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아버지
길었던 4박 5일간의 황금연휴가 끝이 났다. 방송국에서는 연일 추석특집프로그램이라는 명분으로 여러 파일럿 프로그램들을 선보였다. 그 중에서 단연 돋보였던 것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었다.
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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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4박 5일간의 황금연휴가 끝이 났다. 방송국에서는 연일 추석특집프로그램이라는 명분으로 여러 파일럿 프로그램들을 선보였다. 그 중에서 단연 돋보였던 것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었다.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god가 국민가수가 되기까지는 재민이의 도움이 컸다. 신인 보이그룹이 아기를 돌보는 것에서 출발했던 파일럿 프로그램인
2000년도에 방송되어 큰 인기를 얻었던 이 프로그램이 10여년 후에는 연예인 부모의 친자녀로 소재가 바뀌었다. 바로 SBS의 <붕어빵>이다. 연예인의 자녀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 그친 것이 아니라 퀴즈와 에피소드를 말하는 아이들은 부모의 끼를 그대로 닮아 있었다. 오히려 부모 보다 예능감이 낳은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그렇게 인기를 끌던 연예인 자녀들을 스튜디오가 아닌 리얼버라이어티 형식과 접목한 것이 바로 MBC <아빠! 어디가?>이다.
이때부터 그동안 외면 받았던 ‘아버지’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항상 엄마 곁에 존재하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아버지가 아니다. 보편적으로 가족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기 때문에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어머니를 제외하고, 항상 일 때문에 바쁘고 그래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아버지와 아이들과의 관계를 여행이라는 상황을 통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추석특집 3부작으로 방송된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그동안 방송에 자녀를 노출하지 않았던 개그맨 이휘재와 가수 이현우, 배우 장현성,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이 2박3일간 아내 없이 자녀를 돌보는 것이다. 흔히 엄마 없이 아이를 돌보게 된 아빠가 저지를 법한 실수들을 네 사람은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쳤다면 뻔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휘재의 아버지가 엄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방송을 통해 알고 있었다. 선원이라는 직업 특성상 한번 배를 타면 2년 만에 집에 돌아오는 아버지, 마중 나온 아들을 안아주기는커녕 악수를 건넸던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는 자녀를 양육하는 모습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아버지와는 달리 다정다감한 아빠가 되고 싶었던 이휘재도 처음에는 쌍둥이와 그리 친해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혼자 보기에 버거울 수밖에 없는 쌍둥이들을 돌보며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엄마보다 아이를 더 잘 보는 아빠가 아니다. 다소 어설프고 서투를 수는 있지만 엄마와는 다른 아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정성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모습이 이휘재에게서 엿보였다. 특히 그의 아버지까지 삼대가 모인 상황은 압권이었다. 그의 말처럼 이제 머리가 희끗해진 할아버지는 무서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무뚝뚝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손자를 대할 때만큼은 여느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었고 이휘재에게 자신을 닮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 어떤 사과보다 더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이휘재의 쌍둥이가 조금 더 자라면 이현우의 아이들처럼 될까. 여전히 총각 같은 이현우는 생각보다 아이들을 잘 다뤘다. 그의 이미지와는 다른 아이들의 통통한 모습이 의아하기도 했지만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에서 부모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장현성은 친구 같은 아빠의 모습을 보여줬다. 가장 보편적인 아빠의 모습이기도 했다. 연기할 때는 이지적이고 차가운 모습을 종종 보여줬지만 집에서는 두 아들의 아빠에 지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딸바보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추성훈, 캐릭터를 그대로 실사화한 듯한 그의 딸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엄마를 찾는 아들들과는 다르게 딸이라서 그런지 아빠를 잘 따르는 모습에서 왜 그렇게 아빠들이 딸바보가 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주변부에 머무르면서 부각되지 않았던 아버지가 전면적으로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 주인공이 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가족 내에서 아버지의 설 자리가 작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이 최우선이었던 예전에는 돈을 벌어다주는 아버지의 영향력은 최고였다. 하지만 더 이상 경제발전이 어려워지자 아버지의 영향력 또한 작아졌지만 아버지들은 예전의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와 자녀들 간의 거리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것이 극에 달하자 현실에서는 어려운 아버지가 방송에서나마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직접 키우고 혼자 여행을 데리고 가면서 관계 회복에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사회적인 염원이 방송에 투영되어 시청자의 호응을 얻었고 이는 다시 시청자의 행동에까지 변화를 주게 될 것이다.
이제 막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아버지들, 이제 시작한 만큼 앞으로 어떤 미션을 수행하면서 얼마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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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필자
최창순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내딛은 신입기자. 한 후배는 한 번도 먹어 보지 않은 젤리 같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공연과 영화, 전시회를 보고 누리꾼들과 소통하는 지식소매상. 내가 쓴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대신 그래도 세상은 움직이고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되길 바란다.
onlyinmin
2013.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