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티스트 낸시랭에 대한 편견과 오해(1)
2013년 12월 20일 금요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팝아티스트 낸시랭을 만났다. 한 시간을 예정했던 인터뷰는 두 시간을 훌쩍 넘겼고, 1회 분량을 이미 넘어선 대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마쳐지지 않았다.
20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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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속엔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애써 숨긴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그녀는 큐티와 섹시라는 단어를 의미 없이 내뱉으며, 감정 없는 인형처럼 항상 웃을 것만 같다. 이 인터뷰는 바로 이런 편견과 오해 속에서 시작되었다. 한 시간을 예정했던 인터뷰는 두 시간을 훌쩍 넘겼고, 1회 분량을 이미 넘어선 대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마쳐지지 않았다. 인터뷰이당, 한 편의 기사가 원침임에도, 그 원칙을 깨면서까지 2회에 걸쳐 낸시랭의 인터뷰를 연재한다. 몇 번에 걸쳐 인터뷰 전문을 읽어 보며, 그녀와 나눈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갖는 편견, 당연한 거예요
김태훈 : 제목을 보고 오셨겠지만 ‘김태훈의 편견’이에요. 나의 편견일 수도 있고 세상에 대한 편견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는데요. 세상 사람들이 낸시랭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또는 실제 낸시랭이라는 한 인간에 대해서 가장 많이 갖고 있는 편견이 뭐라고 생각해요?
낸시랭 : 별로 생각을 안 해봐서(웃음).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얘기하는 게 4차원을 넘어 8차원이다, 되게 이상한 것 같다?! ‘왜 저런 말이나 행동이나 작품을 해서 스스로 돌을 맞을까?’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김태훈 : 대중들은 연속성 안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파편화된 또는 하나의 이미지로 드러나는 부분들을 보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낸시랭 : 아, 그 당시의 뉴스라든지?
김태훈 : 그렇죠. 인터넷 뉴스, 포털 사이트에 떠 있는 사진 한 장과 짤막한 캡션이라든지 또는 뉴스에서의 어떤 단면이라든지, 그런 것만 보게 되니까 전체적인 이해에 대해서 굉장히 약해지는 건 사실인데요. 그걸 분명히 알고 있을 것 같아요.
낸시랭 : 맞아요.
김태훈 : 낸시랭이라는 캐릭터는 이미 방송을 오래 했고, 그래서 자신이 어떻게 비춰지는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이 보여요. 일종의 전략일까요? 아니면 천성이 그런 걸까요?
낸시랭 : 천성이 그래요.
김태훈 : 그 부분이 굉장히 놀랍거든요. 왜냐하면 처음에는 그것이 하나의 독특한 캐릭터로서 자연스럽게 보여진 것이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있는 대중적 공간에서 활동하다 보면 신경이 쓰일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낸시랭 : 작품을 하면서 예술을 통한, 팝아트적인 걸 통해서 소통하고 SNS도 또 다른 텍스트 아트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걸로 소통하고 피드백 받는 걸 즐기기는 해요. 하지만 저의 사적인 행동에 대한 피드백 때문에 흔들리는 건 없어요.
김태훈 : 이런 건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퍼포머로서 퍼포먼스를 하는 것도 있지만, 페인터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설치미술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낸시랭이라는 개인의 캐릭터가 너무 강한 나머지 작품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덜 갖는다거나, 혹은 그런 작품 부분들에 포커싱이 덜 된다는 걸 인식할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은 변하지 않고, 처음에 데뷔할 때와 같이 지금도 계속 가고 있단 말이에요.
낸시랭 : 맞아요, 알고 있어요. 그리고 당연한 거예요. 그런데 제가 미술계에서 공식적인 데뷔를 한 지가 만 10년째 되는데, 아직까지 저 같은 아티스트는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누군가 나와 주기를 바랐어요.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나온다고 뉴스에 보도됐지만 금방 없어지고. 왜냐하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면서 이런 예술가가 되기는 많이 힘든 것 같거든요. 질문하신 내용이 뭐였죠?
