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나의 영웅 신해철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곧 털고 일어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10월의 마지막 주, 뉴스에서는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처음엔 뭔가 아주 이상하고 나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글ㆍ사진 조선영(도서1팀장)
201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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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지배했던 것은 바로 신해철이었다. 88년도 대학가요제에서 기타 메고 노래하던 그 남자, 정말 잘 생긴 것 같다며 친구와 전화로 호들갑 떨던 때부터 말이다. 처음엔 곱상한 외모와 감미로운 노래를 들려주는 아이돌이었으나,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그는 점차 자신의 색깔이 분명한 음악을 만들며 밴드를 결성하는 등 뮤지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우리들의 밤을 책임지던 라디오 DJ로도 활약했다. 대개 신해철의 라디오, 라고 하면 ‘음악도시’나 ‘고스트 스테이션’을 떠올리는 이들이 더 많겠지만, 나에게 신해철의 라디오는 “밤의 디스크쇼”였다. 학창시절 나의 밤을 책임지던 그가 마이크를 놓던 그 밤엔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도 그 마지막 밤에 틀어줬던 Camel의 ‘long goodbyes’나 New trolls의 ‘Adagio’, Alan Parson Project의 ‘Old and Wise’는 아직도 즐겨 듣는 노래들이다.


대학 시절까지도 그의 음악을 즐겨 듣고 공연에도 빠지지 않았으나,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신해철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고스트 스테이션 DJ로 ‘마왕’이라는 호칭을 얻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하는 지라 아직도 나는 그가 ‘마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것이 약간은 낯설긴 하다. 아무튼 내가 그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동안 그는 거침없고도 솔직한 언행으로 많은 추종자들과 적을 한꺼번에 거느리게 되었고, 음악 활동 역시 모노크롬, 비트겐슈타인 등 다양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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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그의 사인이 담긴 앨범


다시 그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된 것은 바로 올해의 일이었다. 그간의 활동 공백을 깨고 <Reboot Myself>라는 타이틀의 미니 앨범을 낸 그와 ‘김태훈의 편견’ 코너를 통해 인터뷰 요청을 하게 되면서 간만에 앨범을 구입해 듣게 된 것. (인터뷰 보러가기)

 

<Reboot Myself> 라는 타이틀처럼, 이번 신보는 예전 원맨밴드를 표방했던 앨범의 사운드를 떠올리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7월의 어느 날, 신사동 스튜디오에서 만난 신해철은 예전보단 조금 더 살이 찌고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음악과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하는 그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특히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고도 재미나게 들려주는 그의 모습은 ‘아, 그 역시 아빠로구나’라는 생각에 나를 웃음짓게 했었다. 모든 인터뷰와 촬영을 마친 후 내가 바로 아까 당신이 얘기하던 ‘내 음악을 듣고 자라난 세대’라는 말을 수줍게(?) 건네고 CD에 사인을 요청했는데…마왕은 심드렁했고 나 혼자 가슴 벅차 올랐건 것이 마치 엊그제의 일만 같은데…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은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그게 나의 학창시절 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결국 발인 전날 팬들이 조문할 수 있도록 24시간 개방한다는 소식을 듣고 택시를 타고 다녀왔다. 나 말고도 그의 음악과 생각을 사랑하고 아꼈던 이들이 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까지도 줄을 지어 조문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너무도 의연한 영정 사진을 마주하고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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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직접 만들어 장례식장에서 나눠주던 조문보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들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는데, 때마침 TV에서 신해철이 2007년에 출연했던 언플러그드 공연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첫 곡으로 흘러 나오는 ‘날아라 병아리’를 듣고 울고, 마지막 영상에 쓰여 있는 낯선 글자 ‘故’를 보고 또 한 번 울었다.


잘 가요, 편히 쉬어요.
무릎을 꿇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던 나의 영웅.
같이 늙어가길 바랐고 그럴 거라고 믿었는데 이제는 나만 나이를 먹어가겠네요. 


