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안녕하지 못할 우리(2) : <변호인>
양우석 감독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모순을 되짚고, 상식을 실천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변호인>에 가득 담아둔다. 당연하게도 영화는 실화와 픽션의 경계를 어디에 둘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법 앞에, 권력 앞에 대한민국의 국민이 평등하기를 바라는 진심을 펼친다. 그러니 좌파니 우파니 극우니 극좌니 종북이니 하는 편 가르기 따위는 모두 내려놓자. <변호인>이 품는 사람과 세상은 당신들, 대한민국 국민이라 불리는 우리 모두이다.
20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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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집단의 별점 테러도 특정 대통령을 찬양하려는 영화라는 선입견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모두 내려놓아도 된다. <변호인>은 좌우의 논리를 설파하는 정치 영화가 아니다. 그저 상식적이기를,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기를, 어떤 공권력도 제 국민을 폭력으로 제압해서는 안 된다는 그 상식을 말하는 영화다.
헌법 제1조 2항 -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 ||
상처받은 국민을 품어내는 진심
고졸 출신에 백도 학벌도 없다는 이유로 계속 밀리는 자신의 처지를 돈 버는 수완으로 극복하려는 송우석은 변호사라는 타이틀로 그저 돈을 버는 게 억수로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바위 같은 세상의 질서를 바꾸겠다고 데모하는 학생들을 철없다고 비난한다. 그런 그가 국가보안법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된다. 그러면서 그 역시도 이 세상의 모순에 눈을 뜨게 된다. 폭력과 비상식을 용납할 수 없게 된 그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 법정에서 다섯 차례의 공판을 벌인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이 자행되었고, 그 폭력의 가해자들 어느 누구도 벌을 받지 않고 뻔뻔한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변호인>이 소재로 삼은 부림 사건은 1981년 제5공화국 군사독재 정권이 집권 초기에 통치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일으킨 부산 지역 사상 최대의 용공조작 사건이다. 1981년 9월 부산 지검 공안 책임자인 최병국 검사의 지휘 하에 부산 지역의 양서협동조합을 통하여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ㆍ교사ㆍ회사원 등을 영장 없이 체포한 뒤, 짧게는 20일에서 길게는 63일 동안 불법으로 감금하며 구타는 물론 살인적 고문을 가하였다. 이로써 독서모임이나 몇몇이 다방에 앉아서 나눈 이야기들이 정부 전복을 꾀하는 반국가단체의 '이적 표현물 학습'과 '반국가단체 찬양 및 고무'로 날조되었다. 부림 사건을 모르는 관객이건, 아는 관객이건 반복되는 영화 속 공판을 지켜보면서 관객들은 상식과 준법이 정의의 이름으로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동시에 공안정치가 만들어내는 말도 안 되는 조작에 분노하지만, 이미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낯설지 않은 과거에 서늘함을 느끼게 된다.
잘 알려진 대로 <변호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1980년대 인권변호사로 변모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부림 사건을 소재로 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변호인>은 노무현 대통령을 추억하거나 영웅시하려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더 큰 틀에서 우리의 현재를 보여주는 영화다. 특정 인물과 특정 사건을 떠오르게 하기보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우리의 현재를 대변하는 영화다. 영화 속 송우석은 가난한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법고시를 통과했지만, 고졸이라는 이유로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처지이다. 그래서 돈이나 벌어 사랑하는 자신의 가족을 지켜보겠다고 결심한다. 열심히 돈을 벌지만, 본성은 따뜻하고 모질지 못하다. 그런 그에게 자각의 순간이 찾아오는 건 잘 아는 학생이 무고하게 빨갱이 혐의를 받아 인권이 유린되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부터다. 상식이라고 믿었던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 그는 상식을 지켜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몰상식의 세상은 2013년 지금, 현재 우리가 딛고 선 한국의 현실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변호인>은 법이 만인에게 공평해야한다고 믿는 원칙주의자가 모순된 세상과 맞서 싸우는 보통 사람이 이끄는 휴먼 드라마이다. 상식의 논리 속에서 극의 몰입도를 탄탄하게 이어가는 연출력은 물론이고, 한 치도 흔들림이 없는 송강호의 연기는 <변호인>을 단단하고 올곧게 짊어지고 간다. 그리고 앞서 실화에 초점을 맞춘 <남영동 1985>나 <부러진 화살>의 등장인물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강한 정의감에 불타는 선구자의 모습이었다면, <변호인> 속 송우석은 현실에 어쭙잖게 타협해 사는 우리 소시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의 변화를 이끄는 ‘진심’은 더욱 강한 공감으로 남는다. 정치적 관점을 떠나 하나의 법정 드라마로서도 대중 영화로서도 <변호인>은 꽤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나온 날, 철도노조 파업 때문에 민주노총 본부에 공권력이 투입된 사건이 벌어졌다. 1995년 민주노총 설립 이래 초유의 사건이라고 한다. 공권력의 투입을 저지하기 위해 나선 국민들에게 경찰은 최루액을 분사하고 120명을 강제 연행했다. 사람들은 유신정권이 다시 도래했냐고 비난하고 분노하는 중이다. 순간 부림 사건의 검사였던 최병국씨는 안녕하신지 궁금해졌다. 1997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검사를 거쳐, 2000년 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후 3선 의원이며 1989년에는 홍조근정훈장까지 수상하였다. 근정훈장이란 “공무원(군인ㆍ군무원 제외)으로서 직무에 정려(精勵)하여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우리가 오늘도 내일도 안녕할 수 없는 이유다. 우리의 정권과 법은 역사 속에서 심판받아 마땅한 너무 많은 죄인들에게 면죄부를 허용했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반성하는 법이 없었다. 악랄한 역사가 되풀이 되는 이 현실 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그들을 한 번도 용서한 적이 없고, 아이러니하게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사과한 적도 없다. 국민이 역사 앞에서 사과 받을 일 없는 세상, 그 공정한 세상을 꿈꾸는 우리가 있는 한 <변호인>이 주장하는 평등의 권리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진심이다. 미국의 소설가 이디스 워튼은 “빛을 퍼트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은 촛불이 되거나 혹은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변호인>이 말하는 바도 우리가 꿈꾸는 세상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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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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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OJT
2014.01.27
odoba
2014.01.25
그래서 영화 변호인의 변호인이 되고자 하며, 변호인의 흥행을 기원하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향기로운이끼
201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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