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인’의 가면을 쓴 어느 사이코패스 이야기 - 『좀비』
Q_ P_는 사람을 납치하여 자신의 좀비로 만들고 싶어 한다. 자신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그에게 명령도 지시도 하지 않고, 어떤 의심이나 질문도 던지지 않는 존재. 그래서 그는 좀비를 원한다. 좀비 친구를, 어쩌면 좀비들의 세상을.
201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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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이코패스라고도 부르는, 타인에게 정서적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범죄자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요즘에는 사이코패스이면서도 세상과 인간에 대해 학습을 하면서 사랑까지 하게 되는 덱스터도 있고, 『나는 살인자를 사냥한다』의 소년처럼 의식적으로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정서적 공감이 부족하면, 그들은 언제나 살인자가 될 위험이 있는 것일까? 의학계에서는 여전히 ‘사이코패스’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들은 흉악범들을 모두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로 대치함으로써,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은연중에 확인하려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선한 사람들이고, 그 안에 뱀처럼 사악한 존재들이 끼어 있다면서.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격리시키기만 하면 된다면서.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거론되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좀비』는 우리가 사이코패스라고 흔히 부르는 범죄자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어둠을 신랄하고 진중하게 파헤치는 작가다. 1964년 『아찔한 추락과 함께』(With Shuddering Fall)로 데뷔한 후 50편이 넘는 장편과 1000편이 넘는 단편을 발표했다. 1996년작 『좀비』는 브램 스토커상 수상작이다. 『좀비』의 주인공 Q_ P_는 연쇄살인범이다. 그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무슨 생각으로 사람들을 납치하여 좀비로 만들려하고,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조이스 캐롤 오츠는 섬뜩하게 그려낸다.
Q_ P_는 흑인소년을 납치하여 성폭행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는다. 풀려난 그에게, 아버지는 차를 주고 할머니 소유의 건물 관리인을 맡긴다. 아들을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제스처에 불과하다. 저명한 대학교수인 아버지는, 아들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도망치고 싶은 것뿐이다. 무언가 수상하다는 낌새를 채고도 아버지는 물러선다. ‘아버지는 알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마침내 포기하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치면서 말했다.’ 사이코패스는 사람들을 그저 목적의 대상으로만 본다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들, ‘정상인’은 과연 어떤가. 그들은 과연 한 인간의 다면적인, 입체적인 면을 들여다보려 애를 쓰기는 하는 걸까?
Q_ P_는 정해진 기간마다 보호관찰관을 만나야 하고, 정신과의사와 상담을 해야 한다. 그들은 범죄자의 마음, 행태 등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Q_ P_는 훌륭하게 그들을 속인다. 아니 어쩌면 굳이 속일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자신의 상식과 주장대로만 사람을, 사물을 파악하려 하니까. 보호관찰관은 Q의 집을 보러 왔다가 세를 들어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고는 말한다. ‘저들에게는 백인이 관리인이라는 게 좀 이상하겠죠?…다른 뜻이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오. 난 흑인 친구도 많아요. 그냥 역사가 그렇다는 거죠.’ 그렇다면 Q_ P_의 이런 말도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다.
그들을 포옹하는 일이 내게는 골때리게 힘들다!
Q_ P_는 사람을 납치하여 자신의 좀비로 만들고 싶어 한다. 자신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그에게 명령도 지시도 하지 않고, 어떤 의심이나 질문도 던지지 않는 존재. 그래서 그는 좀비를 원한다. 좀비 친구를, 어쩌면 좀비들의 세상을.
진정한 좀비는 ‘아니다’라는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고 오직 ‘그렇다’라는 말만 할 수 있으니까. 그는 두 눈을 맑게 뜨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내다보는 것은 없고 그 뒤에서는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 어떠한 심판도 하지 않을 것이다……당신들과 다르다. 당신들은 나를 지켜보면서 은밀한 생각을 하지?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심판을 내리지.
Q_ P_는 분명히 비정상적이다. 그가 어린 시절 흠모했던 소년과 닮은 아이를 발견하고, 욕망에 들끓어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에게는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는 미쳤다. 그는 흉악한 범죄자다. 하지만 그는 과연 우리, 정상적이고 흉악한 범죄 같은 것은 절대로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우리 그리고 이웃들과는 얼마나 다른가.
