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노동절 (근로자의 날)’ 을 맞이하며
먹고사니즘에 지쳐 우리 괴물이 되지는 말자는 것. 그게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 그걸 잊지 않는 것이 적어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아니겠느냐는 것.
글 : 김정희
201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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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오늘은 노동절, 메이데이다. 공식 명칭은 근로자의 날.

 

근로자는 누구인가? 뭐, 여러분이 지금 바로 생각하시는 대로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이렇게 나온다.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

한 마디로 월급 받으며 일하는 사람을 근로자라 할 수 있다. 월급 받으며 일하는 대열에서 밀려나 어쩔 수 없이 사장이 된 사람들이 요즘 많아졌다 할지라도 돈을 버는 성인들의 대부분이 근로자일 것이다.

 

나의 만족과 행복이 목적이 아니라 회사의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일을 하므로 근로자의 생활이라는 것은 뻔하다. 즐겁고 재밌는 시간보다는 힘들고 짜증 나고 열 받고 마음에 안 드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회사 혹은 사업장에서 말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일을 웬만해서는 다 해야 하고, 만약 진짜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 왜 할 수 없는지를 가능하면 숫자와 함께 위에서 납득할 만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사실 이 능력은 근로자가 가져야 할 능력 중 가장 중요한 능력일 테지만, 바빠 죽겠는데 담당자가 탁 보기에 안될 것이 뻔한 일이 왜 안되는지 얘기하는 것은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담당자를 지치게 한다.

 

또 뭔가 나와 뭔가 잘 안 맞는 사람과도 회사의 이윤 추구라는 목적 하에서는 잘 지내야만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억지로 얘기도 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이 조직에서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윗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윗사람이 듣고 싶어 하고 보고 싶어하는 것을 먼저 짠, 하고 제시할 수 있는 센스도 필요하다.

 

일의 애환에 대해 소설가 김훈은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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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놀기를 좋아하고 일하기를 싫어한다. 나는 일이라면 딱 질색이다. 내가 일을 싫어하는 까닭은 분명하고도 정당하다. 일은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부지런을 떨수록 나는 점점 더 나로부터 멀어져서, 낯선 사물이 되어 간다. 일은 내 몸을 나로부터 분리시킨다. 나의 현존이 몸으로부터 떠나갈 때, 나는 불쾌하고 불안하고 불편하다.” (p26)

 

근로자의 신분으로 회사에서 내 모습 그대로 행동하기엔 여러 가지로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일은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킬 때가 많으나,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갖고,  그 일을 지키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박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한다는 이유가 모든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이 요즈음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 경제평론가 이원재는 한겨레경제연구소를 설립해 5년간 소장을 지내다가 작년 대통령선거 때 안철수 후보 진심캠프 정책기획실장을 맡았다. 정책기획실장을 맡으면서 각 지역으로 지원 유세를 돌면서 저자가 경험한 것은 “이른바 ‘먹고사니즘’ - 나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다른 고려는 하지 않는 이기적 이데올로기 - 이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어떤 욕망은 날 것 그대로다. 그야말로 ‘먹고사니즘’의 여과없는 표출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모두에게 피해가 가더라도 나만은 안전했으면 한다. 나와 내 자식만은 소외되지 않았으면 한다. 세금이 조금 낭비되더라도, 우리 집 근방이 개발되어서 집값과 땅값이 올랐으면 한다. 공교육이 중요하고 고등학교만 나와도 잘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믿지만, 내 아이만은 외고와 자사고에 진학하고 일류대학에 갔으면 한다.”

나의 먹고사니즘을 지키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 되어버리면, 결국 내 먹고사니즘을 지킬 수 없게 될 확률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회사 내에서 내 실적만 중요하다고 아우성치면 실적을 위한 일, 즉 일을 위한 일 위주로 하게 된다. 그게 쌓이면 자연스레 그 회사의 비즈니스의 질은 떨어지고 돈을 내는 고객도 떨어져나간다. 고객이 떨어져서 수익이 악화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각 지역마다, 어찌됐든 뭔가 큰 건물을 만들면 나중은 어떻게 됐든 그 기간엔 돈이 풀리게 되니, 대통령 후보든 국회의원 후보에게 지역개발공약을 내놓으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세금이 낭비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결국 본인도 책임의 일부를 떠안게 된다는 것.

 

“함께 사는 사회를 생각한다고 내가 뭔가를 희생하고 포기하고 감수하여 실제로 내 실적 떨어져 회사에서 쓸모 없는 사람이 되면, 그건 누가 책임질 건데? 나라 생각하며 우리 동네 발전 양보하다, 다른 곳은 빌딩 올라가는데 우리 동네는 계속 요 모양이면 그 피해는 누가 보상하는데?”라는 얘기 자연스레 나올 수 있다. 상대방이 뭔가를 취할 때 정의를 외치다 아무것도 취하지 못할 때 느끼는 박탈감과 열등감,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당연하다. 그래서 리더가 중요하고 정치가 중요할 터. 

 

근로자의 날에 맞추어 근로자의 애환에 대해 얘기하다 삼천포로 빠진 듯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아니 나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싶었던 것이 사실 이거다. 먹고사니즘에 지쳐 우리 괴물이 되지는 말자는 것. 그게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 그걸 잊지 않는 것이 적어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아니겠느냐는 것. 소설가 김훈의 산문집을 다시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봄에, 새잎 돋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는 늘 마음이 아팠다. 나무들은 이파리에 엽록소가 박혀 있어서 씨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면서 햇빛과 물을 합쳐서 밥을 빚어낸다. 자신의 생명 속에서 스스로 밥을 빚어내는 나무는 얼마나 복 받은 존재인가. 사람의 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속에서 굴러다닌다. 그래서 내 밥과 너의 밥이 뒤엉켜있다. 핸드폰이 필요한 것이다. 엽록소가 없기 때문에 핸드폰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들 핸드폰을 한 개씩 차고 거리로 나아간다.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밥벌이는 밑도 끝도 없다. 그러니 이 글에는 결론이 없어도 좋을 것이다. 나는 근로를 신성하다고 우겨대면서 자꾸만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라고 몰아대는 이 근로감독관들의 세계를 증오한다. 나는 이른바 3D 업종으로부터 스스로 도망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인간들의 저 현명한 자기 방어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 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37page)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훈 #노동절 #근로자의날 #메이데이
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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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4

부지런을 떨수록 나는 점점 더 나로부터 멀어져서, 낯선 사물이 되어 간다. 일은 내 몸을 나로부터 분리시킨다. 나의 현존이 몸으로부터 떠나갈 때, 나는 불쾌하고 불안하고 불편하다.라는 글귀에 끄덕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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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31

김훈의 산문집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먹고 사는 문제는 정말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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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30

결국은 삶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사는것인데 먹고사니즘에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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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독서교육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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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휘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 한다. 대학은 처음에는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1966년).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읽은 것이 너무 좋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외과에 뜻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영문과로 전과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동기생들이 4학년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생이 되었다. 영문과로 옮기고 나서 한 학년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니까 여동생도 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운 상태라 한 집안에 대학생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었다. 돈을 닥닥 긁어 보니까 한 사람 등록금이 겨우 나오길래 김훈은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이 돈을 가지고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며 그 돈을 여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대학을 중퇴했다. 김훈 씨는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이며 또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 쓰는 것이라 한다. 그의 희망은 희망이 여러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훈이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낸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칼의 노래』를 꼽을 수 있다.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전략 전문가이자 순결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이 시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제시한다. 영웅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궤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복원하여 현실성을 부여하되,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이순신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의 저서로 독서 에세이집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