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1분!”
“30분!”, “5분!”
“20분!”, “10분!”
“오케이!”
이렇게 나는 늘 아이와 줄다리기를 합니다. 놀이 시간 협상은 매번 10분으로 끝나지만, 그래도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재협상을 시도합니다. 처음에는 “이제 10분이 다 됐으니 끝내자.” 하면 아이가 화를 냈습니다. “대신 내일 다시 꼭 놀아 줄게.” 하고 달랬지만 아이는 늘 뚱하고 삐치기 일쑤였습니다.
10분 놀이를 하는 중에 전화벨이 울릴 때도 많습니다. 그러면 놀이가 중단되고 다시 일터로 튀어 나가야 하지요. 그럴 때면 일을 마치고 돌아온 후 아이와 다시 놀았습니다. 그날 놀아 주지 못하면 다음 날 더 놀아 주는 식으로라도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많이 놀아 주지는 못해도 자주 놀아 주는 아빠, 짧게 놀아 주는 대신에 엄청 재미있게 놀아 주는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10분 동안 광대도 되고, 연기자도 되고, 개그맨도 되고, 마구 뒹구는 강아지도 되었습니다. 눈치 보지 않고 망가지듯이 놀아 주었습니다. 상황이 좀 덜 재미있어도 큰 소리로 웃었고 긴장이 좀 덜 되는 놀이라도 몹시 조바심을 내며 스릴 넘치게 놀아 주었습니다. 아이는 놀이 자체도 좋아했지만 이런 아빠의 리액션을 더 재미있어 했습니다.
쉽고 재미있는 재활용품 놀이에 눈뜨다
‘아이와 뭘 하고 놀지?’ 하고 고민하면서부터 재활용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거창한 것을 구상하고 거기에 맞는 재료를 찾으려고 하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재료를 구하러 다니기보다는 그날 그날 집에서 나오는 재활용품을 손에 들고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이 재활용품에 어떤 장난감 혹은 놀이가 숨어 있나 찾아보았습니다. 재활용품의 생긴 모양을 그대로 활용해 간단한 놀이를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재활용품의 특성을 관찰하다 보니 예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톡톡 튀어나왔습니다.
어라, 눈만 붙여도 인형이 되네?
재활용품 놀잇감을 만들 때에는 창조가 아닌 발견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티슈 상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미 있던 구멍이 입이었다는 ‘발견’을 하게 됩니다. 입이 강조된 인형이니 수다 인형, 먹는 인형으로 활용하면 됩니다. 요구르트 포장 종이를 들여다보면 입맛을 다시는 ‘맛있어 인형’이 보이기도 하고 ‘다스베이더’가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재활용품을 손에 쥐고 ‘여기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하고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다양한 캐릭터가 쏟아져 나옵니다.
특히 어떻게 하면 특징을 더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필요 없는 부분을 뺄까를 더 고민했습니다. 이를테면 고깃집 간판에는 크게 표시된 고기 그림 하나면충분하지, 고기와 함께 나오는 스무 가지 반찬을 다 그려 넣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러한 의미에서 재활용품에 눈을 붙이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눈 하나만 붙여도 평범한 재활용품이 다양한 얼굴을 가진 사랑스러운 인형으로 변신합니다. 엄마, 아빠, 아이의 다양한 캐릭터도 눈 하나로 간단하게 구분됩니다. 엄마 눈은 눈썹 두 개로, 아빠 눈은 커다란 눈 혹은 선글라스를 낀 눈으로, 아이 눈은 작은 눈으로. 이렇게 눈 두 개만 효과적으로 그려도 코, 귀, 머리카락, 팔, 다리, 몸통 등 나머지 부분은 보는 사람의 상상 속에서 다 완성되기 때문에 굳이 표현할 필요가 없습니다.
매일 10분 놀이의 3대 원칙
어떤 분이 제게 ‘하루에 몰아서 놀아 주는 건 할 수 있겠는데 매일 10분씩 놀아주는 것은 잘 안 되더라.’라며 매일 놀아 주는 비결을 물어온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결까지는 아니지만 꼭 지키기로 마음먹은 작은 습관이 있습니다. 바로 ‘항상, 즉시, 기쁘게’ 아이와 논다는 것이었습니다.
일 년 중 가장 바쁜 연말, 거기다 월말 그리고 일주일 중 가장 바쁜 월요일. 죽음의 삼박자가 겹쳐진 어느 날이었습니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전화기는 계속 울려댔고, 그 와중에도 아이는 옆에서 ‘놀아 줘!’를 외쳐댔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 또 일 때문에 튀어 나가야 했지만 어제 옷걸이로 만든 낚싯대를 꺼내 들었습니다. 순간 아이의 눈빛이 흥분과 전율로 반짝거렸습니다.