아버지가 존경했던 스승은 사후에 민간인을 대상으로 비인간적인 인체실험을 했음이 드러난다. 아버지는 슬그머니 그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치워버린다. Q_ P_는 오래 전, 아버지와 함께 대학의 연구실에 간 적이 있었다. 그 곳에는 고양이, 토끼, 원숭이 우리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실험용 동물들이었다. ‘몇몇은 눈알을 번득거렸지만 보지 못했고, 모두 입을 벌리고 있었지만 소리내지 못했다. 들리지 않는 소리 없는 비명이 공중에 울려 퍼졌다.’ Q_ P_가 원하는 좀비도, 그런 동물과도 같은 사람들이다.
좀비로 안전한 대상은 타지 사람이다. 히치하이커, 부랑자, 쓰레기 같은 부류. (비쩍 마르거나 마약 중독자나 에이즈 환자만 아니라면.) 또는 시내에서 얼쩡대는 집도 절도 없는 흑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인간. 태어나지 말았어야 될 인간.
Q_ P_가 그런 인간들만을 대상으로 했다면, 아마 그는 영원히 무수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 것이다. 실종 신고도 되지 않고, 가족들이 찾지도 않고, 따라서 그를 의심하지도 않을 테니까. 하지만 Q_ P_가 교외의 백인 소년을 노렸을 때, 그는 바로 용의선상에 오르게 된다. 그들은 보호받고 있으니까. 그들은 안전하게,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
Q_ P_의 누나 주디는 어릴 때부터 반장에 스포츠 스타였고, 지금은 중학교 교장이다. Q_ P_가 집행유예를 받은 뒤, 더욱 남동생을 아끼게 된 주디는 친구들과의 저녁식사에 그를 부른다. 주디와 친구들은 건강보험, 범죄문제, 우익의 편집증적 정치, 총기소지와 낙태 등을 열성적으로 토론한다. 누군가 ‘인류의 잔혹사 중 많은 부분이 종교 때문’이라 말하자 누구는 ‘종교가 아니라 권력, 정치권력이 그런 것’이라 말하고, 주디는 ‘우리는 외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 내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서 갈등하며, 다가올 새천년엔 호모사피엔스의 구원이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 토론을 지켜보면서 Q_ P_는 자신이 저지른 납치와 살인에 대해 생각하고 ‘가슴을 도려내면 여자는 남자와 별반 다를 게 없겠지. 남자가 성기를 자르면 여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처럼. 가슴은 주로 지방이다. 뼈는 없나?’ 같은 것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주디와 그의 친구들은 과연 Q_ P_와 얼마나 다른 존재일까? 우리는 과연 Q_ P_와 다른 존재일까?
Q_ P_는 흑인소년을 납치하여 성폭행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는다. 풀려난 그에게, 아버지는 차를 주고 할머니 소유의 건물 관리인을 맡긴다. 아들을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제스처에 불과하다. 저명한 대학교수인 아버지는, 아들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도망치고 싶은 것뿐이다. 무언가 수상하다는 낌새를 채고도 아버지는 물러선다. ‘아버지는 알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마침내 포기하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치면서 말했다.’ 사이코패스는 사람들을 그저 목적의 대상으로만 본다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들, ‘정상인’은 과연 어떤가. 그들은 과연 한 인간의 다면적인, 입체적인 면을 들여다보려 애를 쓰기는 하는 걸까?
Q_ P_는 정해진 기간마다 보호관찰관을 만나야 하고, 정신과의사와 상담을 해야 한다. 그들은 범죄자의 마음, 행태 등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Q_ P_는 훌륭하게 그들을 속인다. 아니 어쩌면 굳이 속일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자신의 상식과 주장대로만 사람을, 사물을 파악하려 하니까. 보호관찰관은 Q의 집을 보러 왔다가 세를 들어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고는 말한다. ‘저들에게는 백인이 관리인이라는 게 좀 이상하겠죠?…다른 뜻이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오. 난 흑인 친구도 많아요. 그냥 역사가 그렇다는 거죠.’ 그렇다면 Q_ P_의 이런 말도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다.
그들을 포옹하는 일이 내게는 골때리게 힘들다!
Q_ P_는 사람을 납치하여 자신의 좀비로 만들고 싶어 한다. 자신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그에게 명령도 지시도 하지 않고, 어떤 의심이나 질문도 던지지 않는 존재. 그래서 그는 좀비를 원한다. 좀비 친구를, 어쩌면 좀비들의 세상을.
