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살아있다고? -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
미주리 주 한니발이 유명해진 것은 오직 작가 마크 트웨인이 자란 마을이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은 작은 강가 마을 한니발을 모델로 해서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비롯한 소설 속 세인트피터즈버그 마을을 그려냈다. 그러나 이런 동화 마을은 마크 트웨인의 생각에 전혀 걸맞지 않는다.
글ㆍ사진 앤 트루벡(저자, 문학 교수) & 메디치미디어 기획편집팀
201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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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거듭하며 미국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허클베리 핀을 읽고 배워왔다. 강둑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톰 소여를 미국 소년의 전형으로 떠올리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한니발은 아이들을 데려가도 좋은, 아주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마을처럼 보인다. 촌스럽고 유치하게 색색으로 칠한 마을, 남부식으로 예스럽게 느릿느릿 말하는 중서부 사람들, 그리고 옥수수 속대로 만든 담뱃대, 예쁘게 표지 장정을 한 트웨인 소설책, 모형 기차, 누비이불이 선반마다 가득한 공예품 가게를 상상했다. 실용적이면서도 엉뚱한 데가 있는 싸구려 잡화점에 일용품과 플라스틱 장난감이 쌓인 모습.


하지만 마크 트웨인의 한니발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샘 클레멘스(마크 트웨인의 본명)는 네 살이던 1839년에 한니발로 이사 왔다. 아버지 존 마셜 클레멘스는 힐 거리에 목조 주택을 지었다. 아버지 클레멘스는 변호사이자 치안 판사였지만 양쪽으로 노력해도 많은 돈을 벌지 못했다. 지은 집을 유지할 여력이 없어 1846년 클레멘스 가족은 길 건너 집으로 이사해 다른 가족과 1, 2층으로 나눠 살았다. 1847년 아버지가 죽고 나서 어머니가 구한 돈으로 가족은 다시 아버지가 지은 집으로 이사 간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남성 부양자라기보다 금전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또 당시 남부에서 자행되던 흑인 노예에 대한 폭력과 살인은 예민한 소년의 가슴에 상처로 남았다.

클레멘스는 열일곱에 한니발을 아예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았다. 자서전에서 그는 한니발을 “나른하고 질척이며 우울한” 곳으로 기억한다. 성장한 클레멘스는 작가가 되었고, 마크 트웨인이라는 가명 뒤로 숨으려 했다. 또한 소설은 소설일 뿐, 진짜는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톰 소여의 모험』을 자기 지시적 소설 기법의 유희로 끝맺는다. “이렇게 이야기를 끝내도록 하자. 이것은 순전히 소년의 모험기이므로 여기서 멈춰야 한다. 더 이상 끌고 가면 남자의 성장기가 돼 버릴 것이다. 청년에 관한 소설을 쓸 때 작가는 어디서 멈춰야 할지 정확히 알 수 있다. 결혼이다. 하지만 유년 시절에 대해 쓸 때는 가능하면 가장 잘 끝낼 수 있을 때 마쳐야 한다.”

마크 트웨인은 곧이곧대로 듣고, 순진하고 반어법을 모르는 미국인의 성향을 조롱하는 데 늘 앞장섰던 사람이다. 그는 철저하게 진정성과는 거리를 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니발의 집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반트웨인적인 동화 나라로 창조되어 있었다. 진실을 오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트웨인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그의 소설이 허구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하다. 마크 트웨인의 어린 시절 집 울타리는 하얗게 칠해져 있다. 그리고 앞에는 ‘사적지: 톰 소여의 울타리’라는 표시가 돼 있었다.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를 돋을새김한 안내판 맨 위에 둥그런 표지까지 붙여놓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절대 역사 유적지가 아니다.

트웨인이 이 모든 것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트웨인이 살아서 새로 복원된 동굴과 작가의 집을 보면 얼마나 혹평을 할지, 나는 상상이 간다.



* 마크 트웨인 집 (미주리 한니발) 주소

Mark Twain Boyhood Home and Museum, 120 North Main, Hannibal, Missouri 63401.
전화: 573-221-90l0 운영: Mark Twain Home Foundation. www.marktwain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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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 앤 트루벡 저/이수영 역 | 메디치미디어
‘작가의 집’을 소재로, 창작 공간을 우아한 사진에 담고 작가의 문학성을 예찬한 책들은 이미 여러 권 출간된 바 있다.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는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등 미국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 12명의 집을 방문하되, 작가의 집이 실제 작가의 삶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는지 찬찬히 뜯어본다. 문학 교수인 저자 앤 트루벡은 작가의 집이 실제 작가나 작품이 아니라 ‘기대되는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어떤 대가의 ‘문학 성지’에 대해서라도 과감하게 독설을 날린다.

