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희망이 필요한 이유, <소원>
이준익 감독은 아동 성폭력 사건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 다른 시선,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전의 영화들이 ‘가해자의 처벌’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면 <소원>은 ‘피해자와 그 가족의 치유’를 영화의 중심으로 끌고 온다. 아동 성폭행을 다루는 다른 영화들이 어쩔 수 없이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사건 자체의 자극적인 부분은 최대한 배제하고, 사건을 겪고 그 사건을 극복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시선을 돌린다.
201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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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개봉하여 흥행에도 성공했던 <도가니>는 솜방망이 처벌에 가해자들이 득세하며 사는 우리나라의 현실, 그 처참한 바닥을 헤집어 놓았다. 그리고 2012년 <돈 크라이 마미>, 2013년 <공정사회>로 이어지면서 아동 성폭행을 다룬 영화들은 그 비극성을 강조하고 사회의 공분을 끌어내며, ‘정의’와 거리가 먼 사회를 향해 개인이 복수할 수밖에 없는 막막한 현실을 고발한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도저히 법과 정의의 심판은 믿을 수 없다는 국민들의 부정적인 현실인식의 공감대가 깔려있다.
2011년 <평양성> 이후 2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영화 <소원> 역시 아동 성폭행 사건, 게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조두순 사건’이 실제 모티브가 되었으니 꽤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셈이다. 게다가 2008년 조두순 사건은 그 참혹함뿐만 아니라, 사법 체계의 허술함을 보여준 판결 결과로 대중들의 공분을 샀던 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아동 성폭력 사건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 다른 시선,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전의 영화들이 ‘가해자의 처벌’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면 <소원>은 ‘피해자와 그 가족의 치유’를 영화의 중심으로 끌고 온다. 아동 성폭행을 다루는 다른 영화들이 어쩔 수 없이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사건 자체의 자극적인 부분은 최대한 배제하고, 사건을 겪고 그 사건을 극복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섣부른 희망이나 위로를 전하지도 않는다. 그는 하루아침에 산산조각이 나 버린 한 가족의 일상 속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 나간다.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이전 작품들을 통해 이준익 감독은 풍자 가득한 사극과 부활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현대극을 연출해 왔다. 사찰로 숨어든 건달의 갱생기 <달마야 놀자>, 지역 라디오 DJ로 전락한 퇴물 가수의 역전극 <라디오 스타>,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재결성된 힘없는 가장들의 이야기 <즐거운 인생>에서 이준익 감독은 나락에 빠진 인물들이 진창 속에서 연꽃을 찾거나 꽃피우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리고 그 판타지 속에는 거부할 수 없는 희망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신작 <소원> 역시 현대극의 범주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쉽게 희망을 이야기하기에 <소원>의 상흔은 쉽게 극복하거나 지울 수가 없다. 주인공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지독할 정도로 질기고 오래 지속된다. 소원이네 가족을 둘러싼 사람들, 이웃들은 대부분 선의를 가지고 위로의 손길을 내밀지만, 그 어떤 격려도 소녀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온전히 없던 것으로 지워낼 수 없다. 소원이와 그 가족들은 지속적으로 좌절과 마주한다. 그리고 아마 이들의 미래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 사실을 이준익 감독은 묵묵히 읊조린다. 영화 가득한 허무와 좌절의 기운 속에서도 어떻게든 극복하고 앞서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들의 노력 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물감 없이 터지는 유머와 웃음의 장치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위적으로 흘러갈 수 있었던 신파의 냄새를 지우고, 고난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로운 시선이 인물에게까지 가 닿는 햇살처럼 따뜻해졌고, 이준익 감독은 그 만큼 깊어졌다.
영화의 전반부를 통해 이준익 감독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깊어진 시선을 보여준다. ‘사건’ 이전 평범한 가족의 일상은, 사건 이후도 마찬가지로 이어진다. 삶의 이야기가 송두리째 변하긴 했지만, 가족들의 일상이 극적인 드라마로 가득하거나 과장된 슬픔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이준익 감독은 드라마를 만들어내기 위한 감정을 절제하고, 오히려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이후의 사람들의 심장 속으로 파고든다.