김태훈 : 아티스트로서 자기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작품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낸시랭 : 아, 생각났어요. 일명 페임(fame)이라고 하죠. 알려진다는 것, 인지도가 높아진다는 것, 그러면 방송에 나오게 된다는 거잖아요. 미디어 노출은 각각의 분야가 있는데, TV에 나오는 변호사나 의사 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만 얘기하면 되지만, 미술 음악 무용 쪽은 크리에이티브하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정확한 정답이 없어요. 그러니까 자신이 캡처되는 한 뉴스를 다른 사람이 봄으로써 저를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그냥 받아들여야 되는 거고요. 그리고 제가 일면 제 그림보다 더 강한 걸 갖고 있어서 그림이 더 사람들에게 죽어져 보이고 제가 더 부각되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20대 때부터 이미 ‘걸어 다니는 팝아트’라는 별명을 얘기하면서 ‘낸시랭 자체가 작품’이라고 말해왔죠. 하지만 그때는 다들 웃고, 받아들이지 않고, 이해도 못했었어요. 작품이라고 하면 그림, 조각, 이렇게만 인식하고 있었거든요. 그때는 퍼포먼스라는 것도 대한민국 대중들에게는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죠. 미술계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요.
‘팝아트’는 진실을 바라보게 하는 예술
김태훈 : 낸시랭이 생각하는 팝아트라는 건 뭘까요. 팝아트가 시작된 역사라든지 또는 그 의미를 보면, 가장 동시대적인 언어를 가지고 그 동시대에 대한 은유라든지 직설적인 표현 방식에서 유의미함을 찾죠. 앤디 워홀이 소위 팩토리에서 생산했던 여러 작품들을 보게 되면 대량화된 공장 시스템을 대량 생산하는 작품으로써 은유했다거나, 또는 캠벨스프라든지 엘비스 프레슬리, 마릴린 먼로 같은 당대의 아이콘들을 계속해서 복제해냄으로써 시대를 풍자했다거나 이런 부분들이 있는데요. 그럼 낸시랭이 펼쳐 보이는 팝아트는 어떤 의미예요?
낸시랭 : 팝아트 자체가 컨템포러리(contemporary) 아트에 있는 여러 장르 중에 하나인데, 그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이라 잘 소통하니까 더 많이 알려진 작품을 대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팝아티스트 뿐만 아니라 모든 아티스트들은 거울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시대, 그 나라를 바로 반사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불편한 부분이 굉장히 많죠.
김태훈 : 어떤 면에서 불편하죠?
낸시랭 : 진실을 자꾸 바라보게 하니까요. 『불편한 진실』 이라는 책에서는 지금 지구와 여러 가지 정치에 있어서 인간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들을 지적하고 있잖아요. 말하자면 인간들의 편리함, 자신의 욕망, 욕심 때문에 불편한 걸 못 참는 거죠.
김태훈 : 그럼 낸시랭의 팝아트에서 지금 현실에서의 불편함을 표현하고 있는 건 어떤 건가요? 말하자면 낸시랭이 생각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때요? 현실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풍자나 은유나 직설을 쓸 수 있는 거니까요.
낸시랭 : 2012년 한 해에는 개인전 ‘내정간섭전’을 열어서 정치적인 콘셉트를 가지고 퍼포먼스 작업, 페인팅, 그리고 모든 SNS 활동들을 보여줬어요. 정치가 굉장히 핫하고 재밌게 보였거든요. 아티스트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걸 보여주기도 하지만 자신의 욕망, 꿈, 표현하고 싶은 개인적인 것도 같이 표현하기도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안에 있는 수많은 아티스트들 중에서 제가 위험하게 보일만큼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적인 맥락을 가지고 이야기도 하고 작품도 펼쳤는데요. 그걸 저는 굉장히 신나고 재밌는 맥락으로 펼쳤거든요.
김태훈 : 낸시랭이 생각하는 2012년의 정치는 신나고 재밌었다는 얘긴가요?
낸시랭 : 네, 신나고 재밌었어요.
김태훈 :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는 것이, 2012년의 정치가 신나고 재밌었다는 건 일종의 가치적인 측면이 들어갈 수 있어요. 말하자면 2012년의 정치가 긍정적이었다는 의미의 단어들이거든요.
낸시랭 : 정치 씬이 신나고 재밌었어요. 왜냐하면 모두가 다 흥분되는 상황이었잖아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누가 당선될까 궁금하기도 하잖아요. 그 해에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다들 붕 떠있었잖아요. 그런 게 되게 좋아 보였어요.
