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의 변신은 없다
Y는 그녀가 그리던 이상형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근사하고 능력 있고 자상한 그 사람에게 단 한 가지 단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결혼 날짜를 잡은 일주일 후였다. 그에게 자기 말고도 다른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위기감을 느낀 그녀는 사방을 수소문해 그가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던 바람둥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헤어지자는 그녀의 말에 남자는 무릎을 꿇고 울면서 빌었다.
“내가 다 인정할게. 나 여자 많이 만났던 거 맞아. 그런데 그건 다 널 만나기 전의 일이야. 지난번 그 여자도 정리하려고 했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나서 방황했던 거야. 너만은 진짜 사랑하니까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제발 날 믿어줘. 헤어지자는 말만은 하지 마.”
진심 어린 그 말에 그녀는 마음이 흔들렸다. 한편으로는 더할 나위없이 완벽한 그가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 많은 여자들을 제치고 결국 최후에 그와 결혼하는 건 자신이니 좀 우쭐하기도 했다. 결혼과 연애는 다르니 결혼하면 이전과는 달라지겠지 하는 믿음도 있었다. 결국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단단히 받아내고 용서해주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Y는 여러 친구들이 어울려 술 마시던 자리에서 화장실을 가다가 약혼자가 자기 친구에게 키스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다행히 그녀는 그러고도 파혼하지 않을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그녀는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친구가 어느 바람둥이와 사귀었는데, 글쎄 내 친구에게 했다는 말이 내가 전에 들었던 것하고 똑같지 뭐야? 처음엔 같은 사람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였어.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바람둥이들이 자기 합리화할 때 써먹는 전형적인 멘트더라고. 그런 뻔한 말에 속았었다는 게 어찌나 한심하던지. 그 사람, 또 어디 가서 다른 여자한테 진정한 사랑은 네가 처음이라고 말하고 있을걸.”
타인과 또 다른 타인의 결합인 결혼은 항상 충돌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만, 고통을 줄이고 결합을 최적화하는 방법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남편감이 도무지 가능성 없는 사람이라면 이 모든 방법들이 다 쓸데없는 것이 된다. 제아무리 화려한 레시피로 요리한다 해도 썩은 도미가 재료라면 먹을 만한 음식이 나와 주질 않는 것처럼 말이다.
놀라운 것은 그 영리한 요즘 여자들이 남자들이 변할 거라는 기대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결코 결혼이라는 것을 해서는 안 되는 인격 장애자들이 있다. 정신과 질환이 있는 사람은 병원에 실려 가기라도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멀쩡해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깜빡 속기가 쉽다.
여자들은 때로 사랑으로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싶어 하지만, 사람이란 나쁜 쪽으로는 쉽게 변해도 좋은 쪽으로는 웬만해선 변하지 않는다. 우주가 운행하는 물리학적 법칙이 그렇다. 무언가가 나쁜 쪽으로 가려면 그냥 내버려두면 되고, 좋은 쪽으로 움직이려면 힘을 가해야만 한다.
따라서 사람의 본성이라는 어마어마한 것을 좋은 쪽으로 움직이려면 만만치 않은 노력을 해야만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나부터도 10년 전부터 결심만 했던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결혼의 필수 조건이었다면, 환갑 때까지 도 독신으로 있게 되었을 것이다. 나라면 10만 분의 1의 확률에 인생을 걸지는 않겠다.
상대방이 신과 부모의 이름을 걸고 변하리라 맹세한다 해도 도박이나 주식 또는 마약에 중독된 사람, 소비성 신용불량자, 바람둥이, 폭력적인 사람, 거짓말쟁이, 마마보이, 범죄자, 사이코패스 등등은 알아서 피하기 바란다.
“여자들은 사랑으로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사람이란 나쁜 쪽으로는 쉽게 변해도 좋은 쪽으로는 웬만해선 변하지 않는다.”
