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저를 데리고 청계천 헌책방에 데리고 가신 적이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골목을 헤집으며 자그마한 헌책방에 들어갔는데, 퀴퀴한 종이 냄새가 진동을 하더군요. 그런데 그게 싫지가 않았어요. 오히려 달콤했어요. 고개를 돌려보니 헌책이 빈틈없이 쌓여 있고 채 풀지 않은 책 꾸러미가 여럿 보였습니다. 별천지 혹은 외딴 섬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책을 뒤적였던 것 같습니다. 책에 빠져들기 시작한 거죠.”
“본격적으로 책 읽기에 탐닉하기 시작한 건 대학 신입생 때였던 것 같아요. 학교 근처에 북 카페가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북 카페 태동기’였다고 할까요. 커피 향과 음악이 흐르는 북 카페에서 소설이며 에세이, 자기계발서 등 다양한 장르의 서적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책의 낱장을 찬찬히 넘기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책을 출간하면 자주 가던 북 카페에 제 책을 기증하곤 합니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딱히 없습니다. 사실 전 모든 책은 나름대로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굳이 말씀 드리자면 ‘여행지를 고를 때의 기준’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제 경우 여행지를 선택할 때 이름난 곳은 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남들이 좋다는 곳을 선호하기보단 소중한 사람과 추억을 쌓고 싶은 곳을 택합니다. 인적이 붐비는 곳은 피하는 편입니다. 책을 선택할 때도 비슷해요. 유명한 저자의 신작이나 많이 팔린 책보다는 제 눈길을 잡아 끄는, 뭔가 귀중한 문장이 녹아 있을 것만 같은 책을 집어 들곤 해요. 비교적 직관적으로 선택하는 편입니다.”
이기주 작가에게는 글을 쓰는 동안,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있던 작품이 있다. 후지와라 신야의 에세이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에서 작가는 주변 인물들과의 만남, 이별 같은 ‘인연의 순간’을 포착하려 애쓴다. 이기주 작가 역시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 를 쓰면서 스스로의 일상과 주변인들의 삶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들의 삶의 궤적을 솔직하게 묘사하면서 꿈과 희망의 의미를 찾고자 했고, 또한 행복에 대한 고민과 물음을 독자 분들에게 던지고자 했다.
서재에 이름을 붙인다면, ‘나를 돌아보는 후시경’으로 짓고 싶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운전자는 후시경(백미러)을 봐야 한다. 후시경을 통해 차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뿐 아니라 지나온 길을 돌아볼 수도 있고, 어떤 길을 거쳐 왔는지를 확인해야 앞으로도 제대로 나아갈 수 있다. 그건 차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책의 행간 곳곳을 탐험하는 시간은 이기주 작가의 삶에서 후시경 같은 역할을 한다. 이기주 작가는 “책을 읽으면서 지나온 길을 되짚어보고 내 위치를 확인한다. 그런 뒤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재설정하곤 하기에, 서재는 내게 후시경”이라고 말한다.
최근 『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 을 집필한 이기주 작가는 “사람에게 품격(品格)이 있듯 말에는 격(格)과 품(品)이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언품(言品)’, 작가는 이 책이 독자들의 언품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기주 작가는 『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 에서 상대의 말을 진심으로 듣는 자세, 말속에 진심을 녹여내는 태도 등을 강조하려고 노력했다. 말이란 것은 기교가 아닌 한 사람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지 않고선 말이 달라지기 어렵다. 작가는 독자들이 이 책을 덮는 순간, 스스로 자신의 화법과 말투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떠올리길 바란다.
“늘 사람들의 ‘말’에 주목하는 편입니다.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거리를 걸으면서 귀를 쫑긋 세운 채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는 버릇이 있습니다. 낯선 이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말의 가치와 무게, 화법의 중요성을 깨닫기도 합니다. 이번에 대화법 책을 출간했으니, 다음 번엔 입을 움직여 잘 말하는 법이 아닌 귀를 기울여 잘 듣는 법, 그러니까 ‘경청(傾聽)’에 대한 책을 쓰고 싶습니다. 글을 쓰는 데 참고할 만한 서적을 차근차근 읽어나갈 계획입니다.”
명사의 추천
사기
사마천 저/김원중 역 | 민음사
사마천의 생애는 그가 지은 ‘사기’ 속 인물들만큼이나 드라마틱합니다. 사마천은 치욕적인 형벌인 궁형을 당한 뒤 사기를 써내려 갑니다. 사기는 단순한 역사서 이상의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학 교과서’라고 부르고 싶네요. 학창 시절, 사기 속에 등장하는 개인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엿보면서 삶에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저/김종길 역 | 민음사
사랑과 복수라는 통속적인 소재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광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을 다 읽고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뿐 아니라 사람 마음속에 숨어 있는 증오의 감정까지 그야말로 처절하게 묘사돼 있지요. 사춘기 때 처음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히는 책인 것 같아요.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 저 | 샘터
고(故) 장영희 교수가 그녀의 삶과 결부된 시와 소설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소개한 책입니다. 장영희 교수의 글은 참 따듯합니다. 선물 받은 책을 기차 안에서 읽었는데, 아침 이슬에 촉촉이 젖은 숲을 거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리엔탈리즘
Edward W. said 저/박홍규 역 | 교보문고
팔레스타인 출신의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저자는 서구의 시선에 가로놓여진 편견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지적합니다. 대학 시절 이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이 참 많았어요. 평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점차 다른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인도방랑
후지와라 신야 저/이윤정 역 | 작가정신
작가의 독특한 문장과 사진 촬영 기법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작가의 문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담담함’입니다. 후지와라 신야는 인도를 찬양하지도, 동정하지도 않아요. 그저 자신만의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삶과 생명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글과 사진이 살아 꿈틀거리는 여행기라고 할까요.
고 포인트
마이클 유심 저/안진환 역 |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인생을 살다 보면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지요. 이 책은 그 ‘선택의 순간’에 대해 면밀하게 다루고 있어요. 책장을 넘기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저자는 산불 현장에서부터 남북전쟁 등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을 알려줍니다.
그랑 블루
뤽 베송/장 르노 | 블루키노
뤽 배송 감독의 ‘그랑 블루’라는 영화를 가장 먼저 꼽고 싶습니다. 프랑스의 누벨이마주(Nouvell image)를 대표하는 뤽 베송 감독을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인데요. 스토리는 단순해요. 영화는 두 남자가 질투하고 인정하고 또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드넓은 푸른색 바다와 함께 잔잔하게 흐르는 에릭 세라의 OST가 감동을 더하는 영화입니다. 아마 포스터만 봐도 ‘아, 이 영화구나!’ 하실 겁니다.
러브 어페어
엔니오 모리꼬네 /워렌 비티/아네트 베닝 | 워너브러더스
한때는 길거리를 지나가다 이 영화의 배경음악만 들어도 설레던 때가 있었습니다. 러브 스토리, 멋진 장면, 아름다운 음악. 모든 게 다 있는 ‘로맨스 영화’의 고전이죠. 영화 속 주인공들은 첫눈에 서로를 향해 끌리지만 성급하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아요. 뭐랄까. ‘느리지만 고귀한 사랑법’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할까요. 아, 영화 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Piano Solo’가 귓가에 맴도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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