김태훈 : 아,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의 행위 자체가 하나의 축제처럼 보였다는 거군요. 그래서 신나고 즐거워 보였다는 의미죠?
낸시랭 : 네. 그리고 이미 돌아가신 대통령들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되면서 제가 박정희 기념관도 한 번 가보고, 그러니까 관심이 생기게 된 거예요. 제가 이제 연예계는 다 알게 되고, 친구들도 많고, 생태가 어떤지 알게 돼서 더 이상 궁금한 건 없는 거예요. 그만큼 예술가로서 호기심과 재미가 많이 떨어진 상황에서, 정치계 사람들이 연예인화 되고 있는 모습을 느끼게 된 거예요. 예전에는 무섭고 어려운 사람들로 느껴졌는데 마치 TV에 나오는 연예인같이 웃고, 춤도 추시고, 토크쇼에도 나오셔서 연예인들이 하는 걸 다 하시고 그런 모습들을 보게 된 거죠. 그게 비주얼 마케팅인지 뭔지 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런 정치적인 씬의 이미지가 너무 재밌고 신난 거예요.
김태훈 : 여기에서 하나의 의문점은 이런 거예요. 예술가라는 건 자기 시대에 대한 자기만의 사유가 존재하는 사람들이죠. 그렇죠? 그런데 신나고 재밌었다고 이야기한 건 감각되는 이미지죠.
낸시랭 : 처음에 동기부여가 그렇게 시작이 됐어요.
그러니까 ‘낸시랭화’라는 건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김태훈 : 저도 2012년에 ‘내정간섭전’을 봤는데요. 텔레비전이 켜져 있고 거기에서 정치인들이 뭐라고 떠들고 있는데 볼륨은 들리지 않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 내용에 대한 것은 알 수 없고 단지 현상으로써, 시각으로써 감각되는 것만을 가진 작품들처럼 느껴졌단 말이죠. 앤디 워홀의 팝아트가 굉장히 중요했던 것은 뭐냐면, 현상적으로의 부분들만을 이미지화 시켰다는 게 아니라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특징 또는 속성들로 깊게 들어가서 정확해 체크해 내고 그것을 작품의 형식으로써 은유했다는 것이 될 텐데요. 그런 면에서 2012년의 ‘내정간섭전’은 어떤 의미인지, 제가 정확하게 모르는 것이 바로 그런 부분들이거든요.
낸시랭 : 제가 우리 코코샤넬을 대선 후보자라든지 전 대통령들, 아니면 정치인들의 어깨에 다 얹어 드렸잖아요. 그게 다 낸시랭화 시킨 거예요.
김태훈 : 다 희화됐다는 뜻인가요?
낸시랭 : 네. 왜냐하면 너무 귀엽잖아요.
김태훈 : 그러니까 ‘낸시랭화’라는 건 정확하게 어떤 의미에요?
낸시랭 : 큐티, 섹시, 키티, 낸시. 앙!
김태훈 : 그러니까 모든 정치인들이 다 큐티, 섹시?
낸시랭 : 정치인들은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이잖아요. TV에서는 쉽게 보지만 막상 나타나면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거리감을 갖고 있다고 저는 느껴요. 거기에 우리 귀여운 코코샤넬을 해 놓으면 굉장히 대조적이 되면서 어려운 게 살짝 풀리는, 그걸 저는 하나의 팝아트 씬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정치하는 분들이지만 어쨌든 자신의 이미지들을 더 좋게, 긍정적으로 만들어서 결국 표를 얻어내야 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 많은 공약들이나 더 좋은 계획들, 일들을 많이 하시겠지만 결국 제일 빠른 게 이미지 마케팅인 시대에 와버렸기 때문에 점점 연예인화 되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 정치인들의 제스처, 액팅, 전략 같은 것들이 저는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그 자체를 투영시켜 준 거죠. 우리나라의 정치인 분들의 변화되는 부분을 표현했다고 할까요?
김태훈 : 정치인들의 속성도 결국은 인기를 요하는, 낸시랭이 얘기하는 연예인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낸시랭 : 그렇죠. 이 시대의 정치인들은 연예인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어느 나라 정치인이건, 대통령이 된다면 그 나라를 가장 훌륭하게 이끌어서 이름 석 자를 멋있게 남기고 싶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많이 알리고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인기를 얻어야 된다고 보여졌거든요. 그래서 정치인들의 수많은 스냅 사진들 중에서 가장 연예인 같이 포착된 사진들을 가지고 제가 유화로 그린 거죠. 거기에 코코샤넬을 올려놓고요.