물론 사회적인 이슈를 피해갈 수는 없기에 언론의 과도한 취재 열기와 터무니없이 낮은 가해자의 형량 부분에서는 사회적인 목소리와 함께 공분을 느끼게 되지만, 그러한 정서는 <소원>의 이야기 속에서는 아주 작은 부분이다. 관객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쉽지만, 피해 당사자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준익 감독은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보다는 아동 성폭행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최대한 자극적이지 않게 다루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이준익 감독은 피해자의 상처에 자극을 줄만한 대부분의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자칫 신파로 흐를 수 있는 감정의 과잉도 통제하면서 절제의 미학을 통해 울컥 치솟는 감동과 따뜻한 휴머니즘을 선사한다. 억지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장치를 최대한 배제했지만, 어쩔 수 없이 동감하게 되는 인물의 고통 때문에 관객들은 함께 흐느껴 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은 함께 나누는 작은 손길과 따뜻한 시선이라는 이준익 감독의 조심스러운 메시지는 영화 곳곳에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절하게 잘 녹아들어 있다.
전달하는 메시지,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작위적이지 않은 감동 등 <소원>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참 착한 영화다. 비에 젖어 떨어진 연이 바닥에 붙어 찢기지 않고 비행기가 되어 새롭게 날아오를 수 있다는 감독의 착하고 따뜻한 시선은 여전히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여운을 남긴다. 세상이 나쁘고, 온통 나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사적 복수를 해야 한다는 공분의 정서 대신, 사고 당사자인 가족들의 회복 과정을 바라보는 <소원>의 시선은 충분히 따뜻하다. 여기에 절제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호흡도 <소원>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치밀한 감정묘사를 보여준 설경구, 엄지원과 함께 소원이를 연기한 아역 이레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소원이의 다양한 감정을 과장됨 없이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전한다.
너무도 힘든 순간과 마주했을 때 내 곁에 있는 누군가, 함께 눈물을 흘려주는 존재는 우리에게 그래도 살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준익 감독은 감독의 마음을 움직이는 다양한 영화적 연출법을 잘 알고 있지만, 진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과장된 극적 설정 대신 진정성 어린 시선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영화에서 실천해내고 있다. 게다가 작위적이지 않지만 <소원>은 충분히 ‘극적’이다. 이는 진심이 이끌고 성취해낸 결과라 더욱 값지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준익 감독의 연출력은 깊어진 시선만큼이나 농익었다. 그가 돌아와서 무척 반갑다.
[관련 기사]
-여전히 미개한 사회를 향한 쓴 소리: <노리개>, <공정사회>
-<돈 크라이 마미> 성폭행 피해 엄마는 왜 잔인한 복수를 택했나?
-나의 살인은 당신의 법보다 정의롭다 - 이재익 : 『41』
-이준익 감독, 가장 아픈 소재지만 다룰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성범죄 원인과 해결방법을 찾다
2011년 <평양성> 이후 2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영화 <소원> 역시 아동 성폭행 사건, 게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조두순 사건’이 실제 모티브가 되었으니 꽤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셈이다. 게다가 2008년 조두순 사건은 그 참혹함뿐만 아니라, 사법 체계의 허술함을 보여준 판결 결과로 대중들의 공분을 샀던 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아동 성폭력 사건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 다른 시선,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전의 영화들이 ‘가해자의 처벌’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면 <소원>은 ‘피해자와 그 가족의 치유’를 영화의 중심으로 끌고 온다. 아동 성폭행을 다루는 다른 영화들이 어쩔 수 없이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사건 자체의 자극적인 부분은 최대한 배제하고, 사건을 겪고 그 사건을 극복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섣부른 희망이나 위로를 전하지도 않는다. 그는 하루아침에 산산조각이 나 버린 한 가족의 일상 속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 나간다.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이전 작품들을 통해 이준익 감독은 풍자 가득한 사극과 부활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현대극을 연출해 왔다. 사찰로 숨어든 건달의 갱생기 <달마야 놀자>, 지역 라디오 DJ로 전락한 퇴물 가수의 역전극 <라디오 스타>,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재결성된 힘없는 가장들의 이야기 <즐거운 인생>에서 이준익 감독은 나락에 빠진 인물들이 진창 속에서 연꽃을 찾거나 꽃피우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리고 그 판타지 속에는 거부할 수 없는 희망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신작 <소원> 역시 현대극의 범주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쉽게 희망을 이야기하기에 <소원>의 상흔은 쉽게 극복하거나 지울 수가 없다. 주인공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지독할 정도로 질기고 오래 지속된다. 소원이네 가족을 둘러싼 사람들, 이웃들은 대부분 선의를 가지고 위로의 손길을 내밀지만, 그 어떤 격려도 소녀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온전히 없던 것으로 지워낼 수 없다. 소원이와 그 가족들은 지속적으로 좌절과 마주한다. 그리고 아마 이들의 미래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 사실을 이준익 감독은 묵묵히 읊조린다. 영화 가득한 허무와 좌절의 기운 속에서도 어떻게든 극복하고 앞서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들의 노력 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물감 없이 터지는 유머와 웃음의 장치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위적으로 흘러갈 수 있었던 신파의 냄새를 지우고, 고난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로운 시선이 인물에게까지 가 닿는 햇살처럼 따뜻해졌고, 이준익 감독은 그 만큼 깊어졌다.
