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1박 2일>은 우리에게 말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조금 더 기다리겠다고, 그러니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있겠다고,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고, 원할 때면 언제든 함께 떠날 수 있다고…….
글ㆍ사진 전건우
20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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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곰 같은 예능

그런 친구들이 한 명씩은 있기 마련이다. 딱히 잘 생긴 얼굴도 아니고 기똥찬 말솜씨로 주위를 사로잡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아서 이것저것 베풀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왠지 정이 가는 친구. 몇 달, 혹은 몇 년씩 안 보고 살아도 그만일 것 같은데 또 어느 순간 문득문득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친구. 수더분한 인상에 착한 마음, 그리고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는 성실함까지 갖춘 친구. 각박한 세상 속에서 한 사발 약숫물이 되어주는 친구.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애틋한 녀석. 부산 사투리로 “빙신아!”라고 일갈을 하다가도 또 딱한 마음에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게 되는 그런 친구.

KBS의 대표 일요 예능인 <1박 2일>은 딱 그런 친구 같은 프로그램이다.

그러니까 언제더라, 2007년 여름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아주 우연히 텔레비전을 틀다가 <1박 2일>의 첫 방송을 보게 되었다. 그때는 <무한도전> 말고는 딱히 예능에 관심이 없던 터라 그 유명한 강호동이 새롭게 진행하는 <1박 2일>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어쨌든 나는 강호동의 꽥꽥 대는 목소리에 홀려서 채널을 고정하고 있었고, 이윽고 다른 멤버들과 여행길에 오르는 장면까지 쭉 보게 되었다. 여행지가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튼 ‘리얼 야생 로드 버라이어티’를 모토로 내세운 것 치고는 참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행지에 도착해서 감탄 좀 하다가 밥 먹고 잠을 자는 게 전부였으니 내 느낌이 그리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다음 주에도 <1박 2일>을 챙겨봤다. 거참 다시 봐도 심심하네, 하면서. 그 다음 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다음 주도, 또 그 다음 주도. 그때마다 내 감상은 언제나 같았다.

거참 심심하네.

복불복으로 벌칙을 받기도 하고 잠자리를 정하기도 하고 기상 미션과 그 외 다양한 미션들을 수행하기도 했지만 <1박 2일>의 기본은 여행지에서의 하룻밤이었다. 그러니 패턴이 똑같을 수밖에. 회가 거듭될수록 여행지 풍경에 대한 출연진들의 감탄사와 산지 음식을 먹은 후 내뱉는 이른 바 ‘맛 표현’까지도 비슷비슷해졌다. 요일은 다르지만 라이벌이라 일컬어지는 <무한도전>이 매 회 다른 포맷과 영리한 컨셉으로 시청자들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데 반해 <1박 2일>은 주구장천 한 우물만 팠다. 여행가서 놀고, 밥 먹고, 잠자기. 참으로 우직하고 어찌보면 답답하게.

<1박 2일>은 여우 같은 예능이 판치던 시기에 나타난 곰 같은 예능이었다. 시청자들과 머리 싸움을 하려 들지도 않았고 자극적인 장면으로 이목을 집중시키지도 않았다. 해외 촬영 등의 물량 공세를 퍼부은 적도 없었다. 첫 방송 모습 그대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웃고 함께 울었으며 또 함께 먹고 함께 잤다.

어딘가로 떠나서 먹고 잠을 잔 뒤 다시 돌아오는 일. 어쩌면 인생과도 비슷한 이 일을 <1박 2일>은 예능이라는 포장을 덧씌워 매 주 시청자들에게 보여 주었다. 한 때 이 순둥이 예능 프로그램이 모든 예능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건 한결같은 우직함과 우리네 삶과 닮은 특유의 컨셉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기가 막힌 ‘합’을 자랑했던 출연진들 간의 호흡도 한 몫했겠지. 다들 무탈하게 지냈던 그때 그 시절 말이다.


