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좀, 하고 갈게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나는 오늘 뒷담화를 조금 해보련다. ‘뒷담화’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깊지만 나는 다소 정직한 뒷담화를 하고자 한다.
글ㆍ사진 엄지혜
201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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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인가? 그 때도 앳된 얼굴은 아니었는데 가끔 나를 어리게 보는 인터뷰이가 있었다. 그래도 푸근한 인상은 아니기 때문에 무시를 당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딱 한 명. 정말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든 인터뷰이가 있었다. 지금은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는, 잠깐 반짝 인기가 있었던 개그맨 A군. 여의도 KBS 본관 앞, 할리스 커피에서 그를 만났는데 대뜸 인터뷰 질문지를 허락 없이 빼앗더니 “이 질문 이 질문 빼주세요. 이 질문할거면 인터뷰 못하는데”라고 말했다. 뭐, 대단한 이슈도 아니었기 때문에 충분히 뺄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말투가 영 거슬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나, 너 인터뷰 안 해도 회사 안 잘릴 것 같은데, 인터뷰 접어 버려?’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착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토닥였다. 10분 후, 사진기자가 도착하니 A군은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사진기자는 40대 후반의 국장님이셨다. 여하튼 인터뷰는 별탈 없이 끝났고 나는 매우 무미건조한 기사를 썼다. 그 후 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최악인 인터뷰이가 누구였어?”라고 물으면, A군을 떠올렸다. 다행히, A군 말고 딱히 매너가 없었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매우 사소한 일로 타인에 대한 인상을 기억한다. 1시간 동안 좋은 태도를 유지했어도 단 5초를 기분 나쁘게 하면, 도루묵이다. 지난주, 오랜만에 기분이 나빴다. 꽤 좋은 인상을 지닌 인터뷰이를 마주했는데, 대뜸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인터뷰 질문지를 아무런 양해 없이 휙 하고 집어 드는 것이 아닌가. 마치 선생이 학생의 답안지를 확인하듯이. (내가 대학생 리포터도 아니고 말이야, 아니 대학생 리포터에게도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무매너의 정점!) 그는 질문지를 몇 줄을 훑어보더니 다시 책상에 올려 놓았다. 나는 홀로 구시렁대며 슬쩍 질문지를 가져왔다. 인터뷰를 시작하기도 전에 기분이 상했지만 나는 태연하게, 그러나 매우 실망스러운 기분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은 대답도 성실하게 해줬고 나름 분위기가 좋았다. 안타까웠다. 그 실수만 하지 않으셨어도 꽤 좋은 인상으로 기억됐을 텐데. 나 혼자만 북 치고 장구 치는 일일 수 있지만, 나의 소신은 “불특정 다수에게 좋은 사람인 것보다 내 옆, 나를 직접 마주한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이다.

 

난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개,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에게는 관심이 없어 인간미가 떨어지는데, 동물에게 줘야 할 관심을 사람에게 두 배로 주고 있다고 말하면, 너무 과한가? 인터뷰 대상자를 고를 때도, 그가 펴낸 책 너머의 ‘사람’이 궁금해질 때 더욱 호기심이 인다. 요즘 내가 주구장창 물어보고 있는 질문이 있다. “지금까지 한 선택 중에 가장 잘한 선택은?” “당신을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상태는?” 뭐 이런 것들이다. 시답잖아 보일 수 있지만, 난 이 질문을 통해 그 사람의 가치관과 성향을 파악한다. 위 질문에 매력적인 답변을 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나는 마음이 콩닥콩닥 뛴다.

 

솔직히1.

솔직히

 

내가 추억하는 인터뷰이들


‘뒷담화’를 하겠다고 시작한 글인데, 문득 ‘좋은’ 뒷담화를 하고 싶다. 좋은 사람들을 훨씬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예스24 문화웹진 <채널예스>에서 만났던 인터뷰이 중에 가장 호감이었던 사람들을 꺼내보고자 한다. 내가 ‘좋은 인터뷰이’로 꼽는 사람들은, 주어진 질문에 매우 솔직한 태도로 경청한 경우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기보다는 물은 이의 이야기에 충실한 답변, 그리고 사족을 붙이지 않는 사람. 이제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냥 하는 말인지,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를.

