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매춘, 폭행… 살기 좋다던 북유럽도 똑같네! - 『이지 머니』
『이지 머니』를 쓴 옌스 라피두스는 형사 소송 전문 변호사였다. 수많은 범죄자들을 직접 대면하고, 그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아야 했던 이력이 있다. 『이지 머니』의 뛰어난 점은 바로 그것이다. 범죄자들의 모습이 대단히 리얼하고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 유고, 남미, 중동 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이 왜 주류 사회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머무르면서 범죄조직을 만들게 되는지, 왜 그들이 범죄의 삶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201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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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1990년대에는 북유럽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했다. 동독이란 국가가 사라지고, 소련이 해체되어 러시아가 되었다. 사회주의 혁명의 종주국이 자진 투항한 것이었다. 스스로 좌파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사회민주주의가 새롭게 떠올랐고, 일찍이 사회주의적 정책을 도입하여 안정된 자본주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북유럽에 눈길을 돌리기도 했다. 1995년에는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나와 인기를 끌었다. 똘레랑스에 기초를 둔 자유로운 사회.
1999년 노르웨이의 영화 <정크 메일>을 봤다. 우편물들을 내버리고 몰래 뜯어보기도 하는 오슬로의 우편배달부가 주인공이었다. 그는 별다른 희망도, 즐거움도 없이 살아가며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다. <정크 메일>을 보면서 영화 자체보다 눈에 들어왔던 건 빈민가의 풍경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보던, 마약 중독자들이 가득한 빈민가. 사회구성원 전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북유럽 사회에도 저런 곳이 있구나. 세상 어디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란 별 차이가 없구나. 완벽한 사회가 없다는 것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북유럽에 대해서는 환상이 있었다는 걸 그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엔스 라피두스의 『이지 머니』를 읽으면서 머릿속에 <정크 메일>이 떠올랐다. 빈민가에 사는 마약중독자들에게는 누가 마약을 공급할까? 『이지 머니』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을 장악한 범죄조직의 이야기다. 범죄조직이 하는 일이란 어디나 똑같다. 마약, 매춘, 업소의 보호비 갈취, 협박과 폭행. 북유럽에 대한 환상은 깨진 지 오래지만, 최근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과 『레오파드』, 안네 홀트의 『데드 조커』와 『셰프』 등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사람 사는 것은 어디나 같다’는 말을 되뇌고 있다. 『이지 머니』가 딱히 충격은 아니었다. 다만 스웨덴에서도 이렇게나 차별과 불평등, 일상화된 범죄가 상존한다는 것은 흥미로웠다.
『이지 머니』의 주인공은 세 명이다. 마약을 팔다가 감옥에 들어간 호르헤. 칠레 이민자인 호르헤는 유고인 갱단의 보스 라도반과 수하인 므라도에게 배신을 당하고, 감옥 생활을 하다가 탈옥한다. 그리고 복수의 칼날을 세운다. 호르헤가 이를 가는 므라도는 협박, 폭행, 살인 전문의 조직폭력배다. 딸을 생각하는 마음은 여느 아버지와 같지만, 일상에서의 므라도는 잔인하고 위험한 범죄자일 뿐이다. 과거에는 동료였지만 지금은 보스가 된 라도반과의 관계가 삐걱거리면서 므라도는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시골 출신의 JW가 있다. JW는 어떻게든 상류층에 진입하려고 발버둥치는 청년이다. 잘 생긴 얼굴과 타고난 사교성으로 JW는 상류층 젊은이들과 친해지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그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막대한 돈. JW는 불법 택시를 운영하다가 마약을 팔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냉큼 받아들인다.
호르헤, 므라도, JW는 모두 스웨덴 사회의 하층에 속해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호르헤와 므라도는 이방인이다. 여전히 자신의 조국은 칠레와 세르비아라고 생각한다. 그들 자신이 스웨덴의 내부에 끼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통 스웨덴인이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고,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그저 이론상 가능할 뿐이다. 그들은 뼈저리게 알고 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써도 그는 결코 그들과 동급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호르헤를 비롯해 스톡홀름에 사는 모든 유색인 이민자 출신들은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머리에 왁스를 바르고,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체면을 차리고, 아무리 번드르르한 차를 몰아도 그들은 스웨덴 사람들과 같지 않았다.