“시작!” 하는 소리와 동시에 옷걸이 낚싯대로 쇼핑백 물고기 더 많이 낚아채기 놀이를 했습니다. 아이의 고함소리가 온 집 안에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그렇게 2분 남짓 흘렀을까요? 제가 다시 일하러 나가야 한다고 말했을 때 아이의 얼굴에는 아쉬움보다는 재미가 더 크게 남아 있었습니다. 정말 신났다며 계속 깔깔거렸습니다. 이후 밤 11시가 다 되어 집에 와 보니 아이는 이미 곤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비록 2분밖에 놀아 주지 못했지만 ‘다음에’, ‘나중에’가 아니라 ‘항상, 즉시, 기쁘게’를 외쳤기에 나는 그날도 아이와 한 약속을 지키고, 신나고 유쾌하게 놀이를 할 수 있는 시간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어려울 것 같지만 사실 해보면 간단한 3대 원칙, 즉 ‘항상, 즉시, 기쁘게’만 지킨다면 하루 10분 놀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커피 마시며 일만 하는 꿀벌 인형
긴 빨대가 꼭 꿀벌의 입처럼 보이는 꿀벌 인형입니다. 여행 등 장거리 운전을 하면 이런 종류의 제품을 사게 되는데요, 문득 커피를 다 마시고 보니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아무래도 전 재활용품 놀잇감을 너무 많이 만들었나 봅니다. 모든 것이 이렇게 인형이나 장난감으로만 보이니 말입니다. 그럼, 꿀벌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준비물 : 다 마신 커피 용기, 눈 스티커, 유성매직]
할 일을 다한 이 용기는 쓰레기통으로 가는 것이 맞겠지만……, 엇, 무언가 보입니다.
보세요, 정말 간단하게 꿀벌이 되지 않았나요?
꿀벌의 자존심인 날개를 달아 줘야겠습니다. 유성매직으로 쓱쓱 날개를 그려 주세요.
날개 부분을 칼로 도려 내 입체적으로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절단면에 아이 손이 다칠 것 같아 그냥 두었습니다.
입이 길게 늘어나는 걸 보니 로봇팔을 가진 가제트 형사가 생각납니다.
넌, 가제트 꿀벌?
“꺼억~ 많이 먹었으니 이제 좀 쉬어 볼까? 아냐! 꿀벌은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해. 항상 일만 하는 아빠처럼 말야.”
커피를 마시며 항상 일하는 일중독 꿀벌.
이렇게 장난감을 만들어 아주 간단한 이야기 하나만 붙여 줘도 아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는 캐릭터가 됩니다.
- 아빠와 10분 창의놀이 김동권 저/이보연 감수 | 시공사
아이랑 어떻게 놀아 주지? 대한민국 최초 아빠 육아 파워블로거가 소개하는 하루 10분 아빠 스킨십. 늘 바쁘고 피곤해 아이와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는 아빠들, 엄마처럼 살갑고 섬세하게 아이를 돌볼 자신이 없어 ‘아빠 육아’라는 말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아빠들을 위한 책이다. 주위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활용품으로 아주 쉽고 재미있게 아이와 가까워지고 나아가 창의력과 사고력을 향상시키는 놀이법 80여 개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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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권
일주일에 7일 출근하는 일중독 아빠. 열심히 일해 가족에게 생활비를 안겨 주는 것이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 여기며 오로지 ‘일’에 매달려 지내던 어느 날 피곤에 지친 자신의 굳은 얼굴을 보며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아이와 ‘매일 10분 놀이’를 시작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무엇을 갖고 노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노느냐가 중요하며, 무엇보다도 놀이를 하는 아빠 자신이 재미있고 즐거워야 함을 깨달았다. 이후 피곤하고 지친 아빠들도 쉽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재활용품 놀잇감을 하나씩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이 과정을 담은 블로그 [아빠와 함께하는 10분 게임]이 네티즌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게 되었고 아빠로서는 최초로 네이버 육아 부문 파워블로거가 되었다. 무뚝뚝하고 조금은 서툴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한민국의 모든 아빠들이 아이에게 ‘우리 아빠 최고!’의 찬사를 받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쉽고 재미있는 아빠 놀이를 고민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100인의 아빠단’ 놀이 멘토, 환경부 환경교육용 이동교구상자 놀이개발 자문위원, 서울대학교 한국디자인산업연구센터(KDRI) 육아ㆍ놀이분야 트렌드세터로 선정되었으며 EBS [다큐 프라임 '아버지의 성']을 비롯해 KBS, SBS, MBC 등 다수의 텔레비전 및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앙쥬], [맘앤앙팡] 등의 주요 언론과 육아 전문지에 소개된 바 있다.
브루스
2013.04.30
sh8509
2013.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