김태훈 : 코코샤넬이 의미하는 게 모든 것을 낸시랭화 시켰다, 말하자면 연예인화 되어가는 정치인들에 대한 풍자였다고 이야기해볼 수 있겠네요.
낸시랭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요. 일단은, 약간 유연해지는 것?
김태훈 : 그것은 어쩌면 현실에 대한 반영이라기보다는 낸시랭의 바람이라고 봐야 되지 않나요?
낸시랭 : 어렵게 느껴지는 정치인들에게 코코샤넬을 얹어 놓는다는 게, 저는 굉장히 기발한 발상이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고전적인 기법인 유화를 통해서 팝아트를 하는 건 촌스럽다는 인식이 있어서, 재료적인 측면에서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었고요.
낸시랭이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이유
김태훈 : 대학교 때 미술을 전공하셨죠? 어떤 학생이었어요?
낸시랭 : 일단 1~2학년 때는 매일 놀았어요.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7명 있었어요.
김태훈 : 미국에서 공부했나요?
낸시랭 : 저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국제학교를 다녔고요. 거기에서 아이비 코스라든지 NHS 멤버까지 되고. 제가 공부를 되게 잘했다는 걸 자랑하고 있는 거예요(웃음). NHS와 아이비 코스는 전 세계 국제학교에 다 있어요. 이건 안 해도 되는 거예요. 그런데 왜 했냐하면, 아이비리그를 가려면 이걸 해야 플러스 알파가 크거든요. 저는 예일대 페인팅과를 가고 싶었기 때문에 계속 했던 거예요. 그런데 제가 무남독녀 외동딸이어서 부모님의 반대로 한국으로 끌려온 케이스거든요. 저희 엄마가 여장부세요. 그래서 사업이든 모든 걸 다 엄마가 하셨거든요. 그런데 저를 이화여대 영문과에 입학시키길 바라셨던 거예요. 그냥 시집 잘 가서 평범한 삶을 살기 바랐다고 얘기하셨어요. 그런데 그걸 뿌리치고 홍익대 미대를 가게 된 거죠.
김태훈 : 왜 기대를 뿌리쳤나요?
낸시랭 : 예일대 대학원을 가겠다고 했을 때, 그 즈음 저희 집이 망했어요. 그래서 저한테 큰 기로가 있었어요. 아티스트의 꿈이 있는데 아트를 해야 될 것이냐, 그런데 집도 망하고 엄마도 아프시고, 암이 계속 재발되는 상황이어서 정말 큰 갈등을 했죠. 그 때 깊은 성찰을 통해서 결심을 내리게 된 거예요.
김태훈 : 깊은 성찰이라면?
낸시랭 : 어떻게 살아야 될까, 내가 원하지 않는 회사를 출퇴근 하면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일해야 하나? 그 때까지 내가 원하는 최대치의 돈을 벌 수 있을까? 그게 안 된다면 포기하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트에 올인 한 거죠. 그렇게 시작되다 보니까 제가 하는 모든 말, 행동, 작품, 맥락이 흔들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질문하셨던 것처럼 사람들의 생각이나 평가, 이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아티스트가 아니라 누구든지 진정성을 가지고 자신이 생각하는 걸 계속 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줄 날이 온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방해 무리들이 여러 가지 스타일로 모든 걸 바꿔놓고 말도 안 되는 식으로 나쁘게 퍼트려 놓아도, 저는 항상 선은 승리한다고 믿거든요.
김태훈 : 기독교적인 생각이네요? 선은 승리한다.
낸시랭 : 저 크리스천이에요. 그것도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모두 알고 있다. 결국 예술은 돈이 안 된다는 것
김태훈 : 한국에 와서 홍대를 들어갔죠. 그래서 미술을 전공하게 됐는데, 그때 어떤 학생이었어요?
낸시랭 : 잘 놀았어요(웃음).
김태훈 : (웃음) 학교가 미대였기 때문에 대학생활에서의 4년이 굉장히 중요했을 것 같아요. 이후의 작품 세계를 펼치는 데 있어서도 그렇고요.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준 작가나 예술사의 사조가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낸시랭 : 제가 제일 존경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피카소, 달리, 워홀 세 명이에요.
