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여고 탐정단> 소녀들의 가볍지 않은 탐정놀이
일본의 경우 분기별로 드라마가 제작되는데, 다양한 장르 속에서 독보적인 것은 역시 수사물과 추리물이다. 만화나 소설로 인기를 누려 검증된 작품들이 원작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원작을 좋아하고, 출연 배우만 본인의 취향에 맞다면 실패하지 않고 즐겁게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 그런 점을 부러워하던 와중에 박하익 <선암여고 탐정단>이 드라마화 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글ㆍ사진 현정
201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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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드라마의 원소스멀티유즈


예전부터 일본드라마를 보면서 부러웠던 점이라면 장르드라마가 다양하다는 점, 그리고 탄탄한 구성에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도 상당수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멀티유즈가 가능한 장르문학이 발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히가시노 게이코의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도 거의 서른 편 가까이 된다. 그 중 명탐정의 규칙』은 수사에 나선 형사와 탐정이 추리소설 속의 빤한 공식들을 스스로 비꼬아가며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내용이라 캐릭터부터 독특하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도 나오는 족족 코믹 추리극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드라마화가 되고 있다. 철부지 부잣집 아가씨와 까칠하고 막말을 해대는 집사가 사건을 추리하는 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우카이 모리오 탐정이 등장하는 ‘이카가와 시’ 시리즈라고 불리는 작품도 <내가 싫어하는 탐정>이라는 이름으로 드라마가 되었으며, 고등학교 탐정부를 둘러싼 좌충우돌 유머 미스터리방과 후는 미스터리와 함께』 역시 2012년에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되었다.


일본의 경우 분기별로 드라마가 제작되는데, 다양한 장르 속에서 독보적인 것은 역시 수사물과 추리물이다. 만화나 소설로 인기를 누려 검증된 작품들이 원작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원작을 좋아하고, 출연 배우만 본인의 취향에 맞다면 실패하지 않고 즐겁게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


그런 점을 부러워하던 와중에 박하익 <선암여고 탐정단>이 드라마화 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에게도 가능한 일이 되었다.
<선암여고 탐정단>은 밝고 명랑하고 그러나 어딘가 이상한 여고생들의 방과 후 탐정 놀이를 소재로 하고 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방과 후는 미스터리와 함께』라는 작품와 콘셉트가 비슷한 점을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그 깊이나 추리의 방식, 반전의 스케일은 훨씬 더 뛰어나다. 똘끼와 병맛 충만해 보이는 여고생들이 등장하여 그저 가볍고 유치한 방식으로 전개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신선한 동시에 무게감이 느껴진다. 먹먹한 기분으로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정통사회파 추리소설과는 색채가 다르고 빠르고 경쾌하게 사건이 진행되지만 다루고 있는 문제만큼은 사교육, 시험지유출, 낙태, 집단 따돌림, 자살 등 10대들이 학교에서 부조리하게 겪게 되는 사회 문제를 직면하게 만든다.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확실하다. 전형적이면서도 독특한 개성이 있어, 각자 제 기능을 하며 이야기 속에서 살아서 움직인다. 그렇기에 실사화가 궁금해지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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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싱크로율 100%


안채율(진지희)는 천재인 오빠를 자율적인 학습 방법으로 하버드에 조기 입학 시킨 이력으로 TV토크쇼와 강연을 다니지만 통제와 집착의 이중성을 가진 엄마(이승연)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 소원이다. 그러나 외고에 떨어진 자신을 못마땅해하며 유학 보내려고 하지만 정원 문제로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엄마의 강요에 강제 전학을 당한다. 교육 수준이 낮은 사립학교라 내신 성적을 따기 쉽다는 이유였다. 비상식적일 정도로 냉정하고 독설을 내뱉는 엄마의 이중성에 치를 떨면서도 당장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데 등교 첫 날, 선암여고 학생들만 노린다는 신종 변태에게 피해를 입게 되고 그 바람에 ‘선암여고 탐정단’의 타깃이 되어 그녀들과 얽히게 되면서 고문으로 영입된다.


원작과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유미도(강민아)는 사람을 현혹시키는 탁월한 말재주를 가지고 있지만 대책 없이 낙천적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합리적 판단을 하고 지시를 내리며 실질적인 리더의 면모도 보여준다. 탐정단에서 국정원을 능가하는 IT와 컴퓨터 활용기술을 가졌다고 나오는 김하재(이민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오컬트와 아스트랄한 성격의 소유자. 연극부 단원으로 탐정단의 아지트를 마련해주고 있는 이예희(혜리)는 위기 상황마다 탁월한 연기력과 순발력을 발휘하며 탐정단의 얼굴을 맡고 있지만 뇌가 단순하다. 늘씬한 키와 성숙한 외모를 가진 탐정단의 행동대장이자 괴력을 가진 최성윤(스테파니 리) 그리고 전학 온 안채율까지 5명의 여고생이 좌충우돌 탐정놀이가 펼쳐진다.


드라마화 되면서 원작과는 다르게 깨알 재미를 주는 인터뷰 장면이나 CF 패러디, 귀여운 효과음을 삽입한 편집으로 여고생다운 발랄함을 한껏 더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단순해 보였던 사건의 내막들이 드러나며 학교라는 곳에서 소녀들이 겪게 되는 입시 위주의 씁쓸하고 잔혹한 교육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학생들의 고통과 어른들의 이기심도 함께 보여진다.


로맨스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은 제법 드라마화 되곤 했지만 독특한 위트를 갖춘 추리소설이 드라마화된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이 작품이 부디 성공을 거두어 일본처럼 다양한 장르의 원작들이 읽는 재미에서 보는 재미로 이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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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여고 탐정단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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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제법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현명해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걸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사랑할 때마다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해내고 쉽게 두근거린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으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