그대 현실 앞에 한없이 작아질 때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영웅을 만나요
무릎을 꿇느니 죽음을 택하던 그들
언제나 당신 안의 깊은 곳에 그 영웅이 잠들어 있어요
그대를 지키며 그대를 믿으며
- The Hero, N.EX.T 4집 Lazenca / A space Rock Opera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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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마왕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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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5.02.20

무릎을 꿇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던 나의 영웅
그의 음악은 영원히 우리 모두의 가슴에 남아
노래만이 남겨졌네요.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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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tlekimbba

2014.11.09

실감이 안나요.. 이렇게 허무하게 갑작스러운.. 실감이 안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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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작살

2014.11.06

신해철과 함께 한 시대가 저무는 것 같아 허탄한 마음입니다. 그 속에 담긴 저의 추억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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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도서1팀장)

뽀로로만큼이나 노는 걸 제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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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1968년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교 시절에 밴드 ‘각시탈’을 결성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에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어린 시절 친구 등과 함께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했으며, 1988년 12월 24일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무한궤도 1집을 발표하고 잠시 활동했으나, 곧 밴드가 해체되었다. 1990년에 첫 솔로 음반을 발표해 수록곡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듬해에 솔로 2집을 발표해 독특한 음악적 스타일과 세태를 짚어내면서도 감성적인 가사로 젊은 층의 절대적 지지를 얻게 된다. 이후 록밴드 ‘넥스트(N.EX.T)’를 결성, 밴드 활동을 재개했다. 1992년에 발표한 넥스트 1집은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곡들로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았다. 1994년 발표한 넥스트 2집, 그리고 1995년 발표한 3집은 음악성은 물론 가사에 담긴 깊은 사유를 통해 대중음악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시기에 동료 뮤지션의 음반 프로듀싱, 객원 보컬, OST 작업, 프로젝트 밴드 ‘노땐스’ 활동 등을 병행했으며 1995년 4월부터 1997년 10월까지 MBC 라디오 의 초대 DJ로 활동하며 라디오 진행자로서의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1997년 발표한 넥스트 4집을 끝으로 넥스트는 해체했으며,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공부를 하며 그곳에서 쌓은 테크노 장르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1998년 《Crom’s Techno Works》를 발표한다. 이듬해에는 프로젝트 그룹 ‘모노크롬’을 결성, 동명 타이틀로 앨범을 발표했으며 2000년에는 밴드 ‘비트겐슈타인’을 결성, 실험성이 강한 음반을 발표했다. 2001년에는 그가 진행한 대표적 라디오 방송 <고스트스테이션>을 시작했다. 2003년 4월까지 선보인 이 방송은 거침없는 언변과 진심어린 진행으로 마니아 청취자층 ‘고스족’을 양산했고, 그의 별칭 ‘마왕’도 이때 얻었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활동을 벌였으며,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대마초 비범죄화/간통죄 폐지체벌 금지 등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쳐 화제를 낳기도 했다. 2003년 10월 <고스트네이션> 방송을 시작했으며 2004년에는 새 라인업으로 재결성한 넥스트 정규 5집을 발표했다. 2005년에는 연예매니지먼트 회사 ‘싸이렌’을 설립했으며 이듬해 넥스트 리메이크 음반 5.5집을 발표했다. 2008년 넥스트 6집을 발표하는 한편, 이해 3월부터 10월까지 SBS 라디오에서 <고스트스테이션> 방송을 다시 진행했다. 2011년 5월에는 MBC 라디오에서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을 재개했으며 2012년 10월 방송을 끝냈는데, 이로써 11년간 이어온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을 완전히 종료했다. 2014년에는 새 솔로 음반 준비를 본격화해, 싱글 〈A.DD.a〉를 공개했으며 이어 EP 《Reboot Myself》를 발매했다. 2014년 10월 27일 향년 46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故 신해철의 정확한 사인은 의료사고 의혹 속에 아직 온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