김태훈 : 다 자기 장르를 개척한 인물들이죠?
낸시랭 : 그렇죠. 더 훌륭한 아티스트도 많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첫째로 단명하지 않았어요(웃음).
김태훈 : 오래했죠?
낸시랭 : 네. 두 번째로는 다작을 남겼고 자신만의 획을 그었어요. 세 번째는 여색이에요. 물론 워홀은 게이이긴 했었지만, 어쨌든요.
김태훈 : 앤디 워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죠. 에디 세즈윅 같은 그의 뮤즈도 있었으니까요.
낸시랭 : 그렇죠. 어쨌든 스트레이트 맨은 아니었다는 건 확실한 거고요. 그런 부분들도 그렇고, 그 시대에서도 업타운 다운타운 셀러브리티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었잖아요. 부와 명성도 함께 얻었고요. 제가 반 고흐의 작품은 싫어하지 않지만 아티스트로서 그런 삶은 싫다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많이 했어요.
김태훈 : 아마도 그 점이 인터뷰에서 나올 때마다 가장 많이 공격을 받는 지점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술적인 측면에서의 사업적인 성공도 물론 중요하겠죠. 그런데 사업적 성공이 없는 예술은 하지 않겠다는 쪽으로도 읽힐 수 있다는 말이죠.
낸시랭 : 아니죠. 저는 사업적 성공이 안 되는 전시들을 이미 했잖아요(웃음).
김태훈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고흐적인 삶은 싫다, 나는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라고도 이야기했어요.
낸시랭 : 그렇죠. 부적인 측면도 그렇고 명성도 그렇고요. 저는 사람들이, 특히 대한민국 사람들이 예술가라고 하면 ‘시니컬하고, 영혼에서 쥐어짜서 작품을 탄생시키고, 가난하다’고 하는 인식과 이미지가 너무 싫어요.
김태훈 : 1980~90년대까지 있었던 인식이겠죠?
낸시랭 :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돈 없으면 작품 못 해요.
김태훈 : 아니, 사람들의 인식이요.
낸시랭 : 인식도 마찬가지죠. 지금은 많은 연예인 분들도 아티스트로 평가받잖아요. 그러한 아우라 때문에 긍정적으로 바뀐 것인지, 결국은 예술이 돈은 안 된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어요(웃음).
김태훈 : 예술이 돈이 안 되지만 그럼에도 명성도 얻고 싶고, 성공한 사업가적인 측면에서의 예술가도 되고 싶다는 이야기인데요. 예술이 돈이 안 되면 어떻게 돈을 벌어요?
낸시랭 : 그러니까 팝아트가 많은 콜라보레이션 작업들을 통해서 부와 명성을 얻게 되는 것.
김태훈 : 콜라보레이션 작업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낸시랭 : 가장 대표적인 게,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이 마크 제이콥스라는 패션 디자이너와 함께 한다거나,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일본의 세계적인 팝아티스트와 같이 하면서 어마어마한 히트를 쳤어요. 그 이후부터 롱샴, 프라다, 에르메스 등이 점점 팝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많이 하기 시작한 거예요. 결국 브랜드의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서 아티스트의 영혼을 사는 거죠.
김태훈 : 외국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경우가 많죠. 샤토 무통 같은 경우는 와인의 레벨 자체도 피카소의 그림을 가져다 쓴다든지.
낸시랭 : 그런 것도 같은 방식이죠.
김태훈 : 낸시랭 씨는 쌈지라는 브랜드와 계약을 맺어서 상업적 활동과 예술적 활동을 결합하는 실험도 했었죠.
낸시랭 : 국내에선 공식적으로 아티스트와 기업이 콜라보레이션을 한 게 최초였죠.
김태훈 : 어떤 일들이 가장 재밌어요? 순수하게 자신만의 예술을 하는 것이 더 재밌어요, 아니면 콜라보레이션을 하면서 팀 작업을 하는 것이 더 재밌어요?
낸시랭 : 팀 작업이 너무 재밌어요. 처음에는 그게 힘들었어요. 경험도 없고 내 마음대로 안 돼서 진행이 잘 안 됐거든요. 그리고 처음에는 모두가 프로의 수준이 아니니까 더 힘들죠. 그런데 점점 해나갈수록 갖춰지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내가 생각하고 기획한 프로젝트대로 만들어져서, 나의 작품이 되는 것과 동시에 갑에게도 이익을 주고 나도 이익을 가져가게 되는 윈-윈 콘셉트가 되잖아요. 사람들한테 즐거움도 주고, 긍정적인 무언가를 주게 되는 결과가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개인 작업보다 더 신나는 거예요.
