 준다. 의도적으로 곳곳에 설치한 코믹적인 요소는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로빈훗의 연인 이였으나 그를 배신하고 길버트에게 간 마리안의 캐릭터는 당위성이 부족하다. 마리안이 극에서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놓고 본다면 더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화려한 무대 장치,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 시원하게 터지는 가창력 등은 아쉬운 부분부분을 채워준다.
단순한 취미생활로 뮤지컬 <로빈훗>을 즐기기엔 그 안에 담긴 메시지들이 결코 가볍지가 않다. “우리가 바라는 건 그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이라 말하는 백성들의 대사가 가슴 깊게 와 닿는 건 그러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뮤지컬 <로빈훗>은 3월 29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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