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콜> 할리 베리, 미완의 흑진주, 꿈의 멘토로 거듭나길!
실시간으로 사건 현장을 접수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조던의 복잡한 내면은 할리 베리를 만나 더욱 빛난다. 흔들리는 눈빛과 긴박한 목소리 연기를 보자면 이 배우 참 괜찮다 싶은데, 영화도 영화 속 캐릭터도 충분히 만족하기에는 딱 2프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더 콜>은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지만, 할리 베리라는 배우에게 적합한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더 콜>이라는 영화는 할리우드가 할리 베리를 소모하는 방법, 혹은 할리우드 속에서 자신을 소진하는 할리 베리의 태도의 바로미터처럼 보인다.
글ㆍ사진 최재훈
201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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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 자신의 미흡한 대처로 납치된 소녀가 사망한 후 불안 증세에 시달리는 조던(할 베리)이 6개월 후 같은 범인에게 납치된 소녀 케이시(애비게일 브레스린)의 구조요청 전화를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911 콜센터와 납치된 케이시 사이에서 오가는 급박한 상황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는 영화 <더 콜>은 2004년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머시니스트>로 주목받은 후, 2010년 <베니싱>과 2012년 <알카트라즈> 등 주로 스릴러 영화를 연출해 온 브래스 앤더슨 감독의 장점이 잘 녹아들어 있는 영화이다. 교차편집의 긴박감과 촬영에도 꽤 공들인데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극의 흐름이 전형적이고 이야기의 전개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는 점, 영화의 결말에 주변 동료와 경찰의 도움 없이 할리 베리 홀로 살인범과 맞서는 무용담이 좀 뜬금없어 보인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밀폐된 두 개의 공간을 오가며 특별한 장치 없이 연기만으로 긴박함을 유지시키는 배우들의 연기는 만족할만하다.


케이시 역의 아비게일 브레스린의 얼굴이 낯익다 했더니 2006년 <미스 리틀 선샤인>의 그 사랑스러운 꼬마였다. 그녀는 어느새 17세 소녀가 되어 세계적 스타 할리 베리와 맞서도 부족함 없는 연기력을 자랑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사건 현장을 접수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조던의 복잡한 내면은 할리 베리를 만나 더욱 빛난다. 흔들리는 눈빛과 긴박한 목소리 연기를 보자면 이 배우 참 괜찮다 싶은데, 영화도 영화 속 캐릭터도 충분히 만족하기에는 딱 2프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더 콜>은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지만, 할리 베리라는 배우에게 적합한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더 콜>이라는 영화는 할리우드가 할리 베리를 소모하는 방법, 혹은 할리우드 속에서 자신을 소진하는 할리 베리의 태도의 바로미터처럼 보인다.


‘최초’와 ‘유색’의 굴레를 벗어나…….