 



관련도서_마크 트웨인 대표 작품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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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 #한니발 #톰 소여 #허클베리 핀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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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spring6

2013.07.14

내 마음속에 언제나 소년인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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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새

2013.07.14

청년이 주인공인 이야기의 끝은 결혼이고 소년모험담의 끝은 가장 적당할 때 끝내야한다는 부분이 인상깊네요. 톰 소여도 허클베리 핀도 여전히 늘 소년일 거라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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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트루벡(저자, 문학 교수) & 메디치미디어 기획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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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10여 년 넘게 긴 침체기를 겪었지만, 인생의 절망과 희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신념을 잃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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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

본명은 새뮤얼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이다. 미주리주에서 가난한 개척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4세 때 가족을 따라 미시시피 강가의 해니벌로 이사왔으며,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후 인쇄소의 견습공이 되어 일을 배우고, 각지를 전전하였다. 1857년 미시시피강의 수로안내인이 되었는데, 해니벌로 이사한 뒤부터 이 시기까지의 생활과 경험은 후일 작가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필명인 마크 트웨인은 강의 뱃사람 용어로 안전수역을 나타내는 '두 길'(한 길은 6피트)을 뜻한다. 1861년에 남북전쟁이 터져 수로안내인 일자리를 잃고 남군에 들어갔으나 2주일 만에 빠져 나와, 관리로서 네바다주로 부임하는 형 오라이언이 권하는 대로 서부행 마차여행에 동행했다. 그 후 광산기사와 신문기자로 일하다가, 만담과 만문(漫文)의 명수 아테머스 워드를 알게 되었고, 또 작가인 F.B.하트와도 사귀었다. 처녀 단편집 『캘리베러스군(郡)의 명물 뛰어오르는 개구리 The Celebrated Jumping Frog of Calaveras County』를 1867년에 출판하게 되고, 야성적이며 대범한 유머로 명성을 얻었다. 또한 유럽과 성지를 도는 관광여행단에 참가하여 여행기를 신문에 연재하였다가, 귀국한 후에 다시 정리하여 『철부지의 해외 여행기 The Innocents Abroad』(1869)를 출판하였다. 이 책에서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으로서 그는 유럽의 역사와 예술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것을 모른다고 해서 스스로를 낮출 필요는 전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마크 트웨인은 다른 어떤 미국 작가보다도 적극적으로 문학의 힘을 발견했고, 미국적 장면과 모국어의 가능성을 발견한 작가이다. 헤밍웨이 "모든 미국 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웨인이 성공적으로 미국 생활을 포착해 낸 것은 그의 경력과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남북전쟁 전 미국의 건립 시기에 중부에서 태어난 트웨인은 현대식 국가의 형성기에 살았으며, 서부 개척지의 관습뿐만 아니라 복잡한 동부의 거실이나 회의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미국 및 세계 문학에서 대작으로 손꼽히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사회부적응자인 허크가 도망 중인 노예 짐과 함께 뗏목을 타면서 시작된다. 이 모험은 인종과 미국의 비극적 결함이라는 핵심 문제와 관련된 트웨인의 사회 풍자를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그들의 항해가 허크에게는 일종의 통과의례가 된다. 따라서 짐의 인간성을 대변하며, 또 위엄성 및 자유에 대한 주장을 대신하여 지옥에 가려는 허크의 결정은 그들의 모험을 심화시켜준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을 진정한 미국 신화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톰소여의 모험 The Adventures of Tom Sawyer』(1876) 『미시시피강의 생활 Life on the Mississippi』(1883) 등의 걸작을 썼으며, 특히 『허클베리 핀의 모험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1884)은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자연아의 정신과 변경인(邊境人)의 혼(魂)을 노래한 미국적인 일대 서사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서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 『왕자와 거지』, 『불가사의한 이방인』 등은 중세 봉건주의 시대의 유럽을 무대로 하는 통렬한 사회 풍자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