심지어 스웨덴 토박이인 JW조차도 자신이 상류층에 완벽하게 끼일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의 친구들은 JW가 그들과 같은 계급이라고 생각한다. JW는 늘 거짓말을 하고, 완벽하게 위장된 삶을 살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은 사교의 천재이지 싶었다. 영화 <리플리>의 스웨덴판이 있다면, 주인공은 바로 JW였다.’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된다. 자신이 그들과 같은 위치에 서려면, 아니 최소한 외관상이라도 그들과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려면 ‘범죄’에 뛰어들어야 함을. JW의 위치는 호르헤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살도록 예정되어 있던 건가? 스톡홀름 빈민가 출신의 보통 남자가 최대한 성공해봐야 마약 밀매상인가? 어머니가 칠레를 떠나 새로운 나라의 정상적인 시민이 되려고 했을 때 이미 미래는 정해졌던 걸까? 전철에 올라타서 열차가 이미 출발하고 나서야 잘못 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 점에서 JW는 호르헤는 물론 범죄조직 주변의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JW는 대체로 그들과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스투레플란 친구들과 달리 꾸밈이 없어서 좋았다. 습관 면에서는 그들보다 다소 격이 떨어질지 모르나 속을 들여다보면 여자, 돈, 신나게 즐기며 사는 것처럼 시본적으로 공유하는 가치는 스투레플란 녀석들이나 그들이나 다를 게 없었다.
『이지 머니』를 쓴 옌스 라피두스는 형사 소송 전문 변호사였다. 수많은 범죄자들을 직접 대면하고, 그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아야 했던 이력이 있다. 『이지 머니』의 뛰어난 점은 바로 그것이다. 범죄자들의 모습이 대단히 리얼하고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 유고, 남미, 중동 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이 왜 주류 사회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머무르면서 범죄조직을 만들게 되는지, 왜 그들이 범죄의 삶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그러한 범죄조직이 스웨덴의 상류사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놓치지 않는다. 스웨덴의 지배층이 범죄조직을 이용하며 공생하는 모습도 리얼하게 그려진다.
옌스 라피두스의 데뷔작 『이지 머니』가 최고의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잘 배치된 주인공, 그들이 서로 얽히면서 진행되는 범죄조직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뒤를 궁금하게 만든다. JW는 상류층에 진입한다는 목적만이 아니라 스톡홀름에서 실종된 누나의 행방도 찾아야 한다. 탈옥한 호르헤는 다시 마약조직의 핵심이 되지만, 어떻게든 라도반과 므라도에게 복수하려 계획을 세운다. JW와 호르헤는 사악하거나 못된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것을 이루기 위해, 필연적으로 범죄의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범죄의 세계 그 자체를 묘사한 『이지 머니』는 어떻게 스웨덴이란 사회에서 범죄조직이 존재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 리얼리티야말로 『이지 머니』의 진정한 매력이다.
1999년 노르웨이의 영화 <정크 메일>을 봤다. 우편물들을 내버리고 몰래 뜯어보기도 하는 오슬로의 우편배달부가 주인공이었다. 그는 별다른 희망도, 즐거움도 없이 살아가며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다. <정크 메일>을 보면서 영화 자체보다 눈에 들어왔던 건 빈민가의 풍경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보던, 마약 중독자들이 가득한 빈민가. 사회구성원 전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북유럽 사회에도 저런 곳이 있구나. 세상 어디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란 별 차이가 없구나. 완벽한 사회가 없다는 것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북유럽에 대해서는 환상이 있었다는 걸 그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이지 머니』의 주인공은 세 명이다. 마약을 팔다가 감옥에 들어간 호르헤. 칠레 이민자인 호르헤는 유고인 갱단의 보스 라도반과 수하인 므라도에게 배신을 당하고, 감옥 생활을 하다가 탈옥한다. 그리고 복수의 칼날을 세운다. 호르헤가 이를 가는 므라도는 협박, 폭행, 살인 전문의 조직폭력배다. 딸을 생각하는 마음은 여느 아버지와 같지만, 일상에서의 므라도는 잔인하고 위험한 범죄자일 뿐이다. 과거에는 동료였지만 지금은 보스가 된 라도반과의 관계가 삐걱거리면서 므라도는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시골 출신의 JW가 있다. JW는 어떻게든 상류층에 진입하려고 발버둥치는 청년이다. 잘 생긴 얼굴과 타고난 사교성으로 JW는 상류층 젊은이들과 친해지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그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막대한 돈. JW는 불법 택시를 운영하다가 마약을 팔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냉큼 받아들인다.