<엑스맨>


<몬스터 볼>

미인대회 출신으로 타고난 미모를 자랑하던 할리 베리는 1991년 스파이크 리 감독의 <정글 피버>의 조연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마약중독자 비비안 역할을 맡았던 그녀는 실제로 1주일간 목욕을 하지 않으면서 배역에 몰입했다고 한다. 이후 에디 머피와 <부메랑>,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에도 출연했지만 흑인 배우에게 관대하지 않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10년 동안 그녀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2000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을 통해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계기를 마련했고, 2001년 도미닉 세나 감독의 액션, 범죄 영화 <스워드 피시>에서 존 트라볼타와 휴 잭맨 사이에서 더욱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주목받았다. 두 영화에서 할리 베리를 주목받게 만든 건 그녀의 연기력이 아니라 타이즈를 입은 탄탄한 몸매 혹은 과감한 노출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2001년 마크 포스터 감독의 <몬스터 볼>을 통해 할리 베리는 74년 아카데미 사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여배우라는 기록을 세웠다. 단순히 아름다운 흑인 여배우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사형수의 아내로서 지겨운 삶을 살아나가던 흑인 여성 래티샤가 아들까지 사고로 잃은 후 위안이 되어 준 남자가 남편의 사행집행관이었다는 다소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할리 베리의 섬세한 연기를 만나 눈물과 한숨의 촉감을 덧입었다. 아카데미 수상 전 할리 베리는 유색인종 최초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배우 도로시 댄드리지의 일대기를 그린 TV 영화 <도로시 댄드리지 소개하기>에 출연하면서 도로시 댄드리지를 자신의 멘토라고 칭한 바 있다. 그리고 아카데미 수상 소감을 통해 할리 베리는 유색 여성으로서 다른 유색 여성을 위하여 그들이 더 열심히 꿈꾸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그런 그녀의 야심찬 포부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아카데미 수상 이후 할리 베리의 작품 선택에는 배우로서의 욕심도 맥락도 없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계약이 된 <엑스맨> 시리즈는 차치하고서라도, 2002년 <007 어나더데이>의 본드 걸은 아카데미 수상 여배우의 후속작으로는 생뚱맞아보였고 2003년 <고티카>는 마티외 카소비츠와 할리 베리의 만남이 무색할 정도로 평이한 스릴러였다. 게다가 2004년 샤론 스톤과 함께 한 <캣우먼>이야말로 하나의 재앙이었다. 이 영화로 최악의 영화에 수여하는 골든 라즈베리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할리 베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시상식에 참여하여 조롱마저도 즐기는 듯한 자신감을 보였지만, 이후 불명예를 상쇄할 만한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2006년 제임스 폴리의 범작 <퍼펙트 스트레인저>, 2012년 배두나에게 묻혀버린 존재감 <클라우드 아틀라스>까지 할리 베리는 액션, 범죄, 스릴러, 블록버스터 등 할리우드의 상업영화에 어중간하게 안착하면서 정작 우리가 기대하는 것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가운데 2007년 수잔 비어 감독의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주목해볼만한 영화다. 유능하고 다정다감한 남자 브라이언이 거리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후, 남편과 친구를 떠나보내야 했던 오드리와 제리 사이의 로맨스 없는 위안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수잔 비어 감독은 잔인한 세상 속 ‘희망’이라는 위안을 관객에게 선물한다. 영화 속에서 할리 베리는 베니치오 델 토로와 함께 섹시함은 털어버리고, 잦은 클로즈업 속에 눈가의 주름과 음영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풍경화처럼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점은 오히려 육감적인 몸을 감추고, 황폐한 내면을 드러낼 때 할리 베리라는 배우가 이전보다 훨씬 더 돋보인다는 사실이다.


흔히 할리 베리를 ‘흑진주’라고 표현하는데 ‘흑진주’라는 단어는 예쁘고 재능 있는 흑인 여성에게 흔하게 붙일 수 있는 상투어이기도 하다. <몬스터 볼> 이후 스캔들과 스토커, 양육권 분쟁 등 현실 속 그녀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몬스터 볼> 이후 의외의 선택들이 그녀의 자발적 의사인지, ‘흑인’과 ‘차별’이라는 사회적 함의가 포함된 부차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할리 베리에겐 명예 회복이라는 큰 숙제가 남아있다. 진주는 조개가 고통과 인고의 세월을 견뎌 품어낸 영롱한 결과물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흑진주’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할리 베리에겐 너무 때 이른 과찬이었을 수도 있다. 할리 베리가 롤 모델이라 지칭하는 도로시 댄드리지는 오직 흑인 여배우에게는 ‘하녀’ 역할만 주어주던 할리우드에서 당당하게 주연은 물론, 1954년 <카르멘 존스>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흑인 여배우였지만, 슬럼프와 스캔들 사이에서 불행한 인생을 살다가 42세의 나이에 약물과다 복용으로 요절하고 말았다. 하지만, 올해 47세가 된 할리 베리는 여전히 아름다운 여성이다. 감동을 주는 배우가 될 기회도 아직 충분하다. 할리 베리의 차기작이 2014년 <엑스맨>이 아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아직 결정되지 않은 차기작은 ‘몸’이 아닌 깊어진 내면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도로시 댄드리지를 통해 꿈을 꾸었다던 할리 베리를 보면서 꿈을 꾸는 또 다른 소녀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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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베리 #더 콜 #몬스터 볼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도로시 댄드리지
7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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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우민

2013.07.05

할리베리의 매력있는 외모는 익히 잘 알고있었지만 작품 활동은 잘 몰랐어요. 그녀의 연기가 보고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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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1318

2013.06.30

할리 베리 라는 배우를 칼럼을 통해 처음 눈여겨 보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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즌이

2013.06.30

작품 선택을 좀 더 잘해야할텐데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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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