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동과 1년 정도 사귄 주장미는 그와 결혼을 꿈꾸며 호텔방에서 프로포즈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훈동은 기겁하고, 같은 호텔 카페에서 원치 않는 선을 보고 있던 친구 공기태를 불러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 그 악연을 시작으로 주장미와 공기태는 훈동이 비겁한 방식으로 이별하는 과정 내내 마주치게 된다.
친구 일에 끼어들었다가 자신의 결혼만 바라고 있는 어머니에게, 주장미와 사귀는 사이라는 오해를 받게 된 공기태는 그녀를 이용해 집안의 결혼 압박을 막아보려고 한다. <연애 말고 결혼>은 결혼하고 싶은 여자 주장미와 결혼하기 싫은 남자 공기태의 티격태격 위장 거래 로맨스이다. 그러다 둘이 사랑에 빠질 게 뻔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오밀조밀하게 잘 짜여 있느냐, 캐릭터들의 캐미가 얼마나 폭발하느냐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뻔한 주제임에도 배우들의 귀염 돋는 연기는 재미를 선사해주기에 충분했다.
이 드라마는 사랑에 목숨 걸고 있으며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간절한 여주인공을 등장시켰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녀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간 보기, 어장관리, 밀당, 썸 타기 등 영악한 연애의 기술은 아니었다. 남들에게 꼴사납고 추접스럽게 보이더라도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아낌없이 다 드러냈다.
남자의 마음이 변했다는 촉이 오면 구질구질하게 굴기보다는 모양새 빠지지 않게 떠나야 할 때를 맞춰 이별하는 여자들이나, 관계를 끊기로 마음 먹었으면서 나쁜 역은 절대 맡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최대한 비겁하게 이별을 통보하는 남자들. 쿨해야 미덕인 요즘 연애 세태에서 보자면 주장미는 언젠가 변하게 마련인 사랑에 어리석게 목을 맨 것 같아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른다.
“보고 싶어서 보러 간 게 죄에요? 좋아하면 내 눈에 담고 싶고, 내 손으로 만지고 싶구 전 그래요! 그래야 진짜 같이 있는 거구, 그래야 진짜 사랑이구!" 라고 현실에서 어떤 여자가 자신의 감정을 쏟아낸다면, 용기 넘치는 그 사랑에 감동받기 보단 한없이 무겁고 자존심 없는 여자처럼 보이기 십상이니까. 하지만 그런 게 결국 사랑이 아닐까? 자존심이고 자존감이고 내팽개치고 매달려보는 것. 그런 것 없이 발만 살짝 담가보고 다치지 않을 정도만 만나다 헤어지는 걸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그 관계가 어느 정도나 깊이가 있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을까 싶다. 그런 연애로는 어떤 것도 배울 수 없다.
게다가 훈동의 치사한 이별 통보 방식을 보면 일 년이나 사귄 사이임에도 관계에 대한 배려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전혀 없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일주일 넘게 잠수를 타고, 친구를 통해 변한 마음을 알리게 하고, 결정적으로 ‘고마웠어. 미안하다. 행복해라’라는 문자를 보낸다. 결국 훈동을 찾아온 주장미가 말한다. “첫 번째 문자는 과거형, 고마웠지만 어쨌든 다 지난 일이란 거고, 두 번째는 현재형, 이딴 식인 게 미안하지만 어쨌든 헤어지잔 거고, 세 번째는 명령형, 앞으론 다시 찌질하게 들이대지 마라. 그거잖아. 널 사랑했던 과거, 너 때문에 죽도록 아픈 현재, 너와 함께를 꿈꿨던 미래까지! 어떻게 문자 한 통으로 쓰레기통에 처박을 수 있어!!" 하지만 훈동은 도망쳐서 화장실에 숨고 그녀를 스토커라며 경찰에 신고한다.
주장미가 원했던 것은 이별의 예의를 지켜주는 것이었다. 한때 함께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도 같이 하고 싶은 것. 얼굴을 보고 왜 우리가 끝이 나게 된 건지 이해해보고 싶은 것이지 지질하게 매달리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 눈에 경박해 보이고 돈 말고는 매력 없는 남자이지만 주장미는 그를 정말 사랑했기에 그의 이별 방식에 심한 내상을 입었고, 다시는 남자와 데이트하거나 사랑에 빠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남자의 마음이 변했다는 걸 직감하거나 이 관계에서 내가 더 이상 어떤 노력을 해도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과감히 이별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된다. 손에 쥐고 있는 모래가 스르르 빠져나가는데도 더 움켜쥐면 더 많은 모래가 빠져나갈 뿐이다. 손을 탈탈 털고 다시 모래를 담을 때 더 많은 모래를 가질 수 있다. 물론 누군가 곁에 없어서 느끼는 외로움, 다음 기회가 주어질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그 모든 것들이 이별을 주저하게 만든다. 이해 가능한 이유이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처럼 잊을 건 잊고 놓을 건 놓을 때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
열심히 연애를 하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진화 한다. 사람과 부딪히며 현명해지고 지혜로워지는 자신을 믿어보자. 한 남자에 푹 빠져서 상황 파악도 안 되고 자신이 원하는 사실만 받아들이며 현실 부정을 일삼던 주장미도 연애가 끝난 뒤 똑부러지고 당당한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다. 그렇게 변한 그녀다운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호감을 느끼는 남자도 나타난다.
관계의 끝은 그 사람과의 관계만 끝난 것뿐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더 나은 남자들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별의 아픔은 충분히 느끼고 괴로워하더라도 그것을 마치 세상이 사라지는 일처럼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별하고 나면 다시 사랑할 일만 남으니까. 비단 그런 일이 로맨틱 코메디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 삶으로 증명해 보일 수 있다. 그러니 이별을 겁내지 말자!
[관련 기사]
- <닥터 이방인> 선생님, 제 심장이 왜 이러죠?
-<유나의 거리>, 넌 날 좋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 <신의 퀴즈 4> 희귀함을 특별함으로 만드는 이야기
- <고교처세왕> , 단순함에서 최고의 처세를 찾다
-<조선 총잡이>, 이준기표 감성 액션이 돌아왔다
현정
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제법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현명해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걸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사랑할 때마다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해내고 쉽게 두근거린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으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 중이다.
햇살
2014.07.23
빛나는보석
2014.07.13
나날이
2014.07.09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