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가지고 있다. 전문 수사관!
미국드라마나 일본드라마를 보면 유난히 범죄 수사물이 많다. 전문 프로파일러가 연쇄살인범의 특징을 찾아내거나 사건 현장에 남은 혈흔이나 시신의 뼈로 범인을 분석하는 과학수사관은 기본이고, 행동분석으로 심리를 파악해서 사건을 해결하고, 심지어 초자연적 심령 수사관이 등장하며 각종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범행의 악랄함이나 범인을 찾는 과정과 숨겨져 있는 반전 요소가 드러나는 것이 수사물의 재미를 유발하는 요소이지만 그럼에도 근간에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 것은 바로 사회의 병폐를 담아내는 일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 한 개인의 악랄한 싸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적인 인품만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괴물을 만들어낸 사회적 모순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그 장르의 역할이다. 그렇기에 미국이나 일본이 아닌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범죄를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수사관이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은 건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었다.
목말라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도 못지 않게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아? 시스템의 문제라고 핑계대지 말고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 달라는 이기적인 드라마 팬들의 요구에 응답이 왔다. 미궁에 빠진 의문의 죽음을 추적하고 희귀병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을 쫄깃하게 다룬 <신의 퀴즈>가 등장했다.
한국대 법의관 사무소를 배경으로 불분명한 사체의 희귀병 여부를 조사하며 범인을 추적해 나가는 그 중심에는 천재 외과의 한진우가 있다. 건방지고 돌발 행동을 일삼고 유머라고 하지만 깐죽거리며 사람을 놀려대지만, 정의롭고 마음이 따뜻한 남자라는 완벽한 전문가 캐릭터가 탄생했다는 말이다. 그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러 넣어준 류덕환의 연기도 너무나 훌륭하여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소외되고 차별된 것들을 바르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
<신의 퀴즈>가 유난히 소중한 드라마라고 여기며 매 시즌이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왔던 것은 매회 드라마의 주요한 소재가 되어주는 각종 희귀병을 범죄와 연결시키는 탁월함 때문이었다. 범죄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혹은 범인이 되기도 하는 희귀병 자체가 반전을 이끌고 범죄 해결의 중요한 단서나 증거가 된다는 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희귀한 병 자체도 흥미로울 수는 있지만 소재주의에만 머물렀다면 이렇게 글을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 드라마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다름’에 대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감기 증상을 보이는 (격리가 필요한 전염성 높은 독감을 제외하고) 사람을 크게 차별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병에 걸린 사람이지만 보편적이고 일상화된 병에 대해서는 큰 거부 반응이 없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씩은 걸리기 마련이고 전염성이 있다 하더라도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면 예방 가능하다. 게다가 원치 않아도 감염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희귀병은 타고난 것이든 추후 발병한 것이든 극소수의 사람만 겪고 있기에 병에 대한 보편적 이해가 부족하고 그 증상이 특이하면 할수록 환자가 질병 그 자체로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시즌 4의 첫 번째 케이스로 울면 피눈물을 흘리는 희귀병이 등장한다. 헤모라크리아로 불리는 이 희귀병은 불상이나 성모상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린다는 종교적인 차원의 일이 아니기에 신비감이나 경외감보다는 공포나 혐오감을 주는 측면이 있다. 특히 이 병에 걸린 어린 소녀는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친구들에게 늘 놀림 받고 차별 받는다. 그 놀림에 붉은 눈물을 흘리면 그것 때문에 더욱더 손가락질 받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눈물이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사실을 안 소녀는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 소녀는 안면 장애를 가진 남자에게 납치되어 노예노동자로 팔려 나가게 되고 그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유괴, 납치, 폭행, 암매장 같은 죄질이 나쁜 범죄를 저지른 남자의 변명은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사회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었지만, 그 순간 한진우는 자신이 받았던 고통을 고스란히 남에게 주며 보상받으려고 한 것. 남의 고통도 모르는 순간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며 그의 장애는 얼굴이 아니라 그것이라고 일갈한다. 인간이 붉은 눈물을 흘린다면 서로가 서로의 고통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고 그 아픔이 느껴질 테지만 신이 눈물을 투명하게 만든 건 그 눈물이 고통의 부산물이 아닌 아픔을 씻어내고 치유를 위한 것이며, 인간다움이란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것임을 희귀병을 통해 전달한다.
두 번째 케이스도 사건의 비극성이나 반전도 뛰어났지만 <신의 퀴즈>가 전달하고 싶은 주제 역시 놓치지 않는다. 진표와 표피 사이를 이루는 단백질 유전자에 이상이 있어 사소한 외상에도 수포가 생기고 쉽게 피부가 벗겨지는 피부질환인 단순성 수포성 표피 박리증에 걸린 여자가 등장한다. 증상이 심하면 손가락이나 손톱에도 변이가 일어나 네일 케어 같은 건 상상도 못하는 여자는네일숍 앞에서 바라보기만 한다.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모를 거라고 말하며 슬픈 표정을 짓는 여자에게 한 남자가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 천사들은 손톱이 당신처럼 생겼다고 하더라. 누구도 상처 입게 하지 않게 하려고.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는 걸 알지만 여자는 미소를 짓는다. 그 둘은 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누명을 쓰고 자살한 사람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애틋함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신이 조물한 인간이 완벽하지 않고 어딘가 이상이 생기는 것. 희귀병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상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불완전한 인간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인간이 끊임없이 풀어나가야 할 퀴즈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인간을 통해 치유 가능한 것임을 늘 강조한다. 자신과 다른 것을 볼 때 추하고 악하고 이상한 것. 병으로 장애가 생긴 얼굴이나 다리에 천사의 얼굴, 천사의 다리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만으로도 완벽하지 않아도 위로 받을 수 있고, 웃을 수 있으며, 생의 의지를 다질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라고 말해준다.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임을 범죄수사라는 장르 안에서 아주 매력적이고 따뜻하게 알려주고 있는 드라마이다.
시즌 4인데 뒤늦게 시작해도 괜찮을까? 커다란 줄기를 알고 싶다면 앞선 시즌을 달려주면 좋겠지만 캐릭터에 대한 이해 이외에 사건이나 희귀병 자체에 대한 흥미로 시작하고 싶다면 매 에피소드가 한 편씩 종결되기 때문에 드라마를 이해하는데 별 무리가 없다. (시즌 별 에피소드 자체도 10개에서 12개 정도로 맘 먹고 달리면 주말 동안 끝낼 수도 있으니! 드라마 폐인, 신퀴폐인이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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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제법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현명해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걸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사랑할 때마다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해내고 쉽게 두근거린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으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