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 화가’로 유명한 하삼두 화백이 이태석 신부의 정신적 스승으로 알려진 ‘알로이시오 신부’의 일대기를 담은 그림책 『알로이시오 신부』를 펴냈다. 미국 워싱톤 D.C.에서 태어난 알로이시오 슈월츠(Aloysius Schwartz) 신부는 1957년, 한국전쟁의 여파로 처참하리만큼 가난해진 한국 땅에 와, 그야말로 전쟁 같은 사랑을 펼친 성인이었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노벨 평화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올랐으며, 국민훈장 동백장(1975), 라몬 막사이사이상(1983), 마더 데레사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삼두 화백이 『알로이시오 신부』를 집필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30년 전, 마리아 수녀회에 입회하기로 마음을 정한 여자친구(지금의 아내)에게 청혼을 했던 것. 당시 마리아수녀회에서 설립한 ‘구호병원’에서 일했던 하 화백의 아내는 알로이시오 신부의 삶에 동화되어 있었고 결혼 이후에도 늘 그곳을 잊지 않았다. 2014년은 알로이시오 신부가 세상을 떠난 지 22년이 되는 해. 하삼두 화백은 “그 옛날 빚진 품앗이를 할 기회가 되어 『알로이시오 신부』작업을 맡게 됐다. 철저히 예수님의 삶을 닮으려 했던 알로이시오 신부의 열정은 마치 사람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찾아내려는 무모한 생체 실험 같아서 나를 긴장하게 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미술학과 동양화를 전공한 하삼두 화백은 한때 시인이 될 꿈을 꾸었지만, 먹그림이 좋아 문인 화가가 되었고, 명상 그림집 『지금 여기』, 『그렇게 말을 걸어올 때까지』를 출간했다. 현재 밀양 삼랑진의 산촌에 정착하여, 날마다 그날 몫의 그림을 그려 모으는 재미로 살고 있다.
신부님의 눈빛은 순전히 나의 상상으로 태어났다
『알로이시오 신부』를 집필하게 된 계기가 특별하다고요.
첫째는 빚을 갚는 품앗이고, 둘째는 그렇게 살았던 사람을 목격한 사람이 느끼는 내적 책무 때문이고, 셋째는 우리 그림을 좀 더 바깥으로 소개하고 싶은 문화 선전의 이유 때문입니다. 물론, 최초에 부탁해 온 수녀원의 결정이 가장 구체적 동기였고요. 저의 아내가 그쪽 수녀원의 일원이 되려고 마음을 정했을 때, 저의 청혼으로 사람을 빼내었으니까요(웃음).
작가로서, 다른 그림책 작업과 남다른 의미가 있었을까요?
글을 쓴 사람과 그림을 그린 사람이 따로인 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작가가 종합적으로 이 두 요소의 무게 비중을 조절해가면서 구성할 때, 보다 편안하고 완성도 높은 매체가 되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마치 화가의 서첩을 넘기듯이 집중도가 좋을 듯해서요. 물론 이 두 요소를 다 갖추긴 어렵지만, 나름대로 긴 세월 동안 준비한 재능을 풀어놓았습니다.
실제로 알로이시오 신부님을 뵌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먼 발치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계시던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저희 가족은 결혼 후 한때, 야외수영장이 있는 부산 소년의집 울타리 너머에서 살았거든요. 그땐 그렇게 활기찬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들었지, 그를 위해 피땀을 흘리신 신부님의 노고는 몰랐지요. 뒤늦게야 책을 읽어 알아내고는 더욱 호기심이 커졌지만, 제가 철들었을 땐 신부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신 뒤였습니다. 생기 넘쳤다던 신부님의 눈빛을 직접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에는 오히려 편했어요. 신부님의 눈빛은 이 책 속에서 순전히 저의 상상으로 태어났죠.
알리오시오 신부님의 어떤 모습에 가장 큰 감명을 받으셨나요?
담담히 루게릭병의 진단을 받아들이던 장면입니다. 벼랑을 떨어지듯 끝나는 길이 아니라, 고개를 넘듯 조용히 사라지는 인생의 길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걸 바라시기에 그렇게 살아내셨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번 책의 글, 그림을 그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은혜로운 것이 많았어요. 거룩한 것은 그에 관련한 다른 많은 것들의 성화를 이끌어가므로, 온전히 일치할 수만 있기만을 바랐죠. 소년의집 아이들이 “아저씨는 누구세요?” 하고 묻길래, “나? 알동! 알로이시오 신부님 동생이란 말이야!“ 하고 말을 받았어요(웃음).
가장 그리기 힘들었던 장면, 또는 그리면서 많이 은혜 받은 장면은 무엇인가요?
표지화로 선택된 ‘적색 제의를 입으신 신부님’입니다. ‘인간적 부끄러움’과 ‘하느님의 의지를 드러냄’, 또한 ‘제도권 안의 순명’과 ‘영원한 가치를 바라보는 거룩함’ 등, 모든 역설과 극단의 대응개념들을 다 담아내어야 했는데, 그리고 나서 보니, 우연이긴 하지만, 제 손이 그런 도구로 쓰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죽음과 부활이 동시에 담겨 있어야 십자가가 온전해지듯이 말입니다.
