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하면 기생충이 떠오른다. ‘기생충 박사 서민’, 대개의 사람들은 이렇게 부를 정도로 가장 유명한 기생충 교수이기도 하고, 기생충을 대중에게 알리는 전도사이기도 하다.
언젠가 서민 교수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굉장히 불우했다. 아버지도 나를 미워하셨다. 못생겼다고. 지금 생각하면 당신을 닮아서인 듯도 하다. 남자는 나이 마흔을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나는 책임지고 싶지 않다. 어릴 땐 숫기도 없고 혼자 지낼 때가 많았다. 너무 엄하셨던 터라 많이 맞고 자랐다. 그 때문에 마음고생도 컸다. 말도 더듬고 틱 장애까지 있었다. 스무 살까지는 인생이 잿빛이었다. 삶에 대한 대책도 전혀 없었다. 대학 가니 조금씩 나아졌고, 서른이 넘으니 비로소 내 세상이 열리더라.”
서민 교수
언제나 유머러스하고, 남을 배려하고, 즐겁게 해주는 서민 교수의 뒤에는 이런 아픔이 있었던 게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서민 교수의 삶은 소통을 위해 처절하게 투쟁해온 삶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로, 친구로, 학생으로, 교육자로, 글쟁이로, 방송인으로, 의사로, 또 남자로. 그러면서 남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알고, 즐겁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었을 게다.
겸손하면서도, 자기 비하를 가장한 유머러스한 깔때기(다른 좋은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를 슬쩍 들이대 주위를 즐겁게 할 줄 아는 남자, 겸손하지만 그 안에 자신감이 가득한 남자, 그 자신감을 갖추기 위해서 처절하게 노력하는 남자,의사로서 전공 분야에도 철저하지만, 인간과 사회를 같이 고민하는 남자. 서민 교수는 다양한 결을 가진 사람이었고,서민이라는 사람 자체가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유형의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서민 스타일이 사회에 많이 퍼져나갔으면 좋겠고, 이 자리를 빌려 서민이라는 존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서민 교수는 정말 솔직하게 자신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 아픔을 겪고 난 후 지금의 행복한 결혼 생활, 자신의 정치관, 독서와 글쓰기가 자신을 어떻게 바꿨는지, 잘못된 의료 상식과 현재의 의료 시스템, 의료 민영화에 대한 의사로서의 생각, 왜 기생충학을 선택했는지, 기생충의 세계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등 기생충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와 기생충 학자로서의 포부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서민을 원래 좀 알고 있고 좋아하지만, 단행본으로 내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라 조금 망설였다. 혹시 요즘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니 그걸 노리는‘만들어진’책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하고, 정리하는 과정 내내 흥미진진했고‘아, 이걸 내가 안 하고 다른 사람이 한 인터뷰를 책으로 보았다면 후회를 했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승호 씀.
-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서민,지승호 공저 | 인물과사상사
지승호와 서민은 홍대 앞 카페에서 한 잔의 커피를 시켜놓고 6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수차례 만났다. ‘소심함’과 ‘유머’라는 공통의 태도로 똘똘 뭉친 두 사람의 호흡은 아주 잘 맞았고, 기존 매체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서민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끌어낼 수 있었다.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들이자 친구로서의 서민, 같은 시대를 사는 시민으로서의 서민, 개를 지극히 사랑하는 ‘개 아빠’로서의 서민까지……. 지승호는 물었고, 서민은 답했다. 덕분에 우리는 “월세 밀린 세입자처럼 조용히” 그러나 할 말은 하는 보기 드문 사람, 서민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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