김태훈 : 사업적인 틀이기는 하지만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 혼자서 하는 작업들보다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과 일을 할 수 있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신난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그것이 팝아트의 기본적인 색깔과도 잘 맞는 작업일 수도 있겠네요. 그런 작업들 중에서 가장 재밌었던 작업 하나만 이야기한다면 뭐가 있을까요?
낸시랭 : 제가 쌈지와 패션 콜라보레이션을 해서 ‘낸시랭 라인’을 론칭하면서 옷, 구두, 가방을 다 선보였었어요. 그때 청담동에서 ‘낸시랭 패퍼먼스’라고, 패션쇼와 퍼포먼스를 함께 해서 보여드렸었는데요. 그게 가장 오랜 기간이 걸렸고, 제가 패션을 좋아하니까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어서 제일 재밌었죠.
건전한 비평,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고친다
김태훈 : 사람들에게 좀 다쳐본 적은 없나요? 몇몇 사람들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어요.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 사람들이 사는 건 낸시랭의 아트가 아니라 낸시랭이라는 명성이라는 거죠. 낸시랭이 만든 작품 자체에 대해서 집중하는 경우도 있지만 ‘낸시랭이 합니다’라는 이슈를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요. 그랬을 경우에 당혹스러웠던 경험은 없었나요?
낸시랭 : 전혀 없어요. 다 시기, 질투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심리라는 게 그럴 수밖에 없어요. 만약에 저의 경우와 반대로 작품만 계속 잘 되고 작가는 너무 아니었다면, 모두가 그 작가를 조롱하고 비난할 거예요. 인신공격이라든지 무엇이 되었든(웃음).
김태훈 : 물론 그런 측면은 저도 이해해요. 댓글을 보게 되면 낸시랭의 작품을 본 적도 없이 단지 자신들의 인상만을 가지고 비난하는 악플러들도 굉장히 많죠. 저 같은 경우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인가 이야기할 때, 그것을 단순한 질투와 열등감과 인신공격이라는 쪽으로 다 이야기할 수는 없잖아요.
낸시랭 : 그럼 몰라서 그런 거겠죠. Don’t know!
김태훈 : 자기 작품에 대한 자신감인가요? 아니면 내 작품은 남들이 비난이나 비평을 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낸시랭 : 전자죠, 세상에 완벽한 건 없어요.
김태훈 : 완벽한 게 없다면, 남들의 비평과 비난도 감수할 수 있는 부분 혹은 거기에 대해서 나름대로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낸시랭 : 감수는 하죠. 비평을 많이 하는 건 정말 좋고요. 그런데 잘 모르고서 비난을 하는 건 대화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그건 아니라고 봐요. 그래서 그냥 비난만 하는 건 시기, 질투라고 보고, 그나마 제 작품들을 보고 ‘난 이렇게 생각해서 별로라고 생각한다’라고 비평을 하는 건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그런 비평이 조금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니까 정말 감사하죠.
김태훈 : 그렇게 건전한 비평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인상적이었거나, 모르고 있던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해줬던 비평이 있었나요?
낸시랭 : 지금 생각나는 게 없는데요. 그러한 비평들이 안 좋은 얘기들이라면 일단 듣기는 싫은데, 저는 그게 다 피와 살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로 실행에 옮겨서 고쳐요. 그렇게 생각되지 않으면 그냥 흘려보내고요. 나랑 안 맞고, 내가 고칠 부분이 아니고, 저 사람이 다른 맥락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판단하는 거죠. 그런데 저와 단독으로 만나서 얘기한 게 아니니까 제가 찾아가서 대화를 할 만큼 의욕을 보일 필요는 없죠.
낸시랭 : 제 작품에 있어서 자부심을 갖는 이유가, 제가 2007년에 파리의 유명한 갤러리 중에 한 곳에서 초청을 받아서 개인전을 했어요. 그때 파리는 낸시랭을 전혀 몰랐죠. 그런데 ‘메이드 인 코리아’ 전이라고 우리나라에서 유명하신 아티스트들과 함께 4~5명이 그룹전을 열었었는데 거기에서 제 작품만 다 팔린 거예요. 프랑스 갤러리 측에서 저의 개인전을 열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개인적으로 이메일들이 오고 갔어요.