패스트푸드 같은 남자는 재빨리 버려라
빡빡한 일정에 쫓기던 날 지하철을 타기 전에 무언가로 배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 주변을 둘러보니 식당이라고는 패스트푸드점 하나뿐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간단한 음식 하나를 콜라와 함께 주문한 다음 자리에 앉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나는 충격에 빠졌다. 놀랄 만큼 맛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고급 음식만 찾아 먹는 미식가 타입이 아니며 당시 접시라도 씹어 먹을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배가 고팠다. 웬만해서는 눈앞의 먹을 것을 남기지 않는 아줌마인 내가 더 이상 음식에 손대지 않고 일어서서 나와 버렸다. 전에는 드물지 않게 먹곤 했던 그 음식의 맛이 그토록 끔찍하게 변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수년 전에는 지금처럼 편안한 분위기의 커피 전문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약속을 정하거나 간단히 무언가를 마시고 싶을 때 패스트푸드점에 갔었다. 그렇게 해서 입에 익숙해진 음식은 그런대로 맛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오랫동안 이런저런 사정으로 더 이상 패스트푸드점에 갈 일이 없어지자 이제 그 인공적인 맛을 예민하게 거부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접근성’이다.
나는 수많은 여자들이 이러한 ‘접근성’ 때문에 패스트푸드처럼 가치 없는 남자를 만나고 결혼까지 이르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마음의 거리를 두고 한동안 떨어져 있으면 나쁜 남자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계속 접하게 되면 그 속성을 눈치 못 채고 그저 익숙해져가는 것이다. 그런 여자들은 한순간도 든든하게 허기를 채우지 못하면서 마음의 건강만 해치게 된다. 가끔 이 남자를 영양 가치가 있는 남자로 변하게 하려 노력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햄버거에 허브 가루를 뿌리고 웰빙식이라고 우기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이다. 그래서 김치찌개나 나물무침처럼 먹어볼수록 깊은 맛을 알게 되는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패스트푸드를 먹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그 비릿한 맛에 너무 익숙해지기 전에 패스트푸드 같은 남자는 멀리하는 게 상책이다.
영양학자들은 패스트푸드가 ‘전혀’ 건강에 이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기아로 사망할 위기에 있는 극빈 지역 어린이들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는다면 도움이 될 거라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여자를 힘들게 하는 습관과 본성을 지닌 나쁜 남자들 역시 당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단,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처해서 종족 번식이 절실히 필요해지는 순간이 오면 그들과의 결합을 진지하게 고려 해봐도 좋다.
- 나는 무작정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
- 남인숙 저 | 리더스북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등으로 100만 독자의 사랑을 받고 2030 여성들에게 현실적이고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젊은 멘토로 떠오른 남인숙이, 올해로 결혼 15년차에 접어든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결혼 이후의 삶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이 책은 결혼에 대해 공부하지 않은 채 애정과 사랑만으로 무작정 결혼한 이들의 말 못할 고민을 지켜보면서 쓴, 행복한 결혼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바치는 ‘언니’의 날카로운 조언이자 뜨거운 주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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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숙
소설가, 에세이스트. 1974년 서울 출생. 숙명여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부터 방송작가, 자유기고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출간 이후 80만 부 이상이 판매되며 여성 에세이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한 베스트셀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2004)를 비롯하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 실천편』(2006), 『여자, 거침없이 떠나라』(2008), 『여자의 인생은 결혼으로 완성된다』(2009), 『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2010) 등 2030 여성을 위한 에세이를 펴내어 독자들의 뜨거운 지지와 공감을 얻었다. 또한 그녀의 여성 에세이는 중국과 대만, 베트남, 몽골에 번역 출간되었고 특히 중국에서는 1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보이며 자국 위주의 중국 출판계에서는 드물게 비소설 분야의 베스트셀러 1위 기록을 세우는 등 여자에게 솔직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전해주는 멘토의 지침서로서 언어와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시대 아시아 여성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가비
2013.02.28
만다
2013.02.06
chang0307
2013.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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