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눈치보지 말고 내 마음에 드는 옷 입고 멋부리자
나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은 자기 파악과 자기 인정, 그리고 자기 개방의 과정이다. 자신이 타고난 것과 되고 싶은 것, 그리고 갖고 있는 것과 주변상황까지 고려해서 최적화를 시도하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자신의 외모에 대해, 그리고 입고 싶은 옷에 대해 자유로운 관점으로 생각해본 적이 얼마나 될까?
201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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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가 우리 모습을 맘에 들어 하지 않는 이유는 옷을 못 입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옷을 안 입고 있어서가 아닐까? 어떤 식으로 매치를 해야 좋을지 남들이 만들어놓은 여러 가지 법칙을 배우기 전에 자기 눈에 예쁜 대로 실컷 입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모른다. -천계영 『드레스 코드』, 「코디 노트」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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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마릴라는 그 아이에게 딱딱한 모양의 옷만 입히는 걸까…물론 그것도 괜찮긴 하겠지. 뭐 마릴라가 잘못할 리는 없고…앤을 기르고 있는 것은 마릴라니까…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아침밥은 필요 없어요. 아주머니. 도무지 밥이 넘어갈 것 같지 않아요. 이 옷에 처음 손을 댔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던 것을 생각하면 아침밥 같은 건 너무나 무미건조한 일로 생각돼요. 전 이 옷을 바라보며 마음껏 눈으로 식사를 할게요.” -애니메이션 <빨간머리 앤>, 「매튜와 부푼 소매 옷」편
매튜의 독백과 드레스를 선물받은 앤의 대사 | ||
하여 남들은 ‘베스트 인턴’(모범사원 같은 것으로 레지던트 지원 시 가산점을 준다)을 노리던 시절 나는 ‘제일 예쁜 인턴’, ‘베스트드레서’ 같은 비공식 타이틀이 목표라고 농담반 진담반 얘기하곤 했다. 당시 우리병원 여자 인턴과 레지던트들에겐 암묵적인 스타일 룰이 있었는데, 광택 도는 검정색/남색 정장바지에 핑크, 레몬, 파란색 등의 얇은 단색 니트티를 받쳐입는 것이었다. 아나운서 머리 또는 어깨길이 파마머리를 하고 무테 안경을 쓰고 로이드 풍 14K 목걸이와 귀걸이를 하면 완성. 크게 실패할 일 없고 포멀해보이고 활동하기에도 좋아, 씻을 시간도 부족한 인턴들에겐 편리한 코디공식이었다. 다만, 지나친 공부와 일은 건강에 해롭다고 주장하면서도 스타일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던 나에겐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떻게 몇 년 내내 무난하고 모범적인 옷만 입고 지낼 수 있단 말인가.
그때부터 학교 앞 옷가게나 동대문에도 나가보고 백화점의 쇼윈도도 구경하면서 여러가지 스타일을 시도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에도 들고 가운에도 어울리고 교수님이나 선배들에게도 욕먹지 않게 입을 수 있을까? 면바지에 셔츠를 매치하기도 하고, 무릎길이 스커트에 줄무늬 티셔츠를 입기도 하고, 단정한 원피스를 입어보기도 했다. 그 와중에 과하거나 부적절한 시행착오도 많았다. 옷차림이 평범치 않다고 윗년차 선생님들에게 눈총을 받거나 쿠사리를 먹기도 하고, 샤랄라한 모습에 환자들이 당황하거나 의사로서의 나에 대해 반신반의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좌충우돌하면서 적당한 선을 찾아갔다. 가운 안에 옷 입는 법.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일에는 방해가 되지 않게 입는 법.