김태훈 : 굉장히 기분이 좋았겠어요.
낸시랭 : 원래 저의 대표작인 ‘터부 요기니’ 시리즈는 한국에서도 많이 컬렉팅이 되고 사람들이 알고 좋아하지만 ‘파리에서도 내가 표현하고 싶어 하는 걸 같이 느끼는구나’ 싶어서 정말 기뻤죠. 그리고 이후에 루브르 뮤지엄의 디렉터 드미트리 살몬이 2년 동안 기획해서 앵그르 뮤지엄에서 피카소, 베이컨, 앵그르와 같은 존경하는 작가들의 작품들과 함께 제 작품이 같이 걸렸어요(‘앵그르와 근대인들(Ingres et les Modernes’ 전시회). 제가 최연소 작가였어요. 전 세계의 작가들, 그리고 루브르 뮤지엄에 소장된 작품들과 함께 굉장히 큰 전시를 했다는 것에 대해서 저는 너무나 영광스러워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어요.
김태훈 : 왜 그럴까요?
낸시랭 : 관심이 없어요.
김태훈 : 글쎄요. 낸시랭이 명성을 가지고 있는, 충분히 이슈화시킬 수 있는 인물인데, 왜 그랬을까요?
낸시랭 : 우리나라에서 미술을 하는 아티스트 중에서 그런 작품으로 전시한 사람은 아직까지 없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전시회 디렉터도 루브르 뮤지엄의 디렉터였고요. 그런 부분을 더 기사화해줄 수도 있었겠지만 전혀 없었어요. 뭔가 제가 그렇게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되는 건 싫은가 봐요. 그렇게 되면 참을 수가 없는 걸까요?
김태훈 : 글쎄요. 미디어는 사실 뉴스를 팔아먹고 사는 매체들이죠.
낸시랭 : 그래서 제가 ‘관심이 없구나’ 이렇게 말씀드린 거예요.
김태훈 : 그런데 왜 기사가 될 수 있는 것을 보도하지 않았을까요?
낸시랭 : 오죽하면 <박경철의 공감 80분> 생방송을 할 때 박경철 원장님이 얘기를 해주셨어요. 제가 얘기 좀 해 달라고, 나라에서도 굉장히 칭찬받을 일인데 어떻게 기사화가 되지 않냐고 말씀드렸거든요. 그런데 박경철 원장님이 말씀을 해주셨는데도 기사가 나가지 않았어요.
김태훈 : 그 문제는 조금 생각해볼 만한 문제네요. 세상 사람들의 문제를 떠나서 세상 사람들에게 뉴스를 전달하는 미디어가 낸시랭의 작은 퍼포먼스, 예를 들면 시상식장에서 넘어지는 퍼포먼스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얘기한 몇 마디 이야기는 크게 다루면서 낸시랭이라는 아티스트가 갖고 있는 예술적 성취라든지 또는 예술적 활동에 대해서는 왜 다루지 않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낸시랭 : 나눠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말씀하신대로 편견인 거죠.
낸시랭 인터뷰는 2회로 이어집니다.
http://ch.yes24.com/Article/View/24063
기획_ 엄지혜 기자
정리_ 임나리
정리_ 임나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1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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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 듣고, 보고, 읽고를 통해 세상을 생각해본다. 삐딱한 편견으로 40여 년을 살았고, 그 편견을 깨기 위해 나머지 시간을 쓰려고 노력중이다.
OJT
2014.01.29
그렇지만 작품을 만들고 구상하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노력을 기울였을지는 모르겠네요. 작품들이 다소 가벼워 보이는 것은 제가 예술계의 까막눈이라서 그런 것인가요?
천사
2014.01.25
호랑냥이
2014.01.24
냉철하면서도 조리있게 자신의 생각을 잘 피력하는 사람인 김태훈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재미있어 칼럼을 끝까지 읽게 되었네요. 전혀 다른 사람인 두 사람이 긴 시간 서로의 다름을 "틀림"이 아닌 "차이"로 인식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우리 시대 많은 사람들이 이 둘과 같은 모습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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