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미쓰꼬시 백화점 옥상정원 정오
특별한 계기 속 역사의 공간은 일상의 시간을 다른 시간으로 바꿔 놓는다. 하지만 그 시간을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느끼고 이해하며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글ㆍ사진 함돈균(문학평론가)
20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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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함돈균의 에세이 <시간의 철학>이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시간과 날짜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다르게 생각해보면 좋을 것들을 철학적으로 풀어봅니다.


문명은 진보의 시간이다?


특별한 계기 속 역사의 공간은 일상의 시간을 다른 시간으로 바꿔 놓는다. 하지만 그 시간을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느끼고 이해하며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 격변기에 이 땅의 사람들 중에는 과학과 기술을 무기로 들어온 이 땅에 밀려들어오는 근대 문명을 대체로 ‘진보’라는 역사적 시간 속에서 이해했다.   

을사보호조약(1905)이 체결될 무렵부터 일제강점기 한국 지식인들에게서 감지되는 뚜렷한 흐름 중 하나는 바로 근대 문명에 대한 맹목에 가까운 열광이다. 1907년 순종의 특사였던 유길준이 순종에게 바치는 긴 상소문은 서구와 일본의 “발달하는 지식”에 대한 선망과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조선에 대한 한탄으로 이뤄져 있다. .(《승정원일기-순종1》) 


열다섯 살에 동경으로 유학 갔다가 열아홉에 귀국한 최남선은 조선 최초의 근대 대중잡지인 《소년》을 창간한다. 그 잡지에 발표한 ‘근대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주인공 ‘바다-나-소년’은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을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구시대를 무너뜨리는 바다의 압도적인 힘에 대한 화자의 매료는 임박한 일제강점기를 문명이 개화하는 ‘새로운 시대’로 낙관하는 최남선의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이로부터 10년 후 1917년 이광수는 《매일신보》에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연재하는데, 이 소설의 결말에서 그 시대는 “교육으로 보든지 경제로 보든지, 문학 언론으로 보든지, 모든 문명사상의 보급으로 보든지 다 장족의 진보를 하였으며 (중략) 우리 땅은 날로 아름다워 간다”고 묘사된다. 당대를 진보의 시대로 여기는 그의 시각은 최초의 국한문혼용체를 사용한 ‘개화파’ 유길준과 최초의 근대시를 쓴 최남선의 시대 진단을 역시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노도와 같이 들어오는 당대의 ‘문명’은 ‘힘’이고 ‘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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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토박이


최남선이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던 2년 후 한일병합조약으로 나라를 잃던 경술년(1910)에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이상(李箱 본명 김해경)’이 태어났다. 그의 출생지는 경성부 순화방 반정동(지금의 서울 사직동)이며, 네 살이 되던 1913년 구한말 총독부 기술직에 종사하던 백부 김연필의 집인 종로구 통인동 154번지에 양자로 입양되어 이곳이 본적이 되었다. 이광수가 소설 『무정』을 연재하던 1917년 이상은 경성부 누상동에 있는 신명학교에 입학했으며, 보성고보를 거쳐 1927년 동숭동에 있는 경성고등공업학교(서울공대 전신)에 진학했다. 이상은 1929년에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근무했으며, 그해 《조선과 건축》이라는 잡지에 시를 발표하며 시인이 되었다. 


이상은 생애의 마지막 순간을 제외하고는 서울(경성) 한복판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시와 소설을 쓰고, 서울에서 교유하고 연애했으며, 서울의 한복판을 자신의 텍스트로 삼은 진정한 서울 토박이였다. 그는 유길준과 최남선과 이광수가 보고 싶었던 ‘진보 시대’에 태어나, 문명화 되어가는 조선의 한복판 서울 사대문 안에서 살았고, ‘문명어’인 일본어가 공식적인 언어가 되던 해에 태어나 그 문자를 기본 언어로 교육받았던 진정한 ‘모던 뽀이’였다. 그는 과학의 언어인 수학으로 훈련받았고, 문명 건설의 기술적 도구인 건축기사로 세상에 불려나온 사람이었다. 