진정한 좀비는 ‘아니다’라는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고 오직 ‘그렇다’라는 말만 할 수 있으니까. 그는 두 눈을 맑게 뜨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내다보는 것은 없고 그 뒤에서는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 어떠한 심판도 하지 않을 것이다……당신들과 다르다. 당신들은 나를 지켜보면서 은밀한 생각을 하지?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심판을 내리지.
Q_ P_는 분명히 비정상적이다. 그가 어린 시절 흠모했던 소년과 닮은 아이를 발견하고, 욕망에 들끓어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에게는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는 미쳤다. 그는 흉악한 범죄자다. 하지만 그는 과연 우리, 정상적이고 흉악한 범죄 같은 것은 절대로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우리 그리고 이웃들과는 얼마나 다른가.
아버지가 존경했던 스승은 사후에 민간인을 대상으로 비인간적인 인체실험을 했음이 드러난다. 아버지는 슬그머니 그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치워버린다. Q_ P_는 오래 전, 아버지와 함께 대학의 연구실에 간 적이 있었다. 그 곳에는 고양이, 토끼, 원숭이 우리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실험용 동물들이었다. ‘몇몇은 눈알을 번득거렸지만 보지 못했고, 모두 입을 벌리고 있었지만 소리내지 못했다. 들리지 않는 소리 없는 비명이 공중에 울려 퍼졌다.’ Q_ P_가 원하는 좀비도, 그런 동물과도 같은 사람들이다.
좀비로 안전한 대상은 타지 사람이다. 히치하이커, 부랑자, 쓰레기 같은 부류. (비쩍 마르거나 마약 중독자나 에이즈 환자만 아니라면.) 또는 시내에서 얼쩡대는 집도 절도 없는 흑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인간. 태어나지 말았어야 될 인간.
Q_ P_가 그런 인간들만을 대상으로 했다면, 아마 그는 영원히 무수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 것이다. 실종 신고도 되지 않고, 가족들이 찾지도 않고, 따라서 그를 의심하지도 않을 테니까. 하지만 Q_ P_가 교외의 백인 소년을 노렸을 때, 그는 바로 용의선상에 오르게 된다. 그들은 보호받고 있으니까. 그들은 안전하게,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
Q_ P_의 누나 주디는 어릴 때부터 반장에 스포츠 스타였고, 지금은 중학교 교장이다. Q_ P_가 집행유예를 받은 뒤, 더욱 남동생을 아끼게 된 주디는 친구들과의 저녁식사에 그를 부른다. 주디와 친구들은 건강보험, 범죄문제, 우익의 편집증적 정치, 총기소지와 낙태 등을 열성적으로 토론한다. 누군가 ‘인류의 잔혹사 중 많은 부분이 종교 때문’이라 말하자 누구는 ‘종교가 아니라 권력, 정치권력이 그런 것’이라 말하고, 주디는 ‘우리는 외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 내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서 갈등하며, 다가올 새천년엔 호모사피엔스의 구원이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 토론을 지켜보면서 Q_ P_는 자신이 저지른 납치와 살인에 대해 생각하고 ‘가슴을 도려내면 여자는 남자와 별반 다를 게 없겠지. 남자가 성기를 자르면 여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처럼. 가슴은 주로 지방이다. 뼈는 없나?’ 같은 것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주디와 그의 친구들은 과연 Q_ P_와 얼마나 다른 존재일까? 우리는 과연 Q_ P_와 다른 존재일까?
- 좀비 조이스 캐럴 오츠 저/공경희 역 | 포레
정신과 주치의, 심리치료 의사, 보호관찰관 모두 순종적이고 단정한 가면을 쓰고 필사적으로 정상인인 척 연기하는 쿠엔틴을 의심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그에게 무관심할 뿐이고, 심지어 그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까지 믿는다. 그러나 쿠엔틴은 고립감과 분노로 가득 차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 속 편한 소리를 해대는 여자들(할머니와 어머니와 누나) 앞에서 자상한 남자어른처럼 굴고, 안경 너머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남자들(아버지와 의사들)에게 코흘리개 꼬마아이처럼 자신의 행동에 대해 구구절절 변명하면서 가족과 사회의 눈을 피해 또 다른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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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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