 

먼저 신경정신과의사 서천석(http://ch.yes24.com/Article/View/23420)을 꼽고 싶다. 정신과의사라서일까. 경청의 깊이가 남달랐다. 가르치는 듯한 뉘앙스도 전혀 없었다. 인터뷰 장소가 명동 스타벅스였는데, 그는 지점을 잘못 찾아 세 군데를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언짢아하지 않았다. 물론, 답변도 훌륭했다. 또 한 명의 정신과의사 김병수(http://ch.yes24.com/Article/View/24216)와의 만남도 기억에 남는다. 인터뷰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인상이 매우 좋았다. 글감을 찾아내는 실력이 대단했는데, 후속작이 기다려진다. 의도치 않게 40대 남자 인터뷰이만 꼽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규항(http://ch.yes24.com/Article/View/25336)과 작가 윤용인 ( http://ch.yes24.com/Articl/v

iew/22196)  도 퍽 매력적인 인터뷰이였다.  다소 딱딱해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질문에 허투루 답하는 법이 없었다. 말의 진심이 느껴졌다. 시인 마종기(http://ch.yes24.com/Article/View/22356)와 교수 조국(http://ch.yes24.com

/Article/View/25669)도 좋은 인터뷰로 기억된다. 기대를 많이 하고 간 인물에 대해서는 조금 실망하기 마련인데, 두 사람의 경우 첫인상과 끝인상이 다르지 않았다.

 

최근 인터뷰한 소설가 이승우(http://ch.yes24.com/Article/View/25890)와  교수 이기진(http://ch.yes24.com/

Article/View/25981)은 의외였다. 이승우 작가는 유명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거드름이 전혀 없었다. 이기진 교수는 인터뷰 내내 짧은 대답만 늘여놓아 나를 당황시켰는데, 솔직하고 수식어 없는 대답이 오히려 더 크게 와 닿았다. 이 외에도 사회학자 노명우, 목사 조정민, 소설가 구효서, 만화가 강도하, 화가 김영희, 작가 김한민, 만화가 박재동, 작가 한동원, 칼럼니스트 차우진, PD 나영석 등이 기억에 남는다.

 

예전에는 인터뷰이와의 교감이 중요했다. ‘나, 당신 이야기 잘 파악하고 있어.’ ‘어, 우리 좀 통하네?’와 같은 감정들. “당신 인터뷰 좋았다고” 메일을 보내오면 황송했다. 이제는 교감보다는 정말 솔직한 사람을 만날 때 감격한다. 잘 보이기 위한 제스처를 조금도 취하지 않는 사람을 볼 때, 오히려 호감이 생긴다.

 

요즘 백영옥 작가의 인터뷰집 『다른 남자』를 읽고 있다. <경항신문>에 ‘색다른 아저씨’로 연재할 때부터 재밌게 읽었는데 책으로 묶이니, 이 남자들(인터뷰이)이 정말 ‘달라’ 보인다. 백영옥 작가는 “이 인터뷰는 누군가 나를 인터뷰할 때, 이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이 글은 과거의 인터뷰하는 사람이었던 내가 쓰는 반성문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간혹 나도 어설프게 짐작해본다. 내 흡족한 마음처럼 상대도 흡족할지, 내 마음이 찜찜한 것처럼 인터뷰이도 찜찜한 건 아닐지. 백영옥 작가의 말처럼, 결국 나의 마침표도 반성문으로 끝날 때가 많다. 존중이 존중을 낳는 법. 나부터 충실한 인터뷰어가 될 일이다. 뒷담화를 하겠다고 끄적거린 이 글도 반성문으로 마친다. 오늘도 반성하는 마음으로 질문지를 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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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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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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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선

2014.08.28

어찌 보면 우리가 외면만 알 수 있는 사람들의 내면과 인품까지 접할 수 있는 기자의 글이라서 새로운 느낌이네요. 사람은 늘 내면과 외면이 같도록 힘써야 하지 않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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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맛소나기

2014.08.26

인터뷰이에 대한 뒷담화라니.. 독자로썬 아주 재미난 구경거리네요~ㅎㅎㅎ
김규항 선생님 팬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어떤 기자의 말이 떠오르네요~
최악의 인터뷰이는 까칠하고 깐깐해 인터뷰하기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 빵점짜리 매너로 인터뷰하기 싫은 사람이라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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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

2014.08.22

뒷 얘기가 사실은 더욱 흥미로울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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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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