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 말을 소중하게 생각했지만 죽을 때까지 몰고 다녔다.’
거의 삼 년 전에, 저는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수상님께 보냈습니다. 그 소설과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비교하며 읽으시면 재미있을 겁니다. 두 작품이 같은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무척 다릅니다. 『동물농장』은 우화적인 수법으로 스탈린의 악행을 그렸지만, 솔제니친의 소설은 사실적인 수법으로 스탈린의 악행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십니까?
201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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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 님에게,
어린 시절의 경이감을 떠올려주는 책을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보냅니다.
어린 시절의 경이감을 떠올려주는 책을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보냅니다.
하퍼 수상님께,
어린 시절에는 어린 눈으로 읽었다면 이번에는 성인의 입장에서 읽어보십시오. 과거에 우리가 완전히 살아있는 어린아이였다면 지금은 완전히 살아있는 성인입니다. 책은 두 상태를 이어주는 중요한 고리입니다. 따라서 두 책이 무척 짧게 느껴지더라도 급히 읽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천천히 읽으면서 그 효과를 만끽해보시기 바랍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는 맥스의 마음 상태가 어떨지 생각해보십시오. 또 왜 맥스가 그런 마음 상태이어야 하고, 그런 마음 상태가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맥스와 괴물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되리라 생각하십니까? 『깊은 밤 부엌에서』에서는 삽화를 눈여겨보십시오. 콧수염을 짧게 기른 빵가게 아저씨들의 모습에서 수상님은 누가 떠오르십니까? 미키가 반죽을 뚫고 나와서 오븐 위를 떠다닐 때 거기에서 담긴 뜻이 무엇일까요? 달리 말하면, 이 그림책들을 읽는 데만 만족하시지 말고(소리 내어 읽으면 더 좋습니다) 상상의 나래를 펴보시라는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얀 마텔 드림.
추신: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 『깊은 밤 부엌에서』는 삼부작 중 처음 두 권입니다. 두 책이 마음에 드시면 마지막 세 번째 책,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서』를 직접 구해보십시오. 즐겁고 재미있는 책 사냥이 될 겁니다.
모리스 샌닥(Maurice Sendak, 1928-2012)은 아동문학 작가 겸 삽화가이다. 열여섯 편 이상의 책을 썼고, 그보다 훨씬 많은 책의 삽화를 그렸다. 그의 모든 작품은 지금 필라델피아 로젠바흐 박물관 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로스엔젤레스의 노스할리우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가 있다. | ||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 님에게,
야만적인 지배를 고발한 소설을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보냅니다.
하퍼 수상님께,야만적인 지배를 고발한 소설을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보냅니다.
지난주에 저에게는 정말 신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편지함에 중간 크기의 빳빳한 봉투가 있었습니다.
수상님만큼 많은 우편물을 받지는 않지만 저도 웬만큼은 받습니다(그렇다고 우편물을 전담할 직원을 두어야 할 만큼 많지는 않습니다). 여하튼 무슨 우편물인지 궁금했습니다. 발송지 주소가 미국이더군요. 봉투를 열었습니다. 두 장의 판지 사이에서 작은 봉투 하나가 빠져나왔습니다. 앞면 왼쪽 위에 발신인 주소가 있었습니다. 백악관, 워싱턴 DC 20500. 저는 어리둥절하면서도 궁금했습니다. 그 백악관인가? 저는 작은 봉투를 열었습니다. 백악관 인장이 선명한 편지지에 오바마 대통령이 육필로 쓴 편지가 있었습니다.
저는 심장이 순간적으로 멎는 것 같았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지금도 조심스레 그 편지지를 꺼내 보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미국 대통령이 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에게! 그 편지지를 액자에 넣고 보관해야겠습니다. 제 등에 그 편지를 문신으로 새길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오바마 대통령의 너른 마음에 놀랐습니다. 수상님도 아시겠지만, 공인들은 뭔가를 할 때 많은 계산을 합니다. 하지만 이 편지로 오바마 대통령이 어떤 이익을 얻을까요? 더구나 저는 미국 시민도 아닙니다. 제가 오바마 대통령을 도울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다시 말해서 독자이자 아버지로서 편지를 쓴 게 분명합니다. 단 두 줄로, 『파이 이야기』를 통찰력 있게 분석해냈습니다. 친절하게도. 자상하게도.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백사 쪽에 있는 한 단락이 제 생각을 함축적으로 요약해주는 듯합니다.
그는 더는 서 있지도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계속 일해야 했다. 슈호프(바로 이반 데니소비치)에게 옛날에 그런 말이 있었다. 그는 그 말을 소중하게 생각했지만 죽을 때까지 몰고 다녔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말의 껍질을 벗겨냈다. | ||
거의 삼 년 전에, 저는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수상님께 보냈습니다. 그 소설과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비교하며 읽으시면 재미있을 겁니다. 두 작품이 같은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무척 다릅니다. 『동물농장』은 우화적인 수법으로 스탈린의 악행을 그렸지만, 솔제니친의 소설은 사실적인 수법으로 스탈린의 악행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십니까?
우리 작은 북클럽에 일시적으로 변화가 있을 거라는 걸 수상님께 알려드립니다. 지금까지는 수상님과 저만의 북클럽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곧 사 개월 예정으로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어느 정도는 다음 소설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이 주마다 책을 구하고 수상님께 편지를 쓰는 계획이 큰 부담이 될 것 같아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캐나다 작가들에게 우리의 문학 여정에 동참해달라고 부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부득이하게 해야 하는 일이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하기야 저 혼자만 수상님께 책을 제안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책 세상에 대한 제 지식은 무척 제한적입니다. 다른 작가들의 문학적 깊이를 빌리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앞으로 정확히 이 주 후, 즉 삼월 십오 일 월요일에 수상님 집무실로 배달될 예정인 책과 편지는 다른 캐나다 작가가 보낸 것이 될 겁니다. 그분이 누구인지 미리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깜짝 놀랄 만한 작가라는 것만 알려드리겠습니다. 게다가 저도 다음 책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 책도 깜짝 놀랄 만한 책이 될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얀 마텔 드림.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xander Solzhenitsyn, 1918-2008)은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며 역사가이기도 하다. 솔제니친이 굴라크에서 복역한 팔 년에서 영감에 받아 쓴 『수용소 군도』과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가 가장 유명하며, 반소비에트 프로파간다로 여겨졌다. 솔제니친은 197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4년 소련에서 추방당했지만 1994년 러시아로 돌아갔다. | ||
-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얀 마텔 저/강주헌 역 | 작가정신
이 책은 캐나다의 수상 스티븐 하퍼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은 세상 모든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얀 마텔적 충언'이자, 더 나아가 모든 독자들에게 전하는 문학 편지다. 짧은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어 술술 읽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에 읽어 치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하루에 편지 한 통, 아니면 일주일에 편지 한 통도 좋다. 얼마나 많은 페이지를 읽느냐보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마치 시를 읽듯이, 편지 한 통 한 통을 곱씹어 읽으며 고요한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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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얀 마텔
1963년 스페인에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캐나다, 알래스카, 코스타리카, 프랑스, 멕시코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이란, 터키, 인도 등지를 순례했다. 캐나다 트렌트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후 다양한 직업을 거친 뒤, 스물일곱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93년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을 발표하며 데뷔했고, 이후 『셀프』(1996) 『파이 이야기』(2001) 『베아트리스와 버질』(2010)을 썼다. 전 세계 40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파이 이야기』로 2002년 부커상을 수상했으며 이를 계기로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브루스
2013.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