겉모습이란 자기 자신과 세상과의 관계가 밖으로, 미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옷 입기란 것 자체가 연극이다. 그 연극의 주인공인 우리는 기능과 장식, 절제와 과시, 감추기와 드러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존재가 아닌가. -박상미 『취향』, 마음산책,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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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동종집단인 병원 안에서 작은 변화를 시도하며 느낀 점은, 구성원의 모습이 전형적인 것, ‘단정한 것’, ‘무난한 것’과 다를 때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얘, 그 옷은 의사로서 좀 그렇지 않니?”, “이 상황에선 더 얌전한 옷을 입어야지.” 라는 말은 때로는 도움되는 충고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나를 숨막히게 했다.
이럴 때 떠오르는 것이 중고등학교 시절의 빡빡하고 강압적인 복장검사였다. 사춘기는 외모에의 관심이 높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라, 똑같은 교복을 자신의 체형이나 취향에 맞게 입는 것은 좋은 옷입기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생주임 선생님은 약간의 사이즈 조절이나 소매를 걷고 단추를 풀어 입는 것까지 문제 삼았고, 기준에 완벽히 따르지 않으면 불량학생으로 취급했다. 머리도 염색, 펌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귀밑 몇 센치까지 재가며 “단정하게, 학생답게”를 강조했다. 늘 궁금했다. 누구 눈에 단정하게? 누구 눈에 예쁘게? 옷을 입는 사람은 나인데 왜 내 기준보다 어른들의 기준이 더 중요한 걸까?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싫던 학생주임 선생님의 기준을 내면화해 자신의 모습을 검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스타일, 마음에 드는 옷을 찾기보다는 윗사람들의 눈에, 남들의 까칠한 품평에 걸리지 않는 데 힘을 쏟아온 것은 아닐까.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스타일링을 하는 것은 의류업체들의 획일적인 생산 탓도 있지만 순응적이고 모나지 않게 보이고픈 마음, 그렇게 보여야만 살기 편한 사회분위기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나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은 자기 파악과 자기 인정, 그리고 자기 개방의 과정이다. 자신이 타고난 것과 되고 싶은 것, 그리고 갖고 있는 것과 주변상황까지 고려해서 최적화를 시도하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자신의 외모에 대해, 그리고 입고 싶은 옷에 대해 자유로운 관점으로 생각해본 적이 얼마나 될까? 내가 즐겁게 멋대로 옷입은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상냥하고 다정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름과 다양함에 대해, 그리고 드러냄과 튐에 좀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나를 가슴뛰게 해준 옷이 있었나?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을 때처럼, 옷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 -천계영 『드레스 코드』, 「코디노트」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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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새로운 드레스’로 표상되는 소속감과 ‘나만의 드레스’라는 차별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지 않는가. (중략) 요즘 감성을 크게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뭔가 다르다는 긴장감을 자아낼 수 있는 드레스여야 했던 것이다. 속하면서 튀는, 패션의 역설이자 변증법을 세련되게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분주히 쇼핑을 하는 것이다. -박상미 『취향』, 마음산책,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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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취향은 타고나기도 하고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 등에 의해 결정돼. 자기가 좋아하는 건 곧 자신을 의미하니까 그걸 부정하면 안돼. 그냥 지금의 자기 취향을 즐겨. 어차피 취향은 살면서 변하고 발전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의 취향을 드러내면서도 상황과 나의 취향에 어울리게 센스 있게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옷 입는 기술. 나를 먼저 발견하고 그리고 남의 눈에도 멋있게 보이는 방법을 찾자. -천계영 『드레스 코드』, 「기본 아이템 1」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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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고 자신감도 생긴다. 떨리는 학예회 무대에서 매튜가 선물해준 갈색 부푼소매 드레스 덕에 힘을 내어 멋지게 시낭송을 마친 빨간머리 앤처럼.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즐거운 것이 먼저다. 그리고 나서 세상과 조율해가는 거다.
우리, 눈치는 마지막에 보자, 그것도 쪼금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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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미녀정신과의사
늘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한, 밝고 다정한 정신과의사 안주연입니다. 우울증과 불안증, 중독을 주로 보고 삶, 사랑, 가족에 관심이 많아요. 책읽기와 글쓰기, 고양이와 듀공을 좋아합니다. http://twitter.com/mind_ma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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