호르헤, 므라도, JW는 모두 스웨덴 사회의 하층에 속해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호르헤와 므라도는 이방인이다. 여전히 자신의 조국은 칠레와 세르비아라고 생각한다. 그들 자신이 스웨덴의 내부에 끼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통 스웨덴인이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고,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그저 이론상 가능할 뿐이다. 그들은 뼈저리게 알고 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써도 그는 결코 그들과 동급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호르헤를 비롯해 스톡홀름에 사는 모든 유색인 이민자 출신들은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머리에 왁스를 바르고,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체면을 차리고, 아무리 번드르르한 차를 몰아도 그들은 스웨덴 사람들과 같지 않았다.
심지어 스웨덴 토박이인 JW조차도 자신이 상류층에 완벽하게 끼일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의 친구들은 JW가 그들과 같은 계급이라고 생각한다. JW는 늘 거짓말을 하고, 완벽하게 위장된 삶을 살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은 사교의 천재이지 싶었다. 영화 <리플리>의 스웨덴판이 있다면, 주인공은 바로 JW였다.’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된다. 자신이 그들과 같은 위치에 서려면, 아니 최소한 외관상이라도 그들과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려면 ‘범죄’에 뛰어들어야 함을. JW의 위치는 호르헤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살도록 예정되어 있던 건가? 스톡홀름 빈민가 출신의 보통 남자가 최대한 성공해봐야 마약 밀매상인가? 어머니가 칠레를 떠나 새로운 나라의 정상적인 시민이 되려고 했을 때 이미 미래는 정해졌던 걸까? 전철에 올라타서 열차가 이미 출발하고 나서야 잘못 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 점에서 JW는 호르헤는 물론 범죄조직 주변의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JW는 대체로 그들과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스투레플란 친구들과 달리 꾸밈이 없어서 좋았다. 습관 면에서는 그들보다 다소 격이 떨어질지 모르나 속을 들여다보면 여자, 돈, 신나게 즐기며 사는 것처럼 시본적으로 공유하는 가치는 스투레플란 녀석들이나 그들이나 다를 게 없었다.
『이지 머니』를 쓴 옌스 라피두스는 형사 소송 전문 변호사였다. 수많은 범죄자들을 직접 대면하고, 그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아야 했던 이력이 있다. 『이지 머니』의 뛰어난 점은 바로 그것이다. 범죄자들의 모습이 대단히 리얼하고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 유고, 남미, 중동 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이 왜 주류 사회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머무르면서 범죄조직을 만들게 되는지, 왜 그들이 범죄의 삶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그러한 범죄조직이 스웨덴의 상류사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놓치지 않는다. 스웨덴의 지배층이 범죄조직을 이용하며 공생하는 모습도 리얼하게 그려진다.
옌스 라피두스의 데뷔작 『이지 머니』가 최고의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잘 배치된 주인공, 그들이 서로 얽히면서 진행되는 범죄조직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뒤를 궁금하게 만든다. JW는 상류층에 진입한다는 목적만이 아니라 스톡홀름에서 실종된 누나의 행방도 찾아야 한다. 탈옥한 호르헤는 다시 마약조직의 핵심이 되지만, 어떻게든 라도반과 므라도에게 복수하려 계획을 세운다. JW와 호르헤는 사악하거나 못된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것을 이루기 위해, 필연적으로 범죄의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범죄의 세계 그 자체를 묘사한 『이지 머니』는 어떻게 스웨덴이란 사회에서 범죄조직이 존재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 리얼리티야말로 『이지 머니』의 진정한 매력이다.
- 이지 머니 옌스 라피두스 저/이정아 역 | 황금가지
상류 사회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던 JW는 자신의 출신을 숨기고 부유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지만, 그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만다. 호르헤 살리나스 바리오는 마약 거래에 연루된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탈옥에 성공하여 자신에게 죄를 전부 뒤집어씌운 유고 마피아 조직에 복수를 다짐한다. 마피아 조직원인 므라도는 호르헤를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윽고 세 남자의 운명은 서로 얽히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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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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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sind1318
2013.06.30
yiheaeun
2013.03.26
브루스
2013.02.27
그런책일것 같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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