백화점의 정오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그는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도시문명, 그러므로 당대 지식인과 대중 모두가 선망과 진보의 상징으로 여긴 미쓰꼬시백화점(신세계백화점) 옥상정원에서 다음과 같은 ‘정오’의 싸이렌을 듣는다. 


이때 뚜-하고 싸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닭처럼 푸드덕 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 『날개』中 


 개화와 문명을 진보의 시대로 여겼던 선배들과는 달리 이상은 ‘문명의 정오’를 피로한 시간으로 느꼈다. 그가 서 있던 정오의 옥상정원 앞에는 조선은행(한국은행)과 경성부청(서울시청)과 조선우체국(광화문우체국) 같은 당대의 문명 랜드마크가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정오는  신문명과 새로운 자본의 상징이던 경성역과 본정통(명동) 사이에 있었다. 하지만 이 정오의 시간을 그는 자신의 시들에서 거대한 매춘의 시간, 사멸의 가나안, 알카포네가 접수한 타락한 화폐도시의 시간으로 묘사했다. 환한 대낮 도시의 도로는 『오감도-시제일호』에서 “무서운아해”와 “무서워하는아해”가 구별되지 않는 공포의 공간으로 파악됐다. 


일층위에있는이층위에있는삼층위에있는옥상정원에있는옥상정원에올라서남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고북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고해서옥상정원밑에있는삼층밑에있는이층밑에있는일층으로내려간즉동쪽에서솟아오른태양이서쪽에떨어지고동쪽에서솟아올라서쪽에떨어지고동쪽에서솟아올라서쪽에떨어지고

- 『조감도-운동』中


식민지 시기가 암울했다고 여기는 지금의 상식과는 달리, 1930년대 서울 한복판의 시간은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닭처럼 푸드덕 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수선을 떠는 “현란”한 ‘태양의 시간’으로 많은 이들에게 여겨졌다. 우리가 지금 과학과 기술과 도시와 자본과 서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긍정적 이미지가 이때 그 기본꼴이 형성된 것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이 정오의 시간이 ‘모던(근대/현대)’이라고 불리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옥상정원에올라서남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고북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다고 말한다. 남쪽에는 경성역이, 북쪽에는 총독부가, 바로 앞에는 문명의 랜드마크가 있는데 말이다. 나는 이것을 강박적일 정도로 엄격했던 이상 시 특유의 언어검열이라는 차원에서 해석해 본다.


예컨대 “이층”이나 “삼층”이라는 말에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일층위에있는” “이층위에있는”이라는 어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이상의 언어검열이다. 말의 반복이 음악성을 형성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메마르게 한다는 점에서 그는 매우 희귀한 시적 사례다. 이러한 강박은 그의 시를 세인의 평균적 세계인식과는 다른 진실의 차원에 접근하게 했다. 그는 공부 많이 한 지식인들이나 세속적 관심에 몰두해 있는 일반 대중이나 별다를 바 없이 검증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현란한 ‘문명의 정오’를 검열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이층”과 “삼층”이라는 말이 정말 “일층위에있는” 현실인지 “이층위에있는” 현실인지 말과 현실, 관념과 실제, 정치적 선전과 삶의 실상을 대질시키고 확인하는 메마른 검열의 언어가 그의 시였던 것이다.


그 검열을 통해 그는 1930년대라는 ‘문명의 정오’, 지금까지 계속되는 ‘현대’라는 시간에서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깊은 공허(“아무 것도 없고”)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상의 생일날 즈음, 그의 통인동 집 앞을 지나다가 그가 서 있던 정오의 시간을 생각해보다.


* 다음 글은 10월 28일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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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이며,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한국문학 속에 나타난 전위적 감각과 윤리를 탐구하는 연구·비평·강의에 매진하고 있다. 인문정신의 사회적 확산과 시민적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실천적 인문공동체 시민행성’을 기획하여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매일경제신문에 문명의 무의식과 시대정신을 사색하는 <사물의 철학>이라는 인문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문학평론집으로 《예외들》, 《얼굴 없는 노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