화려했던 날들은 지나고


<1박 2일> 시즌 2의 마지막 방송이 전파를 탔다. 시청률은 6.8%를 찍었단다. 과거의 영광을 생각하면 참으로 서글픈 수치다. 나만 해도 언젠가부터 <1박 2일>을 찾지 않게 되었다. 그게 강호동의 하차 전부터였는지 후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1박 2일>을 싫어하게 되었다기 보다 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에 자연스레 채널을 돌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사이 김승우를 맏형으로 하는 새로운 출연진들이 <1박 2일>을 이끌었다. 나는 매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한결 같은 이 예능을 시청했다. 때로는 케이블 TV에서 재방송으로 보기도 했다. 출연진은 바뀌었지만 프로그램은 여전했다. 전국방방곡곡 어디에 그렇게 숨은 여행지가 많은지 지치지도 않고 여행을 떠나는 그들이 대견하게도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식상하고 답답하다는 생각도 했다.

시즌 2에 들어서서는 식상함이 더해졌다. 왜 아니겠는가? 경쟁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진들이 초능력을 쓰고 각종 애니메이션이 넘쳐나는데. 심지어 아빠와 아들이 여행을 다니고 남자들이 제일 두려워한다는 군대를 2번 가는 모습이 전파를 타는데!

<1박 2일>의 시청률은 점점 떨어졌다. 딱히 기사를 챙겨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내 주위에서 <1박 2일>을 시청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나도 마찬가지였다. 채널을 돌리다가 슬쩍 몇 장면을 보는 게 다였다. 어차피 복불복 아니면 미션 해결이었으므로 굳이 집중해서 볼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보지 않아도 내 곁을 떠나지는 않겠지.’

<1박 2일>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예능에 질릴 때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겠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1박 2일>은 여행을 떠나고 또 돌아오겠지……. 아마 다른 시청자들의 마음도 비슷했으리라. 아이너리하게도 <1박 2일>의 낮은 시청률은 한 때는 득이 되었던 그 우직함에서 기인한 걸지도 모르겠다.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최근 몇 차례의 기사를 통해서 <1박 2일>이 시즌 2를 끝으로 종영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기사를 접하는 순간 마음 한 구석이 무척 허전했다. 아주 오랜 친구가 다시는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난다는 연락을 해 왔을 때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깨달았다. <1박 2일>은 내게 예능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무한도전>이 끊임없이 시청자들의 뇌를 일깨우는 프로그램이라면 <1박 2일>은 지친 뇌를 쉬게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이다. 언제든 내가 원할 때면 케이블 TV 어느 곳에서라도 <1박 2일>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 소소한 웃음, 그리고 끈끈한 동료애. 휴식 같은 그 모습에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비록 본방 사수를 하지는 못했지만 <1박 2일>은 그렇게 내 삶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시즌 2의 마지막 방송이 전파를 탄 지난 일요일에는 모처럼 제 시간에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시즌 1보다 훨씬 더 순해빠진 여섯 남자들이 모여 마지막 방송임에도 묵묵히, 또 우직하게 여행지를 소개하고 현지의 아이들과 만나 미션을 수행했다. 그 모습이 왠지 짠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오랜 여행이 시즌 3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비록 차태현과 김종민을 제외하고는 모든 출연진이 다 바뀌지만 그들은 또 똑같이 여행을 떠나고, 밥을 먹고, 게임을 하고, 잠을 자고, 돌아올 것이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며 떠나고 누군가는 눈물을 참으며 남는다.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는 여행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박 2일>은 우리에게 말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조금 더 기다리겠다고, 그러니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있겠다고,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고, 원할 때면 언제든 함께 떠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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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여행 #예능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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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ya007

2013.11.27

같은 이유로 1박 2일 참 좋아하던 애청자였는데,, 사실 저는 지금의 1박 2일이 예전의 우직함과는 또 다른 변질(?)이 있다고 봅니다. 참 안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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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um2

2013.11.27

꽥꽥 ㅋㅋㅋㅋㅋ 맞아요. 강호동. 근데 성시경 캡처사진 지못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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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우

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