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음악의 ‘남성성’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곡 -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장조 op.73 ‘황제’>
사실 저는 몇 년 전에 피셔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듣다가 정신줄을 잠깐 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들었던 음반은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습니다. 아마 1~2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를 잠시 망각해버리는 몰아(沒我)의 상태에 빠졌던 것인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려움이 왈칵 몰려오기까지 했습니다.
201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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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트 브렌델(Alfred Brendel) [출처: 위키피디아] |
저는 여러 장르의 음악 가운데서도 피아노곡을 유독 좋아합니다. 한 대의 악기로 ‘음악 전체’를 보여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악기라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 피아노는 대범하면서도 고독한 악기입니다.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악기이지요. 그래서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1931~)은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책 『피아노를 들을 시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이올린은 악기 바이올린일 뿐이지만 피아노는 변화의 장(場)입니다. 피아노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끝에서 노래하는 인간의 목소리로 변할 수도 있고, 다른 악기들의 음색을 모방할 수도 있으며, 오케스트라가 될 수도 있고, 무지개나 우주의 음향으로 변할 수도 있지요.”
자, 오늘은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체코의 모라비아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에서 주로 활약한, 20세기 중ㆍ후반을 관통해온 거장입니다. 오늘은 그에 대한 두번째 언급입니다. 첫번째 언급은 <내 인생의 클래식 101> 지난해 11월 8일자로 게재했던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http://ch.yes24.com/Article/View/20900)’ 편에 등장합니다. 만약 읽지 못하신 분은 잠시 짬을 내서 클릭해보시기 바랍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개인적으로 피아노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즐겨 듣는 피아니스트들도 몇 명 있습니다. 최근 출연했던 어느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도 저한테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누구냐?”고 묻더군요. 그때 제 입에서 흘러나온 피아니스트들의 이름은 글렌 굴드,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마리아 주앙 피레스 등이었습니다. 한데 방송이 끝나고 나서 곰곰 생각해보니 그밖에도 더 있었습니다. 깜빡했던 이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알프레트 브렌델이었습니다. 진행자의 급작스런 질문에 답하다 보니 그의 이름을 빼놓았던 것이지요.
이 책에 수록된 수십 편의 짤막한 수상(隨想) 중에서 당신과 꼭 나누고 싶은 글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베토벤에 대한 언급입니다. 그 표현이 쉽고 다감하면서도 참으로 적확하기 이를 데 없어서 혼자만 읽기에는 아깝습니다. 무릇 세상의 모든 ‘말’은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뻥’치는 것과 담을 쌓고 살아온 여든두 살의 거장은 베토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베토벤 말고 살아생전에 그 드넓은 음악의 세계를 맘껏 활보한 작곡가가 또 있을까요? 베토벤 말고 희극과 비극을 모두 아우르는 작곡가는 없을 것입니다. 그가 아니면 어느 누가 다양한 변주곡에 깃든 경쾌함부터 자연의 힘을 풀어줬다 길들였다 하는 자유로움에 이르기까지 그 방대한 영역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었을까요? 또 어느 거장이 후기 작품에서 현재, 과거, 미래를 하나로 모으고 숭고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결합시킬 수 있을까요? 하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베토벤에 대한 여러 편견들이 존재합니다. 영웅적이고 초인적인 베토벤, 말년의 베토벤과 같은 모습들이지요. 우리는 이에 대항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온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거칢이나 오만함 말고도 친밀함과 부드러움이 그의 특성일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 이제 오늘 이야기의 두번째 대목입니다. 저는 앞에서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들 가운데 한 명이 브렌델”이라고 털어놨는데, 책을 읽다보니 브렌델도 매우 흠모하는 선배 피아니스트가 한 명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대단한 피아니스트’는 과연 누구일까요? 바로 스위스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약한 20세기 초ㆍ중반의 거장 에드빈 피셔(1886~1960)였습니다. 사실 이 분은 브렌델의 스승입니다. 브렌델이 배웠던 여러 피아노 스승 가운데 한 명이지요. 브렌델의 책에 빈번히 등장하는 유일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영어식으로 ‘에드윈 피셔’라 표기하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에드빈 피셔’가 옳은 표기일 성싶습니다.