책을 쓰면서 참고한 도서가 있었나요?
이미 수녀회에 보관돼 있는 알로이시오 신부의 사진 자료가 결정적이었습니다. 필리핀의 호세 알셀리아 신부님의 책과 라냐다 몬시뇰의 알로이시오 영성 연구서가 신학적 지침이 됐고, 수녀회의 추억담이 이를 뒷받침해 주었어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성서의 복음에 비추어 예수님의 뜻과 비교했고, 제가 할 표현의 수위를 결정했습니다.
『알로이시오 신부』하삼두 저자
오늘만의 그림을 그렸을 때 느끼는 희열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많은 메시지를 남겼는데요. 작가님께서 특히 의미 있게 느낀 메시지가 있었나요?
여러 말들이 남겨졌지만, ‘청소년들이 인간의 존엄에 합당한 일자리를 갖기를’이라고 번역된 문구는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메마른 문장이 아니라 듣는 이의 참여를 부추기는 생명력 있는 표현은 살아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깁니다.
한 때 시인이 되길 꿈꾸셨다고요. 작가님께서는 평소 어떤 책들을 주로 읽으시나요?
저는 체질적으로 굼떠서 주변에 적응이 늦습니다(웃음). 그리고 한 번에 두 가지를 못하는 단순함이 있고요. 청소년기에는 현실을 박차고 발돋움을 할수록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던 탓에, 미술학도였던 저는 일종의 신비주의의 방편으로 시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현실을 넘어 ‘상징과 표징’ ‘함축과 불확실’ 등의 영역에 쉽게 몰두했고, 요즘은 영성적 서적의 표현들에 잘 빠져들곤 합니다. ‘헨리 나웬’과 ‘안셀름 그륀’ 같은 분들의 깊이를 참 좋아합니다.
문인화가가 된 건, 먹그림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문인화가가 되기 위해선 어떤 능력과 관심이 필요할까요?
마음을 묘사한다는 뜻으로 ‘심사’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형태를 묘사한다는 ‘형사’와는 다른 문인화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스케치’나 ‘묘사’ 대신에 ‘본질’이나 ‘화두’가 중요합니다. 그렇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열린 감각이 요청되는데, 늘 그게 과제입니다. 누구든 형식적 답습으로 문인화의 방식을 모방할 수는 있지만, 정작 작품에 녹여낼 삶을 살아내지 못한다면, 글쎄요, 웃자란 나무가 열매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있던가요?
명상 그림작가로서 어떤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신가요?
일일 보고의 의미로 매일 그림을 그리는 원칙을 정해두고 삽니다. 하루하루를 그날 몫의 용서라고 보는 마음으로 저녁에 창조주께 드리는 제 나름의 보고서를 준비하는 것이지요. 불확실한 일상으로 인해 이 의욕은 결코 쉽지 않은 목표이긴 하지만, 애써 그날을 정리하려 노력합니다. 얼핏 어제와 같은 오늘처럼 생각되지만, 오늘을 어제처럼 살 순 없다는 생각으로, 같은 소재의 그림을 두 장 이상 그리지 않는 원칙도 나름 지키고 있어서, 제겐 대표작이 없는 실정입니다. 오늘만의 그림을 그려냈을 때의 희열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날의 화두는 대부분 새벽미사에서 얻어옵니다.
성미술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창작 의지와 규정 준수라는 두 가지의 상반동인을 끝없이 조율하여 접점을 찾기까지, 묵상과 살아냄이 전제된다는 수행 같은 작업방식이 성미술이죠. 그런 관점에서 성미술은 ‘결과물’이 아니라 ‘기록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독자들이 『알로이시오 신부』를 읽으면 좋을까요?
제가 『알로이시오 신부』를 만든 것이 하느님의 이끄심이었듯이, 이 책을 만날 사람들 또한 누구일지는 모르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힘든 이들에게는 용기가 되고, 세상에서 남 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가 갖춰야 할 공동체적 소명을 일깨워주는 계기이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현재 신앙이 없는 나의 일가친척들이 읽어 나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 듣고, 그들도 믿음의 사람으로 바뀌어가길 바라는 기대도 듭니다.
다음 작품 계획이 궁금합니다.
픽션이 아닌 이야기들 중에서, 사랑의 유산이 된 인물의 일화를 찾고 있어요. 지금 연구중인 것으로는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김대건’. 어쩜, 수묵화로 휘두를 수 있는 팔대산인이나 추사 김정희의 삶이 먼저일수도 있겠네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추천 기사]
- 박정아 “미인대회가 후진국 행사라는 인식 바꿔야”
- 요나스 요나손 “내가 소설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 난다 “평범한 스케치북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 김휘 소설가 “섬뜩하기까지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파”
엄지혜
eumji01@naver.com
앙ㅋ
2014.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