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은 나에게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1982년부터 매해 한 번씩 다녀오고 있으니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대부분 의료봉사 때문이며 갈 때마다 히말라야 근처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며 그곳 사람들과 재미있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거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생각, 삶의 방식들을 하나씩 알게 되었죠.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네팔 사람들은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누더군요. 마치 인생의 사계절 같았습니다. 배우고, 적응하고, 참회하고, 자유로워지는 이 네 단계는 정신분석학자 에릭슨이 주창한 성격 발달의 8단계와도 닮아 있어 놀랐습니다. 그 역시 인생을 사계절로 보고, 더 세분화해 사람이 나이 들면서 인성이 발달해가는 단계를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네팔에서는 오래전부터 인생을 100세로 설정했습니다. 이를 4등분 하여 삶의 첫 계절 봄은 25세까지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에게 배우고 사회에서 학습하는 시기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파릇파릇한 새싹 같은 청년기입니다.
이들에게 띄우는 나의 편지를 이 책의 1부 ‘세상과 나를 알아가는 그대에게’에 담았습니다.
두 번째 계절인 여름은 50세까지로, 익힌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사는 시기입니다. 취직도 하고 사업도 하고 결혼하여 가정도 꾸리면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홀로 서는 시기입니다.
물론 달콤한 성공을 맛보는 이도 있고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 힘들어하는 이도 있을 테죠.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온전하게 자신의 삶으로 다가오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뜨거운 인생의 한 시절입니다.
청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이며, 아직 젊기도 하고 이제 알 만큼 알기도 하며 맡은 책임과 역할도 늘어가는 시기입니다.
2부 ‘역할을 감내하며 오늘을 사는 그대에게’에 그들에게 띄우는 나의 편지를 담았습니다.
이후로 75세까지는 되돌아보는 시기입니다. 인생의 가을입니다. 가장 뜨거웠던 시기를 보내고 이제 조금씩 차분하게 식어가는 자신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 열기가 아주 사라진 것도 아니며 여전히 마음에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푸르던 나뭇잎에 색이 돌다가 어느덧 단풍이 들 듯 완연한 가을을 맞이하는 때, 장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입니다.
바쁜 삶을 살아오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최선을 다했다 해도 후회되는 일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삶에 대해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보는 시기입니다. 삶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시간입니다. 그동안의 신념을 인생이라는 거울에 다시 비춰보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 온전한 나로서 계속 살아가려 합니다.
3부 ‘다시 온전한 나를 찾고자 하는 그대에게’에 나 역시 그 시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편지를 적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힌두교에서는 76세 이후의 삶을 자유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계절인 춥고도 고독한 겨울에, 사람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누릴까요? 네팔 사람들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합니다.
인생의 사계절이 끝나가는 시기, 죽음이 멀지 않은 때입니다. 세상과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수록 평온해집니다. 자유는 죽음을 맞이하는 가장 평온한 태도이기도 합니다. 집착과 욕심 같은 이생의 것에서 자유로워질수록 죽음과 친해집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온 것 자체가 덤이고, 내 존재가 기적이라는 생각을 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올 봄을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사계절이 끝나고 다시 오는 봄은 그 누구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쨌든 봄은 다시 옵니다. 내 인생의 겨울이 오고 내 인생의 사계절이 끝나도 봄을 기다리는 마음. 그것이 자유가 아닐까, 나는 생각해봅니다.
4부 ‘행복하게 떠날 준비를 하는 그대에게’에 나와 같은 계절을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편지를 띄웁니다.
어느덧 나 역시 팔순의 나이가 되었고, 마지막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지금의 겨울. 참 빨리도 지나간 시간입니다.
네팔 사람들이 나눈 나이대를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계절이란 그 환경에 따라 빨리 오기도 더디게 오기도 하며, 계절에서 계절로 넘어가는 시간 역시 늘 흐릿합니다. 그러니 위에서 말한 시기를 자신의 나이에 똑 떨어지게 대입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누구보다 자신의 계절은 자신이 잘 알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나 혼자 이런 계절을 보내고 있지 않구나 하고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각자 살아간다 해도, 우리 모두는 대부분 같은 사회 안에서 비슷한 과정을 거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각 단계마다 연령마다 보편적으로 느끼는 갈등과 행복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한 명의 인간이자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동료로서 당신처럼 인생의 사계절을 보내왔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어떻게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나 나름대로 정성들여 편지를 써봤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인생의 사계절을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띄우는 나의 편지입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오랫동안 정신과의사로서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도왔던 경험도 담고자 했습니다.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끝으로 이 책을 제안한 김민기 과장과 책을 발간해준 샘터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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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이근후 저 | 샘터
50여 년간 정신과전문의로 살아온 저자는 팔순의 나이를 맞아, 인생의 각 단계를 저마다 힘겹게 넘기고 있는 모두에게 진심을 담아 따뜻한 조언을 건네고자 한다. 그가 30년 넘게 매해 의료봉사를 위해 찾는 네팔에서는 인생을 사계절로 나눈다. 25세까지의 봄은 학습, 50세까지의 여름은 적응, 75세까지의 가을은 참회, 그 후 겨울은 자유의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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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