사실 저는 몇 년 전에 피셔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듣다가 정신줄을 잠깐 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들었던 음반은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습니다. 녹음 연도가 1951년입니다. 당연히 모노녹음이지요. 알려져 있다시피 스테레오 시대는 1957년 막을 올립니다. 한데 저는 오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음질도 별로 좋지 않은 그 연주를 듣다가 ‘음악의 주술적 에너지’라는 것을 실제로 체험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주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1~2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를 잠시 망각해버리는 몰아(沒我)의 상태에 빠졌던 것인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려움이 왈칵 몰려오기까지 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장조 op.73>은 베토벤이 1809년에 쓴 곡입니다. 오스트리아가 나폴레옹 군대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던 무렵이었지요. 베토벤 음악에 붙어 있는 많은 이름들이 그렇듯, ‘황제’라는 이름도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닙니다. 누가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만, 아마도 곡 자체의 위풍당당한 분위기 때문에 그런 별칭이 붙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베토벤이 자신의 친구이자 경제적 후원자였던, 또 피아노를 직접 가르치기도 했던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한 곡이지요. 베토벤 음악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는 ‘군대적 기풍’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곡입니다. 아마도 프랑스대혁명 이후의 사회적인 분위기, 아울러 나폴레옹 군대와의 전쟁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음악학자 알프레트 아인슈타인(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사촌)은 “(당시의 청중은) 4분의 4박자의 군대식 1악장을 기다렸다. 베토벤은 그 기대에 보답했다”라고 썼지요. 말하자면 ‘황제’는 베토벤 음악의 ‘남성성’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악장은 20분이 넘는 장대한 규모의 악장입니다. 도입부에서부터 힘찬 맥박이 요동칩니다. 관현악이 ‘빰~’하면서 남성적인 화음을 던지면 곧바로 피아노가 화려한 카덴차로 이어받지요. 이런 식의 주고받기를 세 차례 반복합니다. 아직 1악장의 주제가 등장하기도 전입니다. 이어서 제1바이올린 파트가 첫번째 주제를 드디어 노래하고 클라리넷이 그 선율을 이어받지요. 그리고 다시 관현악 총주가 장쾌하게 울려 퍼진 다음, 바이올린이 스타카토의 느낌으로, 다소 연약한 음향으로 연주하는 두번째 주제가 펼쳐집니다. 이 첫 장면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당당한 관현악과 어우러지는 독주 피아노는 기교적으로 찬란할 뿐 아니라 때때로 압도적인 주술을 펼쳐내기도 합니다. 물론, 뛰어난 연주로 들었을 경우에 그렇습니다.
2악장은 첫번째 악장의 격렬한 에너지에 비한다면 한결 차분하고 느립니다. 이른바 완서(緩徐) 악장이라고 하지요. 약음기를 낀 바이올린이 사색적인 분위기의 첫번째 주제를 느리게 연주한 다음, 피아노가 온화한 표정으로 그것을 이어받습니다. 이어서 아련한 음색의 목관 악기들이 주제를 다시 한번 연주하고, 피아노가 또 그것을 부드럽게 이어받지요. 영화 ‘불멸의 연인’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베토벤이 평생 동안 마음속으로 사랑했던 여인 조안나가 베토벤의 편지를 읽으면서 오열하던 장면이 기억나시는지요? 그때 흘러나왔던 음악이 바로 ‘황제’ 2악장의 주제선율입니다. 물론 이 영화의 설정은 허구이지요. 베토벤은 동생의 아내였던 조안나와 실제로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황제’는 어느새 아타카(attacca, 중단없이)로 3악장의 입구에 들어섭니다. 음악은 1악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 빠르고 격렬해지지요. 피아노 독주가 힘차게 건반을 짚으면서 돌진하려는 자세를 드러내고, 관현악도 이에 질세라 합류합니다. 피아노가 부수적인 주제를 연주하면서 잠시 경과부를 거친 다음, 다시 원래의 호쾌하고 남성적인 주제로 돌아오지요. 이 장면에서 피아노가 보여주는 테크닉은 매우 현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마지막 장면이 펼쳐집니다. 팀파니 소리가 아련하게 울려 퍼지면서 피아노 독주가 차츰 잦아듭니다. 그렇게 음악이 끝나는가 싶더니 피아노가 한차례 더 도약하면서 관현악과 어울려 선명한 마침표를 찍지요. 협주곡 5번 ‘황제’는 그렇게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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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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