영화의 전반부를 통해 이준익 감독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깊어진 시선을 보여준다. ‘사건’ 이전 평범한 가족의 일상은, 사건 이후도 마찬가지로 이어진다. 삶의 이야기가 송두리째 변하긴 했지만, 가족들의 일상이 극적인 드라마로 가득하거나 과장된 슬픔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이준익 감독은 드라마를 만들어내기 위한 감정을 절제하고, 오히려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이후의 사람들의 심장 속으로 파고든다.
물론 사회적인 이슈를 피해갈 수는 없기에 언론의 과도한 취재 열기와 터무니없이 낮은 가해자의 형량 부분에서는 사회적인 목소리와 함께 공분을 느끼게 되지만, 그러한 정서는 <소원>의 이야기 속에서는 아주 작은 부분이다. 관객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쉽지만, 피해 당사자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준익 감독은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보다는 아동 성폭행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최대한 자극적이지 않게 다루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이준익 감독은 피해자의 상처에 자극을 줄만한 대부분의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자칫 신파로 흐를 수 있는 감정의 과잉도 통제하면서 절제의 미학을 통해 울컥 치솟는 감동과 따뜻한 휴머니즘을 선사한다. 억지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장치를 최대한 배제했지만, 어쩔 수 없이 동감하게 되는 인물의 고통 때문에 관객들은 함께 흐느껴 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은 함께 나누는 작은 손길과 따뜻한 시선이라는 이준익 감독의 조심스러운 메시지는 영화 곳곳에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절하게 잘 녹아들어 있다.
전달하는 메시지,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작위적이지 않은 감동 등 <소원>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참 착한 영화다. 비에 젖어 떨어진 연이 바닥에 붙어 찢기지 않고 비행기가 되어 새롭게 날아오를 수 있다는 감독의 착하고 따뜻한 시선은 여전히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여운을 남긴다. 세상이 나쁘고, 온통 나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사적 복수를 해야 한다는 공분의 정서 대신, 사고 당사자인 가족들의 회복 과정을 바라보는 <소원>의 시선은 충분히 따뜻하다. 여기에 절제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호흡도 <소원>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치밀한 감정묘사를 보여준 설경구, 엄지원과 함께 소원이를 연기한 아역 이레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소원이의 다양한 감정을 과장됨 없이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전한다.
너무도 힘든 순간과 마주했을 때 내 곁에 있는 누군가, 함께 눈물을 흘려주는 존재는 우리에게 그래도 살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준익 감독은 감독의 마음을 움직이는 다양한 영화적 연출법을 잘 알고 있지만, 진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과장된 극적 설정 대신 진정성 어린 시선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영화에서 실천해내고 있다. 게다가 작위적이지 않지만 <소원>은 충분히 ‘극적’이다. 이는 진심이 이끌고 성취해낸 결과라 더욱 값지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준익 감독의 연출력은 깊어진 시선만큼이나 농익었다. 그가 돌아와서 무척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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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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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그린키위
2013.10